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9화
어딘가 할머니치고는 장난스러운 말의 내용과 다르게 집무실 분위기는 살벌하기 짝이 없었다.
당연했다.
가주가 된 이후 집안의 최강자로 군림한 지 십수 년, 그간 그 누구도 이런 식으로 굴지 않았을 테니까.
‘게다가 집무실을 지키는 호위가 우릴 봤다. 분명 보고를 올렸을 거야.’
어울리지 않게도 시간을 칼같이 지키는 걸 선호하는 인간이었다.
‘뭐 본인도 똑같이 시간을 딱 맞추니까.’
주먹 하나로 평정한 패도적인 이미지에 비하면 꽤 이질적인 특징이었다.
내가 집무실 인테리어를 온통 블랙으로 도배해 둘 때부터 알아봤다.
하기야 무엇이 됐든 하나쯤 집착하는 범고래들은 하나같이 정상은 아니었다.
“안녕하세요, 할머니.”
나는 씩 웃으며 할머니와 마주했다.
‘화가 잔뜩 났구만.’
아니나 다를까. 할머니는 어처구니없는지 눈썹을 들어 올렸다.
여기서 끝이 아니라는 듯 느긋하지만 경고 가득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허, 안녕? 안녕이라.”
나는 정중하게 인사를 올림과 동시에 말을 이었다.
“가주가 되시고 기다려 보신 건 손에 꼽으시죠?”
“…….”
“어때요, 이런 신선한 경험.”
도발적인 한마디에 방을 짓누르는 압박감이 더욱 강해졌다.
‘오, 그래도 예전보다는 살 만하네.’
물론 나라고 아무 생각 없이 뱉은 말은 아니었다. 다만, 아주 조금은 될 대로 되라는 식의 마음도 있었달까.
‘여차하면 뒤에 있는 우리 아빠가 어떻게든 해 주겠지, 하는 마음?’
조금 우스웠다.
누군가에게 기대어 느끼는 든든한 마음이라니.
이전 회차에서 느꼈다면 약해질까 봐 경계했을 마음이다.
‘아빠는 괜찮아.’
아니나 다를까 집무실을 가득 채운 할머니의 힘이 점점 더 거세지자 기다렸다는 듯 내 몸이 둥실 떠오른다. 아빠의 품에 안기기 무섭게 숨쉬기가 편안해졌다.
너무 편했다. 지나치게.
‘으음, 약간은 위기감이 느껴지네. 이거 너무 익숙해지면 안 될지도.’
아빠가 나를 품에 안은 채 인사를 올렸다.
“어머니를 뵙습니다.”
“허어, 이건 또 누구더냐.”
할머니는 아빠에게도 삐딱한 음성을 숨기지 않았다.
“열 번을 불러 본들 지느러미 하나 볼 수 없던 놈 아니더냐.”
“제 딸의 알현을 허락하면 볼 수 있습니다.”
“……자랑이냐?”
“…….”
할머니 얼굴 위로 한심한 시선과 함께 ‘어쩌다 저게 저렇게 됐지?’ 하는 시선을 보냈다.
“봐도 봐도 기함할 노릇이군. 세상에 관심 한 톨 없던 놈이…….”
곧이어 방을 가득 채웠던 힘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앉거라.”
할머니가 고개를 까딱했다.
나는 자리에 앉으면서도 속으로 고개를 갸웃했다.
‘뭐지?’
할머니가 전보다 누그러졌다.
이상했다.
분명 감히 제가 귀중하게 여기는 시간을 낭비했다고, 저것보다 더 사납게 굴어야 정상일 텐데?
“그래, 날 보겠다고 한 용건이 뭐지?”
하지만 완전히 가라앉힌 건 아닌지, 사나운 기운이 남은 목소리가 경고처럼 들려 왔다.
“말해 두건대, 그 내용이 흥미롭지 못하면 결코 네게도 이롭지 않을 거다. 조약돌아.”
……역시나 어디 한 군데 부러트려 놓겠다거나, 곤죽을 만들겠다는 말 대신 이런 부드러운 경고도 이상했고.
‘아빠랑 왔기 때문인가?’
나는 흘끗 아빠를 보았다.
뭐, 어찌 됐건 좋다. 용건을 말하기 편해졌으니.
‘피차 오래 봐서 좋을 것 없지.’
나는 의젓하게 허리를 폈다.
“우선 허락하신 시간보다 늦어져서 대단히 죄송합니다.”
처음부터 뻗대려고 한 건 아니었다. 다만, 필요했을 뿐이다.
저 가주란 작자는 변덕스럽고 성격마저 괴팍하기 짝이 없어서.
‘무조건 고분고분한 놈은 또 안 좋아한단 말이지.’
벨루스 그놈을 나름 예뻐라 했던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백날을 백부인 로데센과 아들인 바이얀이 입안의 혀처럼 굴어 봐야, 강한 데다 튕길 줄도 알던 벨루스에게 은연중에 관심을 주곤 했으니.
“쯧, 첫째 돌멩이는 맛이 간 것 같더니…… 넌 그나마 아직 정상이로구나.”
물론 그 첫째 오빠놈은 지금 어딘가 이상했다. 지금 할 이야기는 아니지만 말이다.
“그 짧은 혀로 사과도 할 줄 알더냐.”
비꼬는 것이 분명한 말이었지만 나는 그저 단정히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다시 한번 죄송합니다.”
대신 고개를 들며 생긋 웃었다. 더는 뻗대지 않겠다는 듯.
단, 흘러나온 말만은 범상치 않게.
“하지만 오늘 가져온 용건은 분명 할머니를 흥미롭게 할 거예요.”
“허?”
할머니가 거만하게 다리를 꼬았다.
“장담할 수 있느냐.”
나는 대답하는 대신 끄덕였다. 자신있다는 듯이.
“그래, 빈 배가 요란하다는 말이 맞아떨어지지 않기를 바라거라. 난 지금 여전히 심기가 불편하니.”
곧 할머니의 허락이 떨어지자, 얼른 입을 열었다.
“저는 용의 신부예요.”
이윽고 나온 말은 그 가주로서도 생각지 못한 말이었던 듯.
나는 찰나였지만, 처음으로 할머니의 얼빠진 얼굴을 보았다.
“……뭐?”
나 참, 신기하네. 저 할망구가 저런 얼굴도 하다니.
무엇보다 내가 저런 얼굴로 만들었다는 사실에 통쾌함을 느꼈다.
물론 찰나였기에 할머니의 표정은 나타난 것보다 빠르게 사라졌다.
‘잊고 있었나 본데.’
하기야 잊은 건 할머니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현재 나는 누가 뭐라 해도 강력한 후계 후보였다.
어딜 가든 관심과 시선, 그리고 소문을 이끌고 다니는 후보.
가주 입장에서 어찌 신경을 쓰지 않을 수가 있을까?
그럼에도 나는 이에 그치지 않고 생글생글 웃는 낯으로 말했다.
“그러니 용의 도시로 보내 주세요. 신부니까요.”
용의 신부.
앞서 말했지만 이 제국에서는 죽으러 가는 자리의 다른 이름이나 마찬가지였다.
신부는 용의 폭주를 잠재우기 위한 제물이다.
이 사실을 가문 모든 이들이 알고 있었으니까.
“늦은 주제에 피라미가 상어 먹는 소릴 하는구나.”
할머니는 세상 한심한 소리를 들었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심기가 불편해 보였다.
“그게 어떤 의미인지 아느냐?”
암요, 통상적이라면 난 지금 죽으러 가겠다는 소릴 한 거죠.
하지만 댁이 모르는 게 있는데.
난 절대 쉽게 죽지 않아.
“저는 용의 도시에 다시 가기를 바라요. 허락해 주시겠어요?”
나는 또박또박 내 의견을 다시 말했다.
할머니의 검푸른 눈동자가 경고를 띠고 어둡게 빛을 냈다.
“지금 내 손으로 내가 인정한 가문의 직계를 보내란 소리냐?”
이건 싹수가 보이는 어린 새싹, 즉 강자에 대한 집착이겠지.
실로 범고래 대가리다운 모습이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이상하다는 듯이.
“하지만 저를 용의 신부로 선택한 건 할머니세요.”
망할 당신이 나를 선택했잖아.
지난 세 번의 인생 동안, 용의 도시엔 보내지 않을지라도 결국은 다른 곳에 억지로 보내 버렸잖아.
“저는 어차피 가야 할 일, 조금 더 일찍 가겠다 마음먹은 것뿐이에요.”
“…….”
나는 이 순간에도 가주가 자신의 명령, 나를 용의 신부로 삼은 것을 철회하지 않는 이유를 안다.
‘자존심.’
제 명령을 번복하는 것에 대한 고민.
나는 이걸 같잖은 자존심이라 부르겠다.
세 번의 인생을 살고서야 알겠더라.
당신은 분명 대단한 강자이지만.
좋은 가주 감은 아니라는 걸.
“그래서, 가주 위는 포기하겠다는 것이냐?”
할머니가 다리를 꼰 채 머리를 기댄 그대로 삐딱하게 물었다.
‘허, 내가 언제 가주를 노리겠다고 직접 말한 적이라도 있었냐?’
물론 노리는 건 사실이지만.
우습기도 했다. 언제는 제대로 된 후계자 취급을 해 준 것처럼 말하고 있어.
“할머니의 자리는 직계손이라면 누구나 욕망하는 자릴 거예요.”
“허, 누구나에 너도 들어간다?”
“…….”
강자의 정점이 된다는 것.
범고래로 태어나 피가 끓는, 가장 욕망하는 것.
생각해 보면 아빠가 특이한 케이스지. 범고래 직계 모두가 바라는 일일 것이다.
“할머니, 이건 어떠세요.”
나는 당황하지 않고 차분하게 말했다.
“제가 용의 도시로 가는 것을 바꿔 생각해 주시면 좋겠어요.”
“또 무슨 궤변을 늘어놓을 생각이냐. 조약돌아.”
“네, 할머니께서 말씀하시는 조약돌은 이렇게 생각해요.”
“…….”
“육지 동물 수인이 하나같이 수중 동물 수인을 무시한다는 사실은 할머니께서 너무나 잘 아실 거예요.”
육지 동물 수인의 무시와 경멸은 오랜 시간 쌓여 온, 이제는 스포츠와 같아진 혐오의 일종이었다.
수중 동물 수인 중에서 범고래 같은 강자에겐 찍소리 못하는 주제에.
이들은 틈만 나면 우리를 조롱하고 핍박하려 들었다.
“그래서?”
“제가, 가서 커다란 판을 벌이고 올게요.”
지난 용의 도시행은 그저 지구로 가고 싶다는 소원으로 똘똘 뭉친 조용한 여행이었다.
용 공작을 만나는 것이 최대 목표였고, 목표에 충실한 여정이었다.
내가 용의 도시로 다시 한번 가게 된다면, 더는 이전과 같지 않을 것이다.
생각해 봤다.
재료를 모으는 것.
재료가 한두 가지가 아니기 때문에 분명 시선을 모을 것이다.
게다가 투스를 데려오는 것.
용 공작의 모습을 한 투스가 사라진다면.
‘지난번과 다르게 이번엔 의심을 피할 수 없을 터다.’
……그런 거라면.
나는 씩 웃었다.
나는, 정면 돌파를 택하기로 했다.
“이 사건 이후로 다시는 수중 동물 수인을 쉽게는 보지 못할 일을요.”
어떤 일을 덮기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이 무엇인지 아는가?
바로.
‘더 큰 판을 벌이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