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막 범고래 아기님-275화 (에필로그 2) (275/275)

에필로그

제2화

“엄마, 아빠.”

칼립소가 가만히 불러 보았다.

“에그머니나. 지은아. 왜 울어? 무슨 일 있었어?”

“애 위험한 거 만진 거 아니야? 다친 곳은?”

애석하게도 부모님인 수찬과 지현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칼립소를 보지 못했다.

지은이 어떻게 자신을 본 건지 알 수 없지만. 이게 특수한 경우인 듯했다.

“엉니이……. 엄마, 언니 왔어. 집에 와써!”

“뭐……?”

두 사람이 놀라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시은이가, 우리 첫째가 드디어 돌아왔다고?

대체 어디에?

그러나 두 사람은 코앞에 있는 칼립소를 보지 못했다.

칼립소는 흐르는 눈물을 닦지 않은 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모든 것을 가질 수는 없다.

칼립소는 이미 가족을 가졌고, 행복한 삶을 마침내 손에 넣었다.

그러니까, 이건 다신 없을 거라 생각했던 작별의 시간이 주어진 것이다.

칼립소의 얼굴이 눈물로 일그러졌다.

“엄마, 엄마. 흐엉, 엉니가, 울어…….”

지은이 ‘시은’을 대신해서 서럽게 울어 주었다. 한 번도 보지 못한 자매인데, 칼립소는 애틋함을 느꼈다.

“지은아.”

널 이렇게 불러 볼 수 있을 줄 몰랐어.

“울지 말고. 뚝.”

지은이 엄마 품에 안겨 가까스로 눈물을 참았다. 참으로 똑똑하고 영리한 아이였다.

“부모님한테 전해 줄래?”

그러니까, 이런 것도 가능하겠지.

칼립소가 흐린 얼굴로 살짝 웃었다.

“엄마, 나 시은이야.”

“엄마, 엄마. 엉니가…….”

두 사람은 딸인 지은이 이상하다는 걸 알면서도 차마 말리지 못했다.

그리움은 가시가 되어 그들의 심장에 박혔다. 실종된 딸은 나이가 들지 않은 채 그들의 마음에 살아 있었다.

서로를 위해 모진 말을 해도, 잊자고 노력해도 지울 수 없었다.

실종된 자식은, 가슴에 묻어도 늘 머릿속에서 살아 숨 쉬었기에.

“미안해요.”

“엉니가, 미안하다고 해써…….”

“시, 시은아? 정말, 정말 시은이니?”

두 사람이 ‘시은’이 죽어 귀신으로 찾아온 거라고 생각해도 좋았다.

아니, 그쪽이면 더 좋을 것 같았다. 서로를 위해서.

“나, 잊지 마요.”

“엉니가, 잊지 말라구…….”

“시, 시은아. 아빠야. 아빠! 아빠는 우리 시은이 안 잊었어!”

“그리고, 이대로 행복하게 살아달라고 전해 줄래?”

잊지는 않아도,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이 가족에게 더는 속하지 못하겠지만.

나는 다른 곳에서 행복하게 살 테니까.

“언니는, 앞으로 행복하게 살 거라고, 전해 줘.”

지은이 울먹이면서 ‘시은’의 뜻을 전했다. 아는 말도 있고 모르는 말도 있었지만. 어느 쪽이든 슬펐다.

언니를 다시는 보지 못할 것 같았으므로.

“아아, 아아아아!”

“여보, 여보!”

“시은아, 시은아!”

수찬과 지현은 이것이 마지막임을 알았다. ‘시은’이 의도한 것처럼 딸이 죽은 뒤에 찾아왔다고 생각했다.

수찬은 오열하는 지현을 안은 채 지은에게 물었다.

“……지은아, 언니 어디에 서 있어?”

“훌쩍, 저기…….”

그러자 아빠가 칼립소를 정확히 보았다. 칼립소가 잠시 흠칫할 정도로.

“시은아. 아빠는 시은이를 정말 아꼈어.”

“…….”

“아직도 아기 시은이가 우리 품에 들어온 날을 기억해.”

넌 천사 같았단다.

이 눈물이 여기서 그칠 일은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칼립소는 웃었다. 활짝.

“엉니가 웃었어…….”

“그래, 시은아. 웃으면서 가렴. 아빠는 우리 시은이 죽을 때까지 기억할 거야.”

“아아, 시은아. 시은아……!”

“엄마는 조금 슬퍼서 그래. 이해할 수 있지?”

칼립소가 천천히 끄덕였다.

“시은아, 우리 딸. 아빠가 언제나 문 열어 둘게.”

“…….”

“언제든 돌아와.”

아니, 돌아올 날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엄마, 아빠.”

“시은아.”

“……사랑해요.”

“미안해. 못난 아빠라서.”

“…….”

이별을 앞두고 잘하지 못한 것을 떠올리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일 터다.

칼립소, 아니 ‘시은’ 또한 살면서 부모님의 속을 썩인 일들을 떠올리고 말았기에.

“아빠도 우리 시은이 정말 사랑해.”

내가 사랑한다는 이야기가 들렸나요?

눈물이 바닥으로 뚝 떨어트렸다. 신기하게도 아빠가 바닥을 손으로 쓸었다.

“울지 말고.”

마치 눈물이 느껴진 것처럼.

“어디 있든 밥 잘 챙겨 먹고, 행복하렴.”

수찬이 울면서 환하게 웃었다.

“다시 만날 때까지.”

눈앞이 차차 흐려졌다.

이별의 시간은 짧았다.

칼립소는 차라리 짧은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동시에 마음에 닻처럼 놓여 있던 마지막 미련이 빠져나가 바다에 빠졌다.

다시는 이 닻을 찾지 않을 것이다.

부모님이 행복하라고 했으니까.

“……두 분도, 행복하세요.”

지은이랑 함께요.

* * *

눈을 떴을 때, 칼립소는 다시 폐허가 된 홀에 서 있었다.

바로 앞에는 조금 지친 표정의 에키온이 서 있었다.

“묻고 싶은 게 있어, 에키온.”

“응…….”

에키온은 어쩔 줄 몰라 하며 칼립소의 눈물을 닦아 주었다.

칼립소는 그 서툰 손길에 가만히 몸을 맡긴 채 잠시 생각했다.

“아까, 그 시공간의 균열이 있었기 때문에, 부모님을 볼 수 있었던 거야?”

“……응.”

에키온의 지금 힘으로는 더는 부모님을 보여 줄 수 없었다.

그러다 시공간의 균열을 발견했고, 이거라면 가능했기에 칼립소를 바로 불러왔다.

“그럼 있잖아. 우리가 용의 성에서 만나 함께 아콰시아델로 돌아갈 때, 너 그때도 우리 부모님 보여 줬잖아.”

에키온의 성장이 늦었던 이유. 단순히 그녀가 아는 것뿐일까?

“그땐 얼마만큼의 힘을 쓴 거야?”

그땐 시공간의 균열도 없었잖아.

어쩐지 이상했다. 에키온이 폭주한 걸 보았을 뿐이지만.

아콰시아델에서 함께 성장한 에키온은 3회차에서보다 약해 보였다.

“전부.”

그제야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혹시 내 부모님을 한번 보게 해 주면 안 될까?”

“제발, 한 번만 그분들을 보게 해 줘…….”

“응.”

그는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에도, 그녀의 소원을 맹목적으로 들어주었던 것임을.

“그랬구나.”

감정이 무엇인지도 모르던 시절부터.

처음 만난 소녀에게 모든 것을 줘 버린 소년이었다.

“책임.”

그런 사람을 어찌 사랑스럽게 보지 않을 수가 있을까.

“내가 책임져야겠네.”

칼립소는 눈물을 흘리며 환하게 웃었다.

“고마워. 그 소원, 다시 이뤄 줘서. 엄마랑 아빠를 만나 마지막으로 인사하게 해 주어서.”

덕분에 가시처럼 남아 있던 마지막 미련마저도 사라졌다.

내가 오해하고 있던 거란 걸, 알려 줘서 정말 고마워.

“앞으로는, 내가 칼립소 가족이 될게.”

칼립소가 소리 내어 웃었다.

칼립소는 대답 대신 에키온의 얼굴을 느릿하게 잡아당겼다.

그와 그녀의 입술이 겹쳐졌다. 그림자는 완전한 합일을 이루었다.

긴 입맞춤 끝에 칼립소가 대답했다.

“좋아.”

물줄기가 흘러나와 물이 튀고, 작은 무지개가 만들어졌다.

칼립소는 폐허 속에 만들어진 무지개 아래 다시 한번 밝게 웃었다.

“평생 함께하자.”

내 용 님.

* * *

-7년 뒤.

아콰시아델 왕국 수도에는 방문자가 끊이질 않았다. 모두가 이민을 희망하는 자들이었다.

옛 제국 수도에 들끓는 싸움에서 벗어나 평화로운 땅에 살고 싶어 하는 수인들.

아콰시아델의 주인은 이들을 너그러이 받아들였다.

한때 황무지였던 땅을 개간하여 영토는 아직 비어 있었기에 얼마든지 받아도 상관없었으므로.

한때 수중 동물 수인들만 살던 이곳엔 이제 종을 가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수인이 함께 공존했다.

아콰시아델의 법은 차별을 엄격히 금지했다. 그럼에도 문제가 없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편견과 차별로 가득했던 옛 제국보다는 훨씬 낫다고들 생각했다.

“이번에 이민 오는 거요?”

“네, 그렇습니다.”

로브를 푹 뒤집어쓴 남자가 밝게 대답했다.

“흠, 대게 수인이로군?”

“맞습니다.”

사내가 해맑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민 사유가, 흠. 폐하를 한번 뵙고 싶어서라고? 특이하기도 하군.”

“아, 축제 때는 꼭 한번은 볼 수 있다고 해서요.”

“왜 보고 싶은 거요?”

“아, 음, 가주님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역시 한번은 보고 싶어서랄까요?”

“뭐?”

가주에서 왕이 된 지가 언젠데. 심사관이 찌푸리자, 사내는 황급히 말을 정정했다.

“아니, 실언했습니다.”

“조심하쇼!”

“아, 그래도 궁금하긴 합니다. 워낙 유명하지 않습니까? 이 아콰시아델 왕국엔 현명하고 강인한 왕과 세 명의 남편이 있다는 이야기 말입니다.”

“쯧, 이미 다 아는 이야기가 무에 신기하다고.”

“신기할 만도 하죠. 그분 성격에 이렇게 사시는 걸 보면.”

멸망을 한번 겪었다면 말이죠.

사내가 싱글싱글 웃었다.

“어째 이야기할수록 우리 폐하를 아는 것처럼 이야기하는구려? 댁은 누구시오?”

심사관의 목소리가 조금 신중해졌다. 사내는 싱긋 웃었다.

가주님을 존경하고 충성하던 수하 중 하나입니다. 그리고 더는 필요 없는 기억을 떠올린 사람이기도 하지요.

“이제는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세상에 살아서 행복한 사람입니다. 꼭 여기서 살고 싶네요.”

사내는 저 멀리 왕성을 보았다.

초대 왕 칼립소 아콰시아델이 통치하는 곳.

이제는 모두가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세상.

마침내 그런 세상을 만든 칼립소를 모두가 아끼고 사랑한다.

정말 멋진 세상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사내가 바라본 왕성, 왕의 집무실 안에는 투덜거리는 칼립소가 있었다.

함께 있는 가족들과 함께, 평생 함께할 반려와 함께 활짝 웃고 마는 칼립소가.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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