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5화 맛있게 먹어요 (2)
“혹시라도 먹기 전에 말할 생각이 든다면 눈을 끔뻑이거라.”
“끄, 끄으으!”
고독을 자신의 눈으로 확인한 노파는 발작을 일으켰다.
이윽고 벌어진 그녀의 입속으로 유설이 천천히 고독을 가져다 대었다.
“아~~~”
한 마리의 고독만으로도 육신이 찢겨나가는 고통을 느꼈던 노파였다.
두 마리를 동시에 먹이겠다니.
고독은 지렁이처럼 온몸을 꿈틀거리며 이빨을 탁탁 부딪쳤다. 마치 빨리 넣어달라는 것처럼.
그 모습은 보는 것만으로도 혐오스러움을 자아냈다.
그때 노파의 턱을 움켜쥔 유진산이 귓가에 속삭였다.
“주인에게 다시 돌려주는 것뿐이니, 우릴 원망하지는 말거라. 어서 입이나 벌려.”
아직 넣지도 않은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노파는 온몸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끄! 끄어어!!”
그러든 말든 유진산은 멈출 의사가 없었다.
그가 단호한 표정으로 유설에게 눈짓을 보냈다.
“어서 집어넣거라.”
손녀가 움켜쥔 고독이 노파의 입안으로 반쯤 들어갔을 때였다.
갑자기 그녀의 두 눈이 미친 듯이 깜빡이기 시작했다.
드디어 백기를 든 것이다.
유진산이 턱을 풀어주며 손녀에게 신호를 보냈다.
동시에 노파의 입에서 분노에 찬 욕지거리가 터져 나왔다.
“이, 이 사악한 놈들! 반드시 천벌을 받을 게다!”
지금까지 쌍사신마의 손에 죽어간 자들이 몇 명이던가. 알려진 것만 수백 명이었다.
그런 잔악한 마두에게 사악하다는 소리를 듣다니. 기가 차지 않을 수가 없었다.
“칭찬으로 알겠네. 자, 이제 어서 말해봐. 누가 너희들에게 고독을 먹였는지.”
노파가 표독스러운 눈으로 유진산을 노려봤다.
“말해준다고 감당이나 할 수 있겠느냐? 감히 너 따위가.”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인물이기에 이런 소리를 한다는 말인가.
이들에게 암살을 사주한 배후가 더욱 궁금해졌다.
“뭐 나는 감당이 안 될 수도 있겠지. 하지만 음괴라면?”
노파의 시선이 천천히 우측으로 향했다.
초절정고수인 자신을 단숨에 제압하여 무차별적으로 때려눕힌 여자아이.
경지조차 짐작할 수 없는 무시무시한 음괴가 씩 웃고 있었다.
이윽고 그녀가 눈을 피하며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어쩌면 조금은 희망이 있을지도 모르겠군.”
“그래, 그러니까 어서 말해. 복수는 우리가 해줄 수 있으니.”
노파의 두 눈엔 두려움의 기색이 서려 있었다.
자신들에게 암살을 사주한 배후의 인물이 무서운 것이리라.
하지만 이 상황에서 더 안 좋아질 게 무엇이 있다는 말인가.
이윽고 결심을 굳힌 그녀가 나직이 말했다.
“말해준다면 확실하게 죽여줄 수 있겠느냐.”
“죽을 만한 짓을 했으니, 살려둘 이유 또한 없지 않은가.”
돌려서 말했지만, 수락하겠다는 의미였다.
잠시 뜸을 들이던 노파가 기어코 한마디를 토해냈다.
“화령사태. 모두 그년이 시킨 일이다.”
그 순간 유진산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입을 떡 벌렸다.
당대의 무림인 중 그 이름을 모르는 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무림맹주이자 아미파의 문주로 정파의 수장이나 다름없는 인물이었으니까.
“그러니까 무림맹주가 너희를 잡아다 고독을 먹이고, 사파인들의 암살을 사주했다? 그 말을 나보고 믿으라는 것이냐.”
“잘 모르는군. 맹주가 얼마나 미친년인지.”
그녀의 음흉하고 사악한 속내는 유진산도 짐작하고 있었다. 단지 이 정도일지 몰랐을 뿐.
조금 더 알아볼 필요가 있었다.
“어디 계속 말해봐.”
노파는 뭐가 웃긴지 혼자 킥킥대며 웃었다.
한참을 웃던 그녀가 다시 정색하며 말했다.
“우리가 사파인들만 암살했다고 생각하느냐.”
“그게 무슨 뜻이지?”
“그년의 뜻에 반하는 인물이라면 무림맹의 인사도 예외는 없었다. 머릿수로 따지면 정파가 더 많았던 것 같군.”
황당함이 끝이 없었다.
같은 세력의 인물들도 암살을 서슴지 않았다니? 세상에 이보다 더한 악마가 어디에 있다는 말인가.
정파인들을 죽이는 일에 창룡대를 동원할 수는 없었을 터.
더러운 일을 음지에서 처리하는 칼잡이로 쌍사신마를 부린 것이리라.
“그런 자가 어떻게 맹주의 자리를 유지하고 있는지 궁금했는데, 이제야 의문이 좀 풀리는 것 같군.”
“다 말해주었으니, 그만 죽이거라. 더는 이 세상에 미련이 없으니까.”
어서 빨리 단짝인 마광윤의 곁으로 가고 싶은 모양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쉽게 보내줄 수는 없었다. 알아낼 수 있는 것은 최대한 알아내야 했다.
“아직은 안 돼. 무림맹주와 싸워본 경험은 있었나?”
“고독에서 벗어나기 위해 몇 번이나 기습을 시도했다. 마지막은 일 년 전쯤. 처음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져 있었지.”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줬으면 좋겠군.”
“둘이 함께 덤볐지만, 옷깃도 스칠 수가 없었다. 음괴와 싸웠을 때처럼 무기력했지.”
유가장의 식솔들을 몰살시킨 책임을 물어야 할 대상이었다.
지금까지는 창룡대를 와해시키고, 맹주의 목만 치면 끝이 나는 것으로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녀의 무공 수준이 유설과 비교될 정도였다니? 정말 그 말이 사실인지 좀 더 알아볼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또?”
“내가 아는 것은 이것이 전부다.”
그때 옆에서 지켜보던 백사문의 당주가 은근슬쩍 끼어들어 말했다.
“맹주년에 대해서는 저희 련주께서 잘 알고 계실 겁니다. 원한이 깊은 관계이니까요.”
“음.”
패도문의 백규 아우에게서도 얼핏 들은 바가 있었다. 사도련주 영영과 무림맹주가 오래전부터 원한관계였다는 것을.
그런 만큼 아는 정보 또한 많을 터였다.
나중에 그녀를 만나면 자세히 알아볼 생각이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죽여.”
눈앞의 노파에게서 더는 알아낼 것이 없을 듯했다.
맹주의 더러운 짓거리를 강호에 알릴 도구로 써볼까도 생각했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증거도 없었으며 아무도 믿지 않을 테니.
유진산이 당주에게 눈짓을 보내었다.
“음괴와 함께 잠시 나가 있게.”
“알겠습니다, 대협.”
굳이 손녀에게 처형 장면을 보여줄 필요까지는 없었다.
그는 당주와 유설이 눈앞에서 멀어지기를 차분히 기다렸다.
흑사 마광윤과 함께 무림을 피로 물들였던 적사 금도도.
그녀의 두 눈은 싸늘하게 식은 단짝의 시신만 하염없이 응시하고 있었다.
“할멈. 이번 생의 죗값은 여기서 마무리하고, 내세에서는 해로하시게.”
악인이라 할지라도 누군가의 목숨을 끊는 것이 유쾌할 리가 없었다.
그러나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그녀는 약속을 지켰으며, 자신의 손에 죽을 자격이 있었다.
“애늙은이. 염치없지만 부탁 하나만 좀 들어줘.”
이미 삶의 마지막 문턱까지 가보았던 유진산이었다.
노파가 원하는 내용은 굳이 듣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었다.
“너희는 이곳의 문주를 암살했다. 아무리 원수를 사랑하라지만, 몸 성히 둘을 같이 묻어줄 성싶은가.”
“아무래도…… 역시 그렇겠지?”
한동안 버티긴 했지만, 순순히 아는 것을 실토한 부분은 높게 평가할 만했다. 게다가 도움이 될 만한 내용도 있지 않았던가.
그렇기에 약간의 보상 정도는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주 녀석과 한번 상의는 해봄세.”
표독함이 가득한 금도도의 입가가 처음으로 희미한 미소를 그렸다.
“……고마우이.”
조손은 백사문에 머무르면서 흑야방의 소속이 당도하기를 기다렸다.
그래야만 다음 행보를 이어갈 수가 있을 테니.
이곳에서 지내는 동안 둘은 귀빈 대접을 받았다.
사파의 영웅이기에 앞서 문주의 복수까지 해주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그리고 시일이 조금 지나 당주의 발목이 거의 회복되었을 때쯤이었다.
“……오늘은 기대해도 되겠지?”
백사문의 식음각(食飮閣).
밥을 먹는 전각에 시뻘건 적의를 입은 오십여 명의 문도가 줄지어 앉아있었다.
식사를 앞둔 그들의 표정엔 어두움이 가득했다.
“기대해 봐야지. 어제는 속이 안 좋아서 뒷간을 스물두 번이나 다녀왔어.”
“이것 참. 가려 먹을 수도 없고.”
“……제발.”
요즘 요리에 부쩍 취미가 붙은 유설이 백사문의 식사를 준비해주고 있었다. 사파의 지존이 하겠다는데 어쩌겠는가.
문제는 언제나 새로운 음식을 개발해오는 것에 있었다.
난생처음으로 먹어보는 기이한 맛과 독특한 식감까지.
훌륭한 음식도 가끔 나왔지만, 세 번 중 두 번은 도저히 먹을 수가 없는 수준이었다.
그때 문도들 중 누군가가 불안한 눈빛으로 속삭였다.
“나 아까 음괴 대협께서 포대 들고 냇가로 나가시는 걸 봤어.”
“냇가? 거긴 왜?”
“아마도 오늘은 물고기로 요리를 해주시려나 봐.”
“야, 거기 물고기 한 마리도 없어. 개구리만 잔뜩 있어.”
문도들이 음식을 투정하자, 상석에 앉은 당주가 손바닥으로 탁상을 내리쳤다.
타앙-!
“은인께서 우리를 위해 손수 음식을 해주시겠다는데, 왜들 그리 말이 많아? 지금부터 주둥이 여는 놈은 확 찢어버리겠다.”
모두가 입을 꾹 다물고 정숙했다. 그러자 당주가 만족스럽다는 표정으로 다시 한번 일침을 박았다.
“남기지 말고 다 먹어야 한다. 앞으로 우리 백사문이 살아남으려면, 음괴 대협께 잘 보여놔야 해.”
곧 올 때가 되었으니, 미리 입단속을 해 놓을 필요가 있었다.
귀가 밝은 음괴 앞에서 음식을 불평하는 것은 너무나도 위험했으니까.
정적 속에 반각이 지났을 때쯤이었다.
“많이 배고팠죠?”
모두의 시선이 입구로 향했다.
유설이 엄청난 크기의 솥단지를 머리에 이고 입장하고 있었다.
족히 자신의 몸보다 두 배나 더 큰 크기였다. 그런데도 조금의 무게도 느껴지지 않는다는 듯 발걸음은 가볍기만 했다.
쿠웅-!
탁상 끝에 솥단지를 내려놓은 유설이 오른손을 쭉 내뻗었다.
그러자 탁상 위에 놓인 수십 개의 그릇이 붕 떠올라 날아들기 시작했다.
처척-! 처처척-!!
스스로 허공을 날아 눈앞으로 차곡차곡 쌓여가는 그릇들.
이러한 수준은 허공섭물 따위로 흉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문도들은 침을 꼴깍 삼키며 음괴가 음식을 푸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건더기가 둥둥 떠다니는 붉은 죽이었다. 먼 거리에서도 코가 매울 정도로 향이 강했다.
당주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 이건 무엇입니까?”
“신와죽(辛蛙粥)이에요. 맛있을 테니까, 어서 먹어봐요.”
누구도 들어본 적이 없는 음식이었다. 직접 지어낸 것이었으니 그럴 수밖에.
유설이 손가락을 한 번씩 튕길 때마다 죽그릇이 문도들의 코앞으로 하나씩 날아들었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한 위치였다.
“그, 그럼 잘 먹겠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유설은 기대 가득한 얼굴로 그들이 먹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표정이 모두 제각각 있었다.
그리고 지척에 있던 문도가 가장 먼저 반응을 보였다.
“크헙!!”
“왜 그래요? 맛이 별로예요?”
“그, 그럴 리가요!? 너무 맛있어서 깜짝 놀랐습니다.”
그는 음괴의 양쪽 입꼬리가 한없이 치켜 올라가는 것을 보았다.
그 모습은 마치 흐뭇한 미소로 아기에게 밥을 떠먹이는 어미의 얼굴 같았다.
“우웅~ 마이쪄요?”
국자를 움켜쥔 음괴가 그의 그릇에 죽을 수북이 더 얹어주었다.
“고, 고, 고맙습니다…….”
그 시점에서 유설의 시선은 다시 우측을 향하고 있었다.
“아저씨는 왜 울어요?”
“너, 너무 맛있어서…….”
“아직 많으니까 두 그릇 먹어요. 자, 여기.”
눈물을 흘리는 자는 그자뿐만이 아니었다.
“끄흐흑.”
“……흐흑.”
얼마나 맛이 있길래 울면서 죽을 먹는다는 말인가.
그들의 모습을 안타깝게 바라보던 유설은 한숨을 내쉬며 아쉬워했다.
“휴. 더 많이 해올걸.”
문도들의 통곡 소리가 절정에 이를 무렵.
때마침 그들의 심정을 잘 아는 유진산이 이곳에 도착했다.
“또 음식을 만들었구나. 여기 애들 괴롭히지 말라니까.”
“아니야, 정말 맛있대. 할배도 빨리 앉아서 먹어봐.”
냄새만 맡아도 현기증이 날 것만 같았다.
유진산은 근엄한 표정으로 다급히 말했다.
“아니다. 우리 지금 떠나야 하니 어서 채비하거라.”
“지금?”
“그래, 기다리던 정보가 도착했으니 바로 출발해야 해.”
그때였다. 백사문의 문도들이 숟가락을 내려놓으며 동시에 벌떡 일어섰다.
조금 전까지 눈물을 흘리던 그들의 얼굴은 환희에 휩싸여 있었다.
“벌써 떠나시려는 겁니까!?”
“너무 아쉽습니다.”
“저런……. 조금만 더 머물다 가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