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9화
로레일은 자그마한 아이를 꼬옥 끌어안으며 말했다.
기묘했다.
육지 동물 수인 중에 가장 수중 동물 수인을 차별하는 수인이 있다면 바로 원숭이였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원숭이를 상대하거나 심문했던 수하들 모두 단 한 번 마주한 것만으로 진절머리를 냈다.
“저 새끼들은 하나같이 인종차별 자판기 같습니다! 말하는 것만 들으면 확! 아오!”
“진정해. 우리 차분하게 그놈 입부터 찢어 놓을까?”
“……너나 진정해, 인마.”
날 때부터 편견이 확고한, 논리가 통하지 않는 상대가 있다면 바로 원숭이들이었다.
그러니 더더욱 눈앞의 남자가 기묘하게 느껴질 수밖에.
“저를 도와주시면, 안내는 물론 잡혀 있는 이들의 탈출을 돕겠습니다.”
나는 바로 대답하는 대신 팔짱을 꼈다.
이 도시에 있는 건 풀 쪼가리마저 경계해야 할 마당에, 겨우 이 한마디만으로 사람을 믿는 건 우습지 않은가.
“야, 믿는 건 아니지? 저 말은…….”
“한번 이야기나 들어 보자. 원하는 게 뭔데?”
“칼립소!”
고릴라 수인의 눈이 커졌다.
저 눈으로 분명 이채가 어렸다. 왤까? 지켜보고 있으려니 남자가 입을 달싹였다.
“그렇군요……. 예상은 했지만 당신이 맞군요.”
“날 아는 눈치네?”
“예. 아니, 이곳의 간부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겁니다.”
내가 아콰시아델을 물려받은 뒤로 수도에서 활동을 한 적 없다.
그럼에도 짚이는 곳이 없진 않았다.
‘용의 영지 무투장에서 거하게 해 먹었지?’
그때 무수히 많은 육지 동물 수인 또한 있었으니. 내 얼굴이 알려져도 이상하지 않지만.
감이 외치고 있었다.
저 남자가 나를 잘 아는 눈치인 건 다른 이유일 것이라고.
“칼립소 아콰시아델. 황태자 전하께서 매해, 단 한 해도 빼먹지 않고 당신을 언급하셨으니까요.”
“어떻게?”
놀라지 않고 물었다. 남자가 차분하게 대답했다.
“처음엔 이 얼굴을 기억하라고 하셨습니다.”
남자는 흘끗 내 눈치를 보았다.
“그리고 다음엔…… 납치를 명하셨고.”
“다음엔?”
실패했으니 내가 이 자리에 있는 거겠지.
옆에서 에키온을 비롯한 수하들과 오빠들의 기세가 사나워졌지만 나는 손을 휘휘 젓는 걸로 만류했다.
“다음엔, 청혼……하려 했던 것 같습니다.”
“이 미친 새끼가!”
아틀란이 참지 못하고 흥분했다. 덕분에 물줄기가 콸콸콸 솟으면서 저놈도 얼굴을 보이게 됐다.
이제 와 나를 사랑한다는 미친 X소리는 아니겠고.
‘혼인을 통해 날 확보하려 했다.’
마치 1회차, 2회차 흑표범 놈들과 약혼했던 것처럼.
황태자 놈이 기억하는 건 3회차일 테니.
‘약혼 성사 후 흑표범 가문으로 가다가 도망쳤으니.’
놈은 이걸 기억하고 답습한 걸 거다.
‘하지만 약혼의 ‘약’ 자도 들어 보지 못했는데……?’
어떻게 된 일일까.
“하지만 황태자 전하의 시도는 단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로레일이 침착하게 설명했다.
어찌 된 영문인지 황태자가 약혼을 제의하려 할 때마다 의문의 사고나 사건이 발생해 번번이 실패했다고.
이를테면 서신을 쓰면 바람에 날아가거나 벽난로로 들어가 버리고. 사람을 보내면 사고가 나서 아콰시아델에 전해지지 못했다.
그러나 무수한 시도 중에 단 한 번 아콰시아델에 전해진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때는, 당시 범고래 가주가 단칼에 거절했다고 들었습니다.”
……그 할머니가? 눈을 깜빡였지만 아주 잠시였다.
우습게도 하나 정도는 내 마음에 드는 행동을 했던 모양이네.
‘결국 영문은 몰라도 그 새끼가 정상적인 수단으로는 내게 닿지 못한단 소리지?’
생각해 보면 상어들의 본거지에서 봤을 때도 황태자는 자신이 쓰는 흙인형으로 대화하지 않았던가.
황태자씩이나 돼서 먼 곳까지 행차할 리가 없지만.
‘황실에 잠입했던 하우저의 보고까지 종합해 보자.’
놈은 극심한 제약을 받고 있다.
내게 원한을 풀 기회가 여러 번 있었음에도 강제적으로 붙잡지 못했을 만큼.
보통 이런 놈이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일까.
나는 생각에서 벗어났다.
우선 지금 고민할 부분은 아니었다.
“이야기가 돌고 돌았네. 그래서 당신이 원하는 것은?”
로레일이 제 입술을 지그시 물었다. 고릴라들은 대체로 인상이 진한 편이었다.
그런 것치고는 꽤 온순하게 생겼다 싶었더니.
“고래들, 아니. 당신은 수중 동물 수인 모두를 구출할 생각이 있습니까?”
“그렇다고 한다면?”
인상을 쓰자 내가 아는 고릴라들의 인상 평균치 정도는 되어 보였다.
“그럼 구출할 때, 제 동족들도 구해 주십시오. 이게 조건입니다.”
“……뭐?”
드물게도 황당함이 앞섰다.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너흰 우리 같은 수중 동물 수인은 버러지 취급하더라도 같은 종족만큼은 끔찍하게 여기잖아?”
원숭이들은 다른 의미로 돌아 있었다.
사자와 흑표범, 자신들 정도만 우월하다고 믿는. 인종차별과 우월주의가 뒤섞인 끔찍한 혼종들.
다시 말하자면 동족애는 끔찍하다 못해 다시 없을 정도로 끈끈한 편이었다.
“예, 당신께서 아는 상식이 뒤집히고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소릴 하고 있는 게 맞습니다. 제 형은…… 동족으로도 실험을 서슴지 않고 있으니까요.”
끔찍한 것을 떠올린 듯 로레일이 얼굴을 쓸어내렸다.
“할 수만 있다면 폐기해 주십시오. 이 도시를…… 말입니다.”
낯이 핼쑥했다.
“우선 자리를 이동하겠습니까?”
로레일이 주변을 돌아보며 말했다. 이곳은 확실히 인적이 드물지만 가끔 연구실과 계약한 ‘사냥꾼’들이 나타난다고.
* * *
“‘사냥꾼’이 뭐지?”
로레일이 나를 흘끔 보더니 낮지도 높지도 않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수인들을 사냥하는 자. 연구소 소속이거나, 연구소와 계약한 수인들을 말합니다. 쉽게 말하면 인신매매범들이지요.”
“범죄를 저지르는 놈들한테 잘도 잘난 별명을 지어 줬네.”
로레일이 쓴웃음을 지었다.
“거기 대해선 저도 할 말이 없네요. 사실 고릴라 수인으로 태어난 이상 제게도 죄가 있으니 말입니다.”
로레일은 나를 한 번 더 곁눈질하더니 입술을 떼었다.
“그런데, 시선이 이렇게 몰리는데…… 신경 쓰이지 않으십니까?”
“별로. 익숙해서 이런 건.”
우리가 안내된 곳은 도시 지하 공간이었다.
로레일과 그를 따르는 동료들은 이제는 쓰지 않는 하수로와 지하 공간을 쓰고 있다고 했다.
확실히 거대한 공동에 들어서고 공동 사이에 난 복도를 걷고 있으려니 수많은 시선이 쏟아졌다.
각각 숨어서 지켜봐도 다 느껴졌다.
‘그래 봐야, 용의 영지 무투장에 모였던 숫자만 할까.’
나아가 수중 동물 군대 전체를 이끌어 본 입장에서 이런 시선을 신경 쓰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여깁니다.”
로레일이 한 방문 앞에서 멈췄다. 나는 멀쩡히 갖춰진 천장이나 벽 따위를 보다가 문이 열릴 때 다시 고개를 돌렸다.
“선생님, 그래서요? 그래서요?”
“냐도! 냐도 알려 주떼여!”
“얘들아, 선생님 힘들게 매달리면 안 돼.”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여러 나이대의 아이들이었다. 아주 어린아이가 있는가 하면 성년을 앞둔 아이도 있었으며. 청년으로 보이는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아이들은 한 사람에게 몰려 있었다. 파묻혀 있던 사람의 웃음소리를 듣는 순간 멈칫했다.
“오냐오냐. 아이고, 나 죽겠다, 이놈들아.”
베이지색, 아니, 흑갈색 머리카락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카뮬라…….”
나보다도 먼저 누군가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흘끗 옆을 바라보면, 아틀란이 귀신을 본 듯한 낯을 하고 있었다.
사실 내 얼굴도 그리 다르진 않을 것이다.
여성은 작은 목소리를 들었는지 고개를 돌렸다.
“음, 누구? 손님인가? 로레일. 누구셔?”
“글쎄……, 직접 들어.”
“뭐야. 그 불친절한 태도는? 흐음, 적은 아닌 모양인데. 왜 익숙한 느낌이 들까?”
시원시원한 말투. 나는 속으로 숨을 참았다가 토해 냈다.
“……카뮬라 왈레스.”
“어라, 내 이름인데. 뭐야. 로레일이 이름도 벌써 알려 준 건가?”
새까만 눈을 가진 이 여자는 바다코끼리 수인.
자기 종족과는 떨어져 홀로 아콰시아델까지 찾아와 나를 따르던 이였다.
그리고 내 군대의 행동대장이자.
“…….”
아틀란의 보좌관이었던 사람이기도 했다.
그런데, 카뮬라가 여기 있다는 건. 분명.
나는 곧 신음을 흘렸다.
이곳으로 다가오는 카뮬라가 다리를 절뚝거렸기 때문이었다.
“……아틀란.”
나는 손을 뻗었다. 손끝에서 물줄기가 흘러나와 아틀란 놈의 팔을 휘감았다.
주먹을 더 꽉 쥐지 못하도록.
“힘 빼. 너, 얼굴이 드러났잖아.”
그러나 아틀란은 들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나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럴 수밖에.
3회차에서 수하를 잃은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사회성이 떨어지며 난폭한 성정 탓에 전쟁에선 거의 홀로 날뛰던 아틀란이었지만.
범고래이자 가주의 형제라는 직책상 놈도 소수지만 수하가 있긴 했다.
이놈은 한날한시에 죽은 이를 처음 보는 거겠구나.
내게는 익숙한 일. 하지만 아틀란에게는 처음이나 다름없는 일.
“어라, 범고래네?”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카뮬라가 활짝 웃었다.
“반가워, 반가워.”
싱긋 웃는 얼굴이 나도 반가웠지만. 이곳 매드럼에서 봤다는 것과.
절뚝이는 다리에서 나 또한 착잡함을 숨기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