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막 범고래 아기님-142화 (142/275)

제142화

하기야 피가 어디 갈까 싶다만은.

‘세 오빠놈 중에서 아빠가 키운 애는 하나도 없는데 말이지.’

이렇게 닮은 모습을 보면 신기하달까.

피에르 심은 데 피에르 난다 치면…….

문득 어처구니없어졌다.

‘아니, 그럼 엄마 유전자는 어디 있는 건데?’

문득 하나같이 범고래답게 날카로운 얼굴을 가진 아빠와 세 오빠를 생각하다가 내 얼굴을 떠올렸다.

혹시 엄마가 범고래치고 둥글둥글하게 생겼었나? 나는 엄마를 닮았던 건지도 모르겠다.

‘돌아가면 엄마가 어느 가문이었는지도 제대로 알아봐야겠어.’

여기까지 생각하고서 고개를 들어 올렸다.

앞서 말했듯 나는 이성 간의 사랑은 잘 알지 못한다.

내가 경험했던 약혼과 정략혼은 말 그대로 끔찍한 기억으로 남았기에.

이 중에서도 약혼은 두 번이나 했지만…… 내 상대였던 흑표범 그 새끼는…….

생각도 하기 싫다.

“아빠, 난 그런 걸 물어본 게 아니고.”

일단 아빠가 생각보다 아무렇지 않은 것 같아서 놀랐다.

내가 괜히 너무 신경 쓴 건가?

“당연히 범고래 수인인 건 알지. 그러니까 그냥 어떤 사람인지가 궁금했단 거야.”

정확하게는 벨루스 그놈이 말한 것처럼 엄마가 살아 있는지 알고 있느냐가 궁금한 건데.

“……죽은 사람이기도 하지.”

이어지는 아빠의 말은, 아빠 사회성이 너무 떨어지는 답변이 아니냐는 타박조차 못 할 만큼 무거운 음성이었다.

나는 아빠가 정말 몰라서 이렇게 대답했다기보다는.

‘이게 아빠식의 대화하고 싶지 않다는 신호구나.’

나는 더 말하려다가 끙, 하고 멈추고 말았다.

‘이건 일단 돌아가면서 다시 이야기해 봐야 겠다.’

여기서 더 말하다간 신나게 가더라도 어떻게 될지 모를 이 여행길이 심해처럼 어두침침해지게 생겼으니.

무엇보다 아빠가 가라앉으면 웨일이 겁먹을지도 몰랐다.

“뭐, 됐어. 그냥 궁금했던 거니까.”

난 어깨를 으쓱했다. 아빠의 표정이 찰나 묘해졌다.

“……그렇군. 이것만은 확실하겠어.”

“뭐가 말이야?”

아빠가 다리를 꼰 채 턱을 괴며 나를 물끄러미 응시했다.

“널 딸로 아끼며 그녀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그녀.

어쩐지 조금 간지럽게 느껴지는 호칭이었다.

“……어떻게 생각하게 됐는데?”

“글쎄.”

나는 더는 말하지 않는 아빠를 보며 뺨을 긁적였다.

그래, 뭐. 다음에 또 기회가 있겠지.

이 주제는 깔끔하게 포기하려는데, 문득 아빠가 질문했다.

“넌 결혼을 할 건가?”

“엥? 갑자기?”

왜 갑자기 나한테 이런 질문을?

난 얼떨떨하게 눈을 깜빡였다.

“음, 그게…….”

무어라 대답하려 하는데, 관자놀이로 부담스러울 정도로 반짝거리는 시선이 느껴졌다.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에키온이 보였다.

……너 조금 전까지 졸고 있지 않았니?

게다가 왼쪽뿐만이 아니었다.

오른쪽에서도 시선이 느껴져서 고개를 돌려보니, 이번엔 웨일이 또 있지 않겠나.

넌 왜 초롱초롱해지는데?

현재 마차 안 인원은 아빠와 에키온, 나 순으로 지난번 여정에서와 같았다.

여기에 벨루스를 대신하듯 한 사람이 바뀌었달까.

바로 날 이렇게 열심히 쳐다보는 웨일 말이다.

나는 잠시 질문도 잊고 생각했다.

‘직접 같이 가게 해 달라고 요청했다지?’

듣기로는 웨일 스스로가 아빠의 진단은 어딘가 보통의 경우와 너무 달랐다며, 한동안 붙어 있고 싶다고 했단다.

레바이를 통해서 듣고서 조금 놀랐지.

‘아빠한테 붙어 있고 싶다니……. 그런 놈은 처음 아닌가.’

그렇게 재료를 봐야 할 레바이는 물론 웨일도 함께 가게 되었다.

아틀란은 레바이 호위로 붙였고, 현재 레바이랑 아틀란은 다른 마차에 탄 상태였다.

웨일을 보니 순간적으로 딴생각을 하게 되었지만, 아무튼 간에 다시 질문으로 돌아와서.

‘애들이 이렇게 보는 건, 약간 선생님 첫사랑 이야기 듣는 기분인 건가.’

나는 고개를 갸웃하며 가볍게 내뱉었다.

“난 결혼 안 할 건데.”

그랬더니 여기 있던 세 인원의 표정이 오묘해졌다.

셋 다 제각각이었다.

“왜 안 한다는 거지?”

“잘은 모르겠지만 결혼은 목표를 흐리게 만들어. 난 가족이 있는 걸로 충분해.”

“…….”

“그리고 정략혼은 더더욱 싫어.”

이렇게 말하고 아차 싶었지만 아빠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이었다.

“네가 눈치가 없다는 사실이 퍽 즐거울 때도 있군.”

“눈치가 없다는 소리는 거의 못 들어 봤는데?”

“신경 쓰지 마라. 사소한 부분에서의 이야기니.”

뭐가 사소한데? 더더욱 궁금해지잖아?

“왜, 누가 나랑 결혼하고 싶기라도 하대?”

“있다면 해 줄 생각은 있고?”

“아니?”

생각할 것도 없이 곧장 답이 튀어나왔다. 그리고 곧 장난스럽게 씩 웃었다.

“아니다. 세상 최고의 미남쯤 되면 한번 생각해 볼까.”

왜 결혼 이야기가 튀어나온 건지 몰라도, 확실히 가주를 목표로 한다면 한 번쯤 나올 이야기긴 하다.

가주는 대체로 필요에 의해 반려를 선택한다.

자연에서 암컷 범고래가 튼튼한 새끼를 낳기 위해 수컷을 선택하듯, 강한 아이를 낳기 위해 선택하는 것이다.

그렇게 태어나 불행한 기억이 있는 사람으로서 똑같이 살고 싶지 않은 건, 당연하지 않나?

내 이야기를 끝으로 마차는 침묵에 빠졌다.

나 또한 지나가는 풍경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우리 마차 옆으로 지나가는 또 다른 호화로운 마차가 보인다.

레바이가 탄 마차다.

아틀란도 타고 있는 마차.

게다가 저기엔 다른 일행도 있었다.

일리아가 추천한 ‘탐지 능력’이 있는 수인이었다.

‘탐지 능력이 있는 수인을 출발 시간에 맞춰 적절하게 찾아 보내준 덕분에 큰 도움이 될 터.’

일리아는 스스로 자신한 것보다 더욱 유능한 인물이었다.

‘5년간 열일했다더니, 과언이 아니었지?’

그녀에게 보고받았을 때, 이미 꽤 많은 세력을 끌어들인 뒤였다.

게다가 내 행보가 남달라서 일반 수인들의 지지를 받기가 수월했다고 한다.

내 지지율이 높다나.

‘예상했던 바지만.’

리리벨은 순조롭게 바이얀의 지지자들을 모두 먹고, 본인 자체의 지지율도 가파르게 상승 중이었다.

이 탓에 둘째 백부의 아들, 소르테가 애를 먹고 있었다.

한편, 바이얀, 소르테와 더불어 강력한 후보로 꼽혔던 벨루스는 조교로 가는 기행을 벌인 탓에 나날이 추락하고 있었고.

그놈의 지지도 또한 내 쪽으로 넘어오는 형국이었다.

‘여기까지 생각 못 할 놈이 아니니 의도한 건가.’

끝없이 생각이 이어질 무렵이었다.

“칼립소.”

시선을 돌리자, 에키온이 더없이 진지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무슨 일생일대의 결심이라도 한 것처럼.

“왜 그래 에키온? 어디 아파?”

에키온이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그, 있잖아…….”

나직하게 한마디를 하려는 순간, 마차가 끼익 소리를 내며 멈췄다.

이 마차 안에서 급정거에 허둥거리며 넘어질 인물은 없었다.

아니, 여기 에키온과 웨일을 제외하면 말이다.

나는 서둘러 두 아이를 품에 안았다. 물론 내 몸에 비하면 큰 덩치들이었지만 문제없이 꽉 끌어안았다.

“무슨 일이야?”

가장 먼저 떠오른 건 하나였다.

‘습격인가?!’

설마, 바보같이 이번 길에도 습격을 한다고?

그건 제 수하들을 절벽에 밀어 버리는 일이나 다름없다는 걸 이미 지난 여정으로 알았을 텐데?

“알아보지.”

아빠가 곧 밖으로 나갔다.

한동안 돌아오지 않기에, 나는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둘 다 여기 얌전히 있어. 마차 안은 물의 힘으로 보호되고 있으니까.”

아빠가 보호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두 소년을 둔 채로 서둘러 바깥으로 나갔다.

마차 앞에 웅성거리며 모여 있는 기사들이 먼저 보였고, 그다음으로 가장 앞에 서 있는 아빠가 보였다.

게다가 다른 마차에서 내린 듯 레바이와 아틀란도 그쪽에 서 있었다.

‘무슨 일이지?’

놈들은 하나같이 난감한 표정이었다. 나는 서둘러 달려갔다.

“야, 무슨 일이야?”

“어, 왔냐?”

둘째가 찌푸린 표정으로 날 보다가 고갯짓했다. 설명보다는 보는 게 빠를 거라며.

마침 아빠랑 같이 있던 기사가 몸을 돌렸다. 기사 옆에 있던 마부가 무언갈 열심히 설명했다.

“아니, 그러니까. 정말입니다……. 길 한복판에 이게 쓰러져 있었다니까요?”

사람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바닥에는 무언가 놓여 있었다.

밀 포대인가?

불룩 솟아 있는 형태, 마치 사람이 이불을 덮은 형국이었다.

아무리 봐도 포대 아닌가 싶어서 가까이 다가가니 나보다 먼저 움직이는 인물이 있었다.

기사 하나가 미간을 찌푸리며 들어 올렸다.

“그러니까, 사람이 왜 여기 쓰러져 있냐는 거지. 그것도 어린아이가.”

어린아이?

나는 좀 더 가까이 다가갔다.

아빠는 이미 내가 오는 걸 알고 있었다는 듯 태연한 표정이었다.

곧이어 기사 하나가 사람을 덮고 있던 천자락을 들어 올렸다.

모두가 놀랐다. 동시에 침음을 흘리는 자도 있었다.

“……이건 무슨 동물이지?”

“난 모르겠는데. 처음 봐.”

사실 수중 생물 수인들은 평생 자기 땅에서 나오지 않는 자들이 대다수인 데다가.

육지 동물 수인들 관해서는 대체로 맹수 위주나 토끼같이 아주 유명한 동물 위주로만 아는 경향이 있다.

그러니, 이런 식으로 갑자기 육지 동물 수인을 보게 되면 당황할 수밖에.

모두가 수군거리는 와중에 내가 바짝 다가가자 기사들이 얼른 자리를 비켜 주었다.

그리고 보인 얼굴에 나는 눈을 크게 떴다.

누군가 옆에서 알았다는 듯 박수를 치는 소리가 들렸다.

이제 세 살이나 됐을까?

정말이지 조그마한 아이였다.

머리는 보드라운 갈색이었고, 그 위로 연한 노란빛 줄무늬가 돋보였다.

어째서인지 보통 수인들에겐 없는 동물형태의 귀.

엉덩이에 달린 퐁실퐁실한 꼬리……!

“아, 나 알아. 이 무늬! 안다고. 줄무늬는 호랑이 아니야?”

호랑이 같은 소리 하고 있다.

아니야. 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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