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화 하후세가의 망나니들 (1)
끼기긱-!
동가장의 대문이 열리는 소리였다.
드러난 내부의 모습에 동구는 벌어진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앞마당에 흥건히 뿌려진 핏자국이었다.
집 안에서 누군가가 살해당하기라도 했단 말인가?
사태를 수습하는 식솔들은 하나같이 죽어가는 몰골을 하고 있었다.
십 년 만에 돌아온 오늘, 집안이 초상을 치르고 있을 줄 어찌 알았겠는가.
당황한 동구가 머뭇거리는 사이 낯이 익은 사내가 성큼성큼 다가왔다.
“셋째 형님은 들어올 자격이 없으니 돌아가.”
일곱 형제 중 막내인 동석이었다.
용케도 자신을 기억해준 것은 고마웠지만, 보자마자 축객령이라니. 여기까지 와서 그냥 돌아갈 수는 없었다.
“석아…….”
“집안이 이렇게 될 동안 형님은 어디서 뭘 하다 온 건데?”
“그간 사정이 좀 있었다. 도대체 이게 다 무슨 일인지 얘기부터…….”
“나가라고!”
“…….”
오랜만에 만난 형제이거늘 어찌 이리도 매몰차게 나온다는 말인가.
자신을 이런 식으로 쫓아낼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막내의 눈가에 서러움의 눈물이 맺힌 것을 보니 무엇인가 사정이 있는 모양이었다.
비단 막내뿐만이 아니었다. 하나같이 생기를 잃은 눈동자. 다른 식솔들도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다.
동구는 어두워진 안색으로 고개를 푹 숙였다. 이렇게 먼 거리를 왔는데, 어찌 돌아갈 수 있겠는가. 하늘이 무너지는 심정이었다.
그렇게 머뭇거리고 있을 찰나.
“으으…….”
여자아이의 신음이 동석의 눈길을 끌었다.
동구의 허리춤에 착 달라붙어 있는 두 명의 아이들.
그중 배고픔을 참을 수 없다는 듯 아랫배를 움켜쥐고 있는 유설이었다.
아이들이 불쌍해 보였기 때문일까? 막내 동석의 음성이 조금 낮아졌다.
“애들이야?”
“그, 그게…….”
동구는 바로 답변하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아니라고 하면 이대로 쫓겨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때 유설이 죽어가는 표정으로 어깨를 축 늘어트렸다.
“배고파요…….”
급하게 오느라 온종일 아무것도 먹이지 못하긴 했다.
그러나 정말 배고파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동구를 도우려고 꾀를 부린 것인지는 오직 본인만이 아는 일이었다.
어쨌거나 아이들한테까지 매몰차게 할 수는 없는 일.
아이들을 측은한 눈빛으로 바라보던 동석이 마지못해 한숨을 내쉬었다.
“문을 열어주는 건 애들 때문이니, 밥만 먹이고 나가.”
“고맙다, 석아.”
그는 동구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유진산과 유설의 등을 양팔로 감쌌다.
“들어가자, 얘들아.”
장원을 둘러보는 유진산의 눈빛이 깊게 가라앉았다.
흰 천으로 가려진 누군가의 시신. 그리고 세상을 다 잃은 듯한 얼굴로 주저앉은 식솔들.
깊은 암운이 드리워진 장원의 모습이 유가장과 겹쳐 보였다.
“잠시 이 안에 들어가서 쉬고 있어라.”
“감사합니다.”
유진산과 손녀는 작은 방 안에 숨죽이고 앉아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밖에서는 두 형제가 나누는 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석아.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얘기 좀 해봐.”
“우리 형제들 말이야. 나 빼고 모두 죽었어. 게다가 아버님은 앓아누워있고, 어머니는 충격으로 돌아가셨고.”
“그, 그게 무슨 소리야?”
“저 시신이 누구인 것 같아? 여섯째 철이 형님이야. 이제 다음은 내 차례고.”
“……뭐?”
동구는 굉장히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한동안 말문이 없었던 그는 곧이어 크게 오열하기 시작했다.
막내는 그가 진정될 때까지 기다려 주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다시 입을 여는 동구의 음성에는 슬픔 속에 분노가 솟아오르고 있었다.
“누가 그랬어?”
“형님은 알아도 어찌할 수 없는 상대니까 그냥 돌아가. 여기 있으면 같이 죽어.”
막내가 동구를 쫓아 보내려고 했던 숨은 이유가 밝혀진 순간이었다.
대화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방 안에서 엿듣던 유설이 슬프다는 얼굴로 할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어떡해…….”
“음. 일단 좀 더 들어보자꾸나.”
두 형제의 대화는 더욱 심각해졌다.
지금까지의 내용으로 유추해보면 형제들이 한 명씩 순서대로 살해당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자신의 집에서 말이다.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었다.
“얼마 전 넷째 형님이 비무 중에 하후세가의 막내아들을 실수로 죽인 사건이 있었어.”
하후세가(夏候世家).
유진산도 들어본 적이 있었다. 하남에서 가장 큰 세력을 형성한 가문으로, 동가장과는 비교할 수 없는 명문세가였다.
“넷째가? 비무 중에 어떻게 그런 사고가 일어났다는 거야?”
본디 비무는 목검을 사용하며, 내력을 사용하지 않고 초식으로 대결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렇기에 이러한 사고는 흔치 않은 일이었다.
“그 하후세가의 망나니 놈이 진검 대련을 요구했어.”
“진검 대련이라니……?”
“그놈이 넷째 형님의 형수가 될 분을 탐내고 있었거든. 계속 구애하다가 뜻대로 안 되니 수작을 부리려 했던 거지. 싸움이 격해지면서 사고가 터진 거고.”
“그럼 우리 잘못도 아니잖아?”
“명분은 힘을 따르는 법이잖아. 그 일을 빌미로 하후세가에서 나흘에 한 번씩 우리 동가장에 찾아와 강제로 비무를 벌이고 있어. 오늘이 바로 그날이었고.”
“이런 쳐 죽일 놈들이…….”
동구의 목소리로 보아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는 듯했다.
십년 만에 돌아온 집안이 풍비박산이 났으니 그럴 수밖에.
“나흘 뒤에는 내 차례야. 우리 가문의 씨를 말릴 때까지 그만두지 않는다고 했으니, 개죽음당하지 말고 애들 데리고 떠나. 어린아이들이라고 봐주지 않을 놈들이니.”
수백 년간 이곳에 터를 잡은 대가족이었기에 단체로 도망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설령 시도한다고 하더라도 하후세가에서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었다.
진퇴양난의 상황에서 그간 얼마나 괴롭힘을 당했을지 상상조차 되질 않았다.
이대로 물러설 동구가 아니었다.
“이제 이 형님이 왔으니까 걱정하지 마. 내가 십 년 동안 갈고 닦은 무예로…….”
“그깟 삼류 실력으로 될 문제가 아니라고!”
“…….”
동석은 동구의 실력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었다.
하후세가라면 일류고수들은 물론이고 절정고수까지 있을 터. 어지간한 실력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그때 어디선가 나이든 노파의 소리가 들려왔다.
“아이고, 우리 동구 왔구나! 그리고 석이 이 녀석, 오랜만에 만난 형님한테 그게 무슨 버릇이야?”
“고모님, 그게 아니라…….”
동석은 한참을 야단맞은 뒤에야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녀는 동구와 몇 마디를 주고받더니 유진산과 손녀가 대기 중이던 방문을 열었다.
“아이고, 우리 예쁜 아가들. 여기까지 오느라 얼마나 고생했을꼬. 어서 이리들 나오너라. 할아버지한테 인사 먼저 해야지?”
잠시만 머물렀다가 바로 떠날 생각이었지만, 일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유진산은 얼떨결에 손녀와 함께 문밖으로 걸어 나갔다.
노파는 둘의 머리를 쓰다듬더니, 동구에게 근처의 한 전각을 가리키며 말했다.
“먹을거리 좀 준비해 놓을 테니, 애들 데리고 인사부터 드리고 오너라.”
초상을 치른 날이라 정신이 없었지만, 먼 곳에서 온 조카와 아이들에게 뭐라도 챙겨 먹이고 싶은 것이 어른의 마음이었다.
“예, 고모님.”
“그리고 혹시라도 아버님 앞에서 하후세가 얘기는 꺼내지 말거라. 하후 소리만 들려와도 발작을 일으키시니까.”
“명심하겠습니다.”
동구는 어색한 몸짓으로 유진산과 유설의 손을 잡고 걸었다.
주변이 조용해지자 그가 상체를 굽히며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미안하구나, 얘들아. 상황이 이러니 오늘만 나를 아버지라고 생각해 줄 수 있겠니? 금방 핑계를 만들어서 보내줄게…….”
유진산은 잠시 머뭇거렸다.
자신보다 어린 녀석에게 아비라 부르는 게 어찌 내키겠는가.
그의 속내를 읽은 것일까? 유설이 할아버지의 얼굴을 응시하며 전음을 보냈다.
- 할배, 동구 아저씨 불쌍하잖아…….
손녀까지 부탁하는 마당에 마냥 모른 척할 수도 없는 일.
잠시 고민하던 그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결정적으로는 자신 또한 동구를 이용할 계획이 있었기 때문이다. 값을 미리 치르는 셈이었으니 손해 볼 것도 없는 일이었다.
“알겠습니다.”
“고맙다. 나중에 아저씨가 꼭 보답할게.”
동구는 긴장되는지 호흡을 가다듬고는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아버지, 동구 왔습니다!”
안에는 나이가 지긋한 노인이 병상에 누워있었다.
핏기를 잃어버린 안색과 초점을 잃은 두 눈.
유진산은 동가장의 가주에게서 자신의 옛 모습을 보았다. 감당하기 어려운 충격에 스스로 삶을 포기하려 했던 그 순간을 말이다.
스스로가 정신을 놓아버린 이상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터였다.
“…….”
마치 영혼이 빠져나간 사람처럼 그는 미동조차 없었다.
그는 분명 스스로가 삶을 포기한 듯한 모습이었다.
자신이 보는 앞에서 아들들이 한 명씩 살해당하고 부인까지 잃었으니, 어찌 정신이 멀쩡할 수 있겠는가.
“아버지…….”
“…….”
그의 앞에 무릎 꿇은 동구가 눈물을 쏟아내며 애원했지만, 여전히 아무런 응답도 없었다.
“크흑. 이 못난 놈이 너무나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아버지……. 흐흑”
그의 모습이 안쓰러웠던 것일까? 유설도 입을 꾹 다물고 우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곧이어 할아버지의 옷깃을 붙잡으며 전음을 보냈다.
- 할배, 동구 아저씨 어떡해……. 우리가 도와줄 수 없어?
유진산은 죽으려 했던 자신이 다시 일어서게 된 순간을 떠올려 보았다.
모든 것을 다 잃고 죽으려 했던 그날, 반드시 살아야 할 이유가 생겼던 기적 같은 순간을 말이다.
- 확신할 수는 없지만, 한번 시도해볼 만한 방법은 있지. 우리 설이가 도와준다면 말이다.
- 알았어. 내가 도울게.
유진산은 손녀에게 몇 마디를 속삭였다.
눈치 빠른 유설은 미미하게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그러고는 자연스럽게 동구 옆으로 다가가 가주의 손을 잡았다.
“할아버지, 손녀 왔어요~”
삼류의 수준이었던 동구는 눈치채지 못했다.
유설의 손아귀에서 뿜어져 나온 내공이 가주의 몸속으로 스며들고 있음을.
중후한 화경의 기운은 일정한 법칙에 따라 그의 혈도를 순회하기 시작했다. 심신을 편안하게 해주는 유가심법(劉家心法)의 운공법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창백했던 가주의 얼굴에 혈색이 돌기 시작했다.
그것을 알아본 동구가 다급히 말했다.
“아, 아버지? 정신이 드십니까?”
반응이 있을 리가 없었다.
가주의 시야에는 여전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으며, 들리지도 않았다.
스스로가 자신과 세상을 연결하는 입구인 눈과 귀를 막은 것이다. 유설은 단지 그의 심신을 좀 더 편하게 해주었을 뿐이었다.
그의 영혼 속 깊은 곳에 꿈틀거리는 무언가를 자극해야만 했다.
유진산은 동가장의 가주에게 직접적인 전음을 보냈다.
- 알고 있습니다. 다 듣고 있다는 것을. 이대로 누워계신다면, 마지막까지 패배자로 남는 것입니다.
“…….”
예상대로 아직까지는 반응이 없었다.
길게 끌 수도 없는 노릇이었기에 유진산은 바로 승부수를 띄웠다.
- 자손들이 무의 깨달음을 얻어 고수가 되어 돌아왔습니다. 이제 일어나십시오. 하후세가 놈들을 때려죽이는 것은 봐야지요.
하후세가란 단어를 꺼낸다면 발작을 일으킨다고 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그가 유일하게 반응하는 그 부분을 건드리지 않고서는 깨울 방도가 없었다.
그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흐리멍덩한 가주의 눈동자가 갑자기 흔들리는 것이 아닌가.
이윽고 그의 입이 나직이 열렸다.
“하후세가……. 그렇지……, 내 아들을 죽인 못된 놈들……. 다 쓸어버려야지…….”
동구가 멍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아, 아버지?”
점차 초점을 잡아가는 가주의 두 눈. 잠시 뒤에는 그의 모습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언제 아파 누워있었냐는 듯 벌떡 상체를 일으키는 것이 아닌가.
“동구! 동구 아니냐!”
“네, 아버님. 접니다! 흐흑. 걱정했다고요.”
“이 녀석, 아주 잘 돌아왔다.”
가주와 동구는 서로 부둥켜안고 기뻐했다.
그러길 잠시 후. 그의 시선이 동구의 등 뒤로 향했다.
“내 손주들이라고?”
“……예? 어떻게 아십니까?”
그는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만 같았다.
가주의 안광에는 깊은 정기가 넘쳐흐르고 있었다.
“예쁜 내 새끼들, 어서 이리 가까이들 와 보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