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6화
이 요새의 자폭 장치는 해체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그렇지 않았다.
셰크는 음흉하고 치밀했고, 마지막의 마지막을 생각했다.
자신의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을 때 함께 죽는 방법 말이다.
“하하하하, 범고래 가주가 너를 많이 아낀다지? 같이 죽자고!”
증오스러운 범고래들, 너희가 아니었다면. 바다의 제왕은 우리였건만.
비옥한 땅이 우리의 것이었는데……!
자신의 실패는 곧 또 다른 상어가 받아서 언젠가는, 후손이 성공해 줄 것이다.
쾅!
폭발 사이에서 셰크는 히죽 웃었다.
“뭐래, 이 미친놈이.”
그리고 배에 퍼억, 하는 공격을 받은 것을 끝으로 눈을 감았다.
셰크는 죽지 않고 기절했다.
아니, 이렇게 편안하게 죽기엔 지은 죄가 너무 많은 놈이었다.
칼립소는 금이 가는 천장을 바라보며 허, 웃었다.
“이야……. 한 방 먹었네?”
지금 상황은 칼립소조차 미처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그러나 칼립소는 당황하지만은 않았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 여기서는 구멍보다는 기도에 가깝겠지만.
칼립소는 마지막 동아줄과 같은 리니어스를 붙잡고 힘을 주어 깨트렸다.
“네가 발동하지 않으면, 난 죽어.”
아, 물론 깨트린 건 고의가 아니었다.
“여기서 발동 안 하면 천년이나 된 너도 가루가 되는 날일 줄 알아.”
그저 화를 내다 보니 부서진 것뿐이었는데.
흘러나온 푸르른 빛이 그녀를 감싸 안았다.
하, 칼립소가 웃었다.
“이야, 나는 이번 생에 정말 뒤지게 운이 좋은 인간인가 보네?”
아빠와 오빠들이 가족이 되었다. 같은 피해자였던 용 공작을 차지했다.
수하가 기억을 찾고 리니어스를 되찾아주었다.
그리고 이제.
“이 요망한 보석 같으니.”
잃었던 힘을 되찾았다.
“자, 변신 합체다. 이 망할 보석아.”
* * *
“폭발이라니, 이건 예상에 없던 일 아니었냐고!”
활활 타오르는 요새 앞에서 성을 내는 사람은 다름 아닌 아틀란이었다.
요새 앞쪽 불길을 물의 힘으로 덮으려 했지만 대체 무슨 장치를 쓴 것인지 내부까지 물의 힘이 닿지 않았다.
아틀란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심각하거나 얼빠진 상태였다.
분명 저 요새에서 자폭 장치는 사라졌다. 몇 번이고 확인한 정보였다.
요새에 들어갔던 이들 대부분이 안전하게 나왔지만.
단 한 사람. 깊숙하게 들어간 칼립소만은 나오지 못했다.
칼립소의 명을 받아 억울하게 갇힌 이들을 무사히 구출해 온 하우저의 표정은 매섭게 굳어 있었다.
“칼립소는 살아 있어요.”
웨일이 이를 꾹 물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살아만, 있다면 치료할 수 있어요.”
웨일이 주먹을 꾹 쥐며 중얼거렸다.
“죽어도 상관없어.”
나직한 목소리였지만 현재 예민해져 있던 모든 간부들이 듣기엔 충분했다.
시선이 모인 곳엔 푸른 머리칼을 가진, 소름 끼치게 아름다운 남자가 서 있었다.
“죽음에서 데려올 방법을, 어떻게든 알아올 테니.”
지켜보던 아틀란은 등 뒤로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비단 자신만 이런 것은 아닐 터다.
“죽지 못할 거다.”
용 공작이 ‘시간’을 다루는 걸 아는 이라면 모두가 비슷한 감상을 느꼈을 테니까.
“그, 그래. 가주님이 어떤 인간인데 쉽게 죽냐…….”
아틀란이 제풀에 성질을 가라앉혔다.
그나저나, 얼른 남은 불을 끄고 찾아도 모자랄 판국에 지금 뭘 했던 건지…….
폭발에 놀라 용 공작 경호고 나발이고 나 몰라라 한 채 달려온 자신이었다. 정신이 없을 만했다.
“야, 형, 얼른 불이나 꺼. 요새 안의 불까지 나랑 네 물의 힘으로…….”
“그럴 필요 없겠군.”
“뭐?”
벨루스는 대답 없이 한곳을 지그시 응시했다.
그 순간 무너지는 요새 사이에서 폭발적인 물줄기가 솟았다.
아틀란이 눈을 살짝 찌푸렸다.
폭포 같은 줄기가 빛에 반사되어 눈이 부셨으니까.
‘저건…….’
가까스로 뜬 눈에 물의 색이 보였다.
깊디깊은 푸른빛에서 하늘을 닮은 연한 하늘빛까지.
저런 오묘한 물의 색은 아틀란이 알기로 딱 한 사람만 지닌 것이었다.
“……칼립소.”
그래, 자신이 따르는 주군이자 여동생.
그녀의 물의 힘이다.
그리고 휙 벌어진 요새 잔해 사이에서 누군가 콜록 기침을 하며 저벅저벅 걸어왔다.
어깨에는 커다란 인영을 짐짝처럼 둘러맨 칼립소였다.
당사자는 검은 재에 휩싸였건만.
주변으로 수십 개의 푸르른 물줄기가 일렁이는 모습이 마치 바다에서 막 뛰쳐나온 신과 같이 신비로운 모습이었다.
“이야, 오랜만에 힘을 썼더니 어깨가 뻐근하네.”
털썩. 칼립소가 바닥에 짊어지고 온 남자를 던졌다.
대부분의 간부진이 얼이 빠진 사이 칼립소는 좌중을 돌아보며 머리를 쓸어올렸다.
곧 시원한 미소가 쏟아졌다.
“다녀왔다.”
* * *
뭐야, 반응들이 왜 이래?
다들 얼이 빠져서는.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뭐, 그간 물의 힘을 못 쓰다 드디어 각성했으니 놀랄 만도 하지.’
하해와 같은 마음으로 이해해 주기로 했다.
“이봐, 얼빠질 때가 아니야. 다들.”
정신 차려. 툭툭 손을 흔들자, 벨루스, 아틀란. 멍하니 바라보던 레바이와 하우저. 그리고 웨일의 얼굴에까지 물이 튀었다.
용 공작한테는 못 했다.
……뭔가, 저 얼굴은 젖으면 안 될 것 같았어.
“이 대단한 몸을 보고서 놀란 건 이해하지만, 아직 모두 끝난 게 아니야.”
“그게 무슨 소리야?”
“아니, 경호하라고 명령했던 네놈이 왜 여기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둘째야.”
“…….”
“내가 나온 곳에 쓰러져 있는 상어 수인들이 잔뜩이야. 그놈들 다 간부진이다. 생포해.”
“……여기 직접 데려온 놈은 그럼 누굽니까?”
가장 빠르게 정신을 차린 레바이가 물었다.
“부대장.”
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분명 폭발 직후에 셰크라는 대장 놈을 한 방에 쓰러트렸는데 말이지.’
누군가의 기척이 느껴지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사라졌다.
이건 관련 특기를 가진 놈이 수를 쓴 거다.
하기야 이리저리 미꾸라지처럼 굴던 상어놈들의 대장이 자기 살길 하나 마련해 두지 않았을까.
‘이전 회차에선 그리 치밀한 놈이 아니었을 텐데 말이지.’
이것도 황태자와 손을 잡았기 때문인가?
나는 상황을 빠르게 설명했다.
“이들 대장놈은 멀리 가지 못했을 거다. 얼른 잡아 와. 그놈까지 붙잡아야 끝이야.”
더는 시간을 지체할 틈이 없었다. 상어놈들의 대장은 여기서 붙잡아 처단할 것이다.
죗값을 충분히 치러야 한다.
“카, 칼립소 님!”
그리고 얼마 가지 않아, 범고래 기사 하나가 허겁지겁 뛰어왔다.
그리고 기사들 사이에서 기절한 상어 대장 ‘셰크’의 얼굴이 나타났다.
“뭐야.”
한창 물의 힘으로 탐색하던 나는 조용히 힘을 거두었다.
분명 셰크, 그놈이었다.
그리고 기절한 그놈의 목에 누군가 가위처럼 뾰족한 날을 들이대고 있었다.
“이, 이자가 꼭 칼립소 님을 뵈어야겠다고……!”
“정확하게는 이 무리의 우두머리를 좀 만나고 싶다고 했는데.”
느긋하고 여유로우며 나긋나긋하기까지 한 목소리가 들렸다.
“당신이 그 사람인가 보네요?”
나는 그대로 딱딱하게 굳었다.
너무나 익숙한 목소리였으니까.
천천히 시선을 옮기면, 셰크의 커다란 몸을 들고 있는 웬 남자와 그 남자 옆에서 셰크의 목에 날을 댄 여성의 모습이 보였다.
가는 체구, 나이는 삼십 대 초반쯤 되어 보이는 여리여리한 체형의 여자였다.
간결하게 떨어진 머리카락이 찰랑이며 흔들렸다.
나는 입을 달싹였다.
“……시저?”
내 말에 여자가 조금 놀란 듯 고개를 기울였다.
나른한 자세, 여자는 날을 들이밀지 않은 손에 담뱃대 같은 것을 들고 있었다.
“신기해라. 나를 아나요?”
시저. 3회차, 내게 물의 힘을 알려 준 스승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