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막 범고래 아기님 (124)화 (124/275)

제124화

“당연하지. 이번엔 실패하면 절대 안 돼. 다른 놈들은 다 튀었다고.”

두 남성은 비슷한 머리 색을 가졌고. 양 뺨에 흉터처럼 두 개의 긴 줄이 그어져 있었다.

태어나면서 문신을 타고나는 이들이었다.

게다가 눈매가 상당히 날카로웠는데, 그뿐 아니라 어둠 속 맹수처럼 안광이 맴돌았다.

개중 한 사람이 입을 벌려 이를 갈았다. 보통 사람의 배 이상으로 날카로운 이가 드러났다.

실제로도 이들은 치악력이 대단했다. 주 무기이기도 했다.

“하, 진짜 골치 아프게 구는 놈들이네. 대체 어떻게 포위를 뚫고 도망간 거야?”

“이래서 천재들이 골치 아픈 거지.”

돌고래들의 머리란 이미 수중 생물 수인들에겐 익히 알려진 사실이었다.

그러나 생각 외로 그들이 소수였던 이유는 워낙 자유로운 성정이라 개체수를 늘리지 않는 것도 있지만…….

이들처럼 돌고래를 탐내는 세력이 있기 때문이었다.

이 일대를 장악한 이들은 비록 범고래들의 힘 아래에서는 숨죽여 몸 사리거나 도망가지만.

육지 속담에서 호랑이가 사라진 산에는 여우가 왕 노릇을 한다고 하였나. 딱 그짝이다.

‘망할 범고래들 같으니.’

이들은 호시탐탐 범고래 뒷자리를 노리는 자들이었다.

정확히는 범고래들의 영향력이 영지 구석구석까지 미치지 않음을 알고, 틈새를 노려 호가호위하는 이들이었다.

범고래들이 압도적으로 강한 힘으로 범람하는 파도처럼 뭐든 쓸어버리는 것과 다르게.

이들에게는 머리가 필요했다.

아주 똑똑한 두뇌 말이다.

이들이 돌고래를 노리는 이유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게다가 ‘열쇠’를 그놈이 가지고 있잖아.”

“그래. 꼭 찾아야겠지…….”

“그렇지. 대장이 어렵게 알아낸 정보야. 이를 놓치면 너랑 내가 어떻게 될지 잘 알지?”

“젠장. 몰라서 이러겠어?”

남자 하나가 짜증을 내며 머리를 쓸어 올렸다. 그의 이마에는 잔뜩 꿰맨 듯한 흉터가 있었다.

“남은 한 놈도 돌고래다. 방심하면 안 돼. 반드시, 무슨 일이 있더라도 끌고 가야 해.”

둘 중 더 야비하게 생긴 남자가 사납게 눈을 번뜩였다.

그나마 이들의 타고난 시야가 좋지 않음에 감사해야 할까.

사내들이 완전히 사라진 뒤에 소년이 절뚝거리며 나타났다.

“하아…….”

소년은 바닥에 떨어진 붕대에 시선을 주지도 않은 채 최대한 빠른 속도로 걸었다.

‘어서 자리를 피해야 한다.’

상처는 대충 싸매고 있지만 다시 한번 피 냄새를 맡은 놈들이 돌아왔다간 그때야말로 끝이다.

다른 이들을 대피시킨 보람도 사라진다.

소년은 한참을 걸어 안전한 곳에 도착했을 때야 눈을 스르륵 감았다.

‘누님과 어머니는 잘 도착했겠지.’

범고래와 마찬가지로 돌고래들 또한 무리의 리더는 암컷이 맡는 동물이었다.

돌고래 수인 또한 마찬가지라, 지금쯤 가주인 모친과 후계자인 제 누이는 저 먼 고향으로 향하고 있을 것이다.

이들이 살기 좋은 거처를 버린 채 이동하는 이유는 한 가지였다.

함정에 빠졌으니까.

‘큰일이네. 꼭 돌아가야 하는데.’

소년은 제 상태를 보며 한숨지었다. 누이와 모친을 먼저 보내면서 자신만은 남아야 할 이유가 있었다.

반드시 꼭 책임질 것이 있었다.

그러나 상황이 영 암울했다.

‘하아. 이대로 죽으려나.’

몸 상태가 좋지 않으니 자연히 약한 생각이 먼저 들었다.

눈앞이 가물가물했다.

‘돌아가기만 한다면…….’

치료할 수 있다. 말끔하게 나을 것이다.

하지만 생각이 앞설 뿐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

어쩌면 이대로 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눈앞으로 새까만색과 흰색이 아롱지는 듯했다.

그때였다.

소년은 걷는 동안 더욱 심해진 고통으로 청각이 마비되어 듣지 못했지만.

어두운 골목 안에선 자그마한 발소리가 울려 퍼졌다.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며 커졌지만, 소년은 눈을 감은 채 꼼짝하지 못했다.

“역시나 이번 생엔 상어 놈들이랑 엮였네?”

갑작스럽게 들려 온 낯선 목소리에 소년이 흠칫 놀랐다.

드디어 소리가 들렸던 것이다.

정확한 말의 내용까진 듣지 못했지만 누군가 있다는 걸 알기엔 충분했다.

대체 언제?

“정말 뒷골목 깡패들과 엮였을 줄이야.”

소년이 가까스로 고개를 돌렸다. 역광이긴 했으나, 빛에 차차 적응한 눈이 흐릿한 형체나마 잡아낸다.

그곳엔 작은 소녀와 커다란 키의 소년이 서 있었다.

“여기서 홀로 죽다니, 너답지 않은 일이야. 레바이.”

“…….”

“악착같이 살아야지. 아직은 독기가 부족하네?”

소년, 돌고래 수인인 레바이가 눈을 깜빡였다.

저벅저벅.

소녀가 다가옴에 따라 레바이는 소녀의 정체를 대번에 알아보았다.

범고래. 그리고 이번 세대에 가장 유명한 인사 중 하나다.

칼립소 아콰시아델!

이미 자신의 힘 하나로 이름을 톡톡히 알린 소녀가, 빚어낸 듯한 예쁜 얼굴로 생긋 미소를 틔웠다.

레바이는 저도 모르게 고통도 잊고 멍하니 칼립소를 응시했다.

“안녕.”

“……누구, 십니까?”

레바이는 소녀를 알면서도 이리 물었다.

소녀가 씩 웃었다.

“알면서 왜 묻지? 나, 유명하지 않나.”

“…….”

“게다가 넌 똑똑해서 미리 알아 뒀을 거잖아? 내 존재 정도는.”

마치 레바이의 속이 훤히 보인다는 듯한 미소였다.

“그래도 소개는 필요하겠지? 처음 만난 사이니까.”

소녀가 이렇게 말했을 때, 옆에 서 있던 큰 덩치의 소년이 묘한 표정을 지었다.

소녀가 제 가슴을 툭 두드렸다.

“칼립소 아콰시아델.”

“…….”

“그리고 네 일을 해결하러 온 해결사지.”

레바이가 멍한 표정을 지었다.

……뭐?

그러거나 말거나 소녀가 싱긋 웃으며 옆에 있던 소년을 향했다.

“자자, 둘째야. 뭐 해?”

까딱, 소녀가 소년에게 고갯짓했다.

“일해.”

“……젠장 날 이따위로 쓰려고 데려왔다니.”

“어허. 어디서 토를 다냐. 요즘 막 살기 편하고 그래?”

“……너야말로 나오니까 예전 말투가 아주.”

“좋으면서 이런다. 빨리 일해.”

“…….”

레바이는 자신에게 저벅저벅 다가오는 소년이 아틀란 아콰시아델임을 알았다.

그래, 알았는데.

다음 순간 일어난 일은, 난다 긴다 하는 돌고래 사이에서도 수재라는 소릴 듣던 레바이조차 예상 못 한 것이었다.

“뭐, 뭐 하는 겁니까! 콜록!”

“얌전히 있어라. 누군 좋아서 하는 줄 알아?”

그 아틀란이 자신을 짐짝처럼 들 줄은 말이다.

“둘째야, 내가 환자라고 말했지 않니?”

“아, 그래서 무려 어깨에 짊어져 줬잖아!”

레바이 생각으로는 아무래도 아틀란 쪽과는 대화가 통하지 않을 것 같았다.

레바이가 칼립소를 응시했다.

눈이 마주친 순간, 소녀의 눈동자가 일렁거렸다.

……그리움?

감정에 예민한 레바이는 기민하게 저 감정이 적어도 처음 본 자신을 향해 내보일 만한 것이 아님을 알아차렸다.

그럼에도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말이다.

“뭐, 하시는 겁니까…….”

칼립소가 생긋 웃었다.

“납치?”

레바이가 더없이 황당하다 못해 불만을 가진 순간, 칼립소가 가벼운 어조로 물었다.

이런 일에 아주 익숙하다는 듯이.

“너 집이 어디야?”

* * *

“여기가 네 집이야?”

레바이는 소파에 누워서야 나른한 숨을 토해냈다. 딱 죽을 맛이었다.

‘흔들려……. 멀미…….’

이 미친 범고래들은 환자에 대한 예의도 존중도 없는 게 분명했다!

레바이가 집을 알려 주자마자 이 인간들은 시간이 없다며 지체 없이 뛰기 시작했던 것이다.

문제는 누가 범고래들 아니랄까봐 빼어난 신체 능력을 자랑한 덕분에.

레바이는 공중제비를 몇 번이나 돈 것 같은 멀미를 느껴야 했다.

도착했을 때, 출혈도 겪은 그의 얼굴은 새하얘진 뒤였다.

레바이는 부아가 치밀었다!

“대체…… 하아, 환자를 누가 이렇게, 다룬단 말입니까……!”

그가 끙끙대며 기어이 불만을 토로했다.

저들이 그 포악한 범고래라는 사실은 황당함 뒤로 미뤄진 뒤였다.

칼립소가 무엇이 문제냐는 듯 씩 웃었다.

“괜찮아, 그 정도론 안 죽어.”

“……뭐요?”

“까칠하긴. 내가 다쳐 봐서 아는 거야. 그것보단 훨씬 많이 피가 나야 죽어.”

해맑게 웃으며 말하기엔 섬뜩한 내용이었다.

……범고래는 사망에 이르는 출혈량도 배우는 건가? 살벌한 가문 같으니.

평화지향주의자인 자신은 평생 이해할 수 없는 세계다.

‘하지만…….’

덕분에 산 건 사실이었다. 아직까지 추격자들은 이 집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

그들은 레바이가 있던 골목만 며칠간 헤맬 것이다.

명백히 고마운 일이었다.

‘문제는 이 집을 알게 된 사람 목록에 저 두 사람도 포함됐단 거지만.’

집을 알려 준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칼립소 아콰시아델.

‘분명 벨루가 쌍둥이를 보호하면서 싸운 적 있댔지.’

5년 전 칼립소의 패싸움은 유명했다. 레바이도 알고 있었다.

그 이면에 놀랐기도 하였고.

저 사람은 범고래지만 뭔가 다르단 것은, 이후로 들려 오는 소문으로도 잘 알 수 있었다.

이자는 바이얀 아콰시아델처럼 약자에게 폭력을 행사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저기 있는 아틀란 아콰시아델처럼 관심이 없는 것도 아니다.

레바이는 이 사실에 도박을 걸어보기로 했다.

이미 극심한 고통을 느끼는 데다가 이 골목에서 객사할 수는 없었다.

절대로.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어쨌거나 칼립소는 선인인 것 같으니…… 이대로 돌려보내면.

“아, 괜찮아. 공짜 아니니까.”

돌려보내면…… 뭐?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