218화 곧 간다고 전해라 (1)
누가 감히 음양쌍괴의 집에 불을 질렀단 말인가.
그들을 신봉하는 극살오의는 분노를 금할 수가 없었다.
첫째인 천우환은 막내 천우진과 한 조를 이루어 뒷산을 수색했다.
“형님. 멀쩡한 길을 놔두고, 설마 야산으로 도망쳤겠어요? 이거 괜히 헛고생만 하는 거 아닌지.”
천우진은 지금 헛짓거리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노련한 천우환의 생각은 달랐다.
“자, 막내야. 우리가 그놈들이라고 생각해보자. 호현을 벗어나는 길은 두 개뿐이지? 어느 쪽으로 갈래?”
“음. 한수 쪽 방면이 좋지 않겠어요? 아무래도 강에서 배를 타면…….”
“거기까지 무사히 도착할 자신 있어? 안 잡히고?”
“꼭 그런 건 아니지만…….”
천우환이 하늘을 두리번거리더니, 어딘가를 향해 검지를 내뻗었다.
“저기 하늘 위에 까만 점 보이지? 뭐 같아?”
“설, 설마 음괴 대협입니까?”
“맞아. 저걸 보고도 도망칠 자신 있어?”
음괴가 하늘 위에서 초인적인 시야로 주변을 훑으면서 수색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흡사 먹잇감을 찾아 비행하는 매처럼 보였다.
누구든 수상한 자만 보이면 바로 내리꽂을 기세였다.
“저 방금 몸에 소름이 돋았어요. 엄청 무섭네요.”
“그래도 길가로 가고 싶어? 그 어쭙잖은 경공으로? 그랬다간 바로 대가리 깨지는 거야.”
이제야 천우진도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듣고 보니 형님 말이 맞는 것 같네요. 여긴 나무에 가려서 잘 안 보일 거예요.”
“당연하지. 우리 극살오의가 지금까지 생존한 이유가 뭔지 알아? 바로 이 형님의 명석함 때문이다.”
“역시 대단합니다.”
우쭐해진 천우환은 선두에서 풀숲을 헤치며 거침없이 나아갔다.
“그나저나 이 쥐새끼들은 도대체 어디 숨은 거야?”
아무리 헤집고 다녀도 흔적조차 찾아볼 수가 없었다.
머지않아 등 뒤에서 막내의 볼멘소리가 들려왔다.
“형님, 근데 너무 멀리 온 거 아니에요? 양괴 대협이 삼십 리 이상 벗어나지 말랬는데.”
“조금만 더 찾아보고.”
“이래서는 돌아가기도 힘들겠어요.”
그때였다. 돌연 앞장서서 걷던 천우환의 귀가 쫑긋거렸다.
어딘가에서 소음을 들었기 때문이다.
“쉿. 가만히 있어 봐.”
그의 속삭임에 천우진도 숨을 죽였다.
잠시 후 둘의 표정이 점차 진지하게 변해갔다.
“형님. 방금 웃음소리 들으셨어요?”
“너도 들었다니, 맞는 것 같구나. 조용히 따라와.”
둘은 소음이 들려온 곳을 향해 조금씩 나아갔다.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조금씩 더 확연히 들려왔다. 사람들의 대화와 웃음소리가.
우선 내용을 좀 들어봐야 했다.
걸음을 멈춘 둘은 자세를 낮추고 귀를 기울여 보았다.
“하하하! 정말 속이 다 시원해요.”
“그러게 말이다. 음양쌍괴 놈들, 지금쯤 아주 속이 뒤집혔을걸?”
“그런데 우리 정말 괜찮은 거겠지?”
“뭐가 문젠데?”
“아직 맹에서 허가도 못 받으셨다잖아.”
“결과가 좋으니 상관없어. 오히려 포상을 받을걸? 우리가 그 사악한 놈들에게 최초로 한 방 먹인 거야.”
대부분 목소리가 젊어 보였다.
그들의 대화 내용에서 어느 정도 상황을 추측할 수 있었다.
천우환이 검을 만지작거리고 있을 무렵. 막내로부터 전음이 들려왔다.
- 형님, 저놈들이 확실한 것 같습니다. 어서 대협들을 부르시죠?
- 아니다. 어차피 너무 멀리 와서 호각을 불어도 못 들을 거야.
- 그럼 어쩌죠?
- 어쩌긴 뭘 어째. 그분들에게 우리의 능력을 입증할 절호의 기회인데.
그는 음양쌍괴에게 자신들의 가치를 인정받고 싶었다.
하지만 천우진은 찜찜한지 소극적인 반응을 보였다.
- 괜찮겠습니까? 총 다섯 명인 것 같은데요.
- 우리가 누구야? 설마 피라미 같은 놈들한테 겁먹은 건 아니겠지?
상대는 무림맹의 젊은 후기지수들.
노련한 극살오의가 겁을 낼 이유는 없었다.
비록 오 대 이의 싸움이라 할지라도.
- 아닙니다, 형님. 어서 앞장서시죠.
-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넌 도망치는 녀석이 있으면 다리나 분질러 놔.
수풀 사이를 비집고 조금 더 접근하자, 드디어 놈들의 은신처가 나타났다.
높게 솟은 나무들의 그늘막 사이로 존재하는 평평한 분지였다.
그곳에 다섯 명의 젊은 무림인이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그들의 복장은 하나같이 푸른 빛이 감도는 경장 차림으로 동일했다.
‘무림맹의 청운대 소속 놈들이로구나.’
먹잇감을 덮치기 전에 탐색은 기본이었다.
천우환은 후기지수들의 정체를 살펴보고 있었다. 무기의 종류와 손잡이의 장식, 머리 모양 등에서 말이다.
‘왼쪽 두 놈은 종남파 출신이로군. 가운데 놈은 당문의 암기를 차고 있고……. 어라, 비구니도 하나 껴있네?’
설마 후기지수들끼리 모여서 일을 벌인 거란 말인가? 그야말로 가관이었다.
놀랍지만 아주 가끔은 있는 일이기도 했다. 호승심에 눈이 먼 햇병아리들이 멋모르고 설쳐대다가 비명횡사를 하는 경우가.
더는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이 어린노무 새끼들. 겁대가리 없이 음양쌍괴 대협들의 집에 불을 질렀겠다!?”
천우환의 등장에 다섯 명의 후기지수들은 안색이 창백해졌다.
자신들의 작전이 발각될 줄은 꿈에도 몰랐던 모양이었다.
당황하던 그들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음양쌍괴도 같이 온 것인지 확인하는 것이리라.
이어서 가장 가운데에 있는 자가 물었다.
“둘뿐이오?”
“왜. 한번 해보려고? 내가 누군지 몰라?”
천우환이 인상을 쓰며 그를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하지만 무림맹원들은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잘 알고 있소. 그러니까 물어본 거요.”
“뭐라고? 이 싸가지없는 새…….”
그는 말을 하다 말고 상체를 비틀었다.
상대가 방심한 틈을 노려 암기를 던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게 허술하게 당할 천우환이 아니었다.
휘리릭-!
그의 가슴 앞으로 한 자루의 표창이 회전하며 지나쳤다.
과연 당문의 암기술이라 할 수 있을 만큼, 날카롭고 예리한 기습이었다. 방심했으면 큰 상처를 입게 되었을 정도로.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은 그는 상대를 향해 섬전처럼 쏘아져 나갔다.
후기지수들의 수준으로 당해낼 수 있는 속도가 아니었다.
천우환의 손바닥이 그의 뺨을 사정없이 후려치는 소리였다.
그가 쓰러짐과 동시에 나머지 넷이 동시에 무기를 뽑아 들었다.
철컥-! 철컥-!
“오호라. 저항을 해보시겠다?”
수적으로는 불리함이 있었지만, 천우환은 동요하지 않았다. 풋내기들을 상대로 겁낼 이유는 없었으니까.
그때 막내인 천우진이 쓰러진 무림맹원에게 다가가며 물었다.
“형님. 이 미친놈은 죽여도 돼요?”
“기다려. 모두 대협들에게 산 채로 끌고 갈 거니까.”
시간을 오래 끌 생각이 없었다.
천우환이 검을 비틀어 쥐는 그때.
돌연 근처의 나무 위에서 검은 그림자 하나가 쏜살같이 떨어져 내렸다.
영문을 알 수 없었던 그는 본능적으로 검을 치켜세웠다.
천우환의 입에서 신음이 토해져 나왔다.
기습을 막아내긴 했지만, 자세가 불안정했던 탓일까? 손목에 부상이 생기고야 말았다.
“괜찮아요, 형님?”
“저, 저 새낀 뭐야?”
다섯 명인 줄 알았으나, 한 명이 더 숨어 있었던 것이다.
무림맹의 후기지수들이 도망치지 않았던 이유였으리라.
자세히 보니 객잔에서 보았던 종남파의 일대제자 남해였다. 무공 수준이나 경험에서도 다른 녀석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놈이었다.
“천우환. 그렇지 않아도 네놈은 내가 잡고 싶었다.”
천우환은 검을 쥔 손목이 뻐근한지, 왼손으로 계속 주물러댔다.
“이 비겁한 자식. 잘도 기습 공격을…….”
종남파의 남해가 여유로운 표정으로 그를 비웃었다.
“하하. 이거 정말 웃기는군. 극살오의한테 비겁하다는 소리를 듣다니.”
“웃음이 나오나 보군. 음양쌍괴 대협들이 너희들을 찾고 있다.”
“그래서 뭐? 이 정도 거리면 음괴도 너희의 비명을 듣지 못할 거다. 너흰 너무 깊게 들어왔어.”
찰나의 방심이 상황을 어렵게 만들고야 말았다.
자신이 남해와 대치하고 있는 사이, 나머지 무림맹원들이 막내를 향해 무기를 겨눴다. 둘의 대결에 끼어들지 못하도록 발을 묶어놓은 것이리라.
천우환이 어두운 표정으로 검을 비틀어 쥐었다.
‘일격에 승부를 본다.’
그것이 최선이었다. 남해만 쓰러트릴 수만 있다면, 나머지 애들은 어떻게든 처리할 수 있을 듯했다.
“종남파의 낙운검법이 뭔지 보여주마. 허나 그런 손목으로 막을 수 있을까?”
“입 닥치고, 빨리 오기나 해.”
둘은 서로를 잠시 노려보며 자세를 낮추었다.
마치 두 개의 활이 서로에게 시위를 당긴 듯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천우환은 비장의 절초를 준비하고 있었으나,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없었다. 손목의 뼈가 부러졌는지 힘이 잘 안 들어갔기 때문이다.
‘확률은 삼 할.’
이 정도면 충분히 승부를 걸어볼 만한 싸움이었다.
그는 날카로운 강기가 남해의 검날을 감싸는 것을 보았다. 그 또한 일격필살의 기술을 사용하려는 모양이었다.
양측 모두 준비를 마친 채 틈을 노리고 있었다.
그때 고요를 깨고 누군가가 마른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꼴깍-!
그것이 신호였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천우환과 남해가 서로를 향해 화살처럼 쏘아져 나갔다.
돌연 밝은 섬광이 번뜩이며, 순간적으로 모두의 시야를 가렸다.
이상하게도 베이거나 찔리는 소리가 아니었다. 마치 주먹이나 발로 얼굴을 후려친 듯한 타격음이었다.
“크헉!!”
숨 막히는 신음과 함께 남해의 신형이 튕겨 날아가고 있었다. 마치 바람에 휘날리는 연처럼.
그는 오 장 거리의 나무에 등을 ‘쿵’ 부딪치고 나서야 멈출 수가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이란 말인가.
잠시 후 영문을 알게 된 모두가 입을 떡하니 벌렸다.
무림맹의 후기지수들은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성난 음괴가 미간을 가운데로 모은 채, 자신들을 노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천우환이 유설의 옆으로 다가와 손가락을 움직이며 말했다.
“저기 나무에 처박힌 놈이 모든 걸 지휘했고, 이 시건방진 놈들이 함께 불을 지른 것입니다.”
말을 마친 천우환이 막내에게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천우진이 거품을 물고 앉아 있던 남해를 질질 끌고 다가왔다.
반쯤 풀린 그의 동공이 힘겹게 유설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눈에 봐도 공포에 질린 눈빛이었다.
그때 유설이 왼손으로 남해의 옷자락을 움켜쥐며 물었다.
“왜 그랬어.”
남의 집을 불태운 행동에 무슨 정당한 사유가 있겠는가.
모두가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그러자 유설이 분노하며 오른쪽 주먹을 어깨 뒤로 잡아당겼다.
“왜 그랬냐구!!!”
이대로 주먹이 얼굴에 꽂힌다면 머리가 으깨질 터.
남해는 저항을 포기한 채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무림맹의 후기지수들은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다.
“꿇어, 이 겁대가리 가출 나간 새끼들아!”
천우환의 한마디에 다섯 명의 맹원들이 동시에 무릎을 꿇었다.
차원이 다른 압도적인 존재. 그 앞에서 자존심을 지키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성보다 본능이 먼저 반응했으니까.
음괴는 때릴까 말까 고민하는 듯 주먹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씨이…….”
“어서 죽이십시오, 대협. 살려둘 가치가 없는 놈입니다.”
천우환이 음괴를 설득하고 있던 그때.
누군가가 이곳을 향해 허공을 밟으며 다가오고 있었다.
뒤늦게 소리를 듣고 달려온 유진산이었다.
“뒤로 나오너라. 할애비가 알아서 하마.”
유설은 분이 가시지 않는지 씩씩거리며 물러섰다. 할아버지에게 맡기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이어진 유진산의 반응은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확인했으니 되었다. 보내줄 테니, 모두 돌아가.”
천우환이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대, 대협?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놀라기는 무림맹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집에 불을 질렀는데도 순순히 보내준다니?
그러나 의문은 오래가지 않았다.
모두가 오해하고 있던 것이었다. 유진산의 진정한 의도를.
“각자 사문으로 돌아가서 똑똑히 전하거라. 음양쌍괴가 곧 찾아갈 거라고.”
그의 한마디에 맹원들이 기겁하며 혼비백산했다.
더군다나 종남파는 이미 음양쌍괴한테 호되게 당했던 전력까지 있지 않았던가. 종남파의 역사에서 가장 치욕스러운 사건이었다.
남해가 울부짖으며 소리쳤다.
“안, 안 됩니다! 제발 제 목숨만 거둬 가시고, 사문은 건들지 마십시오!”
유진산은 듣기도 싫다는 듯 그대로 등을 돌렸다.
그러자 유설이 할아버지의 팔짱을 끼고는 그들을 슬쩍 한 번 노려봤다.
“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