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막 범고래 아기님-239화 (239/275)

제239화

나는 회귀를 그다지 반겨 본 적 없다. 하지만 지금, 처음으로 유쾌하게 느껴졌다.

황태자는 제약받는 상황에서 어떻게든 회귀의 장점을 살려 보려 애써 왔다.

그것이 나로 인해 파괴되고 있었다는 점이. 견딜 수 없이 통쾌했다.

‘그렇단 말이지.’

정신 차렸을 땐 모두가 조금 놀란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다.

왜 그러냐 묻자, 아틀란이 뺨을 긁적였다.

“아니, 네가 그리도 뭐냐, 활짝 웃고 있으니까. 좀…….”

“미쳤나 싶었지.”

“어어, 그래. 미쳤나? 아니면 전투 생각이라도 했냐? 그보다, 야. 형 오랜만에 생각이 일치했다?”

“바보랑 통했다니, 불쾌하군.”

“……뭐야?”

나는 옥신각신하는 첫째와 둘째놈을 무시하고서 더욱 크게 웃었다.

“이곳에 오길 잘한 것 같아.”

어떡하면 효과적으로 황실과 부딪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차에, 거짓말처럼 팔라야가 등장했다.

어쩌면 신도 행운도 내 편인 것만 같다.

‘……이번엔 진정한 승리를.’

방심하진 않는다. 하지만 지금의 승리감은 즐겨도 무방할 터.

“그럼 웨일, 너는 당장 악어들 치료에 착수해 줘. 우리가 이번에 끌고 온 대장 놈은 어디로 갔지?”

“뱀들에게 넘겼습니다.”

첫 싸움에서 나는 대규모로 몰려온 악어들 사이에서 대장을 잡아다 넘겼다.

“첫 치료는 그놈이 좋겠네. 내부 조력자가 있으면 훨씬 수월할 테니.”

“잠깐만. 가주님 의견은 좋은데, 과연 악어가 협조할까?”

손을 들어 의견을 제시한 건 리리벨이었다.

범고래 내에서도 보수파에 속했던 부모님을 둔 탓인지, 리리벨은 우리 진영에서도 조금 보수적인 생각을 하는 쪽에 속했다.

“그 부분은 걱정하지 마. 잘 통할 테니까.”

“무슨 근거로?”

“설득과 회유로?”

“폭력과 협박이군.”

“조용히 할래, 둘째야. 진짜 폭력이 뭔지 알고 싶냐?”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뭐, 설득이든 협박이든, 지금 황실이 뒤에 있는 거라면 웬만해선 그놈들 공포에서 벗어나기 힘들 텐데?”

리리벨은 신기하게도 이번 삶에서 황실과 거의 엮여 본 적 없음에도 날카롭게 짚어 냈다.

일반 범고래들은 대체로 성정이 호전적인 나머지, 종종 황실도 우습게 아는 모습을 보였는데.

이런 오만과는 달랐다.

하지만 나 또한 괜히 자신감을 가진 게 아니었다.

“뱀과 악어의 공통점이 뭘 거 같아? 걔들은 왕국과 비슷한 크기의 도시에 여러 수인 가문이 모인 우리와 다르게, 도시에 거주하는 대부분이 같은 종족이란 점이야.”

“…….”

“뱀 가문 가주에게 듣기로, 악어들은 더욱 폐쇄적이라고 했지.”

“그래서?”

“보통 이런 단일 일족에게 가장 중요한 게 뭔지 알아?”

“힘? 능력? 아니면, 대장?”

리리벨의 대답에 아틀란도 공감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지극히 범고래스러운 답이었다.

“애들이야. 후세 말이지.”

내 말에 레바이나 웨일, 하우저, 용 공작을 제외한 범고래들은 모두 알 수 없단 표정을 지었다.

“애들이 왜? 애들은 밀어 넣어 놓으면 강하게 크는 거 아니냐?”

“그렇지?”

……그래, 이건 그 망할 할망구가 어릴 때부터 잘못된 조기 교육을 시켰기 때문이다.

“우리랑 다르게 보통의 종족들은 어린아이를 귀하게 키워.”

“확실히 돌고래들은 어릴 때부터 모든 가문 사람이 함께 아이를 돌봅니다. 주 양육자는 있지만 공동 육아에 가깝지요.”

“혹등고래는 아이를 잘 낳지 않지만, 비슷합니다.”

혹등고래는 가주의 명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꿋꿋하게 내가 있던 그 낡은 집에 보내지 않는 가문이기도 했다.

웨일 또한 비슷한 감상인지 고개를 끄덕였고.

용 공작은 아무 생각이 없어 보였다. 하기야, 용은 육아를 하지 않으니까.

“그래? 어릴 때 부모 얼굴 모르고 사는 게 당연한 건 줄 알았는데.”

“조금 다르지만 공감해. 나는 남매라고 부르기도 싫은 놈과 허구한 날 경쟁만 했던 기억이 가득한데.”

“자자, 우리가 그렇게 산다고 남들도 그렇게 살진 않아. 진정해.”

나는 조용해진 일행에게 다시 말했다.

“내가 말한 벌레 말인데, 이건 아주 치명적인 부작용이 있어.”

“그게 뭔데?”

“벌레에 당한 여성 수인은 아이에게도 이 벌레를 유전적으로 물려주게 돼.”

“……뭐?”

한 번에 이해가 되지 않는 건지, 아니면 너무 경악한 건지 조금 새된 소리가 흘러나왔다.

나는 차분하게 설명했다.

“벌레를 삽입당한 수인은 그때부터 노예가 되는 거지만, 이 수인에게서 태어난 아이들은 날 때부터 노예가 된다고.”

참 무서운 사실이지.

나도 이를 알게 됐을 때 참으로 분노했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이 벌레가 악질이란 거야. 벌레를 개발한 원숭이 새끼들도 악질이지.”

실험이 실패해서 정말 다행이란 생각도 했건만.

“아마 장담하는데, 악어들은 이 사실까지는 전혀 모를걸?”

“…….”

“정확히는 이들의 폐쇄성을 고려한 황실이 밝히지 않았겠지.”

밝히면 난리가 날 텐데, 황실 혹은 황태자 ‘케일 헬테아데’가 여기까지 알려 줬을 리가 없지.

게다가 벌레를 쓴 지 오래되지 않았으니, 아이를 낳았더라도 알 방도가 없을 테고.

무엇보다 이들의 산란기에 이러한 벌레를 이용한 까닭은, 더 많은 노예를 양산할 목적이 컸을 거다.

“사실 이건 아주 위험해. 시작은 악어지만, 차차 나아가 다른 수인들, 맹수들도 당한다면?”

우린 오직 황실만을 위해 죽음도 불사하는 군대를 상대해야 할지도 모른다.

“……당장 움직이는 게 좋겠는데?”

“동감이야, 둘째야.”

* * *

회의가 파할 즈음,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날 채비를 했다.

뱀 가문 가주를 찾아가거나, 붙잡힌 악어 대장을 찾아가거나.

여기 지리를 한 번 더 복기하러 가거나. 어슬렁거리는 악어들을 소탕하거나.

각자의 역할을 부여받은 채였다.

그렇게 나도 막 일어나려는 찰나, 누군가 손을 들어 올렸다.

용 공작이었다.

그는 회의에서 웨일의 질문에 대답한 것을 제외하면 한 마디도 꺼내지 않았는데, 지금은 할 말이 있어 보였다.

“무슨 일이야, 용 공작?”

그는 내 질문에 잠시 괴로운 듯한 표정을 짓더니. 한숨을 쉬었다.

뭐지?

순간이지만 웨일 또한 표정이 오묘해졌다.

그러나 이는 잠시뿐,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용 공작은 평소와 같은 얼굴이었다.

“보고할 게 하나 있는데.”

“보고?”

의외의 단어에 고개를 갸웃했다. 용 공작은 아무래도 특수한 상황이다 보니, 수하처럼 구는 것이 조금 낯설기도 했다.

“저기 뱀들의 정글 말인데, 저 속에서 용의 힘이 느껴진다.”

순간 같은 언어인데 알아듣지 못한 듯한 기분을 느꼈다.

“잠깐만, 잠깐만. 이해가 힘든데……. 용은 이 세상에서 너 하나뿐 아니야?”

“맞다.”

“다른 용이 있을 가능성이 영이고?”

“그것 또한 맞다.”

“그런데 무슨 말이야?”

“오해가 있었군. 살아 있는 용이 아니다.”

용 공작이 잠시 고민하더니 긴 검지로 툭툭, 자신의 관자놀이를 두드렸다.

“무덤이다.”

적절한 단어를 찾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면서.

“용의 무덤이 저 정글에 있어.”

듣는 순간, 더욱 몰이해를 부르는 말이었다.

그러니까, 용은 용의 도시에만 있는 것 아니었어? 그 무덤이란 게 왜 뱀 둥지에 있는 건데?

그것도 갑자기?

“……지금 상식에서 벗어나는 소릴 들었더니, 기분이 오묘해지네. 용은 용의 도시에만 있는 것 아니었어?”

“아마 죽을 때가 돼서 이곳에 온 선대 용이거나, 혹은 처음부터 용 공작의 의무를 저버린 선대 용일 거다.”

“그래?”

고개를 갸웃하긴 했지만, 그러려니 했다. 아니, 그러다가 순간 멈추고 말았다.

‘황실이 왜 갑자기 뱀 가문을 습격하게 된 걸까?’

3회차에는 없던 일이다. 물론 저쪽에도 회귀자가 있는 만큼 상황이 변할 수밖에 없겠지만.

‘릴리가 여기 있는 걸 들킨 것도 아니라고 했어.’

그렇다 해도 뜬금없고 갑작스러운 일. 게다가 그놈들이 에키온에게, 용 공작에게 집착했던 걸 떠올리면.

“레바이, 아무래도 황실 목표는 뱀보다는 이건 거 같지?”

“예, 비슷한 생각입니다.”

나는 툭툭, 습관처럼 테이블을 두드렸다. 어느새 다들 착석한 채 다시 집중한 모습이었다.

“용 공작, 혹시 그 무덤이란 거 어디 있는지 알 수 있어?”

“알 수 있다.”

“당신 말고 다른 이들이 알 방법은 없어?”

용 공작은 잠시 고민하더니, 무표정하게 고개를 내저었다.

“같은 용만이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단 말이지…….”

“단.”

“응?”

“……저들이 또 다른 용의 무덤을 파헤쳤다면 모를 일이다.”

* * *

뱀 가문 가주는 내게서 벌레에 대한 진실을 듣더니, 혐오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분노를 눌러 참는 얼굴에서 가주의 세월을 느낄 수 있었는데.

전투 인원이 아니라고 들었음에도 기세가 꽤나 강력했다.

뱀 가문 가주 나타샤는 모든 사정을 듣고서 악어들을 동정했고, 그들을 원상태로 만드는 데 적극 조력하겠다고 했다.

말이 그렇지, 이미 뱀들이 피해를 본 상황에서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피해만을 따지고 있다면, 우리는 더 많은 것을 잃겠지요. 때로 멀리 보는 선택도 하는 것이 가주의 의무.”

나타샤의 협력 아래, 악어 대장을 만난 웨일은 뱀들과 우리 앞에서 완벽하게 치료해 냈다.

그리고 우린 인원을 나눠 한쪽은 악어의 일을.

다른 한쪽은 정글 한복판에 있다는 용의 무덤에 가기로 했다.

그러니까, 내가 이 정글 한가운데 서 있는 이유가 이렇다는 거다.

“가주님, 덥진 않으십니까?”

“……이쪽이야.”

용 공작과 하우저.

단 두 명만을 동행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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