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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배무사와 지존 손녀-164화 (164/238)

164화 맛있게 먹어요 (1)

음괴의 주먹이 마광윤의 복부에 틀어박힌 소리였다.

강력한 기의 파동이 물결처럼 번져나가며 먼지를 뿜어냈다.

새우처럼 상체를 구부린 그는 숨이 막히는지 쉰 소리를 토해냈다.

“……끄으으.”

입에서 흘러나오는 거품과 까뒤집어진 눈동자.

음괴의 주먹 앞에서 불사흑기공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같은 백보신권이라도 양괴가 펼쳤을 때와는 위력의 차원이 달랐다.

다리가 풀린 그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고꾸라졌다.

지켜보던 표사와 사파의 호위무사들은 전율에 휩싸였다.

마광윤이 누구인가. 수십 년간 누구도 잡을 수 없었던 무림 공적이자, 잔악한 마두였다.

그런 그가 고작 일격에 쓰러진 것이다.

그 누구도 상상조차 못 했던 결과였다.

“흑, 흑사를 한 방에 잡은 거야?”

“세, 세상에…….”

유설이 양손을 털며 주변의 무사들을 슬쩍 바라보았다. 마치 나 잘했냐는 눈빛으로 말이다.

그러나 조금 전의 가공스러웠던 광경 때문일까? 아무도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밑으로 내리깔았다.

한 명을 제외한다면.

어느새 다가온 유진산이 손녀의 등을 두들겼다.

“수고했다. 빨간 머리 할망구는 어떻게 했어?”

쌍사신마 중 또 한 명의 마두인 적사(赤蛇) 금도도.

처음부터 손녀가 맡기로 한 인물이었다.

“저기서 자고 있어.”

이곳에서부터 이십여 장이 떨어진 땅바닥이었다.

처참한 모습으로 널브러진 누군가가 보였다.

헝클어진 빨간 머리와 퉁퉁 불어터진 얼굴.

어찌나 맞았는지 입 주위만 빼고 멀쩡한 곳이 없었다.

당연히 의식은 없는 모습이었다.

“물어볼 게 있으니 적당히 하라고 하지 않았느냐.”

“할배가 입만 빼고 때리라며.”

반박할 수가 없었다. 자신이 했던 말을 충실히 수행한 것뿐이었으니.

그때 누군가가 이곳을 향해 가벼운 걸음으로 다가왔다.

죽립과 면사포로 얼굴을 가린 고풍스러운 여인.

쌍사신마가 노리려 했던 흑야방의 은화린이었다.

“고생하셨습니다, 어르신. 드디어 잡으셨군요.”

“고작 이깟 놈들 잡는데 고생은 무슨.”

“다친 곳은 없으신지요?”

유진산이 괜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일 찰나.

갑자기 유설이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며 중얼거렸다.

“……정말 괜찮아?”

그 순간 코에서 무엇인가가 주르륵 흘러내리는 것이 느껴졌다.

주책맞게 이 상황에서 웬 콧물이란 말인가.

무심코 왼손으로 인중을 닦은 유진산은 두 눈을 부릅떴다.

흥건하게 묻은 피를 보자 왠지 모를 분노가 치솟았다.

의도적으로 몇 대 맞아주었다지만, 모두가 지켜보는 앞에서 코피라니. 망신이 아닐 수가 없었다.

“이 빌어먹을 녀석!”

유진산의 발이 쓰러져 신음하는 마광윤을 걷어찼다.

“……크윽!”

그가 분을 삭이고 있을 때, 은화린이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내상을 입으신 건지요? 일단 치료부터 하는 게 좋겠습니다.”

“괜찮으니 신경 쓸 것 없네. 근데 사파가 이놈들과 무슨 원한이 있던 거지?”

가장 궁금했던 부분이었다.

지금껏 상대를 가리지 않고 살생을 저질러 왔던 쌍사신마였다.

어째서 이들이 사파의 인물들만 골라서 암살하고 다녔단 말인가. 무엇인가 이유가 있을게 분명 할 터였다.

“영문을 모르겠습니다. 저희와는 아무런 연고도 없는 사람들인데.”

“이해할 수 없는 일이군. 누군가의 사주라도 받았단 말인가?”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누가 우릴…….”

“음. 아마도 사파의 몰락으로 이득을 보는 자들이겠지.”

쌍사신마는 특정 문파가 아닌 하남의 사파 전체를 노렸다.

그로 인해 이득을 보는 세력은 무림맹밖에 없을 터.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되지를 않았다.

협의를 외쳐대는 정파가 무림 공적에게 암살을 사주한다니? 그것은 상상할 수가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그들의 말에 순순히 따라줄 마두들도 아니었다. 애초부터 통제가 되지 않는 자들이었으니까.

그때 은화린이 쌍사신마를 슬쩍 바라보며 물어왔다.

“말씀하셨던 그곳으로 끌고 가실 겁니까?”

“그럴 참이네. 마침 이곳에서 멀지 않으니, 그곳에서 심문해봐야겠지.”

“저희가 도와드릴 일은 없겠는지요?”

“일전에 부탁했던 일만 확인해주면 되네.”

앞서 창술대회에서 삼십육번으로 위장한 창룡대원에 대한 조사였다.

놈은 지금 관아에 잡혀 있는 상태였다.

연줄을 이용해 그가 어떻게 풀려나는지와 연관된 자들을 확인할 것. 그것이 바로 살수들을 잡아주는 대가였다.

은화린은 말뜻을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슬쩍 끄덕였다.

“지금 가시는 곳으로 사람을 보내 알려드리겠습니다. 내용이 확인되는 대로 말이지요.”

“그리해주시게. 그럼 우린 이만 가봐야겠군. 자네들도 바쁠 테니.”

살수를 유인하기 위해 이곳이 흑야방의 비밀지부라는 정보까지 노출한 상황이었다.

이들 또한 계속 이곳에 머무를 수는 없을 터.

날이 밝기 전에 중요한 재산을 챙겨 철수해야 했다.

“그럼 또 뵙겠습니다.”

금화표국에서부터 십여 리가 떨어진 으슥한 마을 어귀.

그곳에 인력거 세 대가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

아직 새벽이 한창인데도 그들은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잡담을 나누었다.

“팔자에도 없는 인력거꾼이라니. 대체 언제까지 기다려야 해?”

“확실히 올 거라 했으니 잠자코 기다려. 당주님한테 직접들은 소리니까.”

“두 시진이 넘도록 쥐새끼 한 마리 안 보이는데? 어떻게 그렇게 확신하는 거야?”

이들은 인력거꾼으로 위장한 백사문의 문도들이었다.

질문을 받은 인물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작게 속삭였다.

“사실 당주님께 따로 들은 정보가 있는데, 비밀 지켜줄 수 있어?”

“당연하지, 어서 말해봐.”

“우리 의리 알잖아. 무슨 얘길 들었는데?”

잠시 머뭇거리던 그는 목소리를 더욱 낮춰 답했다.

“오늘 밤 살수를 잡아 올 자들의 정체가 바로…… 음양쌍괴래.”

“음, 음양쌍괴!?”

“뭐? 그게 정말이야?”

소란스러움이 커지자, 정보를 말해준 문도가 미간을 좁혔다.

“이 병신들아, 어서 목소리 낮춰.”

모두가 다급히 입을 틀어막았다.

그러자 그가 만족스럽다는 표정으로 다시 속삭였다.

“모두 소문은 들었겠지? 음괴를 똑바로 쳐다보면 눈이 뽑힌다는 얘기. 그러니까 만나면 심기 거스르지 말고 처신들 잘해.”

누군가가 믿지 못하겠다는 말투로 중얼거렸다.

“에이, 누굴 바보로 아나. 사파의 영웅이 그럴 리가 없잖아?”

“에이라니? 어제 우리 당주님의 다리를 병신으로 만든 게 누구인 것 같아?”

“……설마?”

“그래, 맞아. 당주께서 말씀하시길 쓸데없는 질문은 하지 말고, 그냥 시키는 대로만…….”

그는 말을 끝마칠 수 없었다. 갑자기 어디선가 꼬마의 목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다.

“도대체 어떤 미친놈이 그런 헛소문을 퍼트린 게냐.”

비록 아이의 작은 음성이었지만, 중후한 내공이 실려있었다.

등골이 서늘해진 문도들은 양손을 모은 채 기립했다. 고개를 푹 숙인 채로 말이다.

그때 그들의 코앞으로 무엇인가가 내팽개쳐졌다.

털썩-! 털썩-!

조심스럽게 바닥을 살펴보던 문도들은 두 눈을 찢어질 듯 부릅떴다.

“쌍, 쌍사신마?”

“이, 이놈들이 왜 여기에…….”

유진산이 그들의 궁금증을 해결해주었다.

“걔들이다, 너네 문주 죽인 놈.”

문도들의 눈빛에 살기가 잠시 이글거렸다가 이내 사그라졌다.

감히 어느 안전에서 감정을 드러낸단 말인가.

고개를 푹 숙인 그들은 다가오는 음괴의 아담한 발만 쳐다보고 있었다.

긴장감이 절정에 이를 무렵. 처음으로 음괴의 입이 열렸다.

“아저씨들, 우리 여기 타도 돼요?”

“물, 물론입지요! 목적지까지 편히 모시겠습니다!”

함박웃음을 머금은 유설이 할아버지의 손을 잡아끌며 인력거로 이동했다.

“히히. 우리 태워준대. 재밌겠다.”

인력거가 어색한지 유진산도 근엄한 표정으로 헛기침을 하며 뒤따랐다.

“흠흠! 그럼 사양하지 않겠네.”

일인용 인력거였지만, 체구가 작은 꼬마라면 둘이 타도 충분했다.

조손이 탑승하자 문도들은 남은 두 개의 인력거에 쌍사신마를 밀어 넣었다.

“자,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음기가 가득한 어딘가의 지하 감옥.

빛이라고는 듬성듬성 꽂혀 있는 벽면의 횃불이 전부였다.

입구의 탁상에 앉은 유진산은 깍지를 끼고 뭔가를 고민하고 있었고, 유설은 옆에서 주전부리를 주워 먹고 있었다.

그때 백사문의 당주가 반대편의 통로에서 어두운 표정으로 다가왔다.

걷는 모습을 보니 다리의 부상은 많이 회복된 모양이었다.

“도저히 입을 열지 않고 있습니다. 힘들게 잡아 오셨는데 죄송합니다, 대협.”

심문을 시작한 지 며칠이 지났음에도 아무런 소득이 없었다.

유진산이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체면술도 통하지 않는다는 말인가.”

“예. 마공의 영향 때문인지 소용이 없었습니다.”

“백사문의 기술이 대단하다고 하여 기대했는데, 쉽지 않은 모양이군.”

“면목이 없습니다. 그리고…… 문제가 하나 생겼습니다.”

“문제라니?”

당주가 뜸을 들이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조금 전 마광윤이 죽었습니다.”

“고문은 하지 말라고 했을 텐데? 아까부터 비명이 들려오던데, 대체 무슨 짓을 한 겐가.”

“오, 오해이십니다. 지 혼자 경련을 일으키더니 그냥 죽어버린 것입니다.”

그의 표정을 보니 거짓은 아닌 듯했다.

설마 입속에 독단을 숨겨 놓고 깨물기라도 한 것일까? 하지만 그것 또한 석연치 않았다.

불사흑기공을 익힌 마광윤은 독이 통하지 않는 만독불침의 경지를 이루었을 테니.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는 일이로군.”

“예. 게다가 조금 전 노파도 경련을 일으키기 시작했습니다.”

잠시 고민하던 유진산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안내하게. 내가 직접 살펴봐야겠네.”

“예, 대협.”

당주를 따라 이동한 곳은 통로에서 가장 깊숙한 곳에 있는 감옥이었다.

붉은 머리칼을 지닌 노파가 바닥에서 거품을 물고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어서 문부터 여시게.”

철컥-!

적사(赤蛇) 금도도.

그녀 앞에 쪼그려 앉은 유진산이 나직이 말했다.

“할멈. 노년에 곱게 죽어야지 이게 무슨 추태인가. 누구의 사주를 받았는지 말해주면, 편히 갈 수 있게 도와주겠네.”

그녀는 고통에 몸부림치면서도 유진산을 죽일 듯이 노려봤다.

“끄으으……. 이 빌어먹을 애새끼가.”

반응을 보아하니 입을 열 생각이 없어 보였다.

유진산이 한숨을 내쉬고 있을 때였다.

“할배, 이 할아버지 입에서 지렁이 나와!”

뒤를 돌아보자 절명해 있는 마광윤의 입에서 유설이 뭔가를 꺼내고 있었다.

손가락 마디 한 개 정도로 보이는 기이한 모습이었다.

이빨이 있는 것을 보니 일반적인 지렁이는 아니었다.

백사문의 당주가 넋을 놓고 중얼거렸다.

“아무래도 고독(蠱毒)인 것 같습니다.”

고독에는 많은 종류가 있지만, 일반적으로 사람의 내장기관에 기생하여 온몸을 뜯어 먹는 최악의 기생충으로 알려져 있다.

주기적으로 해독약을 복용하여 고독을 잠재우지 않는다면,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다가 죽어가게 된다.

하지만 누가 쌍사신마의 몸에 고독을 심었단 말인가.

그것을 답해줄 수 있는 자는 눈앞의 노파가 유일할 터.

유진산이 다급히 손녀에게 말했다.

“이 할망구의 뱃속에도 같은 게 있을 게다. 꺼낼 수 있겠느냐?”

“한번 해볼게.”

유설의 오른손이 금도도의 복부에 얹어졌다. 중후한 내공을 불어넣기 위함이리라.

그 순간 아름답고 찬란한 황금빛 휘광이 발현되며 어두운 감옥을 밝혔다.

불문사자신공의 기운 때문일까? 고통에 몸부림치던 그녀의 표정이 점차 편안해졌다

그러길 잠시 후. 돌연 금도도의 입이 뱀처럼 쩍 벌어졌다.

“끄어어.”

백사문의 당주와 유진산이 동시에 손뼉을 부딪치며 좋아했다.

“나, 나온다!”

“그래, 바로 그거다! 조금만 더!”

잠시 후 유진산이 그녀의 입속에 손을 넣어 고독을 빼내는 데 성공했다.

그러자 임무를 완수한 유설이 손바닥을 떼며 배시시 웃었다.

“이제 됐어?”

“그래, 수고했다. 이거 잠깐 들고 있어.”

위험한 기생충을 아무나 잡고 있을 수는 없었다.

두 마리의 고독을 손녀에게 맡긴 그는 다시 금도도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기진맥진한 몰골로 털썩 주저앉아 있는 모습이었다.

“우리가 고독을 꺼내주었으니, 보답 차원에서라도 아는 대로 말해줬으면 좋겠군.”

“……”

금도도는 넋이 나간 얼굴로 마광윤의 시체만 한없이 응시하고 있었다.

평생을 함께한 단짝이 죽었으니 허탈할 수밖에.

그렇다고 유진산도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었다.

“도대체 이걸 누가 너희에게 먹였지? 우리가 복수해줄 테니, 어서 말해봐.”

“……꺼져.”

일말의 고민도 섞이지 않은 단호한 대답이라니. 아무래도 입을 열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유진산은 잠시 팔짱을 끼고 고민했다.

그러나 마땅한 방도가 있을 턱이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할 수 없겠군.”

결심을 굳힌 그는 다짜고짜 금도도의 턱과 콧구멍을 움켜쥐었다. 이어서 강제로 벌리며 손녀를 바라보았다.

“설아, 그거 다시 먹이거라.”

조금 전의 고통스러웠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일까? 그녀는 몸부림을 쳐댔지만, 속박된 몸으로는 도저히 유진산을 뿌리칠 수가 없었다.

“……안, 안 된다!”

활짝 벌어진 그녀의 입으로 유설의 손이 천천히 다가갔다.

“두 마리 먹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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