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8화
뱀 가문의 수장 나타샤는 꽤 오래 산 수인이었다.
측근들 중에도 그녀의 나이가 정확히 얼마나 되는지 모를 이가 있을 정도로.
오래 살되 젊음을 유지 중인 수인이기도 했다.
변덕 삼아 황실과 견줄 만큼 대단한 흑표범 가주와 혼인을 맺기도 했지만.
자라온 환경과 성격 차이로 짧은 결혼 생활에 종지부를 찍고 돌아온 뒤로는 영지에만 칩거한 이이기도 했다.
그녀는 특성상 전투에 특화된 수인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녀의 특기는 대단하긴 하나 보조적인 능력에 가까웠기 때문에.
처음 크고 작은 시비가 걸려 왔을 때는 수하들을 동원해 해결하려 했다.
다행스럽게 그녀는 꽤 유능한 지휘관이기도 했기에. 전투가 동반된 시비를 무난하게 이겨냈다.
황실의 은밀한 명을 받은, 악어들이 대규모로 나타나기 전까지는.
거대한 열대우림 같은 이 땅엔 수많은 생명이 살아 숨 쉬는 늪지대가 있었다.
뱀들은 꽤 오랫동안 악어들과 이 늪을 두고 경쟁을 벌였고, 승자는 뱀들이었다.
밀려난 악어들은 강 하류에 터를 잡았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그곳이 자신들 선조의 땅. 나아가 황실의 땅이니 내놓으라며 찾아온 것이다.
게다가, 그들은 본래 뱀들보다 약한 수인이었음에도 무슨 영문인지, 전과는 전혀 다른 힘을 내보였다.
나타샤가 황실의 비정상적인 개입을 눈치챈 건 여기서부터였다.
악어들이 가끔 시비를 걸긴 했지만 그들은 약삭빠른 종족이라 일신의 안전을 중대하게 여겼다.
그런 그들이, 심지어 그들의 산란기임에도 암수 할 것 없이 쳐들어오다니?
너무나 비정상적이었다.
하지만 알아챘음에도 대응할 방법이 마땅하지 않았다.
비슷하게 산란기를 맞이한 뱀들은, 게다가 수적으로도 불리한 그들은 갑작스러운 습격에 적잖은 타격을 받았다.
어찌어찌 버티고는 있었으나, 수차례 반복되자 한계가 찾아왔다.
“제가 아콰시아델에 다녀오겠습니다, 어머니.”
이것이 어쩔 수 없이, 영주의 자존심을 꺾고 저 멀리 범고래 가문에게 협조를 구하게 된 이유이기도 했다.
이미 수중 동물 수인을 존중한단 이유만으로, 뱀들은 육지 동물 사이에서 이단아 취급을 받고 있으므로.
그래, 거기까진 좋았다.
그런데…….
슈아아아앙!
……이건 대체 뭐란 말인가?
눈앞에서 눈이 돌아간 악어 수인들이 허공에 휙휙 떠오르고 땅으로 떨어졌다.
한 무리의 악어들이 쓰러진 사이로, 한 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은 남자가 서 있었다.
남자의 주변에는 회오리치는 물줄기가 사납게 자리를 지켰다.
분명 가주의 오라비 중 하나, 이름은 아틀란이라 하였다.
그런가 하면 쓰러진 이들 사이에서 조용히 서 있는 이도 있었다.
격렬한 싸움을 했다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정갈한 모습이었다.
들고 있는 검에 피가 묻어 있지 않았다면 말이다.
저자 또한 가주의 오라비라 하였다.
이뿐인가.
주먹에 붕대를 둘둘 감고 있는 저 혹등고래라거나.
긴 머리를 땋아 내린 범고래 여성이라거나.
하나하나가 대단한 실력자였다.
대체 왜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것인지 이상할 정도로.
무엇보다…….
“뱀의 가주, 이놈 맞아요?”
나타샤는 눈앞에 불쑥 나타난 웬 남성의 얼굴에도 놀라지 않았다.
그 남성이 발목을 붙잡혀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는 사실도.
그저 남성을 붙잡은 채 태연한 낯으로 제게 묻는 미녀에게 집중할 뿐이었다.
그래, 가장 이질적인 건 바로 이 범고래의 가주였다.
“……맞아요. 악어들의 대장.”
“흐음. 맞구나.”
“……황실의 원조를 받아 잡기 쉽지 않았을 텐데 대단하네요.”
“그래요? 시시하던데.”
나타샤는 애써 놀라움을 삼켰다.
그 대장을 잡지 못해 뱀들이 굉장히 고생했다는 사실은 굳이 강조하지 않아도 되리라.
“전투에 엄청 익숙해 보이네요.”
“노린내 나는 놈들이 믿는 대로, 우린 매일같이 싸우는 미친 전투광들이니까요?”
“…….”
“아, 실례. 이 노린내는 당신들을 말한 게 아니에요. 사자 새끼들 얘기지.”
싱긋 웃는 얼굴은 앳되어 보였다.
“그래도 의문이 어린 얼굴이네요?”
“확실히 그런 편이죠. 놀라운 솜씨라.”
“아하.”
정말 많게 잡아도 칼립소 아콰시아델은 이십 대 초반일 터.
십 대의 풋풋함이 있음에도 나이든 가주를 대한 것처럼 몸이 절로 딱딱하게 굳었다.
“우린 싸움에 익숙해서요.”
아마도 아주 오래전부터? 이렇게 말하는 범고래 가주의 낯은 익살스러웠다.
“가주님, 다음 싸움을 아예 막으려면 악어들의 산란지를 습격하는 게 좋겠습니다.”
나타샤와 칼립소가 막 나타난 청년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안경을 낀 청년, 레바이였다.
“그걸 어떻게 알아내게?”
“웨일과 요…… 아니. 에키온 님이 있으면 어렵지 않을 것 같은데, 알아봐도 괜찮겠습니까?”
나타샤는 조금 어이가 없었다.
말이 산란기지, 동물적 습성이 남은 일족이 아이를 낳는 시기였다.
한 일족의 산란 장소는 극비로 치부되었고, 이는 뱀이나 악어 모두 마찬가지였다.
“기억나는 게 있습니다. 추측이지만요.”
“그래? 다녀와.”
무슨 기억이 있다는 것인지. 나타샤는 잠시 끼어들려다가, 이내 입을 꾹 다물었다.
동물적인 감이었다. 이대로 두더라도 자신들이 전혀 손해 볼 것 없다는.
“……이렇게 도와주실 줄 몰랐던지라. 어떻게 갚을지, 벌써부터 고민되네요.”
“아, 걱정 말아요. 도움 준 만큼만 받을 테니.”
그 모습을 보며 어쩐지 나타샤는 등골이 오싹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 * *
레바이와 웨일, 그리고 용 공작은 이튿날 아침이 되어서야 돌아왔다.
“찾았습니다. 산란 장소.”
레바이가 뱀들을 제외한 우리 일행 모두가 모인 장소에서 말했다.
‘신기하긴 하네. 레바이 저놈이 아틀란이나 하우저도 아니고 다른 놈이랑 움직이다니.’
기억이 없는 척할 때도 호위가 필요할 땐 은근히 기억이 있는 아틀란과 어울려 다니려 했다.
그런데 웨일은 둘째치고 용 공작을 지목하다니.
‘재차 신기한데. 동료로 인정한단 소리잖아?’
“장소는 어떻게 알았는데?”
“오래전에 주워들은 게 있었는데, 혹시나 해서 조사해 봤습니다. 악어들은 땅을 파서 알을 묻는 만큼. 악어 수인들의 출산 장소도 땅 밑이라고 들었으니까요.”
나는 팔짱을 끼고 고개를 기울였다.
“이야, 거길 점령하자? 퍽 악당 같은데?”
“싸움을 최단 시간으로 줄이기엔 적합할 겁니다.”
나는 고민 끝에 끄덕였다.
“적어도 임산부와 아이는 전혀 다치지 않아야 해. 가능한가?”
“어렵지 않을 겁니다. 웨일.”
레바이의 부름에 웨일이 손을 살짝 들어 올렸다.
“형과 같이 움직이면서 중간중간 쓰러진 악어를 조사했는데.”
“그 악어는 누가 쓰러트렸는데?”
“나랑 용 공작이?”
“그래. 계속해 봐.”
“악어들은 정신 쪽에 문제가 있었어.”
웨일의 능력은 진단과 치료. 정확하게는 시간 역행 치료.
“정신, 그러니까 머리 쪽에 뭔가 파고든 상태였어. 이상한 벌레 같은?”
“……혹시 그거 새카만 벌레였어? 지렁이같이 생긴?”
“아, 맞아.”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3회차에서 아주 잠깐 본 적 있는 존재였다.
황태자 휘하에는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뭐든 하려 드는 놈들이 산재했다.
이들의 대표 격이 바로 ‘원숭이’들이었다.
이들 중엔 혼란스러운 틈을 타 잔인한 실험을 통해 일반 수인을 통제, 억압한 뒤 신체에 무리가 갈 만큼 강화하여…….
오로지 전투만 생각하는 노예로 만드는 방법을 강구하는 놈도 있었다.
‘3회차에선 실패했던 실험일 텐데…….’
황태자 그놈도 기억이 있으니, 이번엔 성공시킨 건가?
“그럼 웨일 네 능력으로 치료할 수 있는 거야?”
병이나 부상이 아님에도 진단할 수 있던 거라면, 치료도 할 수 있는 걸까?
3회차에서는 맥없이 당했던 공격이었다.
그저 실험이 실패하여 성공적으로 노예가 된 놈이 극소수였기에 우리가 유리했을 뿐.
“가능해.”
웨일이 끄덕였다.
앞으로 얼마나 더 이런 놈들을 마주할 수 있을지 모르니, 참으로 다행인 일이었다.
‘악어 정도의 수인은 강화되어 봐야 상대하기 어렵지 않아.’
하지만 그 윗단계의 맹수들이 이렇게 변한다면?
전력의 변화가 커질 테니까.
“그런데 나 혼자서는 어렵고, 용 공작의 도움이 필요해.”
“뭐?”
“그러니까……. 이 머릿속에 있는 게 어쨌거나 벌레라면.”
살아 숨 쉬는 생물이었기에 웨일의 능력만으로는 어렵지만.
용 공작의 능력은 시간 조작, 잠시간 몸의 시간을 멈추면 웨일은 몸에 침투한 벌레를 사물로 인식하고 치료가 가능하단다.
“잠깐만, 확실히 대단한데, 문제가 있어.”
조용히 있던 벨루스가 손을 들고 고요하게 말했다.
“한 사람, 한 사람 치료하는 데 시간이 걸리는 거라면 그것도 문제야.”
지적은 타당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웨일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했다.
“으음, 그것도 문제없을 겁니다.”
“왜지?”
웨일이 흘끗 용 공작을 보았다. 시선을 알아차린 용 공작이 느릿하게 끄덕였다.
용 공작이 한 부대의 시간을 멈추는 것 정도는 문제가 없다나.
“그리고 치료하는 데 재료가 그리 비싸거나 귀하지 않아.”
“허?”
“굳이 따지자면 좀 깊은 검상 치료 정도?”
“와. ……그건 좀. 놀라운데?”
생각지 못한 해결법에 눈을 깜빡였다.
‘이야, 이거 황태자 놈이 회심의 방법이랍시고 고려한 걸 텐데…….’
웨일이 살아 있기 때문에.
용 공작이 우리 진영에 있기 때문에 박살이 나 버린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