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화 내가 바로 낚시왕 (2)
동구는 유설이 건네준 노릇하게 익은 생선을 먹으며 히죽 웃었다.
“아주 맛있어! 지금까지 먹어본 생선 중에 최고야.”
“헤헤. 내가 잡은 거예요.”
유진산은 그가 다 먹을 때까지 차분히 기다려주었다.
그리고 잠시 후.
동구가 입을 닦으며 먼저 본론을 꺼냈다.
“흑야방이라고 들어보셨습니까?”
“처음 듣는군. 내가 알아보라고 했던 정보 상인인가?”
“예. 오 년 전부터 막대한 재력을 바탕으로 무섭게 팽창한 세력이라고 합니다. 적어도 하남성에서는 개방보다 정보력이 더 뛰어나대요.”
정보를 다루는 일만큼은 명실상부 무림에서 최고로 쳐주는 것이 개방이다. 그런데 그들의 밥줄을 위협할 만한 세력이 있다니?
분명 흥미로운 사실이었지만, 석연치 않은 부분도 있었다.
“이상하군. 자기 밥그릇만큼은 형제들한테도 안 뺏기는 개방이 그들을 가만히 놔두었다고?”
“점조직처럼 운영되고 있어서 별수 없는 것 같아요. 소문을 모아보니 대부분이 고용된 낭인 무사들이고, 정식 조직원들은 음지에 숨어있다는데요.”
“뭐 자금만 있다면야 그편이 더 유리하겠지. 접선 방법은?”
“백화현의 이향찻집에서 흑산차를 마시고 가면, 며칠 안에 알아서 접근해온다고 합니다.”
차를 좋아하는 유진산조차 처음으로 들어본 이름이었다.
아마도 그곳에서만 파는 특별한 차인 듯했지만, 어딘지 모르게 친근한 느낌이 들었다.
“흑산……차라. 애먼 사람이 호기심에 마실 수도 있지 않은가.”
“목적이 있지 않고서는 마실 수가 없어요. 차 한 잔에 은자 다섯 냥이니까요.”
은자 다섯 냥. 유진산이 소지한 재산을 모두 털어내야만 가능한 금액이었다.
“접선 비용치고는 너무 비싸군. 가치가 있기를 바랄 수밖에. 어쨌거나 수고했네.”
어리숙해 보여서 내심 큰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일 처리가 썩 괜찮았다.
그가 이 정도의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서 얼마나 고생하고 왔을지 눈에 훤했다.
“별말씀을요. 또 시키실 일이 있으시면 무엇이든 말씀하십시오.”
목표는 숭산의 소림사. 정확히는 그곳에 있을 원강대사였다.
아무런 정보가 없기에 사전 조사부터 진행하는 것이 순서일 터. 흑야방과 접선해봐야 했다.
하지만 그보다 앞서 먼저 해결해야 할 일이 있었다.
“하후세가에 대한 정보는?”
기다렸다는 듯이 동구가 품속에서 두루마리 하나를 꺼냈다.
“고모님께서 정리해두신 정보입니다. 한번 보시지요.”
“음. 녀석, 일하는 게 참 마음에 들어.”
동구는 멋쩍은지 뒷머리를 긁적였다.
“뭐든 다 열심히 해야죠. 어르신의 손에 우리 가문의 목숨이 달려있잖아요.”
“솔직해서 좋군.”
내용은 역시나 유진산의 예상대로였다.
하남에서 가장 위세를 떨치는 가문. 하후세가는 쉽게 볼 수 있는 세력이 아니었다.
핵심적인 고수들은 일류에서 절정까지 그 수준이 다양했으며, 무공의 경지를 짐작할 수 없는 가주까지.
설상가상 관에도 연줄이 있다고 적혀있었다. 그러니 동가장에서 일방적으로 당할 수밖에.
“내일이 기일이지?”
“예, 어르신. 내일 아침이면 하후세가에서 다시 찾아올 것입니다.”
“일단 들어가자꾸나. 노인네가 목이 빠질 듯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
“예, 앞장서겠습니다.”
유진산과 손녀가 손을 맞잡고 동구의 뒤를 따라 졸졸 걸어갔다.
잠시 후 동가장의 입구에 다다르자 낯이 익은 인물이 보였다.
막내아들인 석이가 입구에 나와서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셋째 형! 늦을까 봐 얼마나 걱정했다고. 일은 잘 해결하고 온 거야?”
“응. 다들 안에 계시지?”
고개를 끄덕인 그는 동구의 뒤에 있는 아이들의 어깨를 양팔로 감쌌다.
“아이고, 우리 예쁜 조카들! 할아버지가 기다리고 계시니, 어서 들어가자꾸나.”
동가장의 가주 동운걸.
그는 전각의 밖으로 이어진 마루에 심각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동구와 아이들을 발견하고 나서야 그의 얼굴이 조금 풀어지는 듯했다.
“내 새끼들, 어서 이리들 올라오너라.”
동운걸은 다짜고짜 자신의 옆구리에 유진산과 유설을 철썩 끼워두었다.
그가 얼마나 손주들을 애지중지하는지 질투가 날 정도였다.
진실을 알고 있는 동구가 씁쓸한 마음을 갈무리하며 물었다.
“그런데 왜 나와 계세요? 안색이 어두워 보입니다.”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이게 맞는 일인지 모르겠구나.”
“그게 무슨 뜻이에요?”
“내일 우리 산이가 하후세가의 망나니 녀석을 상대하는 것 말이다. 이 어린것에게 너무 큰 짐을 주는 게 아닌지 걱정되는구나.”
유진산이 반로환동한 고수임을 알았더라면 어찌 이런 걱정을 하겠는가.
동구는 신경 쓸 필요 없다는 듯 손사래를 쳤다.
“어차피 다른 방도도 없잖아요. 걱정하지 마세요, 충분히 이길 수 있으니까.”
“그렇겠지. 내일 하후성이 온다면 우리 산이가 잡을 수 있다. 하지만 이번 사태가 그것으로 끝날까? 그다음은?”
그때 지켜보던 막내 동석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버지, 그게 무슨 의미세요?”
“우리가 하후성을 제압하면 살려서 돌려보내줄까 한다.”
가주의 한마디에 동석의 얼굴에 분노가 떠올랐다.
“절대 안 됩니다! 그 새끼한테 형님들이 다섯이나 목숨을 잃었잖아요? 찢어 죽여도 시원찮을 마당에 그냥 살려서 돌려보낸다니요?”
분위기가 가라앉자 동구가 그에게 눈짓을 보냈다.
“석이 너, 아버지한테 그게 무슨 말버릇이야?”
평상시에는 있을 수 없는 하극상이었다. 그만큼 하후세가에 대한 동석의 분노가 컸던 것이다.
그때 동운걸이 동구에게 손을 내저었다. 막내를 그냥 내버려 두라는 의미였다.
“나라고 어찌 그러고 싶지 않겠느냐. 하지만 우리가 그놈을 죽인다면, 더욱 강한 고수들이 연이어 찾아올 테지.”
“그래서요?”
“가문의 복수도 중요하지만, 가주로서 남아 있는 우리 식구들의 안위를 무시할 수가 없겠구나.”
“그렇다고 그냥 이대로 끝낸다고요? 우리 가문이 멸문지화를 당하더라도 꼭 복수하고 싶다고 하셨잖아요?”
말이 통하지 않자, 차분히 얘기하던 동운걸이 버럭 성질을 냈다.
“그래도 우리 산이는 지켜야 할 것 아니냐!”
동가장의 기준에서 유진산은 가문의 역사상 최고의 기재였다. 물론 진짜 핏줄이 맞다면 말이다.
가문의 부흥을 위해 손주를 지키고 싶었던 것이었다.
그의 모습에 생각이 깊어지는 유진산이었다. 손녀를 애지중지하는 자신의 모습과도 별반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와는 달리 자신은 무림맹을 용서할 만큼 관대하지 못했다.
물론 동운걸도 자신의 처지였다면, 다른 판단을 내렸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황이 비슷해도 정도의 차이가 있었으니까.
“…….”
억울함을 감추지 못한 채 입을 꾹 닫고 있는 동석.
어찌 막내아들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할까. 동운걸은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복수는 힘 있는 자들의 전유물이다. 억울하면 강해져야 하는 것이 세상의 이치지. 훗날 우리 산이가 경지에 오르게 된다면, 그때는 상황이 바뀔 수도 있지 않겠느냐.”
더는 동석도 만류하지 못했다. 아버지의 눈가에 맺힌 눈물을 보았기 때문이다.
“뜻대로 하십시오. 하지만 분명 지금의 결정을 후회하시게 될 것입니다.”
고개를 슬쩍 끄덕인 동운걸은 유진산의 머리를 살며시 쓰다듬었다.
“상대는 아직 절정의 반열에 들지 못했으니, 네게는 어렵지 않은 상대일 게다. 실력을 최대한 감추고 손속에 자비를 두거라.”
유진산은 대꾸하지 않았다. 특유의 무표정한 얼굴로 먼 곳만 바라보고 있을 뿐.
동운걸도 아이가 말수가 없다는 것을 익히 들었기에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지금까지는 말이다.
* * *
다음 날 아침.
동가장의 대문이 벌컥 열렸다.
밖에서 망을 보던 젊은 사내가 헐레벌떡 뛰어오며 소리쳤다.
“놈, 놈들이 오고 있습니다!”
마당에 나와 있던 동석이 미간을 찡그리며 다가갔다.
“호들갑 떨지 마. 이미 다 알고 있는 사실이잖아.”
“그, 그게 아니에요, 석이 형님. 지금 큰일 났다고요.”
그렇지 않아도 예민해져 있던 동석은 짜증부터 났다.
어리버리한 사촌 동생의 호들갑이 달가울 리가 없었다.
“오늘 하후성이 올 거 다 알고 있었잖아. 우리 산이가 무조건 이긴다니까? 이제 걱정 안 해도 돼.”
“그놈이 온 게 아니란 말이에요!”
이제야 동석도 무엇인가 이상함을 느꼈다.
“그게 도대체 무슨 소리야?”
“하후천이 함께 왔다고요. 게다가 다른 무사들도 같이 왔는데, 열 명이 넘어요!”
그의 말에 동석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두 눈을 부릅떴다.
하후천이 누구인가. 하후세가에서 한 손안에 드는 실력자로 가주의 둘째 아들이었다.
절정의 경지인 그는 동가장의 입장에서 넘을 수 없는 벽 같은 존재였다.
“……그놈이 왜 와?”
“저도 몰라요. 이제 우리 어떡해요?”
무엇인가 일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었다
그들은 동운걸의 친아들 중 막내인 자신만 남은 것으로 알고 있을 터였다.
그런 상황에서 무엇 때문에 이렇게 작정하고 왔다는 말인가.
“우선 빨리 가서 전부 모이시라고 해.”
“네, 형님!”
동석은 안절부절못했다. 지금까지 하후세가가 노린 것은 동운걸의 아들들뿐.
하후성만 와도 충분할 상황에 이렇게나 몰려온다니? 도무지 그들의 의도를 알 수가 없었다.
‘이거 난리가 났구나.’
그가 갈팡질팡하는 사이 가문의 모든 식솔이 장원의 앞마당으로 몰려나왔다.
게 중에는 얼굴이 사색이 된 동운걸도 있었다.
“아버님. 놈들이 뭐 때문에 이렇게 몰려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산이가 하후성을 제압한다면 그 즉시 하후천이 나설 겁니다.”
가주라고 달리 방도가 있을 리가 없었다.
동운걸은 머리가 지끈 아프다는 듯 손바닥으로 이마를 짚었다.
“도대체 이 미친놈들이 무슨 수작을…….”
“아무리 산이가 검선의 제자라도 경험이 많은 하후천을 상대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알고 있다. 이거 큰일이로구나.”
동석이 비장한 표정으로 허리춤의 검집을 움켜쥐었다.
“제가 나서겠습니다. 일단 산이만이라도 살려놓고 봅시다.”
“네가 상대할 수 있는 자가 아니야.”
“다른 방도가 없습니다. 산이가 살아야 우리 가문에 미래가 있다면서요?”
하후천은커녕 하후성도 감당하지 못할 동석이었다. 자신의 목숨을 내어주고 사태를 마무리할 심산이리라.
그러나 애초부터 동가장에는 선택할 권한 자체가 없었다.
“고민할 필요 없어. 너희들은 오늘 다 죽을 테니까.”
장원의 입구에서 들려온 소리였다.
백호가 새겨진 백의를 입은 두 명의 중년인이 선두에 있었다. 하후천과 하후성이리라.
그리고 그들의 뒤에는 적의를 입은 열두 명의 검객들이 기립하고 있었다. 하후세가의 무력단체인 자혈검단이었다.
성격이 급한 동석이 그들을 향해 되물었다.
“그게 무슨 의미지?”
하후천의 얼굴에 비릿한 미소가 떠올랐다.
“네가 동석이라는 애송이인가 보군. 다시 한번 말해주지. 오늘부로 동가장의 이름은 세상에서 지워질 것이다.”
동가장의 모두를 죽이겠다는 말과도 다름이 없었다.
그의 말이 끝나는 순간 자혈검단이 장원의 곳곳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하나같이 일류를 넘나드는 움직임. 그야말로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아무도 도망칠 수 없도록 위치를 잡는 것이리라.
가주 동운걸이 격노한 얼굴로 소리쳤다.
“이게 무슨 천인공노할 짓이란 말이냐?”
하후천의 표정이 어둡게 가라앉으며 짙은 살기가 떠올랐다.
“식솔들을 살리고 싶은가?”
“……?”
“그럼 꿇어.”
나직한 한마디. 그의 명령에는 많은 의미가 함축되어 있었다.
무릎 꿇고 사죄한다면 최악의 상황은 면하게 해줄 수도 있다는 의미였다.
가문의 자존심인 가주에게 무릎을 꿇으라 명령하고 있다니. 그것도 식솔들이 보는 앞에서 말이다.
하지만 식구들을 살리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라도 할 수 있는 게 가주의 입장이었다.
그에게 무슨 선택의 여지가 있겠는가.
참을 수 없는 치욕. 살며시 무릎을 굽혀가는 동운걸의 안면이 부르르 떨려갔다.
그가 무릎을 꿇으려는 찰나. 돌연 그의 뒤에 대기하고 있던 유진산이 그의 옷깃을 붙잡으며 전음을 보냈다.
- 할아버지가 무릎을 꿇으면, 저는 스스로 제 두 다리를 자를 것입니다.
도저히 아이의 입에서 나올 수 있는 소리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 때문일까? 유진산의 한마디에 동운걸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자신이 아끼는 손자가 스스로 두 다리를 자른다고 협박하는데 어찌 무릎을 꿇겠는가.
유진산은 하후천에게서 느껴지는 기의 흐름에서 제안이 거짓임을 간파하고 있었다.
오히려 점점 짙어지는 살기. 동가장을 최대한 비참하게 끝장내려는 의도가 확실했다.
아니나 다를까?
“주제에 자존심은 있다는 거군. 뭐 상관없다. 어차피 한 명도 살려둘 생각이 없었으니까.”
“네 이놈!”
하후천은 오히려 동운걸의 분노를 즐기는 듯했다.
“너희들의 손에 죽은 완이는 내가 가장 아끼는 막냇동생이었다.”
“그놈이 자초한 일이다! 내 아들의 여인을 탐하고, 진검 대련을 하자고 강요한 것도 그놈이었다! 게다가 너희들은 이미 대가로 내 다섯 아들을 데려가지 않았더냐!”
“우리 막내에게 감히 그놈이라 했는가……. 조금 뒤에도 그 더러운 입을 놀릴 수 있는지 지켜보지.”
말을 마친 하후천은 우측을 향해 고개를 한 번 끄덕여 보였다.
그러자 하후성이 검을 뽑아 들며 성큼성큼 앞으로 나섰다.
“세상이 너희들의 악행을 모른 척할 것 같으냐?”
하후세가의 잔혹한 만행이 무림에 알려진다면 좋을 것이 없었다. 정파에서도 배척당할 수 있을 만큼 잔인한 일이었으니.
하지만 그들은 멈출 생각이 전혀 없는 듯했다.
오히려 재밌는 구경거리라도 생겼다는 듯 하후천은 느긋한 표정으로 뒷짐을 지었다.
“그것은 생각해 본 적이 없군. 오늘 벌어진 일은 아무도 알 수 없을 테니까.”
“네놈들이 기어코…….”
“그전에 대련부터 속행해야겠지? 똑같은 방식으로 돌려주는 것이 우리 하후세가의 방식이니.”
진검대련으로 동석을 먼저 죽인 후에 나머지 식솔들을 한 번에 정리하겠다는 의미이리라.
이제는 돌이킬 수가 없었다.
동가장의 식솔들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머뭇거렸다.
그리고 그들의 틈새에는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는 유설의 모습도 보였다.
그때 나이가 지긋한 노파가 유설을 허리춤으로 안으며 등을 토닥였다. 마치 공포에라도 질린 듯 아이가 떨고 있었기 때문이다.
침착한 유진산의 모습과는 전혀 상반된 모습이었다.
“너무 두려워하지 말거라, 아가. 이 할머니가 무슨 일이 있어도 너는 지켜주마.”
그러나 그녀는 단단히 오해하고 있었다.
떨림의 정체. 그것은 결코 무서움이 아니었다.
치밀어 오르는 분노. 익숙하지 않은 낯선 감정이 유설의 마음을 서서히 잠식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눈치챈 유진산이 걱정 어린 표정으로 자신의 손녀를 응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