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막 범고래 아기님-175화 (175/275)

제175화

일주일 뒤.

“릴리가 미사를 잘 따라서 다행이야.”

“외람되지만 그 다람쥐 아이는 누가 보모가 되어도 잘 따를 것 같습니다만.”

“그건 그래.”

나는 종이를 보다 말고 고개를 끄덕였다.

일주일 사이, 나는 할머니와 또 한 번 면담을 했고 재료를 따내 오는 데 성공했다.

할머니는 여전히 기분이 좋아 보였고, 흔쾌하게 가문의 창고를 열어 주었다.

“흥, 너도 피에르 그놈을 치료해 보려 하는 것이냐? 쓸데없는 짓을 하는군.”

좀 쓸데없는 소리로 속을 긁긴 했지만 참을 만했다.

그리고 중급 기관에도 다시 출석하기 시작했고, 이때 즈음엔 용의 도시에서 있었던 일들이 일반 수인들에게도 퍼진 뒤였다.

그리고 나는…….

“공녀님, 영웅이 됐어여!”

“영웅이 되신 걸 축하해요.”

영웅이 되었다.

말 그대로 전쟁에 승리한 장군처럼 개선식을 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내 앞에 깔린 붉은색 융단은 루가루바 쌍둥이들이 직접 깔았다지만…….

학생들까지 모두 우르르 나와서 환호하고 있었던 것이다.

심지어 그 콧대 높던 범고래 방계놈들까지 끼어든 채 요란스러운 환영에 동참 중이었다.

‘이것 참. 이래서 공통의 적이 중요하긴 하구나 싶었지.’

범고래들조차도 육지 동물 수인들, 그중에서 육지 맹수들은 지독하게 싫어하니 말이다.

아무튼 나는 비유하자면 나라를 독립시킨 수준의 영웅이 되어 기관에 출석 중이었다.

가끔은 부담스러울 지경이었다.

“……학교 가기 싫다.”

“모든 학생이 그렇게 말합니다만은, 공녀님은 좀 다른 이유시긴 하겠군요.”

“어. 오늘은 양산이 금으로 된 거 봤다. 돈 많은 놈이 만들었다던데.”

“하기야 공녀님께선 우아하게 양산을 쓰고 살랑살랑 걸으실 분은 아니시긴 하죠.”

“뭐야, 네가 봤어?”

“맞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지.”

나는 순순히 수긍했다. 양산 쓸 시간에 그냥 빠르게 걷고 말지.

“재료 파악은 어떻게 됐어?”

레바이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내저었다.

일주일 사이, 레바이는 물론 라일라와 일리아까지 나서서 수집가들을 만나 그들이 가진 재료를 점검했지만…….

멸종 동물들의 재료를 얻을 방법조차 요원했다.

‘어차피 하루 이틀 만에 모을 수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지만.’

초조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감이 좋지 않았다. 누군가 더 서둘러야 한다고 속삭이는 것만 같았다.

그렇지 않아도 며칠 전에 웨일에게 진단을 한 번 더 부탁했는데, 사정상 어렵게 되어서.

의원을 부르는 쪽을 택했지만…….

‘의원이 오는 데 시간이 좀 걸린댔지.’

아빠의 병을 불치병으로 진단해 낸 의원은 현재 다른 지역에 가 있었다.

다른 의원은 와도 소용이 없다고 하니 기다릴 수밖에.

하지만 나는 초조함을 드러내는 대신 보고 있던 서류를 내려놓고 툭툭, 책상을 두드렸다.

이곳은 아빠가 집무실로 쓰라며 내준 방이었다.

방 소파에는 마치 당연하단 듯이 자리 잡은 에키온과 투스가 있었다.

나는 에키온을 빤히 보다가 문득 떠올렸다.

아니, 떠올린 지 오래되긴 했지만 묻는 것을 잠시 뒤로 미룬 질문이기도 했다.

“에키온.”

투스와 함께 책을 보고 있던 소년이 얼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혹시 말이야, 네 힘으로 멸종한 동물들한테서 재료를 얻을 수 있을까?”

“재료?”

“응. 정확히는 네 힘이라면 이 동물들이 살아 있을 때로 갈 수 있지 않나 해서.”

나는 이렇게 말하며 오늘도 에키온과 똑같은 모습으로 옆에 앉아있던 투스를 함께 보았다.

“어떨 것 같아, 투스?”

“으음, 칼립소 바라는 거 들어주고 싶어. 하지만…….”

“할 수 있어.”

에키온이 단호하게 말했다.

“칼립소 바라는 거, 들어줄게.”

나는 투스의 난감한 표정을 본 뒤라 조금 미심쩍은 표정으로 에키온을 응시했다.

“어려운 거지? 투스 표정이 좋지 않잖아.”

“아니야.”

“거짓말은 안 돼.”

“…….”

그러자 에키온이 입을 꾹 다물었다.

“아프거나 죽는 거 아니야.”

“그러면?”

“이건 투스가 설명할 수 있어!”

에키온이 설명을 하지 못하자 투스가 얼른 손을 들어 올렸다.

“공작님 말씀처럼 공작님이 할 수 있어. 하지만 공작님은 아직 경험이 적어. 시공간 바로 찾아내는 거 힘들어.”

“힘들다는 건?”

“헤맬 수도 있어.”

운이 좋으면 한 번에 그 동물이 사는 시간대로 가지만 아니면 꽤 헤맬 수도 있다고.

특히나 에키온은 그 동물을 직접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고 했다.

나는 잠시 에키온이 지구에 계신 부모님을 보여 줬던 때를 떠올렸다.

그건 운이 좋았던 건가.

“그리고 칼립소. 공작님 성장하면서 조금 불안정해져.”

“응. 듣고 있어.”

“그래서 힘쓸 때 폭주 많이 조심해야 해.”

“아하, 알겠어.”

“하지만 투스 있으면 폭주 위험 낮아, 많이 걱정하지 마!”

투스가 황급히 말하는 모습이 귀여워 나는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 가능은 하다니 다행이다. 일단 다른 방법을 더 찾아보고 정 방법이 없으면 다시 이야기해.”

이렇게 이야기하고 레바이를 보았다.

잠시 당황스런 표정을 하던 레바이는 언제 그랬냐는 듯 고개를 꾸벅 숙이고 돌아갔다.

‘아, 에키온이 어떤 능력을 가졌는지는 이번에 처음 들었겠구나.’

나는 에키온과 투스가 있는 자리를 멀거니 보다, 문득 자리가 빈 것처럼 느꼈다.

‘아빠가 없어서인가.’

최근 아빠는 바빠 보였다.

라일라를 자주 만나기도 했고, 자리를 비우는 일이 잦았다.

돌아오면 나를 쓰다듬고는 돌아서서 자러 가곤 했는데…….

착각이 아니라면 안색이 점점 나빠지는 것 같아 보였다.

한 번은 착각일지 모르나 두 번 세 번 봤다면 그건 착각이 아니지.

내가 더욱 열심히 재료를 찾는 이유이기도 했다.

‘괜찮아.’

아빠가 이전 회차에서 죽는 시기는 대략적으로 알고 있다.

적어도 지금은 절대 아니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까지 초조함이 느껴지는가.

아니라고, 걱정되어서 그런 것뿐이라고 나를 타일렀으나…….

불행하게도 그냥 느낀 불안이 아니라는 듯 얼마 지나지 않아 현실이 되고 말았다.

“칼립소.”

그날도 레바이와 수집가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 가던 중이었다.

문이 열리고 아빠가 들어왔다. 옆으로는 오랜만에 보는 라일라가 보였다.

“아빠!”

아빠는 언제나처럼 물의 힘으로 나를 들어 올렸다.

어쩐지 물이 조금 색이 엷고, 물줄기가 평소보다 조금 얇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빠. 어딜 다녀온 거야?”

“이것저것, 정리?”

“정리?”

“그래. 그보다 일은 잘되어 가나.”

“……아빠.”

나는 허공에 둥둥 뜬 채로 손을 뻗었다. 아빠는 순순히 품을 내주었고 나는 아빠의 뺨을 잡았다.

“거짓말하지 말고 얘기해 줘. 몸, 안 좋은 거지?”

“안 좋다니.”

“맞잖아. 안색이 이상해. 안 좋다고.”

“…….”

아빠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고는 몸을 돌려 라일라를 보았다.

“라일라.”

“네, 피에르 님.”

“현재 내 안색이 어떻지?”

“예?”

“있는 그대로 말하도록.”

“아, 음…… 솔직하게 이야기드리자면 평소와 다를 것 없어 보입니다.”

나는 라일라의 말에 조금 놀랐다. 아니, 누가 봐도 평소랑 다르게 좀 하얗게 질렸는데?

나는 얼른 레바이를 불렀다.

“레바이, 넌 어때. 너도 비슷한 생각이야?”

“예? 음, 제게도 솔직한 답변을 바라신 거라면…… 그렇습니다. 안 좋으신 거라면 의원이 세심히 진찰해야겠지만 외관상으론 약을 다루는 제 눈에도 크게 달라진 점이 보이지 않습니다.”

나는 눈을 깜빡였다.

나만 아빠의 상태가 조금 이상하게 보이는 건가?

나는 아빠의 뺨을 잡고 이리저리 돌려 보았다. 내 판단은 여전히 바뀌지 않았다.

“아빠, 안 되겠어. 나 혼자 걱정하는 거라 해도 일단 침대에 가서…….”

“칼립소.”

아빠가 제 뺨에 올라와 있는 내 손을 겹쳐 잡았다.

왜일까. 왜 심장이 떨어질 것 같은 충격을 느꼈지?

왜?

아빠가 작게 웃으며 내 손에 입을 맞췄다. 다정한 온기가 느껴졌다.

“어머니께서 한 일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일이 있다면. 내 딸의 이름을 좋게 지어 준 거다.”

“갑자기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새삼스럽게…….”

“세헤라가 이런 이야기를 한 적 있지.”

“세헤라?”

처음 듣는 이름에 고개를 갸웃하자, 아빠가 나직하게 말했다.

“나와 결혼했던 여자의 이름이다. 네겐 엄마가 되겠군.”

멈칫했다.

“세헤라자데. 풀네임이다.”

처음 듣는 엄마의 이름이었다.

그러나 내가 멈칫한 건, 이 때문만은 아니었다.

마치 먼 타인을 얘기하듯 꺼냈지만 미묘하게도 타인을 대하는 것과는 다른 아빠의 태도를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이리 말하더군. 언젠가…… 자신처럼 내 상태를 유일하게 알아보는 이가 또, 나올 거라고.”

“아빠?”

“그 말이 설마하니 정말 이루어질 줄은 몰랐지만.”

아빠의 목소리는 언제나처럼 태연했다. 하지만 심장이 불안하게 뛰었다.

“그러니 지금 꼭 이야기해야겠군. 미리 말하지 못해 미안하다.”

“…….”

“사과를 한 경험이 거의 없어 이 사과 또한 미숙하다면 미안하게 됐군. 하지만.”

아빠의 손이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언제나처럼 다정했지만.

“너무 걱정하지 않았으면 한다. 이것도, 지나갈 테니까.”

“……뭐?”

아빠의 손에서 점차 힘이 빠진다. 처음엔 손이 툭 떨어졌다.

그다음엔 내가 천천히 아래로 내려갔다. 마침내 내 발이 안전하게 땅에 닿았을 때.

쿵! 소리가 들렸다.

이보다 더 거대한 소리도 들어 봤건만, 내겐 그 무엇보다 충격적인 소리로 다가왔다.

항상 태산 같았던 아빠가 바닥에 쓰러져 있었으니까.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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