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8화
어쩐 일인지, 에키온이 잠이 든 채로 일어나질 않았던 것이다.
에키온이 저렇게 잠에 빠진 건 3일 전. 아빠가 웨일에게 진단을 받은 날부터였다.
그날 지하실 밖으로 나왔더니, 복도에 색색 잠들어 있는 에키온을 보고서 얼마나 놀랐던지.
둘째놈의 말에 따르면 에키온이 무려 지하실 앞까지 찾아왔었다고 했는데…….
화를 내다 말고 픽 쓰러졌다나?
“야, 그래도 그렇지. 애를 복도에 그대로 버려 둬?!”
“그럼 어떡해! 야, 가까이 다가가면 힘으로 어찌하려 드는데 어떻게 해?”
알고 보니 아틀란 그놈만 옷이 엉망이었던 이유가 있었다.
쓰러진 에키온을 보고서 아틀란이 다가갔다가 엉망이 된 거였단다.
“야, 이씨. 내가 얼마나 놀란 줄 아냐? 왜 용 공작이 거기서 나와!!”
나는 바로 원인 파악에 들어갔다.
자세한 상황인즉, 에키온이 대뜸 화를 내면서 힘을 쓰려 하기에 아틀란이 어떻게든 몇 번 막았는데.
잠시 뒤, 에키온이 진땀을 뻘뻘 흘리다가 그대로 픽 쓰러졌다는 거다.
놀라긴 했지만 처음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하루 정도 안에 눈을 뜰 줄 알았던 것이다.
그러나 에키온은 그대로 눈을 뜨지 않았다. 며칠 동안이나.
‘아픈 건가 싶었지만…….’
어렵게 초빙한 의원도 에키온은 그저 자는 것뿐이라고 했다.
혹시 몰라 웨일을 데려와 에키온을 ‘진단’하게 했는데 병도 상처도 없다고 했다.
대신 무뚝뚝하고 우직한 얼굴로 묘한 말을 남기긴 했다.
“공녀님, 이 애, 이상해요. 몸 구조가…….”
“뭐가 이상한데?”
“말 못 하겠어요.”
“그게 뭐야.”
치료 능력을 가진 사람에게 있어 인체와 관한 비밀은 말하지 못하는 게 당연하다나.
웨일은 아무래도 에키온의 정체가 범상치 않은 존재임을 알아차린 것 같았다.
‘하기야 인간 세상에 하나 남은 용 수인이니까, 당연한가.’
아무튼 간에 웨일마저도 깨어나지 않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하니.
‘무슨 영문이지……?’
투스의 수첩까지 뒤져 보았지만, 정확한 해답을 찾을 수 없었다.
그나마 힌트라고 할 수 있는 한 문장을 찾았을 뿐.
「공작님은 스스로 필요할 때 성장해!」
투스가 여기 있었다면 정확하게 알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나는 주먹을 꾹 쥐었다.
‘이렇게 된 이상 더더욱 빠르게 용의 도시에 갈 이유가 생겼어.’
잠을 자고 있을 뿐이라지만, 에키온은 이따금 괴롭다는 듯 신음을 내뱉거나 진땀을 뻘뻘 흘렸다.
걱정되는 마음에 청어 자매 중 한 사람 디디를 남겨 두고 온 참이었다.
‘어서 다녀오자. 이젠 정말 투스가 필요해.’
어쩌면 에키온은 그간 투스가 필요한 상황에도 몇 번이나 참아 온 게 아닐까.
이런 걱정마저 들었다.
나는 한숨을 푹 쉬었다.
“한숨이 늘었군.”
현재 나는 아빠의 품에 안겨 이동 중이었다.
“응, 아무래도 우리 용용이가 걱정되어서 말이야.”
“그런가.”
“그렇지, 나한테 가족이나 다름없는 애인걸.”
“가족이라…….”
아빠의 말투가 어쩐지 오묘했지만 머리로 와닿는 손에 곧 잊혀졌다.
“그래서 일정을 당긴 건가.”
“응. 어차피 용의 도시로는 다시 가려 했어.”
“남겨 둔 권속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응, 그렇지. 그리고 용의 도시로 가는 건 일단 가주의 허락이 필요하니까.”
할머니의 집무실까지 얼마 남지 않았을 무렵, 누군가 헐레벌떡 우리에게로 뛰어왔다.
“고, 공녀님, 그리고 피에르 님!”
“음?”
돌아보면 메이드복을 입은 하녀였다. 하지만 나는 디디와 비슷한 머리 색을 보고 금방 알아차렸다.
청어 수인이다.
“디디가 전언을 전했어요.”
청어 수인끼리는 텔레파시를 보낼 수 있으니, 혹시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하라고는 했지만…….
“귀중한 분께서 눈을 뜨셨다고……!”
에키온이 눈을 떴다!
* * *
“에키온!”
나는 문을 걷어차듯이 열었다. 문에서 끼이익 하고 부서지기 직전의 소리가 들려 왔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지금 가주 알현이고 나발이고 이게 문제가 아니었다.
‘우리 용용이가 깨어났다잖아!’
덕분에 나는 약속까지 미리 잡아 둔 알현을 무려 가주 얼굴도 보기 전에 박차고 나왔다.
‘할머니, 이번만 물 좀 먹으라지.’
나는 서둘러 달려갔다.
안 그래도 내 발로 달려간다는 걸 아빠가 본인에게 안겨 가는 게 더 빠르지 않겠냐며 물의 힘을 써 가면서까지 달려온 길이었다.
멍하니 앉아 있던 에키온이 고개를 돌렸다.
아이에게서 무언가 표정이 스치기도 전에 내가 먼저 도달해 에키온의 목을 끌어안았다.
‘어라…….’
에키온을 끌어안다 말고 깜짝 놀랐다.
뭐야, 조금…….
‘커진 건가?’
착각이 아니었다. 이렇게 안았을 때 분명 어깨가 여기까지밖에 안 왔었는데.
조금 높았다.
“칼립소.”
이어 들려 온 탁한 목소리에 나는 흠칫 놀랐다.
이런 걸 신경 쓸 때가 아니지!
“에키온, 너 괜찮아? 갑자기 쓰려졌다고 해서 얼마나 놀랐는지…….”
“나, 아팠어?”
“모르겠어. 의원도 웨일도 네가 아픈 거라고 하지 않아서……. 그보다 나한테 물으면 어떡해.”
이렇게 말하고선 아차 싶었다.
이 애는 감정뿐만 아니라 고통에도 둔했지.
나는 끌어안은 채로 등을 토닥였다.
“지금 아픈 곳은 없어? 그러니까 불편하거나 몸이 무겁다거나…… 이런 곳이 없냐는 말이야.”
“응……. 없어.”
“그래, 다행이다. 대체 왜 갑자기 쓰러진 거야?”
“…….”
에키온은 웬만하면 내 모든 말에 열심히 대답하려 한다.
이런 에키온이 대답하지 못하는 일은 자신조차도 잘 모르거나, 지하실처럼 끔찍한 기억이 있거나.
둘 중 하나였다.
“……별일 아니라면 됐어.”
이야기는 나중에 천천히 들어도 좋으니까.
나는 에키온의 이마에 손을 올려 열을 쟀다.
“음, 열은 없는 것 같은데. 나중에 의원을 다시 데려올게.”
“칼립소.”
“응?”
이마에 올린 내 손 위로 에키온의 손이 살짝 올라왔다.
……내가 느낀 게 착각이 아니라는 듯 조금 더 커진 손이었다.
이전엔 나랑 자를 잰 듯이 똑같은 크기였는데 말이지.
“보고 싶었어.”
툭, 내뱉는 말에 나는 조금 놀랐다. 하기야 며칠 만에 눈을 떴으니 모든 게 조금 생경하게 느껴지지 않을까.
“그래, 나도 보고 싶었어. 이젠 아프지 마.”
에키온이 내 손을 잡은 채로 눈을 지그시 감았다.
“응…….”
왜인지 아주 안심했다는 얼굴을 한 채로.
* * *
용은 사실 외로운 존재다.
에키온은 눈을 뜬 순간부터 이 사실을 본능적으로 새기고 있었다.
이는 용의 유전자에 새겨진 전언으로 남아 있기도 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란다. 우린 외롭게 만들어졌거든.”
“평생, 죽을 때까지, 똑같은 종 하나 없이 혼자라서.”
아마도 이 전언을 새겨 넣은 이는 최초의 용일 것이다.
“그러니 확실한 ‘내 것’을 만들렴.”
나긋하게 속삭이는 목소리.
그 목소리는 언제나 에키온의 머리 한구석을 차지해 왔다.
다만, 용의 성에서 홀로 지내 온 에키온은 ‘내 것’이라는 개념을 알지 못했다.
“저것의 옆에는 아무것도 두면 안 된다. 절대로.”
“아무것도 보지 못하면 욕심내는 것도 없겠지.”
“용의 반려가 생기지 않도록 주의해……!”
그리고 앞의 칼립소를 응시한다.
칼립소는…… 내 거야?
애석하게도 머릿속의 목소리는 ‘내 것’은 어떤 것을 칭하는 것인지, 어떻게 만드는 것인지.
아무것도 알려 주지 않아서 에키온은 스스로 판단해야 했다.
그렇게 생각하고 생각하다가 깨달았다.
가지고 싶은 걸, 가져야겠다고.
그럼 그것이 내 것이잖아?
그러기 위해선 스스로가 더 대단해져야 했다.
적어도 칼립소가 더는 보호하기만 하는 대상으로 보지 않도록.
더는 칼립소의 눈높이에 맞춰 성장을 억제하는 것만으로는 안 되는 것이다.
지하실 앞에서, 지하실에 끝내 들어가지 못하는 스스로를 느끼며 깨달은 사실이었다.
“……그럼 내가 가장 강했을 때의 힘을 가져오는 것도 가능해?”
칼립소의 소원을 이루어 줄 수 없다. 그러니까 더욱 강해져야 해.
칼립소가 나를 버리면 안 돼.
버리면…….
버리면?
“오늘 네가 했던 이야기는 다 잊는 걸로 하자. 나, 물의 힘은 내가 알아서 깨우칠게. 최악의 경우엔…… 없더라도 괜찮을 거야. 난 네가 죽는 거 싫어.”
버리는 건 싫어.
그러니까 내가 죽지 않고 소원을 들어줄 만큼 강해지면 돼.
그런데, 그럼에도.
날 버리면…….
찬란한 보석 같은 눈동자가 어둡게 타오르다가 이내 태양이 저물 듯 눈꺼풀 사이로 사라졌다.
* * *
나는 발걸음도 가볍게 후후, 웃으며 걸었다.
‘후, 에키온도 깨어났겠다 확실히 걸음이 가볍다, 가벼워.’
어쩐지 함께 걷는 아빠의 표정은 평소보다 굳은 것 같아 보였지만, 나와 눈이 마주치면 평소와 같은 얼굴을 했기에.
나는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일단 돌아가서 물어보기로 했다.
그리고 이윽고 다시 할머니 집무실에 도착했을 때.
“허, 이제야 오느냐?”
무려 자신을 기다리게 했다는 이유로 심기 불편하다 못해 분노어린 할머니와 마주했다.
아니, 벼르고 있었던 듯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 같은 낯이다.
“감히…….”
오늘의 메인 코스였다.
“날 기다리게 만든 고얀 낯짝이로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