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1화
내 질문에 벨루스는 이전과 다를 바 없는 태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우릴 낳아 준 사람을 말하는 건가?”
“……보통은 그런 말이긴 하지.”
놈은 아빠를 두고도 ‘난 아빠 없는데’를 외치던 놈답게.
낳아 준 엄마에게도 똑같은 태도를 보였다.
‘생각해 보면 세 오빠놈들과 엄마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눈 적이 한 번도 없었지?’
지난 회차에서 ‘피에르 아콰시아델’이라는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은 있다.
하지만 엄마와 관련된 이야기는 없었다.
당연했다.
우리에게 있어 피에르 아콰시아델은 그나마, 가문에 생존했으며 얼굴을 보지 못했을 뿐 소문만은 무성한 사람이었으니까.
우리 모두가 아빠의 소문을 들으며 자라 왔다.
반면에 엄마에 관해서는 이상할 정도로 이야기가 없었다.
그저 정략결혼 상대였으며, 나를 낳을 즈음에 일찍 죽었다는 말 외엔.
‘생각해 보면 이상하긴 하네.’
그 피에르 아콰시아델과 혼인한 사람인데, 이렇게까지 알려지지 않았다니.
병에 걸렸다고는 하나, 아빠는 평생 세간의 관심을 받았고 가주 못지않은 힘을 가진 이였는데.
당연히 결혼 상대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지 않았을까?
“뭐가 궁금한데?”
첫째의 침착한 목소리 덕에 상념에서 깨어났다.
새삼스럽게 이상한 점을 인식하고 나니 호기심은 더욱 커진 후였다.
‘나를 낳았을 즈음에 죽었다면…….’
바꿔 말해 내 위의 세 형제를 낳을 때까지는 살아 있었단 소리 아닌가.
게다가 나와 첫째, 둘째 놈 간의 나이 차가 좀 있는 걸 고려하면 같은 시간을 보냈을 터.
“넌 살아 있는 엄마를 본 적 있지?”
“그래.”
“엄마를 기억해?”
“그 사람에 대한 거라면, 기억한다.”
벨루스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게노르 아콰시아델은 기억 못 할 테고, 아틀란 아콰시아델은 아마…… 머리가 나빠서 까먹었겠군.”
말속에서 둘째를 향한 은근한 무시가 느껴지는데. 이건 앞선 회차에서도 이러했다.
‘둘이 참 지겹게도 싸웠는데, 정작 첫째놈은 싸움이라고 생각도 안 했지 아마……?’
나는 스멀스멀 떠오르는 앞선 기억을 지우며 물어봤다.
“어떤 사람이었어?”
“……? 범고래였다만.”
“내가 그걸 물어봤겠냐?”
“그럼 뭐가 중요한 거지?”
내가 지구에 있을 때 과몰입하는 타입은 아니었다만…….
만약 이놈의 MBTI란 걸 예측할 수 있다면 이놈은 여지없이 ‘S’ 아닐까.
이런 현실적인 인간 같으니라고.
“네게도 이 외에 중요한 사실은 없지 않나?”
“그건 그렇지.”
사실 나 또한 이전까진 전혀 궁금해하지 않았던지라. 일단 수긍했다.
“범고래 방계 가문 출신이고, 정략결혼한 건 알고 있어, 그 외에 어떤 성격이었는지. 뭐, 예를 들어서 잘 웃는 사람이었다든지……. 이런 게 궁금한 거야.”
“대답하는 건 어렵지 않지만 이상하군. 네가 그런 것을 궁금해하던 사람이었나?”
“아니지.”
이놈 생각보다 나를 잘 파악하고 있잖아?
아틀란과 다르게 기억도 없을 텐데 말이지.
“하지만 궁금해졌어. 엄마가 어떤 사람일지. 그리고 아빠를 제외하면 대답해 줄 사람은 너뿐이라서 물어본 거야. 대답하기 싫으면 말아.”
뻗댈 생각이라면 국물도 없다, 이놈아. 경고를 담아 말했더니 벨루스가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싫은 건 아니다. 사실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아서 그런 쪽으로 크게 기억나는 부분은 없는데.”
“아무것도?”
“생각해 보니…… 처음 물의 힘을 가르친 것이 그 사람이었던 것 같군.”
엄마에게 ‘물의 힘’을 다루는 법을 배웠다고? 그것도 첫째가?
‘잠깐, 방계 중에서 물의 힘을 쓸 수 있는 사람은 드물 텐데?’
그래서 라일라가 젊은 나이임에도 요직에 있는 것 아니던가.
게다가 나는 엄마가 물의 힘을 다룰 줄 안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 없었다.
만약 그랬다면 알려질 법한 이야기임에도.
“물의 힘을 다룰 줄 알았다는 거야?”
“그래. 아, 알려진 사실은 아니었지. 본인도 바깥에선 쓰지 않는다고 했다.”
“왜?”
“글쎄.”
벨루스는 묻지 않아서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묘한 사람이었다. 분명 약한 육체를 가지고 있었건만 물의 힘을 쓸 줄 알았으니…….”
귀찮다는 듯 대충 대답하고 넘길 거라 생각했지만, 생각보다 성의 있게 답변하는 모습이라 슬쩍 놀랐다.
‘아무래도 이놈도 그리 오랜 시간을 함께한 게 아닌 모양이네.’
사실 여러 가지 궁금한 부분은 많지만.
제일 궁금한 사실이 있었다.
아마 아빠한테는 물어보기 정말 어려울 것 같지만.
“혹시 엄마는 어떻게 돌아가셨어?”
턱에 손을 얹고 고민하던 벨루스가 내 질문에 나를 응시했다.
유려한 얼굴 위로 금세 찡그림이 내려앉았다.
“대체 그게 무슨 소리지?”
벨루스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을 들었다는 듯 내게 되물었다.
“응? 뭐가?”
나야말로 이해할 수 없었다.
어떻게 죽었느냐는 말에 돌아올 답변이 아니었으니까.
“돌아가시다니?”
“엥? 너 말 못 알아들어? 똑똑하잖아? 어떻게 죽었냐는…….”
“아니, 이해했다. 그게 아니라.”
벨루스의 얼굴이 더욱 찌푸려졌다.
“그 사람은 죽지 않았는데?”
……뭐?
* * *
며칠 뒤.
나와 아빠의 영향력이 세 살 때보다 커진 탓일까.
이번 용의 도시행 또한 매우 빠르게 진행되었다.
‘하기야 가주도 기대하면서 지지하는 여행길인데, 빠르지 않을 수가 없지.’
내가 ‘용의 신부’로 떠난다는 소식에 범고래 사회가 왈칵 뒤집어졌다.
그도 그럴 게, 어린 나이임에도 유력한 후보로 꼽히던 ‘칼립소’란 인물이 돌연 죽으러 가는 길에 오른 꼴이었으니까.
가주가 미쳤든 칼립소 본인이 미쳤든. 둘 중 하나가 미쳤다고 할 수밖에 없는 선택이었다.
‘물론 미치기는커녕 나나 그 할망구 모두 정정하지만.’
계획이 드러나는 것을 피하기 위해 나는 아무것도 정정하지 않았다.
조금 놀랐던 것은…….
“공뇨님, 우리 같이 도망가여! 형이 돈 많아여!”
“공녀님, 어디로 도망가실래여?”
……일리아, 이 양반이 비밀로 하랬더니 자기 자식한테도 비밀로 할 줄은 몰랐지.
덕분에 실로 오랜만에 쌍둥이가 엉엉 우는 모습을 봤다.
‘철든 척해도 여전히 아기들이라니까.’
너무 어린 시절부터 본 탓인지 벨루가들은 커도 큰 것 같지가 않아.
고개를 살래살래 저으며 웃는데, 여러 쌍의 시선이 내리꽂혔다.
나는 태연하게 받아들이며 고개를 돌렸다.
‘벌써 이만큼이나 왔네.’
창밖으로 드넓게 펼쳐진 황무지가 보였다.
아마 지난 여행길보다 더 빨리 도착하지 않을까?
“용의 신부로 가는 건 처음인데.”
그러자, 내 옆에 얌전히 앉아 있던 에키온이 흠칫했다.
동시에 아빠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그걸 두 번이나 하는 사람도 있나?”
“아니, 없지.”
네 번째로 하고 있는 사람은 여기 있지만 말이야?
“평화롭구나 싶어서.”
“본래 태풍이 오기 직전에 가장 고요한 법이라지.”
“와, 나를 태풍으로 여겨 주는 거야?”
나는 웃다 말고 멈칫했다.
아빠의 얼굴을 보자니, 잊고 있던 벨루스의 말이 다시 떠올랐던 탓이다.
아니, 잊기는커녕 줄곧 잊으려고 애썼지만 잊히지 않는 말이다.
“그 사람은 죽지 않았는데?”
어찌 잊을 수 있을까?
‘엄마가 죽지 않았다니…….’
“아아, 이건 그 ‘피에르 아콰시아델’ 님조차도 모르실 수도 있겠네.”
그럼 대체 어떻게, 뭐하고 살고 있는데? 왜 죽었다고 알려진 건데? 모두가 의심 없이 그리 생각하고 믿고 있었다.
……아빠조차도.
나는 이 모든 질문을 벨루스에게 사납게 던졌지만, 첫째놈은 대답하지 않았다.
“듣고 싶으면 더 강해져 봐.”
감히 건방지게, 이런 소리나 하면서. 그저 그 자리에서 때려눕히지 못했던 건.
나를 보며 웃는 얼굴이 3회차, 마지막 순간 나를 보며 웃던 얼굴과 겹쳐 보였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그놈은 고집만 더럽게 세서. 이미 족친다고 말할 얼굴이 아니었어.’
내게 몇 번이나 무참히 깨지면서도 끝끝내 패배를 선언하지 않던 놈이다.
고집만큼은 세 형제 중 제일이었다.
‘뭐, 게다가 족치는 건 돌아가서도 할 수 있으니까 말이지.’
나는 이런 생각을 하면서 아빠를 빤히 보았다.
여러 다른 생각을 하고 싶지만 아무래도 이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 같다.
이러느니 물어보는 게 낫지 않을까.
‘진짜 궁금한데, 물어봐도 되나?’
사실 나한테 섬세함은 딱히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아빠가 엄마를 사랑했는지 어쨌는진 모르겠고. 어쨌거나 내가 알지 못한 이성 간의 이야기니.
‘나도 약혼이나 정략결혼은 해 봤지만 어디 상대가 제대로 된 XX였어야 말이지.’
끙끙대는 티가 너무 났던 걸까?
“대체 뭐 때문에 날 보며 뭐 마려운 송사리처럼 끙끙대는 거지?”
“아아, 음, 그게 실은…….”
나, 돌려 말하는 거 못한다.
그래, 언제는 돌려 말했나? 직구로 승부하자.
“엄마는 뭐 하는 사람이었어?”
칼 같은 답변이 돌아왔다.
“범고래였다만.”
“…….”
……벨루스 이 시키, 아빠 자식 맞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