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7화
“뭔가 보이십니까?”
이 세계에도 망원경은 있다. 나는 망원경을 눈에서 떼어 내고는 유심히 봤다.
역시 망원경보다 맨눈이 낫네.
“역시나 싶긴 한데, 경비가 삼엄하네.”
“여전한가 보군요.”
“어련하겠어.”
매드럼은 황실에게 있어 수도 다음으로 주요한 거점 도시다.
하지만 그런 것치고는 땅이 넓지 않은 편인데, 그럼에도 우린 알고 있다.
저 좁은 도시에서 얼마나 잔인하고 비도덕한 기술들이 만들어졌는지를.
“아주 작정하고 경비를 세워 놨네. 열 명 중 하나는 맹수야.”
“연구실도 아니고 성문 경비에 맹수라……. 반발이 심했을 텐데 대단하군요.”
“그렇지도 않을걸.”
나는 레바이의 말에 평온하게 대꾸했다.
“숲속에서 비약적으로 강해진 놈들을 봤어.”
하이에나 수인. 분명 일반 하이에나 수인이나, 심지어 하이에나들 중에서도 꽤 특출한 놈 이상의 능력을 발휘했다.
“맹수란 원래 강해질 수 있다면 뭐든 하는 놈들이야.”
육지 동물 수인으로 태어나진 않았지만. 일찍이 그 땅에 약혼자로 팔려간 탓에 그들의 생리를 잘 안다.
태어날 때부터 힘으로 서열을 나누며 평생 동안 억압되고 강요받는 놈들이다.
그러니, 약자를 향해 폭력 욕구를 배출하거나 가학심을 보이는 등. 이런 놈들이 대다수였다.
사실상 수중 동물 수인을 배척하고 괴롭힌 것도 도태당하지 않기 위한 경쟁 스트레스에서 비롯된 것이 컸다.
그렇다고 우리가 그 새끼들을 이해할 필요는 없지만 말이다.
“가진 기술이 황태자 덕에 더욱 발전했을 테니, 너도나도 굴복해 비굴하게 굴기 바쁘겠지.”
“…….”
“게다가 문제는 맹수뿐만이 아니야.”
나는 정글에서 보았던 너구리 수인을 떠올렸다. 분명 신기한 특기를 가진 이들이었지만.
내가 기억하기로 단신으로 뛰어난 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 종족은 아니었다.
그런데 정글숲의 너구리 수인은 달랐다.
‘특기를 개발시키는 수준까지 간 건가.’
이 또한 원숭이놈들의 능력이라면, 이 기술 하나를 위해 또 얼마나 많은 수인이 희생됐을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분명한 건.”
이전에도 역겨운 놈들이었지만.
“이번 생에서 더욱더 역겨운 놈들로 진화했다는 거지.”
나는 고개를 돌렸다.
레바이가 정갈하게 서 있었다. 옆으로는 에키온도 함께.
“돌아가자. 정찰은 끝났어.”
“……예.”
미친 원숭이들의 도시.
매드럼에 도착했다.
* * *
“도망간 황실의 전령은 매드럼 중앙에 있는 것 같습니다.”
뱀 가문 가주 나타샤는 추적을 위해 기꺼이 자기 가신을 내어주었다.
“다만, 생명 반응은 없습니다.”
나는 잠깐 고민했다. 고민은 길지 않았다.
어차피 황실의 명령을 실패한 이상 오래 살긴 힘들 거라 생각했지만.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죽은 모양이었다.
“시체도 추적할 수 있는 건가?”
“예, 그렇습니다.”
뱀 수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뱀들은 자연에서 사체도 먹는 만큼 시체가 되어도 추격하는 건 어렵지 않다고.
“매드럼에 대해서 기억하는 사람?”
나는 고개를 돌려 일행을 향했다.
“원숭이들이 잔뜩 모여 사는 곳 아니냐?”
“이전에도 맹수들이 꽤나 거주하는 도시였어. 전쟁 통에서도 원숭이 수인들은 늘 극진하게 최후방으로 피신시키는 데다, 맹수들이 과하게 굽신거렸지. 자세한 이유는 이번에야 알게 됐지만.”
아틀란과 벨루스가 차례대로 말했다.
“미안한데, 난 잘 몰라.”
리리벨은 양손을 들고 새침하게 정보 부족을 인정했다.
“도시라기보단 연구 시설이 주를 이루는 곳이란 정도만 압니다. 아마, 기억하기로는 지하 시설도 있던 걸로 압니다.”
“지하?”
“예, 전쟁에서 붙잡힌 놈을 심문할 때 들은 적 있습니다.”
“아까부터 다들 전쟁 전쟁, 하는데 혹시 나 몰래 전쟁한 적 있어? 아니면 꿈속에서 했니?”
리리벨이 눈썹을 찌푸리며 말했지만 대답하는 이는 없었다.
“나중에 설명할게.”
“……그래요. 가주님.”
리리벨은 잠시 모두를 돌아보다 얌전히 입을 다물었다.
원숭이들의 도시는 3회차 전쟁에서 그리 주요한 대상이 아니었다.
우리의 목표는 수도였던 데다가. 전쟁 도중에 알아서 멸망해 버렸기 때문이다.
‘황태자의 온갖 더러운 기술을 익힌 놈들인 걸 좀 더 빨리 알았다면 달랐을 텐데 말이지.’
그나마 레바이가 이번 생에서 혹시 몰라 모아 뒀다던 정보가 꽤 상당했지만.
애초에 비밀스러운 도시였다 보니 그럼에도 만족스러울 정도는 아니었다.
“……이전보다 연구 규모가 더 커졌다고 들었어.”
그때, 의외의 인물에게서 추가 정보가 흘러나왔다. 에키온이었다.
“이 이야기를 약 13년 전쯤에 들었으니까, 지금은 훨씬 더 커져 있을 거라고 보면 될 거야.”
13년 전쯤이라면. 에키온이 용의 성에 갇혀 지낼 때의 이야기였다.
“날 두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어. 차라리 매드럼으로 옮겨 지하에 가두는 게 낫지 않느냐고.”
“……애를 앞에 두고 별 이야기를 다 했네.”
“내가 지능이 모자라고. 말을 못 하는 줄 알았을 테니까.”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에키온은 눈치를 살짝 보면서도 말을 이었다.
“그리고…… 수인들의 피와 피를 섞거나, 특기를 추출하는 기술을 이야기한다거나. 내 피를 이식한다는 이야기도 들은 것 같아.”
“…….”
피를 정기적으로 뽑아 갔다는 말에 내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사이, 레바이가 말을 이어받았다.
“그럼 용의 피와 살이 어떻게든 쓰였겠군요.”
“정글에서 용의 뼈인가 뭔가 가져왔잖아. 그럼 그간 그런 것들도 모았겠네?”
그러자 지금까지 침묵하던 웨일이 말을 얹었다.
“황실이 릴리, 치유 특기를 가진 그 아이한테도 뭔가 실험했다고 하지 않았어?”
또다시 침묵이 감돌았다.
잠시 후 리리벨이 손을 반쯤 들고 질린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니까 결국 저건 도시도 뭣도 아닌, 미친놈들의 연구소고.”
“…….”
“괴상한 연구 결과들이 잔뜩 있을 거란 소리네?”
이미 리리벨은 악어들 머리에 들어간 ‘벌레’와 관해 눈에 띄게 진절머리와 분노를 보인 바 있었다.
벌레는 아니지만, 모친에 의해 생과 정신을 억압당해 본 적 있는 입장에서 참을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변장이나 변신 특기가 있는 놈도 하나 데려올 걸 그랬지.’
아쉬운 마음으로 도시를 내려다보았다.
우선 우리는 납치당한 악어 수인 아이를 구출하겠다는 명목상으로 여기까지 왔다.
물론 납치당한 아이는 없고, 아이를 찾으려 잠입했다가 잔인한 실험의 증거를 찾았다.
―하는 계획으로 갈 예정이지만.
“지하까지는 잘 모르지만, 연구동이 어떻게 나뉘어 있는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황실에 잠입한 적 있던 하우저가 조용히 말을 얹었다.
“우선 중앙으로 가야 합니다. 황실은 거기에서 보고를 받는 듯했고, 그곳에 가장 주요한 기술들을 모아 둔다고 했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들어가자.”
* * *
물의 힘의 장점 중에 하나는 물의 성질을 이용한 다양한 응용이 가능하단 점이다.
그중에는 내가 용의 성 무투장에서 써먹었던 것처럼 환상을 만드는 방법도 있었고.
그 환상을 사람에게 덧씌우는 것도 가능했다.
변신이나 변장과 비슷한 능력이지만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여기에만 집중해야 하며, 다른 응용 능력을 쓰는 순간 본모습이 드러난다는 점이다.
“진짜 삭막한 거리네.”
우린 눈에 띄지 않도록 적당히 모습을 가장했다. 물의 힘을 쓰지 못하는 에키온과 레바이, 하우저는 각각 나와 벨루스가 맡아 능력을 썼다.
괜히 거대한 연구소가 아니라는 듯 건물 밖은 휑하기 그지없었다.
걸어 다니는 사람들도 하나같이 부랑자에 가까웠다.
그마저도 성별과 나이에 관계 없이 사지 중 하나가 없다거나, 바닥에 쓰러져 죽어 가는 모습들이 더러 보였다.
“버려진 실험체일 겁니다. 거리에 버려 방치한다더군요.”
“정말 인간의 바닥을 보는 놈들이네. 변한 게 하나 없이.”
“역겹지요.”
한마디씩 중얼거리며 걸어가는데, 문득 나는 고개를 돌렸다.
멀지 않은 골목에서 누군가 고개를 빼꼼 내밀고 있었다.
‘아이?’
평소 같으면 하등 신경 쓰지 않을 일이었다.
우린 완벽하게 모습을 가장하고 있었으며, 딱히 수상한 행동을 하지 않았다.
거리엔 사람이 거의 없었을 뿐 가끔 우리처럼 돌아다니는 사람이 있었으며.
추측하기로 이들은 이 도시에 사람을 팔러 오거나 용병 같은 이들이라고 했다.
우리도 그렇게 보이겠거니 생각했고.
게다가 빼곰 지켜보는 아이는 여기 널린 부랑자들 중에서도 어려 보일 뿐.
살기도 악의도 없었고. 그저 다른 부랑자처럼 금방이라도 죽을 것처럼 초췌할 뿐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눈을 뗄 수 없었다.
‘머리 색이…….’
정신 차렸을 때 나는 이미 아이의 앞에 서 있었다.
함께 있던 일행이 당황한 것 같았지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아이가 흠칫 놀라 도망가려 했다. 하지만 내게 손을 붙잡혔다.
파닥거리는 움직임이 죽어 가는 동물처럼 연약하기 그지없었다.
손가락 까딱할 힘으로 제압이 가능할 정도로 약하다.
육지 동물 수인과 수중 동물 수인의 외적인 차이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크게는 머리 색.
“괜찮아, 괜찮아.”
수중 동물 수인들은 대부분 푸르거나 회색, 검정 계열 머리 색을 가진다.
“얘, 갑자기 잡아서 미안해. 겁먹지 말렴.”
육지 동물 수인 중에서 이러한 머리 색이 없진 않지만.
유일하게 수중 동물 수인들만 가지는 머리 색이 있었다.
그중 하나가…….
고래 수인들이 가지는 머리 색.
특유의 회색빛.
“하나만 물어볼게. 대답해 줄 수 있니?”
그리고 눈앞의 아이는 이 머리 색을 가지고 있었다.
겁먹은 눈동자를 본 순간 알았다.
“너, 고래 수인이지?”
이 애, 고래 수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