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8화 사육의 달인들 (3)
음식을 준비하는 유설은 연신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모처럼 개발하는 새로운 음식에 신이 나는 모양이었다.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작은 노구솥에 각종 재료를 투척하기 시작했다.
봇짐에 챙겨 다니는 향신료들과 이름 모를 약초. 거기에 주변에서 공수해 온 각종 재료들이 아낌없이 들어갔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요리~ 넣고요~ 넣고요~ 다~ 넣습니다~”
타고난 선음지체(仙音之體)의 체질 덕분일까? 박자에 맞춰서 노래를 부르는 기교가 보통이 아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유진산이 흐뭇한 미소로 물었다.
“뭐가 그렇게 신이 났어?”
“오늘은 뭔가 느낌이 좋아. 한 입 먹어봐, 할배.”
냄새를 맡아보던 유진산은 기겁하며 등을 돌렸다.
코끝으로 스며드는 강렬한 향을 도저히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얘가 도대체 뭘 만든 거지?’
마치 팥을 끓인 것처럼, 거무튀튀하고 걸쭉한 죽이었다.
고개를 설레설레 내젓고 있을 때였다.
핼쑥해진 얼굴로 주저앉은 왕사평이 죽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직도 멀었느냐? 소갈병이 발작하고 있으니, 어서 빨리 음식을 섭취해야 한다.”
소갈병은 살찐 사람이 기름진 음식을 많이 먹었을 때 생기는 병이다.
식사량과 소변의 조절이 안 되며, 영양 섭취가 제때 안 되면 부종과 호흡곤란 등 각종 부작용이 찾아온다.
“그러게 평소에 적당히 좀 처먹지 그랬느냐.”
왕사평이 이마에 맺힌 식은땀을 닦으며 성을 냈다.
“내가 여기서 죽는다면 너희들이 죽인 것이다! 나라의 관료를 살해하면 어찌 되는 줄 아느냐?”
“글쎄. 생각해 본 적은 없군.”
“국법에 따라 팔촌까지 전부 죽인다. 너희들은 도망치면 그만이라지만, 가족들을 찾아내 전부 참형에 처할 것이다.”
“그렇다면 별로 신경 쓸 필요가 없겠구나.”
왕사평이 기가 찬다는 표정을 지었다.
“정말이지 무자비한 마두로구나. 네놈들 때문에 일가친척이 전부 죽어도 상관없다는 말이냐?”
유진산이 한숨을 내쉬고는 왕사평 앞에 쪼그려 앉았다.
“이놈아, 팔촌 이내 살아있는 가족이라고는 우리 둘밖에 없어. 얘기하지 않았느냐? 네가 사사로이 풀어준 녀석의 조직에게 전부 몰살당했다고.”
“……그 말이 정녕 사실이었단 말이냐?”
유진산이 뭐라 대답할 찰나. 뒤에서 손녀가 노구솥을 들고 다가왔다.
“다 됐어, 할배.”
“그래. 이 녀석에게는 아까운 음식이지만, 우선 사람은 살려놓고 봐야지. 어서 건네주거라.”
그렇지 않아도 배가 고파서 혼절할 것 같았던 왕사평이었다.
노구솥을 빼앗듯이 받아든 그가 수저로 한술을 푹 떠서 들어 올렸다.
그러나 그의 손은 입으로 가져가지 못하고 허공에서 정지해 있었다.
“이, 이게 뭐지? 냄새가 왜 이래?”
그럴줄 알았다는 듯 유설이 눈빛을 빛내어 소리쳤다.
“영양 가득 매설죽!”
약초 같은게 들어있는 것을 보니 뭔가 그럴듯하긴 했다.
몸에 좋은 음식일수록 입에도 쓴 법.
하지만 그는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다.
“매설죽? 그런 이름을 가진 음식이 있었던가? 근데 왜 죽에서 지렁이가 나와?”
얻어먹는 주제에 무슨 말이 이리도 많다는 말인가.
유진산이 그럴 듯하게 덧붙여 설명해주었다.
“지렁이는 영양이 풍부해 약재로도 많이 쓰이고, 소화를 돕는 효과가 있다.”
“일리가 있구나. 너희들은 잘 모르겠지만, 내가 개봉에서는 알아주는 미식가였다.”
이것저것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배만 채울 수 있다면 뭐든 다 먹을 수 있을 정도로 배가 고팠으니까.
숨을 꾹 참은 그는 정신없이 수저를 뜨기 시작했다.
그렇게 열 번 정도를 움직였을 때였다.
돌연 그가 목을 움켜잡고 바닥을 뒹구는 것이 아닌가.
“끄으악!”
밥먹다 말고 갑자기 이게 무슨 반응이란 말인가.
유진산이 손녀에게 눈짓을 보냈다. 무슨 영문인지 묻는 것이다.
그러나 유설도 잘 모르겠다는 듯 어깨를 한 번 으쓱댈 뿐이었다.
그때였다. 양손으로 목을 움켜쥔 왕사평이 대굴대굴 구르는 것이 아닌가.
“끄으…… 이, 이놈들이 날 독살하다니…….”
유설의 미간이 급격히 가운데로 모였다.
정성들여 음식을 만들어 주었건만 독살이라니!?
지금까지 이런 반응을 보인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백사문의 문도들도 모두가 맛있게 먹어주지 않았던가.
도대체 어떠한 맛이길래 그가 이런 반응을 보인단 말인가. 도저히 용납할 수가 없었다.
그가 토악질을 하려는 찰나. 유설의 검지가 재빨리 그의 명치 부근을 짚었다.
혈도를 눌러 음식이 역류하는 것을 막은 것이다.
이어서 몇 군데의 혈도를 더 짚어 점혈해버렸다. 몸을 움직일 수 없도록.
“하나도 남김 없이 다 먹어!”
수저를 빼앗은 유설은 그에게 영양죽을 떠먹이기 시작했다.
왕사평의 두 눈에서 눈물이 펑펑 흘러나왔다.
온몸이 금제되었기에 삼키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끄…… 끄으…….”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듯 했지만, 입을 다무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유진산은 고개를 설레설레 내젓고는 시선을 돌렸다.
‘뭐 적어도 소갈병으로 죽을 염려는 없겠구만.’
강 기슭에서 야영을 한지 열흘이 지났다.
한동안은 이곳에서 시간을 끌 생각이었다.
정찰을 해본 결과, 개봉성 주변으로 관군의 경계가 강화되어 운신이 자유롭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천하제일 손녀와 함께 있더라도 예상치 못한 변수는 언제든 있는법.
그들이 무슨 준비를 했을지 모르기에 잠잠해지길 기다리는 것이 상책이었다.
금세 입을 열 것 같았던 왕사평이 아직도 정창원에 대해서 실토하지 않고 있었다.
그렇다고 직접적으로 고문을 가하는 것은 유진산의 방식이 아니었다.
생각보다 시간이 소요되고 있었지만, 오래 걸리지는 않을 듯했다.
“……헉, 헉!”
왕사평은 나무에 기대어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는 열흘 만에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만 같았다.
기름진 음식을 먹지 않았기 때문일까?
비대한 살집은 눈에 띄게 줄어 있었고, 혈색도 많이 좋아져 있었다.
하지만 정신이 피폐한 사람처럼 두 눈이 반쯤 풀려 있는 모습이었다.
그때 유진산이 혀를 끌끌차며 말했다.
“때리지 않을 테니, 또 도망쳐 보거라. 운동도 하고 좋잖아?”
조손은 그를 구속하지 않고 자유롭게 풀어주었다. 밥을 먹을 때를 제외한다면.
굳이 묶어 놓을 필요도 없었다.
그동안 수십 번이나 도주를 감행했지만, 그럴 때마다 어김없이 잡혀왔다.
비계만 가득한 거구로 뛰어봤자 얼마나 멀리 갈 수 있단 말인가. 게다가 깊게 파인 발자국 때문에 추적도 어렵지 않았다.
무엇보다 왕사평을 자유롭게 놓아준 이유는 따로 있었다. 짐승을 사냥하듯 그를 잡아 오면서 심심함을 달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휴.”
“좋아해도 부족할 판에 왠 한숨? 선선한 그늘에서 낮잠도 자~, 밥때가 되면 특별식도 먹여줘~, 신선 놀음이 따로 없지 않느냐.”
“특별식? 저게 특별식이라고? 저건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니야!”
왕사평이 가리킨 구석에 정체 모를 토사물이 보였다.
벌레나 곤충들에겐 귀중한 식량이 될 수도 있을 터였다.
하지만 개미들조차 흥미를 가지지 않고 피해 다니고 있었다.
“쯧. 미식가라더니 순 허풍이었구만.”
“오늘 저녁은 먹지 않을 테니, 그런 줄 알거라!”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이미 만들어 놨을 텐데 말이다.”
손녀가 만든 음식은 먹고 싶지 않다고, 안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점혈을 하고서라도 강제로 먹일 터.
그가 기대와 걱정이 반씩 섞인 얼굴로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뭐, 뭘 만들어 놨지?”
“글세. 아까 살펴보니 두더지를 삶아서 양념에 조리고 있더구나.”
남다른 미식가인 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두더지 고기는 특히나 맛이 비리고, 역하여 거지들도 피하는 음식이라는 것을.
왕사평은 양손으로 머리를 움켜쥔 채 비명을 질러댔다.
“으아아악!!”
유진산은 웃음을 참으며 등을 돌렸다. 손녀를 찾아보기 위함이었다.
왼쪽은 잔잔한 강이 펼쳐져 있었고, 우측으로는 우거진 대나무숲이었다.
지금쯤이면 숲속에서 무공 수련을 하고 있을 터였다.
천천히 전진하던 그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아가, 뭐하는 거야?”
유설이 대나무를 깎아 만든 죽봉에 거꾸로 매달려 있었다.
그 상태에서 죽봉의 끝으로 ‘통통’ 뛰고 있는 모습이 흡사 묘기를 하는 듯했다.
“할배 왔어? 나 지금 초식을 만드는 중이야.”
“세상에 그런 초식이 어딨어?”
“음. 없으니까 내가 만드는 거지.”
유진산은 구석에서 가부좌를 틀고 손녀가 하는 짓을 쭉 지켜보았다.
유설은 한참이 지나도 죽봉에 매달려서 내려오질 않았다.
자세히 살펴보니 일정한 법칙에 따라 움직이는 듯했다.
“보다 보니 뭔가 그럴싸한 것도 같구나. 역시 우리 손녀 대단해.”
“히히. 할배, 우리 나중에 집 생기면, 마당에 가축도 키울까?”
“갑자기 가축이라니?”
“아기 돼지 한 마리만 키우자. 내가 잘 먹여주고, 보살펴줄게.”
설마 왕사평에게 음식을 먹이면서 재미를 붙인 것일까?
과연 키우는 돼지가 죽지 않고, 살아남을지는 의문이었다.
하지만 하나뿐인 손녀가 원한다면 못해줄 것이 무엇이 있단 말인가.
“오냐. 꽃밭을 만들든 돼지를 키우든 우리 설이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거라.”
거꾸로 매달린 유설이 배시시 웃으며 할아버지에게 눈짓을 보냈다.
“응. 할배, 잠깐 이쪽으로 가까이 와봐.”
“거기로? 왜?”
“이제 초식을 한번 시험해 봐야 해.”
한두 번 속아본 유진산이 아니었다.
그는 바로 다가가지 않고 의심의 눈초리로 물었다.
“그걸 왜 할애비한테 시험해보려고 하느냐?”
“그냥 보여주기만 하려구. 궁금하지 않아?”
사파의 지존이 초식을 만드는 과정이 어찌 궁금하지 않겠는가.
위험하리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기껏해야 시험을 하는 정도였으니.
게다가 뭐가 되었든 자신에게도 도움이 되리라는 판단이 들었다.
“음. 잠깐만 기다리거라.”
유진산의 손날이 옆에 자리한 대나무 하나를 꺾었다.
그러고는 반으로 잘라 순식간에 죽봉 하나를 만들어냈다.
엉거주춤 손녀의 근처로 다가간 그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쯤이면 되겠느냐.”
“응. 막을 준비 됐어?”
준비라 할 게 뭐가 있겠는가. 그저 초식을 시험해 보는 것일 뿐.
양손으로 죽봉을 움켜쥔 유진산은 자세를 낮추며 공격에 대비했다.
“오냐. 들어오너라!”
호흡을 한 번 고른 유설이 우렁찬 목소리로 소리쳤다.
“무적설이창법 이 초식 촉수백팔타(觸手百八打)!”
이렇게나 쩌렁쩌렁한 기합이라니.
그 순간 유진산의 마음에 한줄기 불안감이 스치고 지나갔다.
일 초식인 설설봉타(雪雪棒打)에 맞고 쓰러졌던 당시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가 황급히 뭐라 말하려 했지만, 그럴 틈은 주어지지 않았다.
손녀의 신형이 허공으로 붕 떠오르며 눈앞에서 사라졌다.
동시에 위를 슬쩍 올려다본 유진산은 입을 떡하니 벌렸다.
“……헉!?”
그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하늘에서 백여덟 개로 갈라진 죽봉이 촉수처럼 뻗쳐오고 있었다.
마치 하늘이 죽봉으로 뒤덮인 듯했다.
이토록 해괴한 창술은 그의 일평생 들어본 적조차 없었다.
이 정도의 거리와 빠르기라면, 피하는 것은 어림도 없을 터.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방어뿐이었다.
유진산은 참담한 심정으로 이를 악다물었다.
‘이거 또 당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