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막 범고래 아기님 (129)화 (129/275)

제129화

생각지 못한 이야기에 눈이 휙 돌아갔다.

어째서인지는 몰라도, 날 향한 경계가 가득한 눈이건만.

입은 눈과 반대로 술술 이야기를 뱉어냈다.

“엥?”

“……우리의 능력은 대상을 구분하는 게 우선이야.”

나는 눈을 깜빡거렸다.

‘구분?’

어떤 구분을 말하는 걸까나. 어째서 이런 사실을 말하는 것인지 몰라도 의문이 먼저 샘솟았다.

“잠깐만. 너 지금…… 레바이도 모르는 사실을 나한테 말하는 거야? 그것도 오늘 처음 본 사람한테?”

첫인상만 봐서는 그리 순진한 아이처럼 보이지는 않았는데.

아직도 날카로운 걸로 제 목숨을 도마에 올려 두고 협박하던 모습이 선명했다.

게다가 그 레바이랑 함께 자란 아이였다. 레바이가 허투루 가르쳤을 리 없었다.

‘레바이 그놈은…… 낯선 아저씨가 오면 싫어요, 안 돼요, 외치도록 가르치는 게 아니라 그 아저씨의 허벅지를 망설임 없이 찔러 버리라고 교육할 놈이지.’

어쨌거나 갑자기 이런 말을 하는 게 이상한 상황이긴 했다.

게다가 웨일과 내가 아직 정상적인 대화를 전혀 나누지 않은 상황이란 걸 고려하면 말이다.

웨일 또한 내가 말한 부분을 인식한 듯 살짝 찔린 듯한 표정이었다.

무뚝뚝한 얼굴을 휙 돌렸다. 조금 심통이 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곧 소년이 작게 한숨을 쉬었다.

“돌아가신 엄마가 그랬어. 무언갈 해야만 하는 감이 들 때는…… 그렇게 행동하라고.”

그러니까 나한텐 말해야 한다는 감이 들었다는 건가?

나는 끄덕였다.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이해했으니까.

“우리가 수인인 만큼 본능이 가리키는 결정은, 어떨 땐 이성이 내린 결정보다 더 중요하지.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라고?”

“……나는.”

웨일이 잠시 머뭇거렸다.

“넌 나에 대해 잘 아는 것처럼 말했지? 흰수염고래를 알아?”

“안다고도 할 수 있고, 모른다고도 할 수 있고.”

“그게 뭐야?”

“나도 들은 게 전부라는 거야. 넌 누가 네 소문만 듣고 너를 판단하면 좋겠어?”

“…….”

“나도 그래. 그래서 지금 네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은 거고.”

내가 웃음기를 지운 채 진지하게 바라보자, 웨일 또한 얼굴에 퍼진 당혹을 천천히 지웠다.

나이에 비해 덩치가 커서 그렇지 참 어린 얼굴이었다.

“흰수염고래는…… ‘선의의 수호자’야.”

“멋진 호칭이네.”

왜 이런 이야기가 나온 건지 몰랐지만 나는 최선을 다해서 호응해 주었다.

“우리 범고래가 뭐 바다의 양아치, 이런 소리 듣는 거랑 같은 건가?”

“…….”

“저런, 농담을 농으로 듣지 못하는 아이구나. 계속 말하렴.”

어린애들은 호응해 주는 게 최고라며. 저렇게 ‘그건 또 뭐야’ 하는 눈으로 볼 건 없잖아?

레바이가 농담은 가르치지 않은 모양이군.

“……너 이상해.”

“심심찮게 듣는 소리야. 그래서 설명 계속해 볼래? 뭐? 선장의 수호자?”

“선의의 수호자야.”

“응, 농담이야. 이제 긴장 풀렸지?”

“…….”

웨일이 또박또박 설명한 바에 따르면 이러했다.

흰수염고래는 자연에서 아무런 대가 없이 다른 수중 동물을 돕는 고래였다.

이러한 성정은 그들의 특기에도 발휘되어 치유라는 타인 위주의 능력이 생겼지만.

“선한 이들에게만 쓸 수 있다라. 정의의 용사 같은 능력이네?”

이들은 치료하기 전에 사람의 선의를 확인한다고 한다.

그러니까 다시 말해.

“네 눈엔 사람의 선의가 보인다고?”

“응.”

웨일이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웨일은 말하면서도 여전히 자신이 왜 내게 이런 설명을 하고 있는 것인지 스스로 이해한 얼굴이 아니었다.

혼란스러워 보였다.

이러면서도 설명은 착실하니.

그 감이란 게 꽤 크게 느껴진 모양이었다.

‘성격 탓도 있는 것 같고.’

“레바이 형은 착해.”

“그렇구나.”

레바이 그놈이 착한 놈이긴 하다. 적한테는 아주 가차 없어서 그렇지.

그렇다면 웨일이 말하는 ‘선의’란 적에게 잔인함을 보이는 것과는 상관없는 건가. 들을수록 알쏭달쏭해지는 느낌이었다.

일단 추후에 더 알아보도록 하고.

“그럼 나는?”

호기심을 갖고 물었더니 웨일의 얼굴이 대번에 경계심 가득해졌다.

겁먹은 건 아니었다.

우직한 눈동자가 나를 빤히 응시했으니까.

“너는, 착한 사람이 아니야.”

예상 못 한 답은 아니었기에 나는 피식 웃었다.

동시에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였다.

“맞아. 선한 범고래가 어딨어? 나는 착한 인간이 아니야.”

“하지만.”

웨일의 눈동자는 단단했다.

“넌 선의를 위해서라면 스스로를 희생하는 사람이야.”

“…….”

나는 침묵하다가 물었다.

“그것도 네 능력의 일종?”

“……맞아.”

“…….”

“그래서 널 믿을래.”

어째 결론이 이상했다.

뜬금없이 튀어나온 결론에 얼떨떨한 기분이었다.

“그게 무슨.”

“레바이 형은, 모르는 것 같지만 낯선 사람과 친근하게 대화를 나누는 사람이 아니야.”

“그래서?”

“형이 하지 않으면 나라도 경계하려고 했지만, 너는 우리를 지켜 줄 것 같아.”

“…….”

“믿을게.”

묘한 기분이었다.

이 소년은 나와 앞선 회차에서 엮이지 않은 존재였다.

죽지 않길 바랐고, 필요해서 찾은 존재이건만.

“너무 쉽게 믿는다는 소릴 하는 거 아니야?”

자연에서도 흰수염고래는 자신과는 상관없는 동물을 종종 돕곤 하는 동물이었다.

대왕고래라는 거대한 크기에 걸맞은 품격이라면서 팬이라고 말하기는 뭐하지만…….

고래를 안다면 기본적으로 떠올리는 종이기도 하다.

“보이는걸.”

범고래의 장난감이 된 아기 물개를 구해주거나, 척추가 휜 아기 돌고래와 함께 다닌다거나.

뭐 이렇게 아는 건 내가 그 고래를 좋아했기 때문이다.

“네 판단을 믿는단 얼굴이네.”

“응.”

“날 믿어?”

“믿어.”

그래서일까.

저 말을 듣는 순간 왠지 속이 편안해지는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오래전 고래 영상을 보며 느꼈던 편안함과 비슷하달지.

‘이게 그 유명한 고래 테라피인가.’

게다가 왜일까. 묵묵하고 우직한 눈 속에 깃든 신뢰가 신기하고 익숙하게 느껴졌다.

아, 알겠다.

나는 작게 웃었다.

“나 참. 너 우리 용용이랑 참 닮았다?”

“……용용이?”

“마음에 든다는 소리야.”

나는 내 가슴을 콕 찔렀다.

그러고는 손가락을 들어 웨일을 가리켰다.

“그런데, 하나만 충고하자면 사람을 믿는다는 소리는 함부로 하지 마.”

“…….”

“앞으로 진심은 최대한 숨겨 봐.”

“왜?”

“너는 어떨지 몰라도 세상엔 그 진심을 이용하는 이들이 얼마든지 있으니까.”

웨일은 당황하지 않았다. 대신에 나를 빤히 응시하며 우직하게 물었다.

“너도 그래?”

내 웃음이 조금 진해졌다.

“그걸 묻는다는 게 바로 아직 네가 어리다는 증거지.”

이렇게 말하는 순간이었다.

문이 달칵 열리더니, 방 안쪽에서 세 사람이 나왔다.

이야기가 끝난 모양이었다.

‘오, 표정을 보아하니 이야기가 잘된 모양이지?’

일리아는 변함없는 낯이었지만 레바이의 표정이 들어가기 전보다 안정되어 보였다.

‘그런데 아틀란 저놈은 왜 또 뭐 씹은 표정이야?’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 웨일을 보았다.

웨일이 아이치고는 진한 눈썹을 휙 들어 올렸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이.

“너도 어리잖아.”

아, 내가 했던 말이 정곡을 찔렀나?

레바이가 키우는 놈이라 그런가, 어째 발끈하는 것도 비슷한 느낌이었다.

놀리기 딱 좋은데?

나는 싱글싱글 미소 지었다.

“발끈하는 거야?”

“아니야.”

“정말? 여기에 화가 가득한데?”

“…….”

나는 눈썹을 툭툭 건드리다 말고 웃었다.

“몸만 큰 애기네.”

그러자 나를 노려보는 얼굴에 무언가 화르륵 불이 붙은 것 같았다.

하지만 웨일이 무어라 하기도 전에 불쑥 난입하는 사람이 있었다.

“뭐야, 이 분위기는.”

“아, 깜짝이야. 왜 갑자기 앞을 가로막아?”

시야 가득 아틀란의 가슴팍이 가득해져서 깜짝 놀랐다.

아틀란은 그러거나 말거나 고개를 돌려 웨일을 노려보더니, 곧 손가락으로 휙 가리키며 얼굴을 찌푸렸다.

“눈이 삐었냐? 애기는 뭔 놈의 애기야? 덩치가 내 어릴 때보다 크겠구만.”

“얼굴을 봐, 얼굴을. 원래 흰수염고래 애들은 덩치가 엄청 크댔거든? 아직 어리대잖아.”

“저게 어리긴 뭐가 어려?”

“우리 집에 있는 용용이랑 비슷할 것 같은데, 어린 거지.”

“웃기지 마. 네가 키우는 용용인가 뭔가는 너보다 나이 많던데?”

나는 눈을 깜빡였다.

‘에키온의 정확한 나이는 나도 모르는데, 이게 무슨 소리지?’

에키온이 대략 나와 비슷하다는 것만 알고 있었다.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물어봤는데?”

“그걸 왜?”

“어리면 내 밑이니까.”

“……무슨 꽃게가 앞으로 걷는 소리야? 어린애들이 다 네 밑이면 아주 나도 아래 두고 굴려 먹어라?”

“……무슨 소리야. 너, 넌 예외지!”

나이 운운하는 꼴이 영 좋게 보이지 않았다.

……이 XX. 꼰대야?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