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4화
에키온이 이 모양 이 꼴이 된 건 약 6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시간의 틈에서 막 나올 때쯤, 에키온이 내게 말했다.
“우리, 함께 성장할 거라고?”
“응.”
여기서 나가는 순간 신체의 시간이 흐르게 되면서 나도 에키온도 갑자기 성장하게 될 거고.
놀라지 말라고.
아마 미리 듣지 않았다면 놀랐을 게 분명한 일이라 알겠노라 고개를 끄덕였다.
단 부가 설명이 더 있었는데, 나오자마자 성장하는 건 아니고 몸이 현재의 시간에 적응한 순간에 바로 성장한다나?
시일이 조금 걸린댔다.
그렇게 열심히 설명을 들었건만. 시간의 틈에서 나온 지 하루도 안 돼서 쓰러져 자 버릴 줄은 몰랐지.
그것도 3년이나 되는 긴긴 잠을 말이다.
‘살다 보니 빙의자랑 회귀자가 된 것 다음으로 황당한 일이 이거였지. 내가 잠자는 숲속의 공주가 되어 버렸다니?’
인생 참 골고루 경험한다니까.
바란 적도 없었는데 말이지.
아무튼 간에 사실 내 잠은 3년으로 끝날 것이 아니었다고 한다.
이미 적응해서 성장할 준비를 끝낸 에키온이 뭔가 수를 써서 내 잠이 최대한 짧아지도록 했고.
그 대가로 에키온은 3년째 이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칼립소.”
다행인 건, 이제 그 시간도 끝이라 곧 있으면 에키온도 성장할 예정이었다.
영구적으로 남는 후유증이었으면 스트레스가 장난이 아니었을 텐데.
다행이었다.
‘신경 쓸 사람이 더 늘어난다는 건 수명줄이 활활 탈 일이 많다는 거라니까.’
나는 한 손으로 에키온을 안은 채 다른 한 손으로는 에키온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었다.
3년 전, 잠에서 깼을 때 꽤 많은 것이 바뀌었다.
일단 우리가 보호하던 ‘릴리’는 그사이 준비를 마친 흑표범네 둘째인 팔라야가 데려갔다고 한다.
제 모친을 잘 구슬려 뱀 가문에서 보호한다나.
듣는 순간 통쾌했다.
흑표범 새끼들 똥줄 좀 타겠구나 싶어서.
흑표범과 관련 있는 상태로 데려갔다간 금방 들킬 터라 어떻게 데려갔나 싶었더니.
팔라야 그놈. 흑표범 가문에서 무슨 짓을 한 건지 영구 제명당했단다.
이외에도 3년이란 시간은 레바이와 오빠놈들이 이전 생에서 보아 왔던 모습에 가까워질 만큼 훌쩍 컸고.
아빠는 더욱 날카로워졌으며.
리리벨이 훌륭한 비밀 무기 수행을 해낼 만큼의 시간이기도 했다.
회포를 풀기도 잠시, 가문의 모두가 소집될 일이 발생했다.
바로 상어놈들의 공격이었다.
사실 3회차에서도 이맘때쯤 상어 수인들이 봉기했기에 그리 놀라진 않았지만.
문제는 이놈들이 소수 집단 혹은 파로 각기 나뉘어 일반 수인들을 괴롭히고 갈취한단 점이었다.
‘본래 기억하기로 이때쯤엔 하나의 파로 똘똘 뭉쳐서 우릴 공격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현재, 이전 생에서보다 좀 더 머리를 쓰는 느낌이었다.
이놈들은 테러 단체였고, 범고래란 막대한 전력을 상대하면서 정면으로 맞부딪치는 것보다야…….
게릴라전으로 흩어져 산발적으로 일반 시민을 괴롭히는 쪽이 효율적이라 여겼을 터다.
게다가 도망치는 것만은 어찌나 잽싸던지, 이놈들 하나하나 때려잡는 데 시간이 걸렸다.
처음엔 범고래 기사들을 내보냈지만, 이기진 못하더라도 꽁무니를 빼는 건 물론이고 동시에 사람들을 괴롭히는 행태가 더욱 정도가 심해지니.
결국 직접 나서서 뿌리를 뽑게 된 것이다.
물론, 이렇게 움직일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남은 근거지는 둘, 이었던가.’
이놈들이 거의 10년, 아니, 20년 가까이 준비해 온 계획이다 보니 3년 안에 정리한 것도 빠른 편이었다.
나는 천천히 눈을 내렸다.
가만히 내 손을 부여잡은 소년을 보았다.
“보고 싶었어, 칼립소.”
지난 3년간 직접 뛸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만들어졌지만.
돌아오면 늘 똑같은 모습의 에키온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물론 처음부터 이렇게 평화롭게 기다린 건 아니었지만.’
강아지로 치면 분리불안이랄지, 나와 에키온 서로에게 이런 감정이 커서 나도 놀랬더랬다.
그렇다고 용 공작을 여기저기 데려갈 순 없으니, 최대 10일을 넘지 않도록 서로 타협을 봤지만.
사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지만, 긴 잠에서 눈을 떴을 때 유일하게 그대로였던 에키온을 보면서.
‘조금 안심했더랬지.’
나만 빼고 변하는 것에 너무나 익숙하다.
삶을 반복할 때마다, 모든 것이 바뀌었으니까.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유일하게 변하지 않는 것이 생겼더니.
참 특별하게 느껴졌다.
깜깜한 밤 홀로 뜬 청명한 샛별처럼.
시간은 띄엄띄엄 말하던 에키온이 조금 더 유려하게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로 흘렀다.
“그래, 나도 보고 싶었어.”
나는 에키온의 머리에 얹힌 흙먼지를 보고서야 아차 싶었다.
아직 옷을 갈아입기 전이니, 내 몸에 있던 먼지가 모두 묻었을 것이다.
어쩔 수 없지.
“너도, 아빠도, 에이야와 비요, 데데, 미사도. 모두 다 말이야.”
나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안고 있던 팔을 풀었다.
에키온은 나를 빤히 쳐다보다가 시선을 한쪽으로 돌렸다.
“응.”
왜일까. 언제부터인가 에키온이 다른 곳을 응시하면 나도 모르게 조그마한 머리를 붙잡고 나를 다시 보게 만드는 상상을 했다.
이런 강압은 절대 취향이 아님에도 말이다.
‘나도 참. 분리불안이 더 심해진 건가?’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생길 수 있다는 걸 인정하기로 했다.
다만, 내가 정상이 아니라는 자각도 함께 있었다.
‘범고래의 비이성적인 집착이야 종특이니까 뭐.’
나는 줄곧 가주라는 목표와 복수라는 원한에만 비정상적으로 집착한 줄 알았는데.
집착 대상이 사람이 되어 버리면 조금 위험하지 않나?
목뒤를 긁적였다.
지구에서의 도덕관념이나 사고 같은 게 좀 더 남아 있었다면 큰일이라고 여겼겠지만.
사실 60여 년의 세월 동안에 지구의 기억은 가족에 대한 걸 빼면 희미했다.
‘뭐, 티 내지만 않으면 되겠지.’
신경이 안 쓰이진 않지만 그렇다고 크지는 않았다.
이렇게 말하면서도 줄곧 에키온의 시선을 쭉 좇는 나를 느끼며 뺨만 긁적였다.
“아, 이번엔 가문에 꽤 오래 머무를 거야. 드디어 상어놈들의 근거지가 둘 정도 남았거든.”
하나는 말 그대로 본거지고 다른 하나는 페이크일 가능성이 높았다.
둘 중 어느 쪽이 본거지일진 몰라도 이제 끝이라는 사실은 자명했다.
“갈까? 투스는 어디 있어?”
“방에.”
“아하.”
나는 자연스럽게 에키온의 손을 잡고 걸었다.
그러다가 잠시 걸음을 멈췄다.
“내일이 내 생일이니까. 너도 변하는 것 맞지?”
눈을 떴을 때 에키온은 홀로 원래 모습 그대로였다.
혹시나 나 때문에 치명적인 페널티라도 생긴 걸까 놀란 내게 에키온이 말했다.
내가 잠든 시간만큼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성장할 거라고.
정확한 시기는 올해가 들어서야 알 수 있었는데.
우연찮게도 그 시일은 내일이었다.
내 생일이자, 내가 성년이 되는 날 말이다.
에키온이 끄덕였다.
황금색으로 반짝이는 시선이 나를 향하자, 동시에 차오르는 안정감에 나는 속으로 살짝 웃었다.
나는 잠깐 고민했다.
‘성장하면 용의 도시로 갈지 한번은 물어봐야 할 텐데 말이지…….’
큰일이야.
‘나 참, 나이가 들고서야 범고래 본능이 강해질 건 뭐람.’
네가 만약 농담으로라도 나를 벗어나 돌아가겠다고 하면.
어쩐지 나는 너를 묶어서라도 여기 둬야겠다는 이상한 생각이 들거든.
나는 길게 놓인 복도를 보며 다시 걸었다.
“기대된다. 네 성장.”
* * *
“야! 진짜 가주님. 왔다며? 어딨냐!”
나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귀를 후비적거렸다. 뻥 차인 문으로 성큼성큼 들어오는 이의 기척이 느껴졌다.
나는 시선을 주는 대신, 옆에 붙잡힌 두툼한 장식을 보지도 않고 던졌다.
“으악! 무슨 짓이야?”
“그러는 너는 무슨 짓이지? 예의는 어디가 쌈 싸 먹었냐, 둘째야?”
“……크흠.”
내가 시선을 돌리자, 그곳엔 몇 년 사이 덩치가 산만 해진 둘째가 큼큼, 헛기침을 하고 있었다.
정말이지 기억하는 것처럼 커다래진 체구였다.
‘저 키 십분의 일만 나한테 왔어도……!’
나는 못마땅하게, 냉담한 시선으로 노려보았다.
“아하하, 역시 머리가 멍청하면 예의도 없나 봐. 왔어, 여동생, 아니 가주님?”
아틀란 뒤로 똑똑, 보란 듯이 노크를 하고서 고개를 내미는 청년이 보였다.
상대적으로 선이 가늘고 날렵하지만 탄탄한 체형을 가진 놈은 셋째 아게노르였다.
“왔다는 이야기 들었어. 들어가도 돼?”
“어. 대신 둘째는 쓰레기통으로 좀 던져 놔.”
“좋아. 분부대로!”
“……아씨, 잘못했다고.”
“그래서 무슨 일인데?”
말을 뚝 자르며 묻자, 두 형제가 서로를 보았다.
“보고 겸 얼굴 보러 온 거지.”
셋째가 먼저 냉큼 말했다. 둘째는 나를 빤히 바라보더니, 툭 말했다.
“그보다, 너는 그…… 아직이냐?”
“뭐가.”
아틀란은 언제 툴툴거렸냐는 양 길고 굵은 손으로 뺨을 긁적였다.
“물의 힘은 아직이야?”
“보다시피?”
그다지 눈치 볼 만한 질문은 아니라 생각되는데. 아게노르도 같이 슬쩍 나를 힐끗 보더니 쭈뼛쭈뼛거렸다.
그랬다.
무려 9년이 지났건만 아직도 물의 힘은 돌아오지 않았다.
물론 물의 힘이 없더라도 오빠놈들이 셋이서 덤벼도 때려눕히는 덴 문제 없을 정도의 실력이었지만.
‘앞으로 황실에 갈 걸 생각하면 부족하지.’
나는 손을 쥐었다가 폈다.
……사실 시간의 틈에 다녀와서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해결되리라 생각했는데.
이것이 아니라고 생각한 순간, 나는 내가 3회차에 손에 넣었던 보물을 찾으러 갔다.
내게 물의 힘을 일깨워 준 물건 말이다.
그리고.
“……공녀님, 제 누님들이 말씀해 주신 장소에 가 봤지만. 그런…… 보물은 없었다고 합니다.”
돌고래 수인 영지와 가까워 급한 대로 거기 머물고 있다는 레바이의 친척들에게 부탁했지만.
그런 건 없었단 답변을 받았다.
‘대신 침입한 흔적은 있었다고 했지.’
특이하게 생긴 보석이었기에 추적이 불가한 건 아니었다.
과연 그 보물. ‘리니어스’는 어디로 간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