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6화
내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내게 뻗어진 조그마한 손. 간절함이 담긴 크고 울망울망한 눈.
찹쌀떡 같은 볼과 울음 탓에 복숭아처럼 발갛게 물든 살갗.
내가 대답이 없자 불안한 듯 쪼그만 입술이 오물오물 움직였다.
나는 당황스러웠다.
‘……뭐 이런 생물이 다 있지?’
물론 나는 이 애를 처음 보는 게 아니었다. 지난 회차에서 보았지만.
그때는 그저 저게 여주인공이구나. 역시 육아물 여주인공답네. 하는 정도였지…….
이 정도는 아니었다.
‘아니, 가까이서 오래 볼 일이 없었기 때문인가?’
정말이지 사랑스럽다는 단어를 인간으로 만들면 이럴까 싶은 느낌이라. 스스로도 당혹스러울 지경이었다.
‘이게 진짜 취향도 이기는 외모구나……. 다시 느껴지네.’
이 순간에도 내 감정을 열심히 분석하는 스스로가 웃겼다.
정신 차렸을 때는 아이를 번쩍 들어 올린 뒤였다.
“……뭐 하냐?”
아틀란이 황당하다는 듯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보면 몰라? 안아 달라잖아.”
안기고 싶다잖아.
“애가 애를 들어 올리는 꼴이네.”
“누가 봐도 내가 훨씬 크잖아?”
“내가 보기엔 도긴개긴이거든? 너는 송사리랑 금붕어랑 키로 싸우면 어떻게 보일 것 같냐?”
“……비슷하지?”
“그래. 그거다!”
음, 그렇군. 나는 근엄하게 끄덕였다.
양손에는 여전히 릴리를 꼬옥 안고 있는 채로.
“근데 얘가 하고 싶대잖아.”
“네가 언제부터 남의 말을 잘 들어줬다고? 잘 들어줄 거면 내가 대련하자고 할 때나 들어주든가!”
“싫어. 넌 실력도 없는 게 쓸데없이 끈질겨.”
“…….”
아틀란이 자기 갈비뼈를 매만졌다. 그리고 뭔가 하고 싶은 말을 참는 듯 입술을 움찔거리더니 결국 내뱉었다.
“젠장, 아파!”
“그럼 더 강해지든가.”
내가 3회차에서 ‘팩트 폭력’과 갈비뼈가 부러졌다는 표현을 알려 줬더니 그때부터 저러더라.
삼국지로 치면 무대포로 밀어붙이는 여포 같은 놈이. 이상한 데서 귀여운 구석이 있었다.
“야. 아니, 가주님. 넌 그게 문제야 알아? 수하란 건 말이다, 그 뭐야, 그래! 애정! 애정과 애정 어린 훈련으로 키우는 거다!”
“애정 같은 소리 하네. 계속해 봐? 여기서 걸어서 용의 도시로 오라는 수가 있어.”
“윽…….”
저거, 듣는 사람 없다고 생각하니 절로 3회차의 말투 나오네.
나는 어처구니가 없어 웃었다.
한편으로는 이렇게 말하고 싶었던 걸까 싶어 조금 짠하기도 했다.
“농담은 그쯤하고 그래서 너, 얘한테 무슨 짓 했다고? 솔직하게 말해 봐.”
“한 거 없어. 내가 하긴 뭘 해? 구겨져서 자면 잤지.”
“그렇단 말이지.”
“……믿어?”
“그럼?”
나는 눈을 깜빡였다.
“네가 그렇다고 하면 내가 안 믿은 적 있었냐.”
“…….”
아틀란이 뒷목을 쓸어내리며 고개를 홱 돌렸다. 귀가 빨갰다.
저거, 머쓱한가 보네. 쑥스러우면 늘 저런 식이었다.
나는 피식 웃으며 시선을 돌렸다.
한참 나를 꼬옥 붙들고 오들오들 떨던 아이였지만 내게 안긴 뒤로는 떨림이 어느 정도 잦아들었다.
시선을 느꼈는지 말간 눈동자가 나를 좇았다.
석양을 담은 듯 예쁜 주홍빛 눈동자다. 실제로 빛을 받으면 더욱 반짝이곤 했다.
‘꼬리가 진짜 보드랍네.’
본능인지, 아니면 일부러 한 것인지. 아이의 폭신한 꼬리가 나를 톡톡 두드렸다.
“엉니?”
한순간이지만 내 안에서 무언가 선이 톡 끊어지는 기분이었다.
“……범고래놈들 중엔 진짜 애다운 놈이 없었구나.”
“뭐?”
아틀란의 의아한 목소리가 들려 왔지만 나는 이미 정신없이 고민에 빠진 뒤라 더는 놈이 말하는 것이 들리지 않았다.
“……다람쥐 하나 키울까?”
아주 조용하고 작게 말한 것 같은데.
“미쳤냐?”
저놈이 얘를 찾느라 물의 힘으로 오감을 잔뜩 끌어올린 상태란 걸 깜빡했다.
다 들린 모양이었다.
들린 김에 나는 근엄하고 진지하게 물었다.
“야, 둘째야. 다람쥐 하나 정도 더 키우는 건 괜찮지 않냐?”
내 질문에 둘째는 바로 대답하는 대신 주춤했다.
“……너 왜 눈깔이 돌았냐?”
“내가?”
“그래! 그리고 키우긴 뭘 키워. 네 용용인가 뭔가부터 신경 쓰라고!”
별일이네. 얘가 에키온 얘길 다 하고. 사실 당연하겠지만 반쯤은 농담이었다.
그랬건만 이놈이 날뛰는 걸 보니 장난기가 돌았다.
“뭐 어때서. 내가 돈이 없냐. 책임감이 없냐?”
“있으니까 문제지. 책임감 같은 건 꿈도 꾸지 마! 아이 씨, 이런 건 그 이전의 돌고래 놈이 있어야 하는데. 그놈은 왜 기억이 없어서!”
하긴, 일단 책임져야겠다 마음먹으면 죽는 순간까지 책임지는 게 내 성정이었다.
“그래! 너 그 뭐냐, 네 부하 중에 애정결핍이 미친 듯이 심하던 놈! 넌 지금 그놈 영입할 때의 눈이라고. 인지하고는 있냐?”
“하고 있어. 난 이성적이야. 아마도?”
아틀란이 말하는 수하는 애정결핍이 심했지만 특기가 우수하고 전투 능력은 더욱 우수한 놈이었다.
특히나 내가 눈에 불을 켜고 영입을 탐냈던 놈이었다.
“정신 차려. 걘 네가 늘 찾던 특수한 특기를 가졌거나 전투 능력 대단한 네 수하놈들이 아니라고.”
“귀여운 것도 재능이야.”
“……그걸 말이라고 하냐? 쓸데없는 걸 어디다 써!”
글쎄다, 내 정신 건강에 좋지 않을까. 이런 가벼운 생각을 하며 나는 아이를 고쳐 안았다.
“그래. 알겠어, 농담이야. 하지만 가볍게 꺼낸 얘기는 아니고 잠시 생각해 봤을 뿐이야.”
나는 작게 웃었다.
정말로 키울 생각은 없었다.
다만, 잠시 묘한 감정을 느끼긴 했다.
“……그저 나는 이렇게 맑게 자라 본 적이 없어서 잠깐 욕심났을 뿐이야.”
“…….”
둘째가 낭패라는 표정을 지었다. 이내 뺨을 긁적이면서 조심스럽게 말했다.
“크흠, 뭐, 어리광 그런 걸 부리고 싶은 거냐? 그, 그런 거라면 나한테…….”
“나보다 약한 놈한텐 안 하는데?”
“이익!”
나는 푸흡, 소리 내어 웃었다. 웃음은 곧 활짝 웃는 미소로 이어졌다.
“딱히 어리광을 부리고 싶은 건 아니야. 게다가 지금 내겐 너도 있고 아빠도 있는걸.”
나는 이렇게 말하며 품 안에 있는 릴리를 보았다.
아틀란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면, 아기 다람쥐가 아틀란을 무서워하는 이유.
무엇인지 대충 짐작이 갈 듯했다.
“그보다, 얘가 널 무서워하는 이유를 알겠다.”
“왜 무서워하는데? 딱히 궁금하진 않지만…….”
“애들은 크고 사나운 사람을 무서워해.”
“내가 사납다고?”
“그래. 그렇게 목소리 큰 사람은 더 무서워하고.”
둘째는 기본적으로 목소리가 크다.
처음 눈을 뜬 이 애가 마주한 게 아틀란이었다면 그럴 만도 했겠다 싶었다.
“게다가 바깥엔 낯선 기사들로 가득했으니 무서울 법도 하지.”
릴리를 다시 보면 무어라 말은 없었지만.
대신에 내 목을 끌어안고 얼굴을 비볐다.
“엉니, 어뜨케 아라써요……?”
작게 귓속말하는 간지러운 목소리에 나는 웃었다.
“정답이었어?”
릴리가 조그맣게 끄덕였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물었다.
이 애를 용의 도시로 데려가기로 한 순간부터 시작된 고민.
이제야 결심이 들었으니까.
“이름이 뭐야?”
릴리가 커다란 눈을 깜빡였다. 곧 몰랑한 얼굴이 배시시 웃었다.
눈물이 아롱진 채, 볼은 찹쌀떡처럼 팽팽하게 당겨진 채로.
자그마한 손이 내 귀에 닿았다. 나는 간지러운 손길에 웃으며 귀를 기울였다.
“릴리…….”
“그래, 릴리. 난 칼립소야. 칼립소 아콰시아델.”
네게 이렇게 소개하는 건 처음이 아니지만.
이런 식의 만남은 처음이네.
나는 아이가 놀라지 않도록 한 손은 아이를 든 채로 지탱하고, 다른 손으로 살살 등을 토닥였다.
곧 다시 용의 도시로 출발한다.
그전에 이 아이가 깨어나길 바랐고, 또 이렇게 깨어났으니. 미뤘던 이야기를 해 볼 차례였다.
“어쩌다가 네가 거기 쓰러져 있었는지 알려 줄래?”
* * *
“뭐?”
아빠는 좀처럼 놀라는 법이 없는 사람이었다.
차라리 조각상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표정의 기복이 없는 사람이지만.
이번에는 조금 놀란 듯 눈을 살짝 크게 뜨다가 이내 찡그렸다.
“그 말이 사실인가.”
“응.”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릴리를 찾아서 아틀란과 함께 돌아왔을 때, 마차 주변은 여전히 어수선했다.
기사들은 릴리를 찾아왔다는 걸 알고 자리로 돌아갔다.
나는 마차로 돌아가는 대신 아빠한테 가서 막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을 알려 준 참이었다.
“정말이야.”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란…….
“현재 용의 도시에 흑표범 가문이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