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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배무사와 지존 손녀-146화 (146/238)

146화 고귀한 사파의 영웅 (2)

유설은 피하지 않았다. 단지 손가락이 다가오는 방향으로 머리를 들이댔을 뿐.

우두둑-!

혈도를 짚으려던 도사의 검지가 부러지는 소리였다.

“크윽!”

명색이 화산의 정예고수였기 때문일까? 단지 작은 신음이 전부였다.

무엇보다 비명이 나오지 않은 이유는 고통보다 혼란이 앞섰기 때문이다.

자신의 손가락이 어째서 기이한 각도로 꺾여있다는 말인가. 지금 벌어진 일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도, 도대체 이게 무슨…….”

“나 지금부터 들어갈 거니까, 막지 마요. 알았어요?”

유설은 그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걸음을 뗐다.

이곳에 온 목적은 사찰의 입구 부근에 포진한 적들을 지정된 장소로 유인해오는 것이다. 하지만 임무 따위는 이미 머릿속에서 지워진 지 오래였다.

이 순간 유설의 두 눈은 안으로 들어가야겠다는 의지와 오기만이 불타오르고 있었다.

쿵-!

유설의 어깨가 도사의 아랫가슴을 밀쳤다.

쪼그만 여자아이가 힘으로 매화검수를 밀어낸 것이다. 절정의 무위를 지닌 무림맹의 고수를 말이다.

얼떨결에 밀려난 도사는 뭔가가 단단히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내가 힘에서 밀렸다고?’

더는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눈앞의 아이가 자연인으로 위장한 무림인임을. 그것도 경지를 짐작할 수가 없는 고수였다.

무엇이든 행동을 개시해야만 했고, 그의 고민은 길지 않았다.

마침 뒤를 내보이고 있지 않은가. 그것도 완전한 무방비 상태로 말이다.

화산파의 위신 때문에라도 이대로 물러설 수가 없었다.

‘꼬마를 일격에 쓰러트린 후 노인을 제압한다.’

그것이 짧은 시간 동안 도사가 내린 결론이었다.

검을 뽑을 여유 따윈 없었다. 그의 손아귀가 유설의 뒷덜미를 가격하기 위해 다가갔다.

이번엔 성공을 의심치 않았다. 나무도 꿰뚫을 정도의 내기를 담은 일격이었으니까.

하지만 그의 계획은 시작과 동시에 저지당했다.

터업-!

어디선가 또 다른 손이 나타나 도사의 손아귀를 붙잡은 것이다.

옆을 돌아보자 죽립 아래로 드러난 노인의 입이 씩 웃고 있었다.

소름 돋는 웃음에 도사는 가슴이 철렁해졌다.

이건 또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 상대의 악력이 어찌나 센지 손마디가 분쇄될 것 같았다.

“……크윽.”

그 순간 정혜의 반대쪽 손이 도사의 머리 위에 턱 올려졌다. 피할 틈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주변의 동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싶었지만, 이제는 그럴 기회마저 없었다.

이미 자신의 얼굴이 상대의 무릎을 향해 낙하하고 있었으니까.

콰앙-!!

파계승의 무릎이 그의 얼굴에 사정없이 꽂혔다.

매화검수는 단 한 방에 두 눈이 풀린 채 스르륵 무너져 내렸다.

풀썩-!

“뭐, 뭐야?”

“무슨 일이오?”

사찰의 곳곳에서 쉬고 있던 고수들이 입구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곳에선 죽립을 쓴 괴인이 어깨를 흔들거리며 춤을 추고 있었다.

“푸히히. 설이 화났다~ 막으면 다 죽는 거야~”

도발도 이런 도발이 없었다.

그 모습을 지켜본 모두의 얼굴에 노기가 서렸다.

입구를 경계하던 도사가 영문도 모른 채 쓰러져 있었지만, 긴장하는 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주위로 쟁쟁한 고수들이 널려있거늘 무엇이 두렵겠는가.

“네 이놈!!”

푸른 색감의 도사복을 입은 노고수가 지면을 박찼다.

깃털같이 가볍고 날랜 경공. 청성파의 신법으로 알려진 비류보(飛流步)였다.

그 순간 정혜의 신형이 기이한 각도로 미끄러지며 유설의 앞으로 나아갔다.

신묘한 움직임에 지켜보던 자들이 놀랄 무렵.

꾸욱-!

눈 깜짝할 사이 정혜의 손이 상대의 목을 틀어쥐고 있었다. 그야말로 전광석화처럼 빠른 움직임이었다.

어이없게도 청성파의 장로가 저항 한 번 못한 채 제압당한 것이다.

“당, 당신은…….”

붙들린 노도사는 믿을 수 없다는 눈빛을 하고 있었다. 죽립 아래로 드러난 정혜의 얼굴을 알아본 것이리라.

“크흠. 너 형이 누군지 알아?”

“정…….”

그는 말을 끝마칠 수 없었다. 정혜의 손아귀에 무지막지한 힘이 가해졌기 때문이다.

우드득-!

“쉿!”

모든 것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이 모습을 지켜본 정파의 고수들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이곳이 어디인가. 섬서와 주변 일대에서 내로라하는 정파의 고수들이 집결하는 장소였다.

그 어떠한 절대자라도 미치지 않고서는 경거망동할 수 없는 곳이다.

무림을 지배하는 정파의 자존심에 상처가 난 것과 다름없는 일이었다.

금양사에 숨 막히는 살기(殺氣)가 휘몰아쳤다.

그때 누군가가 유설의 정체를 알아채고는 손가락을 내 뻗었다.

“음괴 네 이년! 겁도 없이 죽을 자리를 제 발로 찾아왔구나.”

음괴라는 이름이 나오자 정파의 고수들도 더는 홀로 덤비지 않았다.

십수 명의 고수가 크게 우회하여 금양사의 입구를 틀어막았다.

그러든 말든 유설은 이 순간에도 대웅전이 있는 곳을 향해 천천히 걷고 있었다. 옆에선 정혜가 신이 난 얼굴로 보폭을 맞추었다.

“비켜요.”

어디서 감히 부처님께 가는 길을 막아선단 말인가.

유설이 눈에 힘을 주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누구든 가로막는다면 힘으로 뚫고 들어가겠다는 의사표시였다.

정파의 원로들은 황당해하면서도 출수할 준비를 마치고 있었다.

그때였다.

“모두 물러나시오!”

어디선가 두 명이 허공을 박차며 이곳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그들의 등장에 유설과 정혜의 걸음이 잠시 멈추었다.

권황(拳皇) 마광철. 그리고 또 한 명은 곤륜무제 청진이었다. 무림십대고수 중 두 명이 동시에 등장한 것이다.

만인을 제압할 위세를 뿜어내는 어마어마한 존재들이었다.

“내가 저 괴인을 상대할 테니, 노사께서는 음괴를 맡아주시지요.”

위엄 가득한 권황의 한마디에 정파의 고수들은 긴장감이 풀어졌다.

단 한 명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유설의 모습을 두 눈으로 확인한 곤륜무제는 얼음장처럼 얼어붙었다.

“…….”

권황이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어찌 그런 얼굴을 하고 있소? 설마 음괴 따위가 부담스러운 것이오?”

“……모두 철수시켜야 하오. 지금 당장.”

권황은 순간 자신이 잘못들은 줄 착각했다.

그가 아는 곤륜무제는 패기가 넘치는 인물이었으며, 상대가 누구든 절대 물러서지 않는다. 그런 그가 지금 두렵다는 표정을 짓고 있다니? 이해할 수가 없는 일이었다.

“도대체 그게 무슨 말이오?”

음괴와 눈을 마주치게 된 곤륜무제는 흠칫거렸다. 둔황의 길목인 가옥촌에서의 악몽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 정도의 전력으로는 어림도 없소. 참사가 일어나기 전에 어서 모두 물려야 하오.”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구려. 지금 우리의 전력이면 사도련주가 와도 빠져나갈 수가 없을 것인데.”

잊히지 않는 과거의 굴욕을 어찌 발설할 수 있단 말인가.

곤륜무제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철수를 권고하는 말뿐이었다.

“자세한 건 말씀해줄 수 없소. 늦기 전에 어서…….”

“나를 잘 알지 않소? 영문은 모르겠지만, 그럴 수는 없는 일이오.”

곤륜무제는 한숨을 내쉬더니 뒤로 한발을 물러섰다.

“정 끝까지 하시겠다면 곤륜파는 여기서 빠지겠소.”

곤륜무제가 신호를 보내자 곤륜파의 도사 세 명이 재빨리 달려와 기립했다.

“장로님, 그냥 물러선다니요?”

“재고해주십시오.”

그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등을 돌렸다.

“우리는 돌아간다. 이유는 묻지 말거라.”

권황은 멀어져가는 곤륜파의 도사들을 황당하다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도대체 무슨 일이기에 천하의 곤륜무제가 자존심까지 버리고 물러선단 말인가.

그때였다.

죽립을 쓴 노인이 양팔을 휘저으며 그를 도발했다.

“푸히히. 광철이도 빨리 비켜라~ 설이 들어간다~”

권황(拳皇) 마광철. 오직 두 주먹만으로 절대자의 반열에 오른 무시무시한 고수였다.

감히 누가 그의 이름을 함부로 부를 수 있단 말인가.

심기가 불편해진 권황은 미간을 잔뜩 좁혔다.

“이놈!!”

권황의 신형이 정혜를 향해 섬전처럼 쏘아져 나갔다.

전면을 향해 나아가는 그의 주먹은 검붉은 강기에 휩싸여 있었다. 그야말로 산이라도 무너트릴 정도의 기세였다.

정혜는 맞서지 않고, 대나이신법을 펼쳐 슬쩍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그가 있던 자리엔 어느새 다가온 음괴가 주먹을 마주 내뻗고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작은 밤송이와 바위가 부딪치는 듯했다.

이어진 결과는 상상을 초월했다.

꽈아아앙-!!!

무지막지한 굉음을 비집고 누군가의 신음이 터져 나왔다.

“크윽!”

자세가 무너진 권황이 비틀거리며 뒷걸음질 치고 있었다. 반면 유설은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았다.

지켜보던 모두가 경악했다.

권황이 압도적으로 밀린 것이다. 그것도 주먹에서 말이다.

그가 패배할 것 같다는 생각이 모두의 뇌리에 깊숙이 틀어박혔다.

그때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어느 노고수가 다급히 소리쳤다.

“모두 동시에 공격하시오!!”

더는 체면을 생각할 상황이 아니었다.

사방에서 오십 명이 넘는 정파의 정예고수들이 거리를 좁히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순간.

유설과 정혜의 전신이 동시에 황금빛 휘광에 휩싸였다.

화르르륵-!

불문사자신공과 달마역근경이었다.

한 가지 차이점이라면 음괴의 머리에는 두광(頭光)이 발현되어 있다는 것뿐.

서로 등을 마주한 둘은 동시에 주먹을 치켜세웠다.

“불공도 못 드리게 하고……. 다 죽었어.”

“푸히히히!”

곧이어 둘을 중심으로 숨 막히는 난타전이 시작되었다.

콰쾅-!! 콰콰콰쾅-!!!

한 명 한 명이 강기를 다룰 수 있는 무시무시한 고수들이었다.

눈부신 섬광이 쉴 새 없이 번뜩였으며, 강풍이 끊임없이 휘몰아쳤다.

* * *

금양사가 있는 곳의 맞은편 봉우리.

한곳에 모여 그 모습을 지켜보던 사파의 원로들은 입을 떡하니 벌리고 있었다.

“도, 도대체 저게 무슨 상황이오?”

“……유인하러 가신 분들이 어찌하여 돌격을 하는 겁니까?”

안전하게 이곳으로 유인해올 수 있도록 일행 중 가장 강한 둘을 보냈다. 그런데 어찌하여 용담호혈(龙潭虎穴)에 제 발로 기어들어 간다는 말인가.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더욱이 놀라운 것은 고작 둘이서 한 치의 밀림도 없다는 것이었다.

“음괴 대협이 저렇게 강했습니까?”

“저, 저 정도면 화경의 경지가 아닙니다. 어쩌면…….”

“……설마?”

절대지존의 경지라고 불리는 현경(炫境). 무(武)의 정점을 이룬 고귀하고 위대한 존재만이 도달할 수 있는 반선지경(半仙之境)이었다.

음괴가 그러한 고수가 아니라면 지금의 상황을 설명할 방도가 없었다.

무쌍을 펼치는 음괴의 무용에 사파의 원로들은 전율했다.

“저럴 수가…….”

“현경이라니. 아마도 사파의 역사상 최초일 것이오.”

모두가 놀라는 가운데 백규는 모르는 척 딴청을 피웠다.

그리고 유진산은 머리가 아프다는 듯 손으로 이마를 짚고 있었다.

‘한 명이 자제력을 잃게 되면, 옆에서 잡아주라고 했거늘.’

어떻게 된 일인지는 안 봐도 눈에 훤했다. 말리기는커녕 오히려 서로를 부추기며 상황을 키운 것이리라.

자존심이 강한 손녀와 앞뒤 안 가리는 미친 스님의 조합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상황이 이렇게 된 이상 가만히 있을 때가 아니었다. 어서 빨리 손녀를 도우러 가야 한다는 생각만이 그의 머릿속을 잠식했다.

유진산은 미리 챙겨온 쌍룡창을 재빨리 양손으로 움켜쥐었다.

“언제까지 지켜만 보고 계실 참이오!?”

사파의 원로들은 이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정면승부는 꿈도 꾸지 않았지만, 지금이라면 얘기가 달랐다.

가장 먼저 백규가 허리춤에서 쌍도(雙刀)를 뽑아 들며 소리쳤다.

“작전이고 뭐고 가서 다 쓸어버립시다!”

쩔쩔매는 정파 놈들의 뒤를 공격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던가. 그야말로 다시는 없을 절호의 기회였다.

너 나 할 것 없이 여덟 명의 고수들이 몸을 날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이 질주하고 있을 무렵.

먼저 사찰에 은신해 있던 흑묘파의 문주는 이미 그림자가 되어 칼부림을 시작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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