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1화
칼립소는 얼떨떨한 기분이었다.
눈앞의 에키온은 정말이지 태어나 처음 웃어 보는 아이처럼 활짝 웃고 있었으니까.
늘 무표정하던 얼굴이었다.
보이는 거라곤 그저 자신을 맹목적으로 바라보는 시선뿐.
칼립소는 시선을 내려 잠시 생각했다.
‘참 예쁘긴 정말 예쁘다니까.’
황금색 눈동자는 평생 수많은 아름다운 존재를 보고 살아온 칼립소마저도 감탄할 만큼 예쁘고 찬란했다.
세상에 이렇게 곱고 연려하며 어여쁜 존재가 또 있을까?
가끔 그 아름다움 하나만으로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분명 이대로 성장한다면 자신뿐 아니라 모두의 시선을 끌어당기는 존재가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이미 자신은 이 소년이 성장하여 어떤 모습을 가지는지 보지 않았던가.
‘무표정했지.’
폭주한 용 공작은 분노한 표정을 짓지도, 왈칵 화를 내지도 않았다.
그저 표정 없이, 차디찬 얼굴로 모든 것을 부수고 끝내 세상을 멸망시켰다.
지금 생각해 보면 3회차에서 용 공작이 성에 조용히 산다고 알려진 것도, 황실의 계략으로 감정을 알지 못해서이기 때문인 것 같았다.
불쌍한 존재였다.
칼립소는 그를 연민했다.
만약, 이 에키온이 성장한 용 공작이 된다면.
3회차에서 보았던 모습으로 지금처럼 활짝 웃는다면…….
여기까지 생각한 칼립소는 천천히 시선을 들어 올렸다.
“칼립소!”
에키온과 똑같은 모습을 한 투스가 어쩔 줄 몰라 했다.
칼립소의 생각이지만 투스는 아무래도 칼립소에게 진실을 털어놓을 생각이 없던 듯했다.
‘조금 전부터 에키온의 눈치를 봤지?’
칼립소는 전직 가주 출신답게 소중한 존재를 보면서도 날카롭게 판단했다.
에키온이 이야기하라고 알려 준 걸까?
그럴 것이다. 에키온이 직접 설명하는 것보다야, 투스가 훨씬 잘 말할 테니까.
그간 숨겨 왔다고 한들 서운한 건 아니었다.
다만, 정말 중요한 각인을 제게 한 상황이었다면 대체 언제쯤에야 말하려 했던 건지.
‘이런 건 재깍재깍 말해서 내게 마음의 족쇄를 채워 놔야 하는 것 아닌가?’
칼립소는 지극히 이기적으로 생각해 보았다.
칼립소는 처음 만났을 때 에키온에게 딱히 목표를 밝히지 않았다.
에키온과 투스 입장에서 칼립소는 이유 없이 자신들을 도와주는 사람이었다.
-칼립소는…… 시간의 힘 버틴 사람인데 착해.
투스는 그저 자신이 선량하다고 믿는 모양이었지만. 사실 목적을 위해 이용하려 했을 뿐 아닌가.
물론 에키온의 삶을 진심으로 연민했고, 이번 삶이 행복하기를 바란 마음 또한 진심이었다.
그러나 선량한 이들을 아끼고 지지하지만, 세상은 선과 도덕만으로 유지되지 않는 곳이었다.
회귀자로서 철저하게 느꼈다.
그렇기에 만약 자신이 에키온이나 투스였다면.
자신이 일방 각인을 한 상대가 조금이라도 자신에게 무르게 구는 것 같다?
그럼 바로 사실을 밝히고 그 사람의 삶을 쥐려 했을 것이다.
그래서 칼립소는 의문이었다.
에키온은 왜 처음부터 밝히지 않은 것인지.
“칼립소, 걱정! 걱정 안 해도 괜찮아! 칼립소, 피해 없어!”
“내가 궁금한 건 내가 어떤 피해를 받는지가 아닌데…… 뭐. 그래, 그것도 궁금했다고 치고 설명해 볼래?”
그러자 투스가 칼립소에게 머뭇머뭇 설명했다.
설명인즉 이러했다.
쌍방 각인이 필요하다.
일방 각인에서 반려 대상이 된 자가 받아주지 않으면 그만이라고.
용의 각인은 상대를 강제하지 않았다.
용이라는 이름이 가진 위압감이나 사람들에게 두려움과 경외를 일으키는 것치곤 의외였다.
‘뭐, 용 공작에 대해 아는 게 있어야 말이지.’
“그럼 내가 끝내 안 받아주면 어떻게 되는 건데?”
“칼립소, 안 받아주면…….”
투스는 흘끗 에키온을 응시했다.
제 주인인 용 공작님께서 무어라 의사 표현을 해 주시면 좋을 텐데…….
에키온은 조금 전에 말을 한 이후로 그저 칼립소만을 열심히 쳐다보고 있었다.
마치 태양을 보지 않으면 죽는 해바라기처럼.
투스는 권속임에도 한숨이 나올 것 같았다.
제 주인은, 이미 중증이었다!
‘사실, 안 받아주면 문제가 생기기야 하겠지만…….’
투스가 무어라 말을 꺼내려 하는 찰나, 칼립소가 먼저 질문했다.
“이것만 물어볼게. 안 받아주면 둘 중 하나가 죽어?”
“아, 아니!”
“그럼, 일단 나랑 떨어져 살아도 상관없는 거야?”
이에 투스는 옆통수에 지그시 느껴지는 에키온의 시선을 느꼈지만.
얼떨결에 끄덕였다.
‘그렇단 말이지.’
에키온은 용의 도시 영주였다.
나와 계속 함께 있든 교류를 하든, 돌아갈 수는 있어야지.
그 각인이란 게 잘은 몰라도 한시도 떨어지지 못하게 하는 건 아닌 모양이었다.
칼립소는 천천히 고민한 끝에 결론을 내렸다.
“그래, 그럼. 우선 그런 거라면 좀 결정을 보류하자.”
“보류……?”
투스의 질문에 칼립소가 끄덕였다.
“각인해서 나한테 나쁜 건 없다며?”
칼립소는 자신에 한정하여 죽지만 않으면 뭐든 괜찮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가끔 고통쯤은 아무렇지 않을 정도로.
이번에도 칼립소는 에키온을 위해서라면 만약 아픈 거라 해도 자연스럽게 고통쯤은 감수해도 좋다고 생각했다.
“없, 없어! 오히려 용 공작님, 일방 각인으로, 반려가 생기면 안정적인 상태가 돼……!”
투스는 고민했다.
확실히 일방 각인은 반려에게 전혀 영향을 주지 않는다. 용 공작은 존재를 안정적으로 다스릴 수 있다.
다만, 반려의 선택을 받지 못하면, 폭주할 가능성은 있지만…….
이건 나중에 선택받지 못했을 때 말해도 상관없을 것이다.
투스는 지적인 동물이자 권속이므로, 강요하는 관계가 좋지 않다고 생각했다.
투스가 생각하기에 이미 칼립소는 에키온을 소중히 여겼다.
지금까지 가족만큼이나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보았지 않은가.
게다가 구하지 않아도 상관없을 자신과의 약속을 다시 지켜 주었다.
“그래? 알겠어.”
칼립소는 사실 에키온이 훗날 성장하여 용의 도시로 돌아가면 좋겠다 싶기는 하지만.
두 존재가 아콰시아델에서 행복을 느낀다면 여기 평생 살더라도 상관은 없었다.
‘오히려, 더는 이 시선이 느껴지지 않으면 허전할지도…….’
이런 생각을 하다 말고 고개를 저었다. 하나의 생각을 정리하고 나니 이번엔 걱정이 고개를 치켜들었다.
‘음, 걱정인 건…….’
이제 아빠한테는 뭐라고 말한담?
이미 웨일의 존재로 심기가 잔뜩 불편해 보이지 않았는가.
‘이 상황은 또 뭐라고 설명해야 하지.’
아버지, 헤헤.
짜잔! 사위가 하나가 아니라 둘이었습니다!
‘음, 저택이 날아갈지도.’
실제로 피에르는 웨일의 이야기를 듣고 방이 날아갈 것 같은 물의 힘을 뿜어낸 바 있었다.
칼립소가 열심히 말리고, 영문도 모르고 거대한 힘에 놀라 달려온 아틀란이나 아게노르가 아니었으면.
저택의 반이 사라졌을 터였다.
“칼립소. 좋아.”
그 사이 에키온은 만족스러운 낯으로 칼립소에게 다가와 고개를 살며시 숙였다.
“만져도, 돼?”
조심스러운 질문이었다.
나비의 날갯짓처럼 퍽 간지러운 질문. 칼립소는 얼떨결에 끄덕였다. 동시에 어깨와 목으로 부드러운 머리카락이 스쳤다.
언젠가 에키온처럼 그녀의 어깨로 파고드는 놈이 있었는데…….
“나, 시간의 틈에 다녀온 덕분에…… 힘 보충했어.”
“보충?”
에키온이 칼립소에게 기댄 채로 끄덕였다.
에키온은 칼립소의 품이 참으로 안온하여 좋았다.
게다가 칼립소가 자신을 거부하지 않았다. 이것만으로 에키온은 몹시도 기분이 좋았다.
그래서 파고들며 속삭였다.
“많이, 회복했어.”
“오, 그래? 다행이다. 그럼 지난번처럼 갑자기 잠들 일은 없는 거지?”
“응.”
투스는 두 사람을 보며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거짓말이었다.
아니, 에키온의 말이 완전히 거짓말은 아니었다.
분명 용 공작은 시간의 틈에 들어가면 힘을 회복하기는 한다.
보통은 이때 성장을 위한 힘을 보충한다.
하지만 이 힘의 보충 최대치가 백이라고 했을 때.
에키온은 이미 사십 정도를 가주를 응징하는 데 써 버렸다.
남은 육십만으로 성장해야 할 텐데…….
대체 자신의 주인은 한계에 부딪힐 때 어쩌려고 이러시는 건지.
투스가 보기에 에키온은 여전히 인간들의 관계를 잘 몰랐다.
그저 웨일이 혼인 관계가 되었다고 하니, 자신도 이미 그렇게 되었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지만…….’
용의 반려는 좀 더 특별한 의미였다.
……세상이 멸망할 수도 있는 문제였으니까
투스는 한숨을 쉬었다.
“칼립소.”
* * *
나는 에키온의 부름에 고개를 돌렸다. 내 어깨에서 부스스 고개를 드는 에키온이 보였다.
보고 있으려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생각해 보면 에키온과 나는 친구도 가족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행복하기를 바라고 지켜 주고 싶은 마음이라면.
무슨 관계인가?
‘3회차에서 피해를 입은 피해자들의 유대감?’
나는 평온하게 생각하며 에키온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어 주었다.
“왜 불렀어?”
“나, 힘 많이 보충했어. 시간의 틈에서.”
조금 전에도 한 말을 한 번 더 하는 것을 보니 강조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그래? 대단하네.”
“이제 칼립소 소원, 한번은 들어줄 수 있어.”
“내 소원?”
내 소원이 뭐가 있지? 이렇게 생각하다 말고 멈칫했다.
‘설마…….’
“에키온, 예전에 내가 전성기 때의 내 힘을 쓸 수 있게 해 달라고 한 것 말이야?”
용의 도시에서 잠시지만 물의 힘을 쓸 수 있게 해 주지 않았던가.
놀란 동시에 나도 모르게 기대 가득한 얼굴을 했다.
에키온이 천천히 끄덕였다.
“응.”
진짜? 정말로?
3회차에서, 가장 강했던 내 힘을 되찾을 수 있다고?
이어서 에키온이 오래 유지는 어렵다며 시간을 이야기해 주었지만 이는 나를 더 기쁘게 만들뿐이었다.
그 정도면 충분해!
나는 에키온을 와락 끌어안았다.
“와아, 세상에. 네가 정말 내 복덩이구나?”
할 수만 있다면 우리 용용이의 손을 붙잡고 덩실덩실 춤이라도 추고 싶은 마음이었다.
아니, 투스까지 합쳐서 강강수월래로?
아니다. 에키온을 번쩍 들고 1인 헹가래도 가능할 것 같은데.
내 얼굴에 활짝 웃음꽃이 피었다. 그러자 나를 물끄러미 보던 에키온이 나를 흉내 내듯 예쁘게 웃었다.
‘이제 잘 웃네.’
이렇게 생각하는 순간이었다.
쿵쿵!
노크 소리가 들리더니, 방문이 벌컥 열렸다.
“여동생님!”
나타난 사람은 다름 아닌 다급한 표정의 셋째였다.
“뭐야, 무슨 일이야?”
“큰일, 난 것 같은데?”
“무슨 큰일?”
아빠가 일어났다. 게다가 에키온을 통해서 전성기의 힘도 찾을 수 있단다.
큰일이 될 만한 게 전혀 없는데? 이렇게 생각한 순간 셋째놈이 내가 잠시 잊고 있던 것을 상기시켜주었다.
“이 저택이 포위됐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