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6화
커다란 소리는 분명 집 안쪽에서 났다.
‘이 집. 생각보다 넓었지?’
적어도 레바이 혼자 살 만한 넓이는 아니었다.
내가 아는 레바이는 극한의 효율과 합리성을 따지는 인간이다.
성향 자체가 그러했으니, 어릴 때라고 다르진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는 건 최근까지도 누군가와 살았거나……. 지금도 누군가와 함께한다는 것.
‘사실 이미 답을 알고 보는 문제다 보니 더 잘 보인 것도 부정할 수 없지만.’
현재 시점에서 그 소중한 흰수염고래가 살아 있다면 레바이는 어디에 숨겨 두었을까.
그 힌트는 레바이가 유언을 얘기할 때에 함께 주었다.
레바이는 분명 처음부터 함께 살지 않았다고 했다.
자신이 일정 나이가 되었을 때부터 사는 곳으로 불러 함께했고.
그걸 후회한다고.
‘데려올 때 상어에게 들켰다고 했나.’
상어.
흔히 ‘물속, 바닷속 맹수’에 대해 물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짐승일 것이다.
그 흉포한 사나움은 자연에서뿐만 아니라, 인간이 되었을 때에도 고스란히 이어졌다.
상어들은 사나웠다. 다만.
‘범고래가 더 깡패였을 뿐이지.’
자연에서도 범고래는 상어의 간을 빼먹거나 재미 삼아 죽이기도 한다.
까마득하게 오래전 이 땅에서 세력 다툼이 있었다고 하나, 상어들은 패배하였고.
범고래들은 기가 막히게 자신과 비슷한 깡패 기질을 알아보았다.
자신에게 다시 반항할 것 같은 상어들을 그냥 두지 않았다.
결국 상어들은 이 땅의 그림자로 스며들었다. 그림자에서 날카로운 이빨을 갈아대며, 암흑가를 주물렀다.
하지만 이것 말고도 이들의 세력은 또 한 가지를 꿈꿨다.
바로…….
‘반란 혹은 권력의 전복.’
제국엔 사자라는 황제가 따로 있지만, 수중 동물 수인 중에서는 범고래가 왕이나 마찬가지였다.
상어들은 호시탐탐 범고래의 빈틈을 노렸다.
이들이 실각하기를, 아니 제 손으로 무너트리는 날을 꿈꾸면서.
살아남은 상어들끼리 똘똘 뭉치게 된 건 이처럼 공통된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이들은 범고래에게 대항하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특이한 특기나, 도움이 될 만한 특기를 가진 수인들을 납치 혹은 협박해 서슴없이 제 세력으로 끌어들였다.
돌고래들이 상어와 엮인 것도 이러한 종류였다.
바이얀이 살아 있을 때는 아이러니하게도…… 상어들이 더욱 숨을 죽였다.
이놈이 깡패질을 쳐 놓은 약자에겐 손을 대지 못했달까.
오히려 괜한 불똥이 튈까 조용히 숨어 살던 놈들이었다.
그놈이 일찍 죽으면서 활개를 치는 것이리라.
‘허, 진짜 생각지도 못했네.’
예상하지 못한 부작용이었다.
‘3회차에서도 상어놈들을 한번 싹 쓸어버린 적 있었지.’
사실 내가 가주일 때는 상어들이 그다지 힘을 쓰지 못했다.
내가 막강했던 까닭도 있었지만.
상어들의 구심점이었던 대장이 죽었다나? 그 탓에 와해가 되었다고 한다.
대장이 살아 있었을 때는 그래도 심상치 않은 세력을 뽐낼 때도 있었다고 하니.
지금은 그 대장이 살아 있을 때의 상어놈들. 나름의 전성기일 것이다.
“왜 말이 없을까?”
나는 급하게 굴지 않았다.
급할수록 천천히. 빨리 먹을수록 체할 뿐이니.
느릿하게 레바이에게 말할 틈을 주었다.
‘이런 걸 보면 나도 완전한 범고래라니까.’
자연에서도 범고래들은 급하게 사냥하지 않는다.
빙판 위의 물개를 사냥하기 위해 가장자리부터 얼음을 부수고 또 부숴…….
먹잇감에게 서서히 공포를 준 끝에, 한 줌밖에 남지 않은 빙하 위. 벼랑 끝에서 스스로 떨어지게 만든다.
물론 레바이는 적이 아니기에 이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지만.
“……집안 정리가 잘 되어 있지 않아. 이따금 큰 소리가 나기도 합니다. 오해하게 해드렸군요.”
“무슨 오해?”
“…….”
아파서인지, 아니면 이 긴장이 풀풀 넘치는 상황 때문인지 모르나 레바이의 얼굴로 진땀이 흘렀다.
‘음, 장난은 여기까지로 해 둘까.’
나는 진지한 표정을 풀어내며 싱긋 웃었다.
그러고는 손을 들어 레바이의 뺨을 콕 찔렀다.
아니, 찌르려 했다.
휘이이이익!
내게 무언가 날아오는 것을 아틀란이 날렵하게 붙잡았다.
물론 나 또한 알아차렸지만 태연하게 아틀란이 하는 양을 구경할 뿐이었다.
“이야, 호위 노릇도 하네.”
“호위는 무슨.”
나는 투덜거리는 아틀란에게서 시선을 떼어내곤 한곳을 바라보았다.
텅 비어 있던 곳에 누군가 고요하게 서 있었다.
소년이었다.
어린 건 알겠는데, 생김새를 봐서는 정확히 나이가 쉬이 짐작 가지 않는 모습이었다.
‘흐음, 얼굴은 어린데…… 몸은 왜 저리 커?’
3회차 레바이에게 들었던 그대로였다.
커튼을 쳐 살짝 어두운 방에서도 희미한 빛을 받아 반짝반짝 빛이 나는 은발이다.
흰수염고래라.
지구에서 자료로 본 적 있다.
깊은 심해에서도 희미하게 들어오는 빛을 따라 은은한 흰빛과 은빛으로 빛나곤 하던 고래.
“아빠! 나는 커서 흰수염고래가 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