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화 감히 우리 가문을 건드렸겠다 (1)
비도문에 들어간 유진산은 먼저 주위를 쓱 둘러보았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곳곳에서 펼쳐지고 있는 훈련방식이었다.
무수히 많은 비도가 틀어박힌 통나무들. 게다가 어딘지 모를 살벌한 분위기까지.
다른 문파들과는 확실히 느낌부터 달랐다.
묵묵히 몇 걸음을 더 움직였을 때였다.
“어이, 꼬맹이. 여기가 감히 어디라고 기어들어와?”
잠시 걸음을 멈춘 유진산은 우측을 쓱 바라보았다.
날카로운 인상의 누군가가 자신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적의(赤衣)를 입은 그는 허리춤에 수십여 개의 비도가 꽂힌 주머니를 찬 모습이었다.
“문도들 교육이 엉망이로군. 손님이 왔으면 영문부터 물어야지, 싸가지 없이 어른을 노려보기나 하고 말이야.”
그는 잠시 유진산을 미친놈 바라보듯 응시하더니, 허리춤에서 비도 한 자루를 뽑아 들었다.
“한 발자국만 더 떼 보거라.”
짙은 살기가 묻어나는 목소리였다.
어지간한 아이였다면 이대로 줄행랑을 쳤을 것이다.
하지만 유진산은 겁을 먹기는커녕 오히려 표정이 조금씩 일그러지고 있었다.
“왜. 던지기라도 하려고?”
그는 경고를 무시한 채 걸음을 계속 움직였다.
적의 사내는 자제심을 잃고 점차 표정이 일그러져 갔다.
웬 이상한 꼬마가 찾아와서 반말로 도발을 하고 있으니 화가 날 수밖에.
“네놈이 정녕 눈에 뵈는 게 없는 모양이구나.”
“그래, 뭐 틀린 말은 아니지. 그러니까 살고 싶으면 가서 문주나 데려오너라. 좋은 말로 할 때.”
“네 이놈!!”
유진산의 도발에 그는 이성의 끈을 놓치고야 말았다.
찰나의 순간 사내의 손이 수직으로 내뻗어졌다.
파앗-!
날카로운 비도 한 자루가 정확히 유진산의 어깨를 향하고 있었다.
자신을 얕보았기 때문일까? 너무나도 정직한 공격이었고, 위협적이지도 않았다.
퍼억-!
자신이 피해낸 비도가 장원의 대문에 틀어박힌 소리였다.
“사실 반신반의했거든. 아이의 모습인 내게도 정말 암기를 던질까 말이지.”
“……?”
이제야 무엇인가 이상함을 느꼈던 것일까? 그자는 잠시 움찔했지만, 이제는 되돌릴 수가 없었다.
“고맙구나. 너희들을 죄책감 없이 쓸어버릴 수 있게 해줘서.”
말을 끝마친 유진산이 반격을 개시했다.
지면을 박찬 그의 신형이 화살처럼 쏘아져 나갔다.
“……헉?”
벼락같은 움직임에 그가 헛바람을 집어삼키는 그 순간.
유진산의 소매에서 모습을 드러낸 비도 한 자루가 그의 인후를 향하고 있었다.
푸욱-!
문파의 중심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멀찍이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문도들은 난리가 났다.
“저, 저 꼬마 새끼 뭐야?”
“당장 잡아!”
사방에서 아이를 포박하기 위해 달려들었다.
우측으로 기울어진 그의 얼굴 옆으로 누군가의 발바닥이 스치고 지나쳤다.
파앙-!
그 순간 유진산의 왼손이 상대의 발목을 붙잡았다.
터업-!
짧은 손가락으로 끝부분을 틀어쥔 것에 불과했지만, 중후한 내공이 담긴 손아귀였다.
공격을 가했던 그는 한쪽 다리를 들어 올린 채 꿈쩍도 할 수가 없었다.
유진산은 오른손에 움켜쥔 비도를 당황하는 그의 낭심을 향해 내질렀다.
푸욱-!
“끄아아악!!”
처절한 비명이 처음으로 비도문에 메아리쳤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유진산은 문도들의 사이를 비집고 다니며 거침없이 비도를 휘둘러댔다.
날에 서린 시퍼런 강기(剛氣)는 그들이 막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푸욱-! 촤아악-! 써컥-!
조금의 주저함도 없는 움직임.
그의 손에는 인정사정이 없었다.
유진산은 전투에 임하면 상대가 누구든 언제나 최선을 다한다. 그것이 그의 방식이었으니까.
“크악!”
“컥!”
비명이 쉴 새 없이 터져 나왔다.
작정하고 들어왔기에 일부러 손녀를 안으로 들이지 않은 것이다. 굳이 이러한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없었으니까.
그의 손짓 하나하나에는 그동안 억눌러왔던 울분이 담겨 있었다.
누구도 삼 합 이상을 버텨내는 이가 없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이들은 아미산에서 구출해온 아이들보다 훨씬 약했다.
하지만 유진산도 잘 알고 있었다. 아직 본격적인 전투는 시작도 되지 않았음을.
이십 명이 넘는 문도들이 쓰러졌을 시점이었다.
“모두 비켜!!”
깊숙이 자리한 전각에서 봉황의(鳳凰衣)를 입은 무리가 달려왔다.
그들의 숫자는 약 이십여 명.
조금 전 상대했던 문도들이랑은 움직임부터가 차원이 달랐다.
가장 앞서 달리던 자의 손에서 무엇인가가 연달아 쏘아져 나왔다.
파파팟-!!
급소를 노리며 다가오는 두 자루의 비도.
하나같이 기(氣)를 머금고 있었기에 쉽게 볼 수 없는 위력이었다.
하지만 공격이 너무나도 정직했기 때문일까. 유진산은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다가오는 암기들을 차례대로 쳐내었다.
캉-! 캉-!
찰나의 순간 유진산의 미간이 좁혀졌다. 비도 뒤에 또 하나의 비도가 숨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쳐내기에는 거리가 너무나도 가까웠다.
유진산은 하는 수 없이 재빨리 상체를 비틀어 흘려보냈다.
파앙-!
‘만만히 볼 수가 없는 놈들이로군.’
더군다나 스무 명이었다. 손에 익숙하지 않은 비도 한 자루로 저들과 상대한다는 것은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그렇다면 방법을 선회해야 할 터.
유진산의 입에서 의미심장한 외침이 터져 나왔다.
“용살창!!”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담벼락 너머에서 무엇인가가 날아올랐다.
휘리리릭-!!
날아드는 용살창은 놀랍게도 유진산이 있는 위치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았다.
누군가가 목소리만을 듣고 정확한 위치로 창을 던져준 것이다.
그 모습을 본 봉황의의 고수들은 일순간 주춤거렸다. 암기술의 달인인 자신들조차 흉내 내지 못할 정확도였기 때문이다.
도대체 저 담장 너머에 무슨 존재가 있다는 말인가.
알 수 없는 불안감이 그들의 마음속에서 꿈틀거릴 무렵.
터업-!
유진산이 용살창을 움켜쥔 순간 그의 기세가 바뀌었다.
명색이 창술명가(槍術名家)의 가주였다.
“오너라!”
일렬로 늘어선 스무 명의 고수들이 사선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자신을 포위하여 진법을 펼치려는 것이리라.
순순히 그것을 기다려줄 유진산이 아니었다. 원거리 공격으로 이루어진 진법이 얼마나 무서운지 그도 잘 알고 있었으니까.
타앗-!
유진산이 반대 방향으로 쏜살같이 내달렸다.
그러는 사이에도 그를 향해서 비도가 끝없이 날아들었다.
팟-! 파파파팟-!!
정말이지 귀신 같은 비도술이었다.
허공에서 곡선을 그리며 쫓아오는 것은 기본이었으며, 느리게 오다가 갑자기 빨라지는 것도 있었다.
끝없이 회전하는 용살창이 그것들을 쳐내기 시작했다.
캉-! 카캉-! 카카캉-!!
사방에서 몰아쳐 오는 공격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들에게 다가가는 것은 꿈도 꿀 수가 없었으며, 현재로선 막는 것이 고작이었다.
승부는 쉽사리 결판날 것 같지가 않았다.
둘 중 하나였다. 자신이 먼저 지치든지. 아니면 저들이 보유한 비도가 모두 소진되든지.
하지만 체력이라면 자신이 있었다. 내공만큼은 절대고수에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충만했으니까.
‘역시나 예상대로군.’
시간이 흐를수록 당황하는 것은 그들이었다.
다가오는 공격의 강도는 점차 누그러졌으며, 그에 따라 유진산도 점차 여유가 생겨났다.
그렇게 잠시의 시간이 더 지났을 때.
타탓-!
드디어 반격이 시작되었다.
맹수가 먹잇감을 덮칠 때 순간적으로 가속도를 내듯, 유진산의 움직임이 전광석화처럼 빨라졌다.
그의 신형이 봉황의의 무리 앞에 도달하자, 용살창의 창날이 붉은 기류를 뿜어내며 울음을 토해냈다.
회풍진격(廻風進擊). 유가살풍창의 십일 초식으로 최강의 다중살상기술이었다.
아직 화후가 완벽하진 않았지만, 눈앞의 무리를 쓸어버리기엔 충분했다.
유진산의 신형이 팽이처럼 회전하며 그들의 틈새를 파고들기 시작했다.
휘리리릭-!!
역시나 비도술에 특화되었던 문파였기 때문일까? 낯빛이 창백해진 그들은 몹시 당황한 모습이었다.
곧이어 사방으로 흩뿌려지는 붉은 강기의 칼날에 여섯 명이 갈대처럼 쓰러져 나갔다.
퍼퍽-! 퍼퍼퍽-!!
전세가 기울어 버리자, 더는 싸움으로 볼 수도 없게 되었다.
뒤이어진 것은 일방적인 응징이었다.
그렇게 한 명 한 명씩 마무리를 짓고 있을 때였다.
“……?”
일 순간 유진산은 등 뒤가 서늘해짐을 느끼고는 재빨리 용살창을 뒤로 휘둘렀다.
카앙-!!
묵직한 느낌과 함께 그는 뒷걸음질을 쳤다.
“크윽!”
놀랍게도 자신을 공격한 것은 고작 비도 한 자루였다.
암기로 이렇게 무거운 공격을 할 수가 있다니.
놀라움을 뒤로한 채 자신에게 암습을 가한 자를 살펴보았다.
상체에 용(龍) 문신이 가득한 중년인이 바지만 입은 채로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의 뒤에는 옷도 제대로 여미지 않은 두 명의 여인이 보였다.
“가지가지 하는군. 문주라는 놈이 문도들이 죽어가는데도 말이야.”
비도문의 문주가 분명했다.
그는 자신들의 부하들이 죽었는데도 감정의 동요조차 없는 듯했다.
“네가 바로 양괴로군. 도대체 무슨 연유로 여기서 지랄을 떨고 있는 것이냐.”
자신이 양괴라는 것을 단번에 짚어내는 것을 보니 그의 정체에 더욱 확신이 들었다.
굳이 주저리주저리 얘기할 필요가 없었기에 한마디로 압축했다.
“창룡대.”
말이 끝나기 무섭게 문주의 양손이 활짝 펼쳐졌다. 그러자 바닥을 뒹구는 비도 몇 개가 그의 손아귀로 빨려들 듯 날아올랐다.
그 모습을 지켜본 유진산은 적지 않게 놀랐다.
‘허공섭물(虛空攝物)?’
내공을 이용하여 물건을 움직이는 고난도의 기술이다.
유설은 사람도 날려 보낼 수 있을 테지만, 자신은 작은 물체를 움직일 수 있는 게 고작이었다.
고작 중립세력의 문주 따위가 허공섭물을 펼칠 수 있다니. 역시나 창룡대원이란 말인가? 느낌이 좋지 않았다.
어쩌면 자신이 상상했던 이상으로 강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싸워보지도 않고 도망치기엔 무인으로서의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았다.
“혼자인가?”
음괴도 같이 왔냐고 묻는 것이리라.
“그렇다면 어쩔 텐가.”
문주가 이빨을 드러내며 씩 웃어 보였다. 그 모습이 소름 돋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오늘은 재수가 좋은 날이로군. 오너라.”
문도들이 죽어 나갔는데도, 자신이 혼자 왔다는 사실에 더 기뻐하다니. 정말이지 상종 못 할 놈이었다.
그가 양손에 움켜쥐고 있는 암기의 개수는 네 개.
자신에게 먼저 오라는 것은, 가장 적절한 거리에서 필살의 초식을 펼치려는 셈이리라.
기회는 단 한 번뿐.
‘암기를 던지기 전에 접근할 수만 있다면 승기를 잡을 수 있다. 방법은 하나밖에 없겠지.’
우선 원거리에서 타격을 가한 후 그 틈을 노려 접근하는 방법이었다.
유진산이 가진 유일한 원거리 공격.
그것은 요즘 손녀에게 배우고 있는 소림사의 백보신권(百步神拳)이었다.
아직 화후는 낮았지만, 접근할 시간을 벌기로는 충분하리라는 판단이 들었다.
“버르장머리 없이 어른한테 오라 가라나 하고. 문주나 문도들이나 하나같이 예의가 없어.”
“무엇을 믿고 그리 자신만만한지는 모르겠다만, 어디…….”
문주가 말을 끝내기 전에 유진산의 주먹이 먼저 움직였다.
조금은 비겁한 수법이었지만, 어디까지나 싸움의 기술 중 하나였다. 만만한 상대가 아닌 이상 물불을 가릴 때가 아니었다.
유진산이 내지른 정권에서 주먹 형상의 권풍(拳風)이 뿜어져 나갔다.
완벽한 기습이었지만, 비도문의 문주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설마 백보신권을 몸으로 받아내겠단 의지인가? 불길한 예상은 빗나가질 않았다.
콰앙-!!
유진산이 날린 일격은 상대에게 조금의 충격도 주지 못했다.
중후한 내공으로 뿜어진 권풍이 호신강기조차 뚫지 못한 것이다.
‘이럴 수가……. 설마 화경급의 고수였단 말인가?’
유진산은 등골이 서늘해졌다.
단번에 눈치챌 수 있었다. 애초부터 자신이 당해낼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음을.
“이제 내 차례로군. 우선 팔과 다리부터 끊어주마.”
그가 움켜쥔 네 개의 비도가 강기를 머금으며 서늘하게 빛났다.
그렇게 그가 출수를 준비하고 있을 때였다.
“……?”
돌연 어디선가 또 한 번의 권풍이 날아들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유진산의 뒤에서부터 옆구리를 통과하는 모습이었다.
쏴아아앙-!!!
조금 전의 백보신권과 비슷했지만, 이번엔 무엇인가가 달랐다.
바람을 찢어발기며 다가오는 무시무시한 권풍은 방금과는 비교조차 되질 않았다. 아니, 위력으로만 따진다면 백 배 이상은 강해 보였다.
당황하던 비도문의 문주는 두 개의 비도를 권풍을 향해 날려 보냈다.
카앙-!
강기를 머금은 비도가 맥없이 튕겨 나가는 소리였다.
‘이럴 수가……?’
곧이어 주먹 형상의 권풍이 그의 호신강기를 뚫고 복부에 사정없이 틀어박혔다.
쩌엉-!!!
“크헉!”
마치 새우처럼 그의 상체가 구십 도로 접혔다.
지면을 끌며 주르륵 밀려나는 비도문의 문주는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는 곧이어 유진산의 등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를 듣게 되었다.
“내가 이럴 줄 알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