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7화
정말이지 전혀 생각지 못한 이야기였다.
자연스럽게 셋째놈을 위로하려 했던 말이 기억에서 지워졌다.
벌떡 일어나려던 것을 간신히 참고서 신중하게 표정을 굳혔다.
“이번엔 진짜야?”
사실 몇 년간 정보가 아예 없지는 않았다. 극소수지만 정보를 찾았던 적이 세 번 정도 있었는데.
‘전부 가짜 정보거나 찾고 보니 모양이나 색이 비슷한 장신구였지.’
이렇다 보니 의심부터 앞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셋째 또한 이해한다는 듯 진중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처럼 나를 맹목적으로 보는 시선은 여전했지만 정갈해진 표정이었다.
“정확히는 ‘리니어스’에 관한 게 아니라, 그걸 가진 놈에 대한 단서야.”
“……누군가 갖고 있다고?”
“응.”
아게노르가 설명했다. 누군가 ‘리니어스’를 가지고 있는 걸 보았고.
목격자가 설명한 내용이 내가 알려 준 리니어스의 외양과 거의 일치했다는 소리다.
가만히 듣고 있자니, 목격자가 말했다는 내용이 상당히 자세했다. 신빙성이 있었다.
“그래서 그 목격자는 누군데?”
“황무지에 사는 주민이야. 약한 수인.”
“그래?”
“어. 여동생님이 구해 준 적 있다던데. 그래서 알아보는 데 유달리 적극적으로 협조하더라.”
“아하.”
덧붙여 셋째에게 그 수인이 흰동가리 수인이라는 이야기까지 들었지만.
미안하게도 누군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런 수인이 한둘이어야지.’
삼 년간 구해 준 수인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일일이 기억할 수 없을 만큼.
그러고 보니 구한다는 말을 하다 보니……. 생각 난 게 있는데.
‘좀 의아한 내용이었지?’
나는 잠시 황무지에서의 일을 떠올렸다.
최근 몇 년간 그곳에서 쭉 활동하면서 들은 이야기들이지만.
나처럼 황무지에서 상어들의 패악을 막기 위해 활동한 사람이 또 있었던 모양이었다.
“대단한 소년이었어요!”
“몇 년간 도와주었습니다……. 아가씨처럼요! 고맙다는 인사도 못 했는데…….”
구해 준 이들이 하나같이 동일한 증언을 했다.
소년, 힘이 강한 아이. 놀라운 힘으로 상어들을 때려눕히고 도와주었다.
게다가 혹등고래 수인이었다나?
‘혹등고래라니…….’
누군가 떠오르는 단어였다.
하지만 대체로 증언들이 ‘소년’으로 일치되었고, 다들 수년 전의 일처럼 이야기했다.
청년이 되기 전에 자취를 감춘 것처럼.
그나마 제일 최근에 보았다던 사람이 약 3년 전이었다.
‘그때면 내가 아직 잠들어 있던 시기지.’
마지막으로 들었던 이야기를 함께 떠올렸다.
“보지 못한 지 벌써 3년이 흘렀네요. 저희 아이를 구해 주면서, 상어 무리를 유인해 다른 곳으로 가 버렸습니다. ……걱정입니다. 잘 지내겠지요?”
붕어 수인이었다. 선천적으로 기억력에 다소 문제가 있는 대신에, 특별한 ‘특기’를 가진 수인.
그런 이들이 그날만큼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혹등고래. 혹등고래…….”
그리운 단어였다.
분명 3회차 수하 중에서는 혹등고래면서 엄청난 재능을 뽐내던 이가 있었기에.
‘하우저.’
나는 오랫동안 부르지 않아 먼지가 쌓인 이름을 혀로 굴렸다.
정말 너니?
하지만 홀연히 자취를 감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3회차에서 나와 만난 건 청년이 된 후였지만……. 듣기론 소년일 때부터 재능이 대단했다고 했지.’
놈의 특기를 생각하면 떼거지로 모인 이들 앞이었다 해도 제 몸 하나 빼내는 건 어렵지 않을 터였다.
하우저가 아닐지도 모르지만.
‘외모 묘사가 비슷하던데.’
정말 하우저라면 황무지에 나타났다가 다시 갑자기 사라진 이유는 무엇일까.
잠시 다른 생각에 머물러있는 동안 아게노르 또한 무언가 생각 중이었던지.
뒤늦게 답이 흘러나왔다.
“상어였어.”
“응?”
“‘리니어스’를 가진 것으로 추정되는 놈이 상어였다고.”
눈을 깜빡였다. 그게 어쩌다가 상어놈들 손에 들어간 거냐?
내 표정을 어렵지 않게 알아본 아게노르가 어깨를 으쓱했다.
하기야 쟤가 어떻게 알겠냐.
“……많은 게 바뀌니까 이런 일도 다 있네.”
나는 작게 중얼거리고는 고개를 들었다.
“그래서 그놈은 어디 있는데?”
나는 이어진 셋째놈의 대답을 듣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서쪽? 판새아? 진짜 거기 맞아?”
“응. 내가 여동생님에게 거짓말을 하겠어?”
판새아. 이곳은 황무지 서쪽에 자리한 도시 이름이었다.
말은 도시인데 황무지에 속한 것과 다름없는지라, 아무것도 없고 슬럼가에 가까웠다.
범죄가 만연한 곳.
그리고 동시에.
‘내가 습격할 근거지 중 하나잖아?’
상어들의 마지막 두 근거지 중 하나였다.
“타이밍 한번 기가 막히네…….”
드디어 단서를 찾았건만, 하필 또 거기 있단 말인가.
“그렇지? 그런데 이번엔 쉽지 않을……. 음, 아니다.”
“뭐가?”
말을 멈추고 나를 가만히 보면 셋째놈이 홀로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아니, 아무리 여동생님이라도 단신으로 마을을 덮치는 건 좀 아니지 않나 싶었는데……. 생각해 보니 여동생님에게 불가능이 어딨나 해서?”
“……내가 신이냐? 넌 가끔 지나치게 날 좋게 보는 경향이 있어.”
“하지만…… 역시 여동생님이 패배하는 건 상상이 안 되는데?”
이글이글. 집착과 존경이 넘치는 얼굴로 그렇게 말하니 무슨 광신도 같았다.
어처구니가 없어 픽 웃었다.
날 이렇게 보는 건 이전 생과 똑같았다.
“그래. 고맙네.”
“그럼 언제 갈 거야?”
“……최대한 빨리?”
본래는 이번에 꽤 오래 가문에서 머물다 갈 예정이었지만.
‘리니어스’로 추정되는 위치를 대략 알게 된 이상 오래 머물 수 없었다.
게다가 셋째놈이 말한 상어 수인이 판새아 성채의 수장으로 추정된다고 하니.
그놈이 이동할 것도 생각해야 했다.
“레바이를 데려가야겠네.”
“돌고래? 그놈은 왜?”
“지리는 걔가 제일 잘 알아.”
“전투 능력도 없는데.”
셋째놈이 고개를 슬쩍 돌리며 투덜거렸다. 아무래도 같이 가려 발을 들이밀려고 했나 보다.
“넌 리니어스가 아니라도 따로 할 일이 있잖아.”
“알아.”
셋째놈이 아쉬운 표정을 하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대로 돌아갈 것만 같던 놈이 문에 다다랐을 즈음 돌연 입을 열었다.
“……그럼 이번에 누굴 데려가려고, 아틀란?”
“맞아. 그놈 데려갈까 싶은데.”
아무래도 셋쩨 저놈은 이번 생 역시 죽어도 아틀란을 형이라 부를 생각은 없나 보군.
그렇게 생각하는데, 아게노르의 무거운 목소리가 뚝 떨어졌다.
“왜 넌 형들이랑만 친해?”
나도 모르게 우뚝 멈칫했다.
고개를 들면 언제 싱글벙글 웃었냐는 양, 무표정한 아게노르가 보였다.
“무슨 소리야?”
“그냥. 그렇게 느낄 때가 있어.”
“…….”
형들. 벨루스, 아틀란을 말한 것이고. 그 두 사람과만 나누는 이야기라면.
‘3회차에 대한 거지.’
나는 속으로 작게 한숨을 쉬었다.
모두 말할까. 잠시 고민했지만, 아빠와 다르게 아게노르는 날 지키다 죽은 오빠였다.
고민은 길지 않았다.
“뭘 말하는지 모르겠는데, 그게 중요해?”
“……아니. 내가 감히 가주님이 말하는 것에 토를 달 위치는-.”
“그게 아니라.”
나는 말을 툭 내던졌다.
“네가 내 첫 수하인 건 달라지지 않는다고. 안 그래?”
“……어?”
“네가 내 첫 수하잖아. 네 입으로 말했지 않아?”
잠시 어버버, 말을 잃은 아게노르가 곧 뺨을 복숭앗빛으로 물들였다.
……와, 싫다.
더 광신도 같은 눈이 됐잖아?
“그렇지. 내가 첫 번째야. 그럼.”
“……그래. 인정했으니까 가서 일해라.”
“그래! 아참, 나 하나만 더 물어봐도 돼?”
“뭐?”
“돌고래놈이랑 같이 상어 근거지 쳐들어갈 거랬지?”
“그런데?”
“그놈 미리 한 대만 때려도 돼?”
“……왜 멀쩡한 애를 때려?”
“너한테 집적거리지 말라고!”
“…….”
이번 생에 걔가 날 좋아할 일은 없을 것 같은데?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대신 고개를 저으며 때리지 마, 하고 명령만 내렸다.
‘이 또라이…… 명령이 아니면 가서 쥐어박을 기세였어.’
셋째놈이 콧노래를 부르며 방을 떠났다.
복도에 나갔음에도 울려 퍼지는 콧노래를 들으며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곧 창문 너머를 바라보며 침착하게 생각에 빠졌다.
동쪽.
저 멀리 동쪽으로 가고 또 가다 보면.
‘황실이 있지.’
상어놈들 처단은 어디까지나 이 땅. 수중 동물 수인들을 위해 내실을 다지는 것에 불과했다.
고요히 이 과업을 끝내고 나면.
……종착지는 저기다.
‘모든 일의 원흉.’
세상을 멸망시켰던 남자주인공.
그리고 이번 생에서도 에키온을 끔찍한 지옥에 넣었던 장본인 중 하나.
나는 그놈에게 진 원한을 잊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