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5화
-30분 전.
상어들을 이끄는 수장이 자리한 최종 본거지 ‘카사리’. 현재 이곳엔 고성이 오가고 있었다.
“젠장, 모든 근거지가 박살 났단 말이요!”
백상아리 수인 ‘셰크’는 상어들을 이끄는 수장이었다.
“우리 애들 모습 안 보여?”
방 옆으로는 열중쉬어 자세를 한 상어 수인들이 도열하거나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하나같이 엉망인 몰골이었다.
“언제까지 이렇게 있어야 한단 말이요? 말해 봐!”
그리고 길길이 날뛰고 있는 셰크의 앞.
그곳에는 화려하기 그지없는 옷차림의 남성이 서 있었다.
게다가 남자와 비슷하게 화려한 옷을 입은 이들이 하나도 아니고 셋이나 함께 서 있었다.
개중 가장 화려하고, 커다란 깃털 꽂힌 모자를 쓴 남자가 느긋하게 말했다.
“우린 명령대로 하고 있는 것뿐이오.”
“그러니까, 언제까지 이렇게 버텨야 한단 소리요?!”
셰크가 난리를 치든 말든 느긋하게 답한 그는 바로, 공작새 가문의 수장. ‘피코크 백작’이었다.
“이런이런, 난 모르겠소만. 우린 황태자 전하의 명령을 따를 뿐이라…….”
“…….”
“전하께서 그저 여기서 그대들의 요새를 숨기라고 하시니, 우린 따르는 것밖에 별도리가 없지 않겠소?”
셰크는 이를 부드득 갈았다.
으스대며 말하는 공작새 수장에게서 자신들을 향한 업신여김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조류 새끼 주제에……!’
당장이라도 날카로운 이빨로 야금야금 씹어 뱉고 싶었지만.
어쨌든 좋든 싫든 도움을 받고 있는 상황.
제 한주먹거리도 안 될 저 망할 육지 동물 새끼를 그냥 둘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탓이었다. 아니, 업보였다.
범고래를 향한 증오가 너무 크고 깊은 나머지, 자신들을 경멸하고 멸시하는 황실과 손을 잡은 죄.
‘우리 상어들에게 조금만 더 힘이 있었다면……!’
대체 상어에게 부족한 부분이 무에 있단 말인가.
수중 동물 중 최강 수인 상어라 믿어 의심치 않는 셰크로서는 이가 부득부득 갈렸다.
그깟 물의 힘 따위가 범고래들과 자신들의 격차를 갈랐을 뿐이다.
그런 힘이 없었다면…….
‘대체 왜 황태자의 전령 새낀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 거야!’
황태자가 전령을 보내겠다고 했다.
그러나 얼마 뒤 들려 오는 소식은 본거지를 제외한 마지막 요새가 붕괴되었다는 소식이었다.
또 그X이었다. 최근 몇 년간 상어의 근거지를 폭파시킨 칼립소 아콰시아델!
이 본거지에서 자폭 장치를 떼어낸 것도 그 X 때문이었다!
“하아, 그래. 그건 둘째치고 대체 왜 당신은 여기 있는 거요? 환상 결계인가 뭔가를 지켜야 한다면서?”
“흥, 가려고 했소. 그대가 하도 보채길래 한번 행차해 준 것뿐이지. 겸사겸사 휴식도 챙길 겸.”
피코크 백작은 자신들의 특기, 환상 결계에 자신 있었다.
눈을 현혹하다 못해 감쪽같이 속이는 환상을 만든다.
마치 사막의 신기루처럼 믿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의 파훼법은…….
‘황실과 우리밖에 모르지.’
황태자의 명령으로 은밀하게 오긴 했으나, 수중 동물 놈들 따위의 일에 발을 들이기 싫었다.
불결했다.
‘뭐, 우릴 이겨 본 놈들이라면 알려나? 후후.’
단 한 번도 실패한 적 없는 결계이니. 저기에 무려 현 범고래 수장의 첫째 아들이 있음에도 연이어 실패하는 것 아니겠는가?
꼴 보기 싫은 상어 수장도 좀 놀려 주었겠다, 백작이 돌아가려 걸음을 돌리는 순간이었다.
피코크 백작이 그대로 얼어붙었다.
이상함을 제일 먼저 알아차린 사람은 셰크였다.
“뭐야. 이봐, 공작새 백작. 지금 뭘 하는 거요? 완전 질려서는. 안 돌아가?”
“……계가.”
백작이 하얗게 질려서는 간신히 말을 뱉었다.
“첫 번째 결계의 핵심이 부서졌다!”
얼마나 당황한 것인지 의례상 붙이던 경어도 사라졌다.
“뭐?”
셰크가 좀 더 자세히 말해 보라고 하기도 전에 땅이 울렸다.
더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대, 대장, 대장! 대장!!”
곧이어 셰크가 있는 곳으로 수하가 달려와 상황을 알렸다.
공작새들의 결계는 여러 겹이었다. 환상이 겹치고 겹쳐 완벽한 환상을 만들어 내는 구조였고.
이를 아는 이들은 오직 공작새들 혹은 황실뿐이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공작새들의 환상 결계를 하나씩 부수는 자들이 나타났다.
이들은 마치 이런 겹겹이 구조를 잘 알고 있다는 듯.
나아가 전혀 다르게 구성된 한 겹 한 겹 구조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어떻게 파괴하면 되는지 모조리 파악하고 있는 이처럼 굴었다.
결계가 빠르게 부서지고 있었다!
공작새 수장인 피코크 백작이 손쓸 틈도 없을 속도였다.
‘어, 어떻게 이런 일이……!’
순간이지만 백작의 머릿속으로 황태자의 목소리가 스쳐 갔다.
“백작, 그곳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당황하지 말게.”
그 어떤 일이. 가문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특기가 처음 파훼되는 일임을 알았다면.
그는 이곳에 오지 않았을 터다!
공작새들이 하얗게 질렸다.
“아, 그리고 말일세. 혹시나 그대들이 붙잡힌다면 나는 그대들을 간악한 악당과 손을 잡은 이들로 치부할 걸세.”
“…….”
“무슨 말인지…… 알리라 믿네.”
들키는 순간 황실은 자신들과의 연결 고리를 모른 척할 셈이란 소리였다.
그럼에도 협박이 두렵고, 보상에 눈이 멀어 선택한 건 자신이었다.
백작은 가문 사람들이라도 살리기 위해 황급히 밖으로 나왔지만.
그들을 반기는 건 뒤엉켜 있는 수인들이었다.
“제길, 약해빠진 조류 새낀 뒤로 물러나!”
이곳은 요새 가장 안쪽 상어 수장이 있는 곳으로, 제일 안전한 중심부이기도 했다.
어떻게 이곳에 이렇게까지 빠르게…….
“조, 조류 새끼라니!”
“그럼 이 순간에도 예의 따윌 바라? 홧김에 칼 맞아 뒤지기 싫으면 꺼져!”
셰크의 손길에 밀려 뒤로 나동그라진 피코크 백작이 얼빠진 표정으로 주춤주춤 일어났다.
‘화재……!’
멀리서 불이 일어난 것이 보였다.
심상치 않은 모습이다. 자신부터 살아야 했다.
그는 자신의 멋스러운 차림이 엉망이 되어 광대나 다름없다는 걸 알아차릴 새도 없이 허둥지둥 달려갔다.
셰크는 이를 부득부득 갈며 제 검을 꾹 쥐었다.
셰크의 검은 상어의 이빨을 본따 만든 것으로, 검이라기보다는 톱에 가까운 무기였다.
‘제길, 저 계집은 분명히…….’
놀랍게도 이곳에 나타난 사람은 단 한 명의 여성이었다.
그러나 셰크는 수많은 부하와 함께 있음에도 식은땀이 흘렀다.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자신은 이길 수 없다.
“안녕? 오랜만이네.”
여성이 히죽 웃었다.
“아니, 넌 기억이 없을 테니 오랜만은 아니겠구나.”
조금은 미친 사람처럼 히죽히죽 웃으며 건들거리는 꼴이, 다른 근거지에서 겨우 살아나온 수하들의 보고와 일치했다.
황무지의 미친년, 칼립소 아콰시아델이다.
“대장, 얼른 이곳을 빠져나가십시오.”
은밀하게 다가와 속삭이는 이는 이 요새의 부대장이었다.
셰크가 가장 신임하는 부하이기도 했다.
“저와 아랫놈들이. 저희가…… 시간을 벌겠습니다.”
“와, 눈물 나네.”
칼립소의 목소리가 불쑥 끼어들었다.
“죄 없는 이들을 무수하게 죽여 온 너희한테도 의리란 게 있다니. 참 볼 때마다 아이러니하다니까.”
셰크는 목을 이리저리 움직이는 칼립소를 보며 직감했다.
여기서는 그 누구도 살아 나갈 수 없다.
그렇다면…….
“뭐 해, 얼른 쳐라!”
“이야, 대장 나리는 도망가게?”
와아아아! 거친 소리와 욕설을 짓씹으며 달려온 상어들이 자신의 병장기를 휘둘렀다.
칼립소는 가볍게 피하면서 가장 가까이 있는 이를 너무나 쉽게 쓰러트렸다.
수하들이 벌어다 준 아주 잠시의 틈, 셰크는 제 책상으로 허겁지겁 달려가 바닥을 열었다.
그러고는 손잡이를 꾹 붙잡았다.
“……다들, 그간 고마웠다!”
“수장님, 상어는 승리할 겁니다!”
“상어의 영광을 위하여!”
“망할 범고래 새끼들아!!”
칼립소가 한쪽 눈썹을 들어 올리는 것도 잠시, 셰크의 손이 손잡이를 확 잡아당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