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막 범고래 아기님-143화 (143/275)

제143화

내가 답지 않게 말을 잃은 사이 기사들 사이에서 갑론을박이 오갔다.

“멍청아, 꼬리가 호랑이가 아니잖아!”

“아, 그런가?”

“난 알아. 그림책에서 봤는데 호랑이는 저거보다 길쭉한 꼬리를 가졌다고!”

“그래, 저놈 말이 맞아.”

내가 말을 잇지 못하는 사이 기사들 사이에선 저 ‘아이=호랑이 수인’ 썰은 잦아들었다.

다만 누구도 다음 의견을 내지 못하는 사이 기사 하나가 손을 번쩍 들었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움찔하기는 했지만, 위협이 아님을 알았는지 슬그머니 입을 열었다.

“내가 알아.”

나는 숨을 삼켰다.

“저건 다람쥐 수인이야.”

그래, 다람쥐 수인이다. 이제야 알았냐 멍청이들아! 하고 외치고 싶었지만.

난 여전히 황당함이 가시지 않은 상태였다. 게다가…….

“다람쥐? 걔넨 오래전에 멸종한 애들 아니야?”

“그러게?”

본래 토끼와 함께 초식동물에서 귀엽고 사랑스러움을 맡았을 평범하고 조그마한 동물.

그러나 이 세상에는 이 동물의 형태를 이은 수인은 더는 없었다.

저기 마차에 있는 웨일과 같다.

‘세상에 하나밖에 남지 않은 수인이다.’

다시 말해 이 대륙을 샅샅이 뒤져도 유일할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이.

저 아이는 바로, 이 세상의 주인공. 원작의 여주인공이었다.

나는 드디어 아연하게 입을 벌렸다.

‘……네가 왜 여기 있냐?’

말을 할 수 있다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분명.

그 사이 기사들은 눈치를 보면서도 슬금슬금 거리를 좁혔다.

아무래도 제 동료가 안고 있는 아이에게 잔뜩 관심이 생긴 눈치였다.

하기야 이 세상에서 사라졌다고 알려진 수인이 눈앞에 있으니, 적대감은 둘째치고 신기할 만도 했다.

그 때문일까? 평소라면 육지 동물에게 보일 뿌리 깊은 혐오감이 지금만큼은 자취를 감췄다.

나도 신기하다 신기해.

내가 느끼는 신기함은 저들이 느낀 것과는 다를 테지만 말이다.

“털이 부드러워 보이는데?”

“와, 육지 놈들 꼬리는 이렇게 퐁실퐁실하냐?”

수중 동물 수인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대체로 머릿결이 굉장히 좋다는 거다.

게다가 반사광이 큰 편이다.

이건 비늘에서 가져온 특징이라 그렇다. 반면에 육지 동물 수인들의 머리카락은 대체로 부드러운 느낌이다.

저기 저 아이의 머리카락처럼 말이다.

나는 고민을 하면서도 빤히 바라봤다.

“칼립소.”

어느새 내 옆으로 온 아빠가 나를 불렀다.

“아는 아이인가?”

“엥?”

나는 속으로 화들짝 놀랐다.

뭐야, 어떻게 알았대?

내가 그렇게 티를 냈나? 아니, 그보다 내가 어떤 티를 내든 보통 아는 애냐고는 안 묻지 않아?

“평생 아콰시아델에서 산 나더러 육지 동물 애를 아냐고 묻는 거야? 그거 진짜 이상한 말인 거 알고 있지, 아빠?”

“농이었다.”

“아아.”

내가 과민 반응했던 모양이었다.

아빠는 평온한 표정으로 이어 말했다.

“확실히 네 얼굴이 마치 30년 만에 여동생이라도 찾은 듯한 얼굴이긴 하더군.”

“……뭐야, 그 묘하게 구체적인 묘사는.”

“그러니 웃으란 소리다.”

아빠가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 애비는 농담도 참 이상하게 하고 있어.

나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웃어버렸다.

“그래서 그렇게 빤히 쳐다본 이유가 있던 건가?”

“아니…….”

나는 눈을 슬쩍 굴렸다. 안 쳐다볼 수가 있나.

나는 진지하게 이야기했다.

“무진장 귀엽잖아?”

“귀엽다고?”

“엥? 안 귀여워? 완전 귀엽잖아. 인형 같아.”

“넌 거울을 보고 살지 않나 보군.”

“…….”

나는 크흠, 헛기침했다.

어느새 아이를 보기 바쁘던 기사들도 얼빠진 표정으로 우릴 보고 있었다.

그래, 신기하지? 나도 신기하단다.

……저런 표정으로 주접이라니.

‘그나저나 저 나이 대의 여주인공이라면…….’

아무리 봐도 소설 초입의 나이 대다.

‘한창 흑표범 집안에 입양당해서 과보호를 받아야 할 다람쥐가 왜 여기 있는 거냐고.’

내가 많은 것을 바꾸면서 분명 미래가 바뀐 부분이 수두룩했지만.

그럼에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바로 원작 여주인공에 관한 부분이다.

어떤 일이 바뀌든 여주인공은 사랑받고, 애정 속에서 자라며 티 없이 맑은 아이로 큰다.

“언니!”

때로는 모두가 비린내 난다고 욕을 하고 학을 떼던 어느 불쌍한 범고래에게마저 따뜻한 정을 베푸는 사람으로 말이다.

나는 푸흡, 작게 웃었다.

“내가 아는 어린애 중에선 제일 예쁘고 귀엽네.”

“별일이군. 네가 외모를 이야기하는 일이 좀처럼 없던데.”

“나도 보는 눈이란 건 있어.”

굳이 말로 꺼내지 않을 뿐이지.

어떻게 된 일인지, 여주인공은 주변에서 이렇게 떠드는 데도 일어나질 못했다.

“레바이, 마차에서 웨일을 데려와 줘.”

“예.”

나는 고민 끝에 웨일을 데려오게 했다.

‘음, 옷이 좀 흐트러졌나?’

어째 웨일의 옷매무새가 내가 마차에서 내렸을 때와 묘하게 달라진 것 같았지만.

“웨일, 무슨 일 있었어?”

“아니?”

본인이 아니라기에 일단 넘어갔다.

“공녀님, 이 아이는 현재 탈수와 탈진 증상이 보이는데, 아마 제 생각이 맞다면 제게 있는 재료로 치료할 수 있을 겁니다.”

“그래?”

레바이의 관찰은 틀리지 않았고, 곧 웨일의 힘으로 아이를 치료했지만.

여전히 눈을 뜨지 않았다.

“왜 눈을 안 떠?”

“이번엔 잠이 든 거야.”

웨일이 안타깝다는 듯 여주인공을 빤히 보았다.

“오랫동안 잠을 자지 못하고 달린 것 같아, 이 애.”

옷 소매를 걷어 올리고 신발을 벗기고서야 엉망이 된 발을 볼 수 있었고 한 차례 더 치료를 해야 했다.

‘이 조그만 아이가 홀로 이렇게 고생할 일이 대체 뭐가 있었던 걸까…….’

일어나지 않은 아이를 보며 내릴 수 있는 결정은 하나뿐이었다.

“일단 다시 출발하자.”

“저, 공녀님. 이 아이는 어떡할까요?”

“데려가.”

“예?”

“그럼 여기 버려?”

내가 싸늘한 눈으로 보자 기사가 어물쩍 시선을 내렸다.

나는 고개를 돌려 여주인공을 안고 있던 기사에게 고갯짓했다.

“걘 둘째한테 넘겨.”

“네? 아, 넷!”

“뭐? 야! 왜 나한테…….”

“우리 마차는 인원 초과야. 그런데 네 마차엔 자리가 남잖아.”

“그럼 네 하녀들에게 맡겨.”

“쟤가 일어나서 난동이라도 피우면 누가 제압해?”

“…….”

우리 여주인공 생각보다 잘 문단다. 어떻게 알았냐고?

원작 남주를 콱 깨무는 장면이 나오거든. 그것도 발목에 피나도록 꽉!

‘그거참 속 시원했는데 말이지.’

어쨌거나 청어 하녀들과 미사에겐 이런 이유로 맡길 수 없다.

제아무리 아기라지만 저렇게 귀와 꼬리까지 있는 경우엔 보통 사람보다 힘이 더 세다.

“그럼 저 돌고래놈도 있잖아!”

“둘째야, 눈을 뜨고 보거라. 저놈이 머리 쓰는 놈이냐. 힘을 쓰는 놈이냐?”

“……머리 쓰는 놈이지?”

“……외람되지만 여기서 기분 나빠야 하는 겁니까?”

“자자, 토 달지 말고 얼른 챙겨.”

아틀란은 나름 납득을 한 건지 결국 여주인공을 챙기게 되었지만…….

고양이 어미가 새끼를 물 듯 손만 내밀어 뒷목을 잡아 들었다가 나한테 호되게 혼났다.

“……이씨, 들기만 하면 됐지. 뭐가 또 그리 중요하다고.”

“숨 막혀 하는 거 안 보였냐? 어쭈, 눈빛 봐라. 네 목덜미도 달랑 들려 볼래?”

“……아, 제대로 한다고, 해!”

여주인공은 잠시 숨이 막혔는지 콜록거리긴 했지만 이내 아틀란 품에서 편히 자리를 잡고 새근새근 잠들었다.

아틀란은 새끼 동물을 처음 안아 본 사람처럼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나는 웃음을 참았다. 아니, 참으려다가…… 시원하게 터지고 말았다.

“웃지 마!”

“이야, 둘째야, 이런 것도 미리미리 배워 두는 거야. 그래야 나중에 사랑받지.”

“웃기고 있네. 네 웃음이나 어떻게 하지 그래?”

그렇게 사태가 조금 소강되고 각자 자리로 돌아갈 때였다.

레바이가 조심스럽게 내게 다가왔다.

“공녀님.”

“응?”

“조심스러운 얘기입니다만, 알고 계실지 모르겠으나…… 저 아인.”

“다람쥐인 거?”

“아뇨. 그것도 그것이지만.”

기사들은 그저 신기해하고 넘어간 모양이지만 레바이는 역시 알아본 모양이었다.

저 애가 수중 동물 수인 중에서 웨일처럼 멸종되었다고 알려졌지만 사실은 유일하게 살아남은 개체임을.

보통 이런 개체들은 특별한 특기가 있다는 것 또한.

“저 귀와 꼬리에 대해서는…….”

“나도 알아. 저건 불완전한 수인의 상징이지.”

불완전한 수인.

앞서 설명한 바 있지만 서로 종이 다른 수인 사이에서 태어나 특기가 아예 없거나 특기가 엄청나게 뛰어난 수인을 이른다.

그리고 사실 이 말에는 또 한 가지 의미가 더 있는데…….

“특기가 지나치게 크면 수인화를 겪기도 하지.”

“그런 경우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응. 게다가 한 가지 경우가 더 있잖아? 완전히 순종(純種)이라 수인화를 겪는 것.”

고대로부터 피를 잘 유지한 수인 중에는 이렇게 귀와 꼬리를 타고난 수인이 나타나기도 한다.

여주인공은 여기 해당했다.

“뭐, 육지놈들 중에 드물긴 하지만 꼬리와 귀 달린 놈이 있긴 하잖아. 그런 거라 생각하자.”

“그건 그렇습니다.”

“우리야 물에 살던 짐승이니까 이런 경우가 없는 거고. 육지놈들 사이엔 있다고 알아.”

“예…….”

레바이는 복잡한 눈을 하면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완전히 동물이 되는 놈은 황실 말고는 없잖아.”

그래. 원작 남주들인 사자나 흑표범 수인 정도만 완전 동물화가 가능하다.

이것도 여주인공을 지켜주기 위한 장치이자, 사람으로 돌아오게 만드는 건 오직 여주인공이란 설정도 있었지.

“예, 그렇긴 합니다만……. 다른 위험은 생각하지 않으시는 겁니까?”

“위험?”

“예. 뭐든 미지의 존재는 위험을 동반하지 않겠습니까.”

“…….”

“저 아이, 이상한 점이 너무 많습니다.”

아마 묻고 싶었을 것이다.

저 정도 가치가 있는 수인이라면 분명 욕심내거나 쫓는 세력이 있을지도 모르며.

그래서 도망치다가 이곳에 다다른 것일지도 모른다.

“어차피 이 모든 건 쟤가 눈뜨기 전까진 모를 일이야.”

레바이가 정갈하게 고개를 숙였다.

* * *

그날 저녁, 불가피하게 야영을 하게 되었다.

적당한 장소에 도착하기 무섭게 아틀란이 미친 듯이 달려왔다.

‘깜짝이야, 상언 줄 알았네.’

하마터면 공격할 뻔했지 않나.

“야! 야! 야!!”

“왜 그래?”

아틀란은 달려온 것으로 모자라 사색이 된 낯으로 내게 무언갈 내밀었다.

“쪼그라들었어!”

“대체 뭐가?”

“쪼그라들었다고!”

“말을 해, 말을.”

아틀란이 답답해하더니 손을 더욱 거칠게 내밀었다.

“……이거 어떡하냐? 야, 미리 말해 두는데 내가 한 거 아니다!”

그리고 아틀란이 내민 건 천 덩어리였는데, 천을 열자…….

‘어라?’

아마도 손바닥만큼 작은 크기 아닐까.

조그마한 다람쥐가 색색 숨을 내쉬며 잠들어 있었다.

……어라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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