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6화
아빠가 돌아왔다.
“……분위기가 왜 이런 거지?”
내 집무실에서 터져 나온 말에 나는 어색하게 웃었다.
아빠는 오자마자 저택을 비롯해 연무장, 한창 황실놈들을 대비 중인 지하실까지 다녀온 뒤였다.
“아하하…….”
사실 그건 나도 물어보고 싶은 말이다.
요즘 우리 애들 분위기가 왜 이리도 팽팽한 건지 나도 알 수가 없거든.
“허…….”
아빠는 내 주변에 있는 레바이와 용 공작, 하우저까지 보고는 나름의 생각에 빠진 듯했다.
나야말로 아빠한테 물어보고 싶은데 말이다.
엄마랑 만난 일은 잘된 거냐고.
다만 아빠의 분위기로 보았을 때 쉬이 물어볼 수 있는 상황은 아니라 우선 기다리기로 했다.
“언제부터 이렇게 줄줄이 호위를 달고 다녔지?”
“음……. 엄밀히 말하자면 레바이는 호위가 아니라 책사지, 아빠.”
“저놈을 말한 게 아니다.”
“……용 공작이 옆에 있는 거야, 뭐. 익숙한 일.”
“사방이 적이라는 듯 쳐다보는 꼴들이 꼴사납다는 소리다.”
“…….”
“모든 놈들이 다.”
잠시 뒤, 하우저와 용 공작이 아빠에게 쫓겨났다. 문 앞에서 기척이 느껴진다.
레바이는 뻔뻔한 얼굴로 자리를 지켰다.
“넌 왜 안 나가냐?”
“……? 일해야죠.”
틀린 말은 아니었기에 나는 떨떠름하게 놈이 내민 서류를 받았다.
놈이 기억이 있다는, 기밍아웃(?)을 한 뒤에 레바이를 주시하게 되었지만.
놈은 전과 다를 바가 없는 태도를 보였다.
신경을 쓴 게 이상할 정도로.
오히려 다소 이상해진 건, 하우저와 용 공작. 그리고 놀랍게도 웨일이었다.
“가주님, 어떤 일이든 경험이 중요한 걸 아십니까?”
“뭐, 그렇긴 한데. 갑자기 그 소린 왜 하는 건데?”
“대부분의 상황에서, 일은 신입보다는 경력이 잘한다는 소리죠.”
“……?”
뭐라는 거야.
나는 눈썹을 찌푸리며 물로 작은 물방울을 만들어 놈의 이마에 툭 튕겼다.
레바이는 빨개진 이마를 매만지며 다시 서류를 내밀었다.
그러고는 아빠를 의식했는지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자진해서 집무실을 나갔다.
“상어를 여기 수십 마리 풀어도 이런 난장판은 없을 것 같군.”
“음?”
“개판이란 소리다.”
레바이가 밖으로 나가기 무섭게 아빠가 평가했다.
오, 아빠 입에서 육지 동물 비유가 나올 정도면 상당히 심기가 불편하단 소린데.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무슨 일? 별일 없었는데……?”
하우저를 데려온 시기엔 아빠도 같이 있었던 데다가.
돌아와서도 크게……. 아, 황실의 초대장이 오긴 했었지.
그밖에 레바이가 기억이 있다는 고백을 하긴 했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내 일 아니겠는가.
“별일 없었는데, 왜 네 주변의 놈들은 하나같이 눈깔을 갈아 끼운 거냐.”
“……음?”
나는 서류를 슬쩍 놓고 고개를 돌렸다.
이렇게까지 말하니 눈치를 못 챌 수가 없었기에.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티 나?”
“티? 저걸 알아보지 못하는 놈은 아마 평생 연애든 결혼이든 근처에도 못 가 본 놈이겠군.”
아야.
별안간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아빠, 미안하지만 연애와 결혼을 못 한 게 죄는 아니야.”
“당연히 너는 뭘 하든 죄가 되지 않는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더니.
아빠의 팔은 안으로 굽다 못해 내핵을 파고들 정도였다. 조금 뿌듯해졌다.
“어떡할 요량이지? 주변엔 죄다 시커먼 놈들뿐이군.”
“음…….”
“죽여도 되는가?”
“안 되지. 당연히……. 말한 놈 중에 하나는 우리 가문 사람이 아니고. 하나는 가문을 위해 일할 노, 아니 일꾼이거든?”
농담인 걸 알고 있기 때문에 나는 가벼이 받아쳤다.
레바이도 하우저도 제 마음을 직접 내비쳤으니, 이제는 모르는 게 이상하지 않다고는 하나.
그것만으로는 지금 나를 둘러싼 이 미묘한 분위기가 모두 설명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지.
하지만 제삼자의 눈으로 보면 간단했나 보다.
둘째놈은 나더러 자업자득이라고 했다. 뿌린 대로 거두는 거라나?
“그래서 네 생각은 어떻지?”
“응? 아. 나는 연애든 결혼이든 지금은 그다지.”
“그럼 역시 암살을 시도해도…….”
“아빠, 아빠가 하면 농담이 아니라 진담 같거든? 그만해.”
잠시 침묵 끝에 나는 재차 말했다.
“이 바쁜 시기에 한 가지만 생각해도 모자란걸. 하지만 궁금하긴 하네.”
내 시선이 아빠를 향했다. 분명 나 때문에, 정확히는 나를 둘러싼 분위기 때문에 뿔이 나신 것 같긴 하지만.
이와 별개로 아빠는 도착했을 때부터 미묘하게 심기가 뒤틀려 보였으므로.
“연애든 결혼이든, 해 본 입장에서는 어때? 경험자의 조언이라 할 만한 게 있어?”
“……연애 같은 것 한 적 없다.”
“그래? 나는 아빠가 엄마를 좋아한 줄 알았는데.”
어린 시절 기억을 떠올렸다. 곱게 접혀 있던 손수건. 청소하면서도 건드리지 못했던 물건.
“소중히 여겼잖아. 손수건. 나는 아빠한테서 애틋함을 처음 느껴 봤거든. 그것도 누군가를 향한.”
아빠가 나를 빤히 보더니 살짝 한숨을 지었다.
“조언 따윌 할 처지는 아니겠군. 확실히…….”
“…….”
“나는 지금 이 순간에도 사랑이란 게 뭔지 모르겠다만.”
턱을 괸 아빠의 모습은 신기하게도 갓 풋풋한 감정을 깨달은 청년 같아 보이기도 했다.
“적어도 누군가를 살게 한 것이란 건 명확하군. 어느 날에는 그녀 생각을 하며 버티기도 했으니.”
“우와…….”
낭만적이네. 아빠 입에서 이런 말을 듣게 될 줄이야.
“하지만 그녀의 말을 듣자 하면, 사랑은 형태도 크기도 모두 다른 모양이니. 네가 하게 될 사랑도 나와는 다른 형태를 할지도 모르지.”
“음, 꽤 로맨틱했어. 아빠. 엄마가 아빠를 덜 사랑한대?”
“…….”
아빠의 표정이 부루퉁해졌다. 나는 웃음을 꾹 눌러 참았다.
‘참자. 여기서 웃으면 잣 되는 거야…….’
슬픈 생각, 슬픈 생각.
애써 웃음을 꾹 참다가, 문득 3회차에서 수하놈 하나의 연애 상담을 듣던 날이 떠올랐다.
그때는 이 집무실 가득 수하들이 널브러져 있거나 서 있었다.
웃음소리가 그치질 않았다.
결국 모두가 죽었지만…….
기분이 묘해졌다.
아주 찰나, 이 집무실이 왁자지껄하지 않은 것에 대해 어색함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꽤나 큰 어색함. 그리고 괴리감도 함께.
“칼립소.”
“어, 어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불러도 대답이 없군.”
“아, 미안, 아빠. 음…….”
대답하려는 찰나,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문이 열리고 시종이 들어왔다.
“가주님, 손님이 도착했습니다.”
……손님?
* * *
“……가주를 뵙습니다.”
허, 이게 또 무슨 일이람.
나는 의자에 앉아 반쯤 신기한 기분으로 앞에서 허리 숙인 남자를 보았다.
그도 그럴 게 내 평생에 이런 일이 있을까 싶었으니 말이다.
다른 놈도 아니고 흑표범이 내 앞에 허리를 숙여 인사하는 일이라.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린 얼굴은 정말이지 유려한 미남이었지만.
조금은 날티가 느껴지는, 속된 말로 바람기가 있어 보이는 얼굴이었다.
흑표범 가문의 둘째, 팔라야였다.
릴리와 함께 뱀 가문으로 간 탓에 놈이 걸친 옷은 뱀 가문의 제복이었다.
시간이 흐른 만큼 놈은 완연한 성인의 모습이었다. 내게는 이쪽이 더 익숙하기도 했다.
“용케 인사하네.”
“……당신이 가주가 되었다는 사실은 이미 소문이 파다합니다.”
“아니, 그거 말고.”
나는 앉은 채로 다리를 느긋하게 흔들며 웃었다.
“흑표범이 내게 허리를 숙이길래? 너희에겐 하찮은 범고래 아닌가?”
시비조에 팔라야의 얼굴이 아주 잠시 멈칫했지만. 이내 정중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아마도 제 형이나 동생, 아버지는 그렇게 생각하겠지만. 저는 지금 뱀 가문의 대표로 온 것이니까요. 그리고 제게 당신은 은인입니다.”
“아, 그래서 나를 뺀 다른 범고래들은 대우하지 않겠다?”
“……이 말을 빠트렸군요. 저희 뱀 가문은 수중 동물 수인을 하찮게 보지 않습니다. 멸시하지도 않습니다.”
나는 허리를 폈다.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물론 저는 흑표범 가문에 있었을 적 혐오적인 표현을 여러 번 사용했으며, 제 어린 시절 과오를 외면할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제 어머니이신 뱀 가문의 가주님은 오래전부터 수중 동물 가문을 멸시한 적 없습니다. 뱀 수인들 또한.”
내 손가락이 툭툭 의자를 두드렸다.
이건 나도 아는 사실이었다.
이 때문에 뱀 가문의 가주는 육지 동물 수인들에게 특이한 놈들로 배척받고, 남편인 흑표범 가주와 갈라서기도 했으니까.
“가주이신 모친은 늘, 애초에 뱀이란 동물은 물속에서도 육지에서도 사는 동물이니까.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흐음, 마음에 드는 말이네.”
팔라야의 말이 이어질수록 팔라야를 몹시도 적대하던 수하들의 시선이 조금 느슨해진 것이 느껴졌다.
“그래서 본론은? 여기 온 이유가 있을 것 아니야.”
“…….”
팔라야가 잠시 당황했다.
육지 동물 가문들이 하듯이 의례상 대화가 좀 더 오갈 거라 생각한 모양이었다.
“우린 효율적인 거 좋아해. 본론, 결론. 그래서 뭔데?”
“……릴리의 소식을 전하러 왔습니다.”
“뻔히 하는 거짓말은 재미없는데.”
릴리의 소식은 늘 하듯이 편지로 전하면 될 것을.
그토록 릴리를 애지중지 여겨 결국은 흑표범 가문마저 저버린 놈이 말이다.
팔라야는 자신이 밀리는 것을 짐작했는지, 잠시 눈을 지그시 감더니.
이내 얼굴로 본론을 드러냈다. 설명하는 여유는 어디로 간 것인지 다급함이 보인 것이다.
“가주님, 청컨대, 부디 저희를 도와주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