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화 장군님 지나가신다 (2)
남의 집안에 쳐들어가 칼부림을 하는 자와 그를 포위하여 압박하는 호위무사들.
상황은 금방 정리될 것 같았다.
“우리가 신경 쓸 일은 아닌 것 같구나.”
유설도 할아버지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응, 금방 잡힐 것 같아.”
압도적인 무위를 지니지 않고서야 일 대 다수의 싸움이 쉬울 리가 없었다.
침입자는 금세 지쳐갔으며, 얼마 가지 못해 쓰러질 듯했다.
그 주변으로 열 명에 이르는 신당의 제자들이 몰려나와 삿대질을 시작했다.
대청마루에서는 당주로 보이는 자가 뒷짐을 지고 그 모습을 응시하고 있었다.
애초부터 너무나도 무모한 짓이었다.
처절해 보이는 그자의 모습이 왠지 안쓰러웠던 것일까? 유설의 얼굴이 조금 어두웠다.
“저 아저씨, 좀 불쌍한 것 같아.”
“왜 마음이 안 좋아? 아까는 나쁜 사람 같다더니.”
“……나도 몰라.”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가 균형을 잃으며 철퍼덕 쓰러졌다.
이어진 것은 무사들의 발길질이었다.
퍽-! 콰직-!! 퍼억-!!
전신이 곤죽이 되고 있었으나, 그는 단 한 번의 신음도 토해내지 않았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남의 집안에 불을 지르고 이 난리를 피웠으니.
“우리도 이만 떠나자꾸나.”
유진산은 끝까지 개입하지 않으려 했다.
악에 받친 그자의 외침을 듣기 전까지는.
“이 천벌을 받아 죽을 놈들아! 어서 내 새끼 돌려줘!!”
온몸이 축 늘어진 그는 그렇게 울부짖고 있었다.
무사들이 물러서자 신당의 제자 중 한 명이 다가가 삿대질을 했다.
“이 미친놈아! 실종된 지 십 년도 더 지난 아이를 왜 여기서 찾아?”
“내가 모를 줄 알아? 나도 신령님을 모시는 사람이야!”
그때 신당의 제자들이 돌연 거리를 벌렸다. 당주로 보이는 노인이 뒷짐을 진 채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근엄한 표정으로 널브러진 무속인을 꾸짖었다.
“네 이놈! 여기가 감히 어디라고 어쭙잖은 신기로 경거망동하느냐. 그 잘난 신령님이 오늘 네가 이리될 것은 안 알려줬단 말이냐?”
핏줄이 터져 붉어진 눈동자가 노인을 노려봤다.
깊은 한이 서려 있는 무속인의 눈동자는 지켜보던 유진산도 흠칫할 정도였다.
“……그래, 원한다니 말해주마.”
“……?”
“오늘 큰 신께서 오셔서 너희들에게 들러붙은 잡신들을 모조리 찢어발긴다고 하셨다.”
그 순간 당주의 얼굴에 노기가 서렸다. 자신들이 모시는 신이 모욕당했기 때문이리라.
그때 옆에 있던 제자가 그에게 다가가 속삭였다.
“당주 어르신. 하찮은 것이랑 상대할 필요 없습니다. 제가 관아에 넘겨 잘 처리해달라고 하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다. 신당에서 행패를 부려 신께서 노하셨으니, 응당 벌도 이곳에서 받아야겠지.”
“그럼……?”
당주의 눈빛이 옆에서 기립하고 있던 무사들을 향했다.
입으로 명령하지만 않았을 뿐,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너무나도 명확했다.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유진산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당최 저들이 무슨 대화를 하는지는 모르겠다만, 이것도 인연이니 한번 살펴는 봐야겠구나.”
“나도 같이 가?”
“아니다. 네가 가까이 가면 무속인들이 전부 발작을 일으키지 않느냐. 할아버지가 혼자 가서 보고 올 테니, 여기서 지켜보고 있어.”
“……응.”
나뭇가지 위에 창과 봇짐을 내려놓은 유진산은 자리에서 날아올랐다.
타앗-!
지면에 내려선 그는 곧장 장원으로 다가갔다.
살의가 서린 무사의 칼날이 사선으로 치켜세워진 그때였다.
“계시는지요!”
앞마당에 모인 모두의 시선이 입구를 향했다.
“……?”
동자승으로 보이는 아이가 입구에서 합장을 하고 있었다.
“시주를 좀 받을 수 있을지요?”
신당의 제자 중 한 명이 다급히 다가와 유진산의 앞을 막아섰다.
덩치가 워낙 큰 여인이었기에 시야가 완전히 차단되어 버렸다.
“보시다시피 오늘은 집안에 일이 좀 있으니, 나중에 다시 오시지요.”
“이틀 동안 아무것도 먹지를 못하였습니다. 마주치기만 해도 인연이라 하였는데, 시주를 조금만 해주시지요.”
자신이 떼를 쓰자 짜증이 난 것일까?
유진산은 일순간 여인의 눈빛이 흔들리는 것을 보았다.
“동자스님께서는 어느 절에서 나오셨는지요?”
혹시라도 법력이 높은 큰스님의 제자라면 동자승이라도 함부로 대할 수가 없을 터. 그러한 이유에서 물어본 것이리라.
대답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다.
“그저 이름 없는 산의 작은 법당에서 불공을 드리는 제자입니다.”
그 순간 여인의 표정이 돌변하며 싸늘해졌다.
곧이어 오동통한 손바닥이 유진산의 어깨를 밀기 시작했다.
“어서 나가시지요. 오늘은 공양드릴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유진산이 무공을 익히지 않은 여인의 힘에 밀려날 일이 없었지만, 일부러 상체를 크게 휘청거렸다. 대신 두 다리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쌀 한 줌만 주시면 돌아가겠습니다.”
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 동자승만 들을 수 있을 정도의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여기 네게 줄 쌀은 한 톨도 없으니까, 어서 꺼져.”
비록 자신이 공양을 받으러 온 것은 아니었지만, 이렇게나 문전박대를 당하다니. 그 또한 사람이었기에 빈정이 상하고야 말았다.
유진산은 너스레를 떨며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저기 잔뜩 쌓여 있는 것들은 쌀가마니가 아닌지요? 부처께서는 베푸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공덕이라 하셨습니다.”
신 제자가 그의 옷깃을 붙잡았지만, 무림인을 어찌 힘으로 멈춰 세울 수 있겠는가.
유진산이 사건의 현장으로 접근해오자 모두가 당황했다.
널브러진 무속인을 참수하려던 무사들도 어쩔 줄을 모르고 머뭇거렸다.
싸늘해지는 분위기 속에 누군가가 당주에게 가서 속삭였다.
“저 동자승에게 불길한 느낌이 드니 쫓아내는 게 좋겠습니다.”
이미 당주도 깊은 고민에 빠져 있었다.
“동자승인데도 불도의 기운이 전혀 느껴지질 않는구나. 게다가 귀문이 열려 있음에도 잡귀 한 번 얼씬거린 흔적이 없다니. 곁에 무슨 대단한 부적이라도 두고 있는 것인가? 신력이 전혀 느껴지질 않는 것을 보니 그런 것 같지도 않고.”
“이상한 게 한둘이 아닙니다, 당주 어르신. 마을을 떠돌던 영가들이 모두 어딘가로 도망쳤습니다. 마치 무엇인가를 보고 화들짝 놀란 느낌이었습니다.”
“나도 알고 있다. 분명 우리 집안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게로구나.”
“그렇다면 신께 제물이라도 바쳐 부정을 태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음.”
그들이 고민하는 사이 유진산은 넘어져 있는 무속인에게 다가가 쪼그려 앉았다.
“신을 모시는 분이 무슨 사연으로 남의 집안에 해코지를 한 것입니까?”
“지금 해코지라 했소? 죄 없고 불쌍한 내 새끼를 구하는 일이 어찌 해코지란 말이오!”
충혈된 눈으로 악에 받쳐 소리치는 모습을 보니 거짓을 말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대로 믿기에도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었다. 만약 이곳에 누군가가 갇혀 있다면 자신에게 감지되지 않을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마당에 나와 있는 자들을 제외한다면 어디에서도 사람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문 앞에서 얼핏 듣기로 이미 십 년도 지난 일이라 들었습니다. 정말 이곳에 아이가 잡혀 있는 것이 확실합니까?”
“우리 아이가 매일 밤 꿈에 나타나 살려달라고 울부짖고 있소. 틀림없이 저놈들이 내 아들을 잡아다 원귀로 만들어 부리고 있는 것이오.”
유진산도 어렸을 적 집안의 어른으로부터 염매(厭魅)라는 주술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었다.
아이를 잔인한 수법으로 굶긴 후 살해하여 원귀로 만들고, 이를 부려 부유한 집안에 재앙을 뿌린다.
이후 병자들이 찾아오면 제물을 받은 후 다시 원귀를 부려 재앙을 해결해 주는 것이다.
설마 이곳에서 그런 사악한 주술이 행해지기라도 한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믿어지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속설이었으니까.
“그것을 내게 증명해 보일 방법이 있소?”
힘겹게 얼굴을 치켜든 중년인은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이어서 으리으리한 마당을 살펴보더니 피 묻은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냉큼 가리켰다.
마당의 구석 어딘가. 부적으로 밀봉된 항아리 하나가 놓여있었다.
무척이나 귀한 물품인 듯, 아무도 다가갈 수 없도록 밧줄로 결계를 쳐둔 모습이었다.
우선 저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확인부터 해야 할 터.
유진산이 자리를 털고 있어 설 때였다.
쾅-!
장원의 대문이 닫히는 소리였다.
강호에서 닳고 닳은 유진산은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저들이 지금 무슨 짓을 벌이려는 지를.
아니나 다를까.
대청 앞에서 인상을 구기고 있던 당주가 검지를 내뻗으며 고함을 내질렀다.
“저놈에게 악귀가 씌었으니, 어서 포박하거라!”
기가 막혀서 말도 나오질 않는 상황이었다.
무사들이 자신을 잡기 위해 달려왔으나 어림도 없었다.
사방에서 손길이 뻗어 나오며 휘어잡으려 했지만, 그때마다 그의 신형은 바람처럼 유유히 빠져나갔다.
그리고 그의 발걸음은 조금씩 항아리를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잠시 후 그가 목적지에 도착하자 무사들이 주춤거렸다.
결계처럼 둘러놓은 밧줄 내부는 금지구역인지 접근하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유진산은 부적과 함께 밀봉된 항아리의 뚜껑을 확 뜯어버렸다.
부악-!!
고개를 내밀어 내부를 살펴보던 그는 조심스럽게 다시 닫아버렸다.
널브러져 있던 무속인이 의문 가득한 눈빛으로 유진산을 응시했다.
“……?”
그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단지 뒷짐을 지고 있는 당주를 향해 쏘아져 나갔을 뿐.
파앙-!
무림인이 아닌 자에게는 무공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 강호의 불문율이다.
유진산은 지금껏 단 한 번도 이 원칙을 어겨본 적이 없었다.
지금까지는…….
콰직-!
발등으로 당주의 무릎을 꺾어버리자 그가 주저앉으려 했다.
그 순간 유진산의 손바닥이 전광석화처럼 올라가며 그의 따귀를 후려쳤다.
철썩-!!
이어서 볼품없이 쓰러지는 당주의 귓가에 분노 서린 고함이 강타했다.
“네놈들이 정녕 사람이란 말이더냐!!”
내공이 가득 실린 고함은 담벼락이 흔들릴 정도로 거셌다.
그 모습에 모두가 얼이 빠진 듯 넋을 놓았다.
유진산이 이렇게 격노한 일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아니 처음이라 할 수 있었다. 가문이 비화를 당했을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그때는 분노가 슬픔에 묻혔으니까.
“…….”
당주가 바닥에 쓰러져 바둥대고 있었음에도, 모두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만 뻥긋댈 수밖에 없었다.
그때 동자승의 호통이 쩌렁쩌렁 메아리쳤다.
“무인으로서 이딴 미친 것들을 호위하는 게 부끄럽지도 않더냐! ”
도대체 그가 항아리에서 무엇을 보았던 것일까.
어찌 된 영문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여섯 명의 무사들도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포위해.”
잘 봐줘야 이류와 일류 정도의 검객들이 뒤섞인 수준이었다.
주제에 진법까지도 익힌 모양이었다. 유진산의 눈에는 어설퍼 보일 뿐이었지만.
“오냐. 무림인은 무림의 방식대로 해야겠지.”
말을 마친 유진산은 다짜고짜 그들을 향해 파고들었다.
진법이고 뭐고 조금도 신경 안 쓴다는 모습이었다.
이어진 것은 그야말로 일방적인 학살이었다.
동자승이 지나는 자리로 팔다리와 목이 꺾인 무사들이 추풍낙엽처럼 쓰러져갔다.
쩌억-! 콰직-! 우드득-!!
유진산의 일평생 이렇게 잔인한 손속을 펼친 것은 처음이었다.
눈 깜짝할 사이 가문의 호위무사들이 모두 쓰러지자, 지켜보던 자들이 경악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란 말인가.
영문을 알 수 없었지만, 이 순간 그들에게는 살아남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잘, 잘못했습니다.”
“살, 살려주십시오, 보살님.”
유진산은 싸늘하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그들을 훑어보았다.
당주와 몇몇을 제외한다면 대부분이 신을 섬기는 중년의 여인들이었다.
“나도 너희들을 죽일 생각이 없다. 내 손이 너무 더러워질 것 같으니까.”
유진산의 한마디에 가문의 일원들은 표정이 밝아졌다.
“고, 고맙습니다. 스님.”
“앞으로 착하게 공양드리며 살겠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간과하고 있는 것이 한 가지 있었다.
유진산은 자신의 손으로 죽이지 않는다고 했을 뿐, 용서한다고 한 적이 없었다.
그의 시선이 장원 밖의 나무 위를 향하며 누군가에게 신호를 보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굳건히 닫혀 있던 대문이 박살 났다.
콰아앙-!!
화가 난 것은 비단 유진산뿐만이 아니었다. 초인적인 오감으로 이곳에서 벌어진 모든 일을 보고 들은 아이가 있었다.
산산이 조각난 대문으로 유설이 첫발을 내디뎠다.
그 순간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신력이 약한 십여 명의 제자들이 피를 토하며 쓰러지는 것이 아닌가.
“끄헉!”
“끄으윽!!”
나머지도 무사할 수가 없었다.
유설이 안으로 들어서자 이제는 너 나 할 것 없이 발작을 일으켰다.
“……왜 그랬어요.”
겨우 정신을 차린 당주가 유설의 앞에서 무릎을 꿇고 싹싹 빌기 시작했다.
“아이고, 장군님.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한 번만 살려주십시오. 아이고…….”
그 순간 유설의 눈썹이 좁혀지며, 거센 불호령이 뿜어져 나왔다.
“왜 그랬어!!”
내공을 싣지 않고 오로지 육성으로만 뿜어낸 일갈이었다.
그러나 그 한마디는 무속인들에게 천벌과도 같았다.
가장 먼저 당주의 귓가에서 핏물이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기이하게도 멀쩡한 자는 이곳을 침입했던 중년의 무속인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