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0화
나는 미심쩍은 눈으로 아틀란을 응시했다.
알고 보니 K-조선의 피가 흐르나, 어디서 나이를 따지고 있어?
나는 아틀란을 한번 노려보고는 고개를 돌렸다. 싱글 웃는 일리아를 보며 말했다.
“이야기는 어떻게 됐어?”
“네, 그게 말이에요…….”
일리아가 내게 고개를 살짝 숙였다. 대답하는 대신 레바이를 슬쩍 응시했다.
“내가 말해도 되니?”
레바이가 후련한 낯으로 어깨를 으쓱했다.
“레바이와 레바이가 데려온 소년은 저희 벨루가 가문에서 보호하기로 했습니다.”
“그래.”
그렇게 됐구나. 예상했던 결과라 놀랍진 않았다.
다만 방으로 들어갈 때만 해도 일리아도 믿지 못하는 눈치였는데, 무슨 이야기가 오갔을까 궁금하긴 했다.
‘만약을 대비해 아틀란을 들여보낸 거긴 하지만.’
설마하니 무력 충돌이 일어날까 싶었지만, 있더라도 아틀란 저놈이 능히 중재를 할 수 있을 테니까.
뭐, 중재라기보다는 두 인물 다 바닥에 눕히는 쪽에 가깝겠지만. 그게 어디야.
어디로 가든 서울로만 가면 되는 거 아니겠어?
“들어갈 때만 해도 한쪽은 원수 보듯 본 것치곤 이야기가 잘됐네?”
“네, 안 그래도 어릴 적부터 보던 친구의 아들이 왜 이리도 저를 적 보듯 노려보나 했더니, 사정이 있었더라고요.”
일리아가 흘끗 레바이를 보면서 한 말인즉 이러했다.
돌고래들의 우방 중 하나가 상어 쪽으로 돌아서서 돌고래를 배신했다나?
‘확실히 지인 중에 배신자가 생기면, 누구든 의심스러웠겠네.’
세상에 믿을 놈 하나 없다는 감정, 내가 잘 알지.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아무래도 오래 알고 지내던 사이였음에도 이래저래 의심을 다 풀진 못한 것 같은데, 잘 대해 줘.”
“네, 그런 것 같더라고요. 오랜만에 취조당하는 기분이었답니다. 친구인 돌고래 수장도 저를 이리 대하진 않는데 말이죠.”
“……윽. 이미 죄송하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럼그럼. 난 관대하게 넘어갈 생각이란다. 물론, 돌고래 수장이 언제 바뀌었나 생각은 했지만?”
일리아는 루가루바의 모친답게 평온한 얼굴로 독설을 퍼붓고는 손을 탁탁 털었다.
“그럼 이동은 바로 진행할까요?”
“그래.”
그렇게 레바이와 웨일의 거주지가 정해졌다.
‘이제 얼추 마무리됐네. 조만간 아빠와 웨일이 함께할 자리를 마련하면 되겠지.’
모든 것이 잘 해결된 느낌이었다.
이렇게 홀가분한 기분이었는데 레바이와 웨일이 떠나기 전에 약간의 해프닝이 생겼다.
“야!”
각자 헤어지기로 하고, 웨일과 레바이가 일리아를 따라서 떠날 차례였다.
그런데, 웨일이 떠나는 대신 내 옷자락을 붙들었던 것이다.
나는 눈을 깜빡였다.
‘옷자락을 붙드는 것도 우리 용용이랑 비슷하네?’
아무래도 이 소년을 보며 에키온을 떠올린 탓일까, 화가 나거나 짜증이 나지 않았다.
나는 뿌리치지 않은 채 무슨 짓이냐는 듯 쳐다보기만 했다.
“왜 그래?”
“네가, 나랑 형을 데려가는 거 아니야?”
나는 고민하다가 말했다.
“넓게 보자면 너랑 레바이 모두 내가 거두는 것 맞는데?”
다만 당장 데려가지 못할 뿐이지.
이런 이야기는 레바이가 웨일에게 해 줄 줄 알았던 탓에, 말하지 않긴 했다.
나는 좀 더 고민하다가 슬쩍 웨일에게 다가갔다.
웨일은 갑작스럽게 내가 가까워지자 당황한 눈치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웨일의 멱살을 확 쥐고 끌어당겼다.
“어머나.”
“……무슨 짓입니까!”
나는 지켜보던 이들이 멈칫한 틈을 타 웨일에게만 들릴 정도로 속삭였다.
“왜? 저쪽은 착한 사람이 아니야?”
“……차, 착한 사람이야.”
“그럼 됐네.”
나는 웨일의 귀에서 입을 떼며 다시 마주했다. 멱살을 쥔 그대로 씩 웃었다.
“조금만 기다려, 애기야. 나랑 살고 싶으면 말하지 그랬어?”
“…….”
어차피 이 애가 살아 있는 치료약인 이상 아빠 옆에 두는 쪽이 제일 좋겠지.
안 그래도 빠른 시일 내 옮길 수는 없을지 알아볼 생각이었다.
누군가 웨일의 멱살을 쥔 내 손을 붙들었다. 돌아보면 레바이였다.
“아이를 위협하시는 겁니까?”
“그럴 리가. 우리 좀 친해졌어.”
“……대체 언제.”
“네가 일리아랑 오붓한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나는 위협하려는 게 아니었다는 듯 손에서 힘을 뺐다.
“지금은 여기서 헤어질 시간이야.”
나는 레바이에게 붙잡히지 않은 손을 들어 선선히 흔들었다.
“저도 묻고 싶었는데, 왜 당신이 우릴 직접 거두진 않는 겁니까?”
“나야말로 묻고 싶은데, 너라면 거기까지 다 생각한 것 아니었나?”
“…….”
“내가 지금 당장 너흴 데려가면 눈에 띄어. 오밤중에 상어랑 대면하고 싶어?”
“…….”
“보아하니 몰랐던 건 아닌 것 같고, 뭘 묻고 싶은데?”
레바이가 무어라 말하고 싶은 것처럼 입술을 달싹이다가 이내 작게 한숨을 쉬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싱겁게 끝난 해프닝이었다.
* * *
레바이는 그저 묻고 싶을 따름이었다.
‘어째서 저를 이리도 잘 아는 것처럼 말씀하십니까?’
그랬다. 자신에 대해 아는 거야, 그럴 수 있다.
그래. 자신은 돌고래였고 돌고래들 사이에서도, 교육 기관에서도 두각을 드러낸 수재였으니 알 수 있단 말이다.
하지만 칼립소 아콰시아델은 이에 그치지 않고, 자신의 성격, 가치관, 신념…….
레바이라는 존재에 대한 모든 것을 아는 사람처럼 말했다.
마치 수년은 옆에서 바라본 것 같이.
생경했다.
‘게다가 나를 제외한 누구에게도 마음은 주지 않던 웨일이…….’
모두에게 친절하고 예의 바른 것 같지만 사실은 좀처럼 마음을 열지 않던 웨일이 고작 몇 분 사이에 칼립소의 옷자락을 쥐다니.
“참 희한한 일이지?”
고개를 들면, 어느새 복도였다.
일리아의 가족인 로바와 루가루바 쌍둥이가 있는 방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일리아 벨루가는 레바이의 고민을 안다는 듯 작게 웃고 있었다.
모친의 친구이기에 잘 아는 사람이었다. 본래 이렇게 미소가 잦은 이가 아니었건만.
“칼립소 님을 본 아이들은 다 비슷한 반응을 보이더라고. 그분이 좋아 어쩔 줄 몰라 하던데, 너도 우리 애들처럼 된 거려나?”
“무슨 말씀이십니까?”
“첫눈에 반한 건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이게 대체 무슨 소리야. 레바이의 얼굴이 대번에 일그러졌다.
전혀 근거 없는 소리였다.
“놀리지 마십시오. 그런 것이 아니니.”
“그래? 아니라면 아쉽구나. 하지만 확실히 저분을 만난 아이들은 다들 비슷한 반응을 보여.”
“…….”
일리아는 잠시 5년 전 과거를 회상했다. 칼립소를 처음 만났던 무렵을.
“근데 애들만 그런 건 아니야.”
일리아가 툭 무뚝뚝하게 제 가슴을 두드렸다.
“저분은 참 신기하게 어른인 내 가슴도 흔들어 놓는단다?”
“…….”
“그러니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들일랑 잠시 미뤄 두렴. 지금은 편안히 쉴 때가 아니니. 우리 애들이 오랜만에 너 본다고 들떠 있단다.”
“…….”
“고생 많았다.”
레바이는 그제야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그래, 이 위화감이 무엇이었는지는 칼립소를 다시 만나서 알아보면 그만이었다.
자신의 ‘특기’는 이런 일을 위해 존재하는 능력이 아니었던가.
“네, 감사합니다.”
* * *
‘어떡하지.’
아게노르는 최근 불만이 많았다. 아니, 이걸 불만이라고 할지 불안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조만간 신삥, 아니 신입이 들어올 거야. 소개해 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