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막 범고래 아기님-151화 (151/275)

제151화

사람들은 여전히 광장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설명하는 나 또한 계속 시선을 고정할 정도이니.

“우리가 할 일은 이 틈에 재료를 쓸어모으는 거야.”

“……정확히는 제 일 아닌가요?”

강하고 아름답다. 수인의 오감을 자극하는 저 모습은 그 어떤 이가 와도 눈을 뗄 수 없을 것이다.

내가 저 자리에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이런 생각이 드는 것도 어쩔 수 없었다.

나도 탐욕스러운 범고래니까.

한편으로는 앞선 생에서 절대 보지 못했을 그림을 본다는 뿌듯함도 있었다.

어두운 개인 창고에 보관되어 다신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할 뻔한 걸작을 볕 아래 전시한 듯한 기분이랄까.

‘아빠가 그림으로 따지면 걸작이지.’

나는 힘들게 눈을 떼어 냈다.

마침 물건을 가져온 상인이 맞은편에 서 있었는데, 그 상인 또한 광장을 멍하니 바라보기 바빴으니까.

콰아앙!

누군지 몰라도 날아가는 수인이 보였다.

‘성질 급한 놈이 성급하게 덤볐구먼.’

그렇지 않아도 육식 동물 수인들이 늘었다는 행인들의 얘기로 보아, 성격 급한 한 놈은 아빠 도발에 넘어갈 줄 알았지.

“족제비네.”

“저 먼 거리를 알아보시는 겁니까?”

“눈은 어디다 두고 다니냐?”

“……돌고래는 눈이 좋지 않아도 됩니다.”

나는 픽 웃었다. 그래, 네 머리 좋다고 자랑하는 거지, 지금?

“그래 똑똑아, 얼른 계산이나 하지 그래? 저 상인 손 떨어지겠다.”

“아……!”

레바이가 서둘러 상인에게 값을 지불했다.

내가 호들갑을 떨긴 했지만 상인 또한 열심히 구경하기 바빴기에 돈을 세는 둥 마는 둥 했다.

거 이 사람 장사 오래 못하겠네.

이 와중에도 상인은 신기하긴 했는지 고개를 갸웃했다.

“아직 어려 보이는데, 잘 쓰지도 않는 약초를 사 가는구나.”

“제 건 아니고 스승님의 심부름이에요.”

“그래? 꽤 박학한 약제사인 모양이구나. 사실 약재 최대 시장은 우리 용의 도시라 해도 과언이 아니지.”

“맞아요. 저도 스승님께 그렇게 들었습니다. 한데 그럼 약초에 대해 잘 아시겠군요……?”

“그렇지?”

“붉은 개구리의 뇌는 어디서 팝니까?”

“……그걸 찾는 약제사가 있다고? 설마 약제사가 아니라 독 제조가였냐?”

“아닙니다. 때로 맹독이 훌륭한 약재가 되기도 하는 걸 아실 텐데요?”

“…….”

상인은 미심쩍은 눈을 하면서도 슬쩍 알려 주었다.

“아, 어디까지 얘기했지?”

중간중간 쾅쾅! 소리가 광장에서 울려 퍼지는 탓에 영 집중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우리가 바라던 바였다.

결국 레바이는 원하는 정보를 모두 얻고, 마지막으로 물었다.

“혹시 파랑새의 꼬리털에 대해 들어 본 적 있습니까?”

“엥? 100년 전에 멸종한 동물 아니야? 그때쯤엔 명약의 재료로 알려지긴 했지. 이젠 전설 속 재료인데 그건 왜?”

“박학하신 것 같아 궁금해서요.”

“아하, 그건 이제 절대 못 구해. 또 모르지. 행운을 가져다준다는 소문이 자자했던 거니까 어느 귀족 가문 보물로는 남아 있을지도?”

여기까지 들은 뒤, 우리는 다시 이동했다.

이후로도 사람들을 피해 가며 은밀하게 행동한 끝에 재료를 끌어모았다.

‘생각보다 순조롭네.’

나는 흘끗 레바이를 응시했다.

이게 다 수완 좋은 저 돌고래 덕이었다.

생각대로다. 약제사 제자 흉내를 내며 의심 사지 않고 모으는 솜씨가 예술이다.

“오늘은 여기까지 해야 할 듯합니다. 더 사면 제아무리 피에르 님이 시선을 끌어주시더라도 눈에 띌 겁니다.”

“좋아.”

나와 레바이는 자리를 이동했다.

그사이 어찌나 소문이 빠르게 퍼졌는지.

걸어가는 동안 광장 사건으로 떠들썩한 게 피부에 와닿았다.

‘싸움 좋아하는 건 인간이나 수인이나 마찬가지라니까.’

세상에서 제일 재밌는 건 불구경, 싸움 구경, 남의 연애사라고 하지 않던가.

그 순간, 시장 초입에서 누군가와 마주했다.

진한 적갈색, 머리카락과 눈동자를 가진 남자였다.

“……아가씨를 뵙습니다.”

일리아가 보내 준 곰치 수인 ‘드렉스’다.

자연에서 곰치는 가만히 먹이를 기다리다가 근처에 나타나면 확 잡아채는 물고기이다.

이런 특성을 물려받아 주변을 탐색하고 탐지하는 특기를 가지고 있었다.

“일일이 인사할 필요 없어.”

“……예.”

자신의 일만 묵묵히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표정이 어딘가 멍한 인간이었다.

“저, 빤히 쳐다보신 까닭이 있으십니까?”

“아니, 자연에서는 곰치 정도면 수중 생물의 맹수 정도는 되지 않나 싶어서? 너네 상어도 씹어먹는다며.”

“과장입니다.”

앞선 회차에서 곰치들은 리리벨의 편을 들었었다. 해치우기 매우 까다로웠던 상대였던 것이 기억났다.

은신이 소용없는 데다가 힘은 무식할 정도로 센 놈들이었으니.

‘일리아, 수완도 좋네. 이놈들을 끌어들이다니.’

“목표 수량은 채웠고?”

“예. 그리고…….”

곰치 수인이 느릿느릿하게 말을 이었다.

“말씀하셨던 ‘하얀 코끼리의 상아’도 물어보았는데, 다들 환상 속의 재료를 찾냐며 웃더군요…….”

“그래?”

“계속 물을까요?”

“음, 일단 상대 봐 가면서. 너무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만.”

“네, 알겠습니다.”

“그럼 돌아가자.”

첫술에 배부를 거라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저 작전의 효용성과 시장을 살피는 쪽에 가까웠지만 생각 그 이상의 성과를 거뒀다.

“내일부터는 같이 나오지 못하니까 자율적으로 판단해. 모든 일은 들키지 않는 선에서. 이해했겠지?”

“예…….”

“네, 알겠습니다.”

* * *

방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문을 이용하지 않았다.

이미 기다리고 있던 아틀란의 도움을 받아 창문으로 들어갔으니까.

‘이번 방은 그리 고층이 아니라 다행이야.’

이리 생각하며 방으로 들어섰는데 누군가 내게로 도도도 뛰어왔다.

“칼립소……!”

에키온이었다. 나는 품에 자연스럽게 안겨드는 소년을 토닥이면서 거실을 보았다.

으음?

“너네 싸웠니?”

그도 그럴 것이 에키온과 웨일의 상태가 영 좋지 않았던 것이다.

웨일은 무뚝뚝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 잠시 친목 도모를 했어.”

“……무슨 친목 도모를 옷이 구겨지도록 하냐?”

“애들은 원래 이렇게 자라는 거 아니야? 레바이 형이 그러던데.”

“아하. 라고 할 줄 알았냐?”

웃기고 있네. 눈 가리고 아웅이었다.

나는 찌푸리며 에키온을 응시했다.

“에키온, 솔직하게 말해 봐. 웨일 괴롭혔어?”

용의 힘씩이나 있는 에키온과 제아무리 유일무이한 흰수염고래 수인이라지만 특기가 치유 능력인 웨일이었다.

에키온이 도리도리 고개를 저었다.

“쟤가, 나 탐구해 본다고 했어.”

“탐구? 아, 진단?”

“맞아.”

웨일이 끄덕였다. 에키온이 이어서 얼른 말했다. 다급한 어조로, 해명하듯이.

“나, 칼립소 싫어하는 거 안 해. 싫지만…… 저건 칼립소한테, 필요해.”

저거라니. 호칭이 조금 거시기하지만…… 에키온이 처음으로 나와 아빠가 아닌 사람을 좋게 말하는 걸 봤다.

“저거가 아니고 웨일이야.”

“……웨일.”

“웨일, 네게도 물을게. 정말 아무 일도 없었던 거야?”

“없었어. 그저 용의 힘에 내 힘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궁금했을 뿐이야.”

“에키온은 치료할 곳이 없었을 텐데?”

“과연 없을까?”

“뭐?”

이게 무슨 소리야. 나는 눈을 깜빡였다.

“여기에 중요한 사람을 찾으러 왔댔지?”

“그런데?”

“그 사람, 빨리 찾아야 할 것 같은데.”

“……왜?”

“쟤의 진기(眞氣)가 소모되고 있으니까. 쉽게 말하자면 생명력이야.”

나는 멈칫했다. 줄곧 에키온이 자꾸 잠에 빠지는 건 에키온의 능력과 관계된 일인 줄로만 알았다.

혹은 성장 때문이거나.

실제로 푹 자고 나서 키가 크기도 하지 않았던가.

“쟤한테는 서로 상호보완적인 존재가 있었을 거야. 한동안 떨어져도 괜찮았겠지만…… 이젠 한계야.”

“……얼른 데려와야 한단 소리지?”

“어쩌면.”

나는 소름이 돋았다. 투스와 약조한 시간은 사실 내가 열 살이 되는 해였다.

웨일 말에 따르면 2년 일찍 온 게 정답이었단 소리 아닌가.

가슴을 쓸어내렸다.

“곧 데리러 갈 거야.”

내 대답에 웨일이 조금 안심한 얼굴을 했다. 새삼 흰수염고래가 참 선량한 존재구나 생각했다.

분명 마차에서 느껴지는 두 소년 간의 미묘한 공기는, 에키온이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낸 것에 가까웠으나.

웨일은 이 와중에도 에키온의 상태에 신경 썼다는 소리 아닌가.

“그리고 말인데, 하나 더 있어.”

“하나 더?”

“저 애가 가진 힘이라고 할지…… 그래, 그냥 힘이라고 하자. 힘의 흐름이 불안정해.”

웨일은 얼마 전에 진단한 아빠를 예시로 들었다.

보통 강한 힘을 가진 이들은 강처럼 어떤 형태를 가지고 일정한 속도로 흐르는 느낌이라나.

“쟤 힘은 마그마 같아. 화산 폭발 알지?”

“알아.”

“그래. 마그마의 특징은 끓고 있다가 언제 폭발할지 모른다는 거야.”

“…….”

말을 듣다 보니 생각나는 것이 있었다. 내가 말하지 않고 기다리자, 웨일이 말했다.

“이대로 두면 쟨 폭발할걸……? 좀 더 쉽게 말하자면 그건 ‘폭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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