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0화
15분 전.
용의 도시에서 가장 큰 시장인 중앙 시장가는 언제나처럼 북적거렸다.
한낮은 특히나 사람이 많은 시간이었다.
아침에 도착한 상인들이 진열을 끝내고 한창 특상품을 내세우는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요즘 뭔 맹수들이 이렇게 돌아다니는 거야?”
투덜거리는 이는 오늘 막 이곳에 입성한 상인이었다.
“자네 모르나? 최근 몇 년간 있었던 일이잖아. 갈수록 이 도시에 맹수 수인들이 모인다니까?”
“끄응, 나 같은 잡식 동물은 으슬으슬 하구만. 꿰엑!”
궤엑! 하고 재채기 한 상인은 고라니 수인이었다.
“이 사람아, 재채기는 나보고 하지 말랬지? 어디 가서 고라니인 거 티 좀 내지 말라고!”
“아 왜. 우리 특성인 걸 어쩌나!”
고라니 수인은 투덜거리면서도 팔을 슬슬 문질렀다.
본능적으로 몸이 움츠러들었다.
“여기까지 들어오는데 노려보는 시선이 얼마나 많은지.”
“그들은 자기들이 노려본 줄도 모를걸. 눈빛이 워낙 그…… 사납지 않은가?”
“이거 원, 여기가 맹수 도시인지 용의 도시인지.”
육식 동물 수인이 초식 동물 수인을 잡아먹지는 않지만.
어쩔 수 없이 본능적으로 포식자에게 겁을 먹곤 했다.
게다가 육식 동물은 대체로 포악하고 싸움을 즐기며, 이런 성질을 숨기는 법이 잘 없었다.
“대체 왜 모이는 건가? 나같이 간헐적으로 오는 상인은 알 수가 있어야 말이지.”
고라니 상인이 대화하는 상대는 이 용의 도시에서 삼대째 사는 수인이었다. 그의 거래 대상이기도 했다.
“현재 용 공작님께서 몇 년째 몸이 좋지 않은 건 알고 있겠지?”
“그렇지.”
“병환이 깊다 보니 황실에서도 걱정하여 자꾸 호위를 내려주는 모양이야. 참 이상한 일이지.”
아무리 병환이 있다지만 용이 왜 호위가 필요하단 말인가?
일반 영주민으로서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이 도시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께름칙했다.
“도시 내에서 싸움이 얼마나 늘었나. 그래서 치안대도 골치라잖아.”
“왜?”
“왜긴 왜야. 육식 동물 수인들이 귀족인 거 알잖아? 싸운 놈들이 죄 귀족이니…….”
이러니, 용의 도시에 사는 초식 동물이고 잡식 동물이고 모든 수인이 영 기를 펴지 못했다.
“용의 신부가 도착했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질 테니 또 사람이 얼마나 몰리겠나.”
“맹수들이 더 모인다니…… 어휴, 끔찍한데.”
축제를 비롯한 특별한 일이 있을 땐 용의 도시에서 임시로 맹수 가문의 기사들을 용병처럼 치안대로 고용하기도 했다.
실제로 낮은 작위의 가문 중에는 이런 일을 업으로 삼는 이들도 있었다.
아무튼 간에 가뜩이나 맹수들이 모이는 와중에 더 모일 예정이란 건 그들의 등골을 오싹하게 했다.
“용 공작님께서 얼른 쾌차하시면 좋겠는데, 그분이 정정하시면 그 누구도 꼼짝하지 못할 게 아닌가.”
“그러게나 말일세.”
이야기를 나누는 두 수인은 나이가 지긋한 이들로, 오래전 전대 용 공작도 본 바 있는 이들이었다.
모두가 용 공작의 강인함을 알고 믿었으며 존경했고 신뢰했다.
가끔은 그 시절이 그리웠다.
“……어휴, 아직 어린 용 공작님께서 요양 중이라니 어쩔 수 없지만. 누가 나와서 이 사나운 분위기 좀 어떻게 해 주면 좋을 텐데 말이지……. 뭔 시장에 가는 것도 무서우니.”
고라니 상인과 떠들던 상인은 너구리 수인이었다.
“여긴 지금 아수라장이야. 일 분에 한 번 시비 거는 소리가 들려 온다네.”
그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는 듯, 시장 한편이 곧 소란스러워졌다.
“너 이 새끼, 노려봤지?”
“아니요, 아니요! 아닙니다!”
쿠당탕탕. 무언가 쓰러지는 소리에 너구리 수인이 고개를 내저었다.
“어이쿠. 이번엔 참새네 가판대 아녀?”
“쯧, 안됐구먼.”
싸움은 너무나 비일비재했고, 싸움을 빙자한 강자의 괴롭힘은 더욱 빈번해졌다.
어느새 합류한 소 수인이 풀떼기 먹다 체하겠다며 함께 투덜거리는 사이.
누군가 시장 광장에 나타났다.
시장이 있는 광장은 원형 형태였으며, 한가운데 동상이 서 있는 거대한 광장이었다.
다만 동상이 있는 중앙은 꽤 한산했다.
시장은 동상에서 떨어진 곳에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만 시장을 오가는 이들이나 상인들 모두 동상 쪽을 볼 수 있는 구조였다.
그렇기에 동상 쪽으로 저벅저벅 걸어가는 이를 보지 못할 이는 없었다.
게다가 걸어가는 이가 꽤 떨어진 거리에서도 눈이 휘둥그레 뜨일 만큼 미남이라면 말이다.
“세상에, 인간이 뭐 저렇게 생겼담.”
“맹수네, 맹수.”
잘생기면 맹수다. 강할수록 아름다움을 유지하는 수인들이었다.
“쯧쯔. 또 어느 집 자제가 온 거래?”
“그런데…… 저렇게 생긴 수인도 있었나? 난 처음 보는데…….”
소 수인이 엉겅퀴를 질겅질겅 씹다 말고 멈칫했다.
“자, 잠깐. 나…… 저렇게 생긴 수인 아는데…… 버, 범고래 아니야?”
육지 동물 수인들이 수중 동물 수인을 너 나 할 것 없이 비웃고 업신여기지만.
예외가 있었다.
그들 중 최강자라 할 수 있는 범고래들.
“……뭐야. 범고래가 왜 여기 있어?”
“아, 이번 용의 신부가 물의 도시에서 온다더니…….”
“범고래였어?!”
상인들이 수군대는 사이 시선은 더욱 몰렸다.
텅 빈 광장 자리로 온 남자는 곧 주변을 느릿하게 살폈다.
“모두 잘 듣도록.”
그저 무심히 말했을 뿐인데, 신기하게도 귀로 콕콕 박혀 들렸다.
이 자리에서 이것이 그들만의 힘인 ‘물의 힘’이 가진 능력임을 알아차린 자는 거의 없었다.
몇몇 맹수들을 제외한다면.
남자는 느슨하게 고개를 왔다 갔다 풀더니.
곧 다리를 들어 올렸다.
콰아아앙!
그 순간 지축을 울리는 거대한 소리와 함께 땅 위로 거미줄처럼 균열이 퍼져 나갔다.
흔들리는 땅에서 수인들이 가까스로 균형을 잡거나 비명을 질렀다. 혹은 쓰러진 자도 있었다.
“뭐, 뭐야!”
그리고 멀쩡하게 자리를 지킨 남자, 피에르는 자신이 만든 균열을 보다 다른 손에 든 검을 뽑았다.
검이 한 손에서 휘리릭 돌더니 곧 땅에 그대로 꽂혔다.
발로 땅을 구를 때만큼은 아니지만.
“내 이름은 피에르 아콰시아델. 이번 용의 신부 행렬을 맡은 총책임자다.”
냉철하고 차가운 목소리가 광장에 모인 모든 이들에게 선고처럼 떨어진다.
“이 자리에서 선전포고한다.”
피에르가 숨죽인 좌중을 훑었다.
“내 딸이 이번에 용의 신부로 뽑혔다. 그리고 나는 용 새끼가 딱히 마음에 들지 않아.”
모두가 무례하기 짝이 없는 호칭에 숨을 삼켰다.
용, 뭐라고?
감히 우리 용 공작님을……?!
그러나 광장을 휩쓴 거대한 힘, 그리고 무엇인지 모를 압박감에 그 누구도 움직이지 못했다.
“내 딸을 데려가려는 용이여, 그대는 반드시 나보다 강해야 할 것이다.”
이를 가는 목소리엔 사감이 가득 담겨 있었지만 알아차리는 이는 여기에 없었다.
“나와서 나와 겨루자.”
미친, 현재 용 공작은 아직 어린 분이었다.
지금 새파랗게 어린 공작님을 상대로 저 범고래가 뭘 하는 거야!
“이 소식이 퍼지기까지는 한 시간이 걸리지 않겠지.”
막 정신 차린 수인들이 하나씩 나올 즈음, 피에르의 다음 말이 터져 나왔다.
“용이 나오지 않는다면 용을 따르는 놈들이라도 좋다.”
도발이었다.
“아, 하는 거라곤 빌빌대며 저보다 약한 놈들이나 괴롭히는 새끼들.”
차디찬 목소리에 비웃음이 스쳤다.
“그래. 노린내나 풍기는 거기. 육지놈들이 대리로 덤벼도 친히, 상대해 주지.”
맹수라면, 육지 동물의 맹수라면 반응하지 않을 수 없는 말.
오만하기 짝이 없는 목소리엔 권태마저 느껴졌다.
“덤벼라.”
* * *
“크으, 좋아, 아주 좋아. 저 역할을 내가 했어야 했는데.”
나는 속으로 박수를 치면서 동시에 초롱초롱한 눈으로 광장 중앙 쪽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덤으로 아주 작게 중얼거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아아, 저거 내가 못 해서 너무 아쉽다!
저런 거 시켜 주면 진짜 잘할 자신 있는데!
‘왜 난 신부여서!’
당연하겠지만 저건 내가 아빠에게 부탁한 일이었고 내가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내가 열심히 구경하는데, 옆에서 찌를 듯한 시선이 느껴졌다.
옆에서 약초를 사고 있던 레바이였다.
이놈은 뭐 하는 거야? 어서 약초를 사지 않고서.
‘기껏 시선을 모을 때 후다닥 다양하게 최대한 많이 사야 할 것을.’
마침 상인이 안에서 더 가져오겠다며 자리를 비웠다. 나는 기다렸다는 듯 찡그렸다.
“날 볼 때가 아니잖아? 일 안 하니?”
내가 쯧쯔 혀를 차자, 레바이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찡그리면서 물었다.
“칼립소 님, 혹시 저거…… 당신 대본입니까?”
“응, 그런데?”
나는 끄덕였다.
“멋지지?”
레바이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잠시지만 앞선 회차의 얼굴이 겹쳐 보이는 듯했다.
저놈 저거 태클 걸 때의 얼굴인데.
“뭐야, 할 말 있으면 해. 금붕어똥 씹은 얼굴 하지 말고.”
“그, 금붕……. 솔직하게 말해도 봐주십니까?”
“어. 해 봐.”
“멘트, 정말 구립니다. 완전.”
왜 시비람. 나는 아빠를 보던 걸 멈추고 슬쩍 눈썹을 들어 올렸다.
“도발은 원래 유치할수록 잘 먹히는 거거든?”
발끈했다. 내가 어젯밤 얼마나 열심히 짠 대본인데.
그러나 레바이는 구리다는 표정을 지우지 않았다.
“세련되지 못합니다.”
“똑똑하게 말해 봐야 멍청한 육지 맹수 새끼들은 알아듣지 못하거든?”
“무슨 상관입니까. 귀족씩이나 되면 해석해 줄 대가리들은 옆에 끼고 다닐 텐데.”
“그럼 도발 효과가 줄어들잖아.”
차분하게 돌아온 내 목소리에 레바이가 멈칫했다.
“모르겠어? 저 역할은, 최대한 분노와 공분을 사는 게 역할이야.”
“……지나칠지도 모릅니다.”
나는 싱긋 웃었다.
“지나칠수록 더 좋은 일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