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4화
‘뭐야, 얘 왜 이래?’
나는 눈을 끔뻑끔뻑 떴다. 아틀란은 이 순간에도 나를 절박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의외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한테 이거 왜 이러냐며 휙 던져 줘도 이상하지 않은 놈인데…….
아, 혹시나 내가 탓할까 봐 이러는 건가?
마차에 둘째만 있었다면 모를까 레바이도 있었는데, 무슨 의심을 한다고.
나는 산뜻하게 감상을 내뱉었다.
“와, 귀여워.”
“지, 지금 그렇게 말할 때냐!”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왜? 귀엽잖아. 귀여운 건 귀여운 거야.”
“허? 제대로 보라고. 쪼그라들었잖아.”
“그래그래, 너보다 수만 배 귀엽다.”
“그건……!”
장난 같은 대화는 잠시 멈추고 나는 아기 다람쥐를 빤히 보았다.
“네가 데려오는 동안에도 안 깬 거지?”
“어? 어어.”
이렇게 흔들려도 안 깨다니. 깊이 잠든 건가, 아니면 또 다른 문제가 있는 걸까.
사실 언젠가는 원작 여주인공도 다시 만날 거라 생각했지만.
설마하니 흑표범 가문도 아닌 곳에서 이렇게나 빠르게 보게 될 줄은 몰랐다.
마음 한구석에 좋은 만남이 되기 어렵다는 것을 알면서도, 최대한 좋게 만나고 싶다고 조금은 생각했지만…….
‘이런 식으로 보고 싶었던 건 아닌데.’
아무리 봐도 심한 고초를 겪은 듯한 몰골 아닌가, 이거.
‘대체 이 쪼그만 거한테 괴롭힐 구석이 어디 있다고.’
나는 콧잔등을 찡그렸다.
“네가 이렇게 거칠게 데려왔는데도 안 일어나는 걸 보니 뭔가 단단히 문제는 있나 보다.”
“내가 뭘 거칠게 데려왔다고…….”
“그래, 천으로 싸서 온 건 최소한 잘하긴 했다.”
아틀란이 구시렁거렸다.
사실 저 커다란 손으로 아기 다람쥐를 조심스럽고 어색하게 든 모습을 보니 다시 웃기긴 했다.
“이야, 근데 잘 어울리긴 한다?”
“놀리는 거 알거든?”
그때였다. 옆으로 아빠가 다가왔다. 소란스럽다 보니 다가온 모양이었다.
나는 아빠에게도 간략하게 상황을 설명하며 보여 주었다.
“아빠는 이렇게 완전 수인화한 수인을 본 적 있어?”
“없다. 아, 있다면 지금의 황제 정도겠군.”
“그렇지? 보통은 황실 외엔 없다고 알려진 일인데 말이지…….”
공식 설정은 황실만 완전 수인화가 된다고 알려져 있지만.
소설 내용에서는 흑표범 형제도 동물이 되곤 해서 여주인공이 ‘오빠들 돌아와!’ 하고 수인 모습으로 돌려놓아 주는 역할을 했다.
나 또한 내 약혼자였던 흑표범 네 첫째놈이 흑표범이 되는 모습을 보았고 말이다.
“가까이 다가오지 마. 냄새나니까.”
“쯧.”
“왜 그러지?”
“그냥, 잠시 불쾌한 생각이 떠올라서.”
나는 고개를 탈탈 흔들고는 아틀란에게서 받은 아기 다람쥐를 조심스럽게 안았다.
“따뜻한 곳이 좋으려나.”
아기 동물들은 체온 유지가 중요하다던데. 모닥불 근처로 다가갔을 때였다.
“내가 들지.”
나는 그 말에 아빠를 응시했다. 불길이 일렁거리는 얼굴을 보고 있자니, 문득 장난기가 돌았다.
“안 돼. 아빠는 들지 마.”
“……?”
“아빠가 안으면 질투할 것 같으니까?”
말하고서야 문득 지구에서 ‘아빠’에게 하던 장난이었음을 깨달았다.
멈칫한 찰나, 작은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래. 그러지.”
아빠가 편안하게 웃고 있었다.
“그럼 평생 내 딸 하나만 안아 들면 되는 건가?”
“……내가 성인이 되면 멈춰 주고.”
“아쉬운 일이군.”
아빠는 나를 빤히 응시하다 모닥불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시간이 흐르는 게…… 아쉬워진 건 처음이야.”
지구에서 비슷한 말을 들을 적이 있다.
……부모 마음은 어느 세상에서나 똑같은 걸까?
잠시 감상에 접어들려는 순간.
“야, 그럼 나는?”
아틀란이 불만을 토로했다.
자기가 안을 때는 아무런 말도 안 하고 오히려 안으라고 했으면서. 난 상관없냐며.
나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넌 별로?”
“뭐야?!”
이렇게 시끄러운 소리가 오가는데도 아기 다람쥐는 끝내 깨어나지 않았다.
“야, 그럼 이건 어떻게 할 거냐?”
“어떡하긴…….”
멀지 않은 곳에 웨일과 레바이가 나란히 앉아 식사를 하는 모습이 보였다.
에키온은 마차에서 새근새근 자고 있을 것이다.
소년들을 차례로 바라보다 마음을 굳혔다.
“그냥 둬야지 뭐, 어떡해.”
“허. 내일 다시 출발할 텐데? 그럼 이것도 데려간다고?”
“그럼 길바닥에 버려?”
아틀란이 움찔하면서도 대답하지 못했다.
이 아이를 연민하거나 동정해서, 혹은 성정상 못 한 게 아니라.
내게서 느낀 기운 때문이었다.
“나는 약하고 보호받아야 하는 존재는 안 버려.”
똑같이 되기 싫으니까.
“내 눈에 띈 존재라면 더더욱.”
생략된 말을 알아들은 것인지 아틀란이 조용히 고개를 돌렸다.
‘물론 나도 모든 수인을 도울 수 없다는 건 알아.’
하지만 내 눈앞에 나타난 약자를 구하지 않으면 나를 버린 이들과 뭐가 다를까.
물론 남주인 황태자나 흑표범 수인들만 가능했던 완전 수인화가 어째서 여주인공이 가능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이런 설정에 관해서는 들은 바가 없다.
내가 벌인 일이 저 멀리 황실이 있는 땅에까지 영향을 끼칠 리가 없었으니까.
무엇이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나.
나는 작은 불안을 느꼈다.
‘설마 용의 도시에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니겠지?’
에키온이 잠들어 있을 마차를 보았다.
“왜 그래?”
“그냥, 용의 도시에 데려가는 게 맞나 싶어서.”
누구라고 말하지 않았지만 아틀란도 아빠도 알아들었을 것이다.
자연스럽게 우리 주변에 엷은 물의 막이 쳐졌다.
“지금이라도 에키온을 돌려보내야 하나 고민이야.”
처음부터 고민했던 부분이었다.
에키온이 나와 떨어지지 않으려 해서 데려왔지만.
만약 용의 도시에 무슨 일이 있는 거라면.
‘에키온이 사라진 것이 이미 들킨 상황이라면?’
에키온을 데려가는 건 최악의 선택이 될 것이다.
“글쎄, 저 멍멍인가 용용인가 하는 놈을 돌려보내는 건 딱히 좋은 선택이 아닌 것 같은데.”
“……감히 육지 동물에 비유해? 사과해, 이 새끼야.”
“……그게 중요하냐? 아, 알았어. 알았다고. 미안하다. 됐냐?”
“그래. 계속 얘기해 봐.”
“크흠, 뭐 아무튼 간에 좋지 않은 선택이라고. 생각해 봐. 막말로 네가 쟤 돌려보내서 무사히 피에르 님 거처로 갔어. 그다음엔? 누가 관리하는데?”
“…….”
“네가 없을 때 쟤가 날뛰면? 지하실 앞에서와 똑같은 일이 없을 거라 자부할 수 있냐?”
“…….”
옳은 말이었다.
“게다가 피에르 님도 여기 계신 상황에, 쟬 누가 감당하는데. 설마 할머니?”
지하실 앞에서 에키온이 어땠었는지 나는 보지 못했지만, 아틀란은 자세히 설명해 주었었다.
둘째 말대로 에키온이 용의 힘을 내뿜을 수 있는 거라면.
‘할머니가 보았다간 들키기 십상이지.’
“가주가 알게 되면 어떻게 될 것 같냐.”
“끝이지.”
내가 단호하게 대답하자 둘째가 굳은 얼굴로 끄덕였다.
확실히 아콰시아델엔 아게노르가 남아 있지만 역부족이다.
“그래. 잘 알겠어.”
결국 데려가는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르자 차라리 마음이 편해졌다.
“일단 마음 편히 밥이나 먹고 자도록.”
아빠가 정리하듯 한마디 붙였다.
“용의 도시가 얼마 남지 않았으니.”
* * *
다음 날 아침.
“끄응…….”
왜 이리 시끄러워? 마차 안에서 기지개를 쭉 켜던 나는 똘망똘망한 눈동자에 잠시 놀랐다.
“아, 에키온? 잘 잤어?”
“응.”
“너 어제 초저녁부터 푹 자더라? 어라, 아빠는 나갔나 보네.”
마차 안에는 나와 에키온뿐이었다. 이른 오전인 듯한데…….
바깥이 매우 소란스러웠다.
외투를 갖춰 입고 밖으로 나갔을 때, 나는 어수선하기 짝이 없는 상황과 마주했다.
‘뭐지?’
가장 가까이에 있던 레바이에게 다가갔다.
“무슨 일이야, 대체?”
“아, 공녀님……. 푹 주무셨습니까? 그게…….”
레바이가 난감해하는 표정으로 안경을 들어 올리며 대답했다.
“다람쥐가 사라졌습니다.”
“……뭐?”
나는 화들짝 놀랐다.
“깨어났단 말이야?”
“아무래도 그런 것 같은데, 아침에 사라진 모양입니다. 다람쥐가 뛰어나가는 걸 본 기사들도 여럿 되어서.”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지만 곧 따라 나온 아틀란의 모습에 놀란 기사들이 서둘러 원작 여주를 찾기 시작했다는 거였다.
“그래서 어디로 간 건데?”
“음, 저쪽으로 간 듯합니다. 이미 아틀란 님이 따라서…… 어라, 공녀님? 공녀님!”
레바이가 가리킨 것 수풀이 우거진 작은 숲이었다.
나는 생각할 것도 없이 얼른 뛰어 들어갔다.
‘걔가 수인일 때도 제법 날쌨단 말이야!’
하물며 완전한 동물이면 얼마나 빠를까.
여기가 그 애가 잘 아는 도시거나 흑표범 가문이었다면 어디로 가든 상관없겠지만.
이곳은 사방이 황무지거나 야생 숲이었다.
‘끙, 물의 힘을 쓸 수 있었다면 좋았을 것을…….’
나는 달리다 말고 멈춰 서서 기척을 찾았다. 야생동물도 곳곳에 있다 보니 찾기는 쉽지 않았다.
“저긴가?”
나는 한 방향을 향해 무조건 뛰었다. 이미 아틀란이 쫓아갔다고 하니 먼저 발견했을지 모르겠지만.
왠지 이쪽에 있을 것 같은 감이 강하게 들었다.
그리고 내가 숲을 막 빠져나왔을 때.
“아…….”
드넓은 들판이 펼쳐져 있었다.
들판 위로는 계절에 맞는 꽃이 활짝 피어있었다.
나는 그곳에서 풀썩 앉은 채 달달 떨고 있는 조그마한 아이와 마주했다.
하늘하늘, 바람에 폭신해 보이는 귀와 머리카락이 흔들렸다.
날 보는 순간 아이의 커다란 눈이 동그랗게 뜨였다.
눈물이 가득한 눈이었다.
“……엉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