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5화
“봤다.”
용 공작은 어렵지 않게 수긍했다. 혹시나 낮은 확률이지만 내가 잘못 본 걸까 싶었지만.
‘그렇단 말이지.’
반협박 끝에 상어 수인은 우리를 근거지로 직접 안내하게 되었다.
레바이가 조사한 지름길은 쓰지 못하게 되었지만.
쓸모없어진 건 아니었다.
‘혹시나 저놈이 꿍꿍이가 있다면 레바이가 먼저 알아차릴 테니까.’
이상한 길로 인도한 순간 바로 눈치챌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출발하기 직전 상어 수인이 어물어물 자기 소개를 했다.
“빠, 빨판상어 수인. 가모라입니다!”
“허?”
나는 혀를 찼다.
빨판상어.
이름엔 ‘상어’가 들어가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이놈들은 상어와는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이놈들은, 종으로는 방어나 전갱이 쪽에 가까운 놈들이다.
‘주류에도 속하지 못하는 놈인데…… 이런 놈을 죽이지 않고 쫓아냈다고?’
황무지에 터를 잡은 상어 일파는 동족에게도 잔인하기 짝이 없어, 버릴 때는 손을 들이는 대신 손쉽게 죽였다.
생각할수록 미심쩍은 곳이 많았다.
“너, 상어놈들이 육지놈들과 손잡는 걸 봤다고 했지?”
“네, 네……!”
“그런데 어떻게 살아 있지?”
“그건…….”
놈이 필사적으로 설명했다.
자신을 쫓아낸 상어들은 회합을 봤을 거라 생각을 안 할 거라고.
“저 같은 말단이, 그, 그런 중요한 비밀을 알았을 거라곤 생각도 안 했을 겁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틈조차 주지 않고 물었다.
“너, 육지 수인놈과 마주치거나 접촉한 적 있냐?”
“네, 네?!”
“스친 적이라도 있냐고. 눈이 마주친 것도 좋고.”
가모라의 얼굴이 새하얘졌다. 답을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정답이로군.
“혹시 눈이 마주치거나 접촉한 놈의 눈동자가 여기 이 남자처럼 황금색이었나? 머리 색도 황금색?”
“야, 무슨 소릴 하는 거야. 그건…….”
아틀란이 ‘황족의 특징’이라고 말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내가 괜한 소릴 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을 테지.
“그래. 그놈들이 우리 앞마당까지 놀러 온 모양이네.”
나는 픽 웃었다.
그래, 장장 9년이란 시간 동안 너희가 엉덩이 깔고 얌전히 기다릴 놈들은 절대 아니지.
“땅의 힘. 특히나 황족들이 쓰는 힘 중에선 ‘세뇌’하는 능력이 있어.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
아무래도 수중 동물 수인과 육지 동물 수인이 서로 원수지간이기 때문일까.
육지 동물 수인들은 사자를 존경하고 숭배하기 때문에 세뇌에 잘 걸리는 한편.
수중 동물 수인들은 이 능력에 상대적으로 저항력이 있어 덜 걸리는 특징이 있었다.
“제, 제가…… 가, 간악한 수에 걸렸단 말씀이십니까?”
“그래, 그런 것 같네. 그렇지 않고서야 눈을 떴을 때 네 눈이 황금색으로 보이지 않았을 테니까.”
가모라는 숫제 떡 먹다 체한 사람의 낯짝을 보였다.
“황실이 그런 능력을 가졌다는 사실은 처음 알았습니다.”
“괜히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겠어?”
레바이가 ‘그러는 너는 왜 그 사실을 알고 있느냐’ 하는 얼굴을 했지만 슬쩍 무시했다.
“저놈을 살려 둔 이유가 여기 있었네.”
나는 픽 웃었다.
“뭐 해? 안내 안 하고.”
“네, 네!”
* * *
가모라는 흘끗 뒤를 쳐다봤다.
아니, 쳐다보려고 하다가 날카로운 기세에 움찔하며 앞만 응시했다는 게 정확한 표현이었다.
반나절쯤 걸은 참이었다.
뒤에서는 대놓고 들으라는 듯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귓바퀴를 때렸다.
“야, 너 정말 사실을 알고도 저놈을 데려가게?”
“왜, 어때서.”
두 범고래의 대화였다. 가모라는 제 심장을 꾹 누르며 대화를 엿들었다.
“세뇌당했다며? 무슨 세뇐지 알지도 못한다며?”
“그렇지?”
“가, 아니. 넌 꼭 상대 아가리에 머리를 넣어야 직성이 풀리냐?”
“얼굴을 집어넣은 쪽이 포식자라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어느 쪽이 먹히겠어?”
“…….”
남몰래 뒤를 돌아보면, 가슴을 쾅쾅 치는 커다란 남성 범고래 수인이 보였다.
아틀란이라고 했던가. 아콰시아델 가주의 둘째 아들이다.
그리고 저 여자는 분명, 막내딸인 칼립소 아콰시아델.
긴 잠을 자다 깨어난 데다가 물의 힘도 못 쓰는 반푼이로 유명했‘었’지만.
황무지를 쏘다니면서 소문을 직접 바꿔 버린 장본인이었다.
게다가 그 미모와 아름다움으로 몹시 소문이 자자했는데.
심지어 그 아름다움이 적진인 황실까지 닿았다고 하니, 그럴 만했다.
물론 육지 동물 수인이라면 저 미모를 인정한다 해도 속내를 들키기 싫어 불쾌해하며 까 내리기 바쁘겠지만.
“뭐 어때. 그래서 새로 바다의 맹세도 거쳤잖아. 저놈은 이제 배신 못 해. 목숨이 아깝다면 말이지.”
가모라는 쿵쿵 뛰는 심장을 겨우겨우 가라앉혔다.
입술이 간질간질했다.
“처음부터 그렇게 설계된 거면? 자살을 각오한 놈들이 한둘이냐?”
“그래서 실험도 했잖아.”
가모라는 몇 번이나 해야 했던 바다의 맹세를 떠올렸다.
거기엔 다양한 사항이 적혀 있었다.
거짓말을 하면 지금 당장 죽는다는 맹세부터 시작해, 꿍꿍이나 숨기는 게 없다는 맹세…….
정말로 상어들을 배신했다고 증명하는 맹세까지…….
가모라는 속으로 히죽 음흉하게 웃었다.
‘하, 멍청하긴.’
예로부터 무식하게 세며 머리 또한 빠지지 않으면 무엇하나.
저들은 늘 머리를 자신들끼리의 싸움에만 사용하는 멍청이들이었다.
‘바다의 맹세 따위 내게 통하지 않는 것도 모른 채 잘도 믿는군.’
가모라가 잠시 이 사실을 떠올린 동시에 초점이 멍해졌다.
그러고는 3초 뒤 고개를 갸웃했다.
‘아, 내가 무슨 생각을 했었지?’
고개를 갸웃하다가 뒤에서 느껴지는 살벌한 기세에 히익, 하며 어깨를 움츠렸다.
게다가 옆으로 느껴지는 따가운 시선에 고개를 돌리면.
안경을 낀 묘한 인상의 미남이 자신을 평온하게 응시하고 있었다.
‘아, 돌고래……였나?’
레바이라는 남자는 가모라를 빤히 응시하다가 고개를 돌렸다.
마치 무기질을 보는 듯한 시선이었다.
돌고래들은 영리하기로 유명했지만, 그래 봐야 수중 동물 수인이었다.
자신이 가진 비밀을 알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가모라는 자신이 얻을 이득을 계산하며 남몰래 속으로 웃었다.
그 후로 이틀 정도를 꼬박 걸었다.
밤이 되었을 무렵, 거대한 요새가 그들 앞에 나타났다.
“이야, 웬일이냐. 나가떨어지지 않고, 약골?”
“저 말입니까? 뇌가 약골인 것보다야. 훨씬 낫겠군요.”
“뭐야? 내 뇌는 멀쩡하거든?”
“뇌엔 뼈가 없다는 사실부터 지적하셨어야지요. 그래서 안 된다는 겁니다.”
“……너 인마. 한 대 맞을래?”
레바이와 아틀란은 항상 투닥거리기 바빴다.
정확히는 매번 아틀란 쪽에서 시비를 걸었다가 본전도 못 찾는 모양새였다.
요새가 코앞이었다.
즉, 가모라의 역할도 끝난 셈이었다.
‘언제 몸을 뺀다…….’
가모라가 쥐새끼처럼 몸을 뺄 궁리를 열심히 하는 한편.
잠시 쉬며 모여 있던 이들을 흘끗 보았다.
가모라의 몸엔 아틀란의 물의 힘이 둘러져 있기에 거리가 떨어져 있음에도 도망갈 수 없었다.
하지만 때가 오면 도망칠 것이다. 방법도 충분히 마련되어 있었다.
가모라의 시선이 한곳에 멈춰 섰다.
푸른색 머리카락에 황금색 눈을 가진 커다란 남자였다.
줄곧 함께였지만 거의 말이 없던 남자인데…….
남잘 부르는 이름조차 들어 본 기억이 없었다.
칼립소는 ‘당신’이라 부르곤 했고, 아틀란은 ‘이봐’. 레바이는 부르는 대신 다가가서 말을 걸었다.
남자는 그중에서 오직 칼립소가 말을 걸 때만 대화란 걸 했다.
무심한 눈이었다.
두 사람은 무슨 사이인가. 가모라의 눈으로 호기심이 차올랐다.
‘연인인가?’
음흉한 의문이었다.
그럴 수밖에. 데면데면한 것 같다가도 칼립소의 얼굴은 남자를 향할 때 찌푸림과 동시에 놀랍도록 풀어지곤 했다.
가모라 자신마저 가끔은 빤히 쳐다보게 될 만큼 부드러운 얼굴을 하기도 했다.
주변에 있던 아틀란과 레바이가 한두 번 있는 일이 아니라는 듯 모른 척하는 걸 봐서는.
칼립소 저 여자는 자신의 상태를 잘 모르는 듯했다.
‘흐음, 저 집안은…… 종이 달라도 혼인을 할 수 있는 건가?’
가모라가 남몰래 고개를 갸웃했다.
그가 고민하는 사이 그 앞으로 그림자가 졌다.
고개를 들면 칼립소가 차가운 시선으로 내려다보았다.
가모라는 살 떨리는 투기와 살기를 느끼는 동시에 기묘한 기분을 느꼈다.
이걸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도착했네?”
대체 이 인원으로 저 요새를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저 도시는 결코 쉽게 무너지지 않을 터였다.
곳곳에 퍼져 있는 함정을 떠올린 가모라가 남몰래 웃음을 삼킬 때였다.
“자, 다시 안내해.”
“……네?”
“너 상어라며. 그럼 누구나 아는 ‘그게’ 있을 거잖아?”
“무, 무슨…….”
칼립소가 씩 웃었다.
“자폭장치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