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7화
나는 어리벙벙한 얼굴로 손을 뻗었다.
덩치도 커다란 놈이 몸을 구긴 채 내 품에 안기려 드는데, 나는 속절없이 어어 넘어가면서 등을 토닥였다.
들썩거리는 등을 보면서도 얼떨떨했다.
얘가 운다고?
팔이 거의 날아갈 뻔했을 때조차 눈물은커녕 황실은 자기가 조지겠다며 낄낄 웃으며 웃던 놈이었다.
사람이 본디 서러울 때 토닥이면 그치기는커녕 더 서러움이 폭발할 때가 있는데, 아틀란이 지금 딱 그런 상태인 듯했다.
토닥일수록 들썩임이 더욱 커졌다.
많이 힘들었던 걸까.
마음고생이 심했을지도 모르겠다.
“너, 넌, 나한테 그러면, 안 돼…….”
이 와중에도 자기 주장은 잊지 않고 허엉, 하는 목소리에 담는 놈을 보며 나는 쓰게 웃었다.
“……그래.”
너 때문에 회귀 이후 가장 놀란 것 같다, 이 인간아.
앞선 회차를 기억한다면 담담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나야 이 짓을 세 번이나 반복했다지만 반복해도 적응이 어려운 기억이 있는데, 처음인 이놈은 어떻겠어.
“그만 울고.”
나는 둘째놈의 머리를 쭉쭉 잡아당겼다.
“눈 붓는다, 이놈아.”
아프지도 않은지 고개를 들지도 않았다.
“고개 들어 봐.”
어깨가 완전히 축축해졌지만 상관없었다.
옷이야 갈아입을 수 있다지만…….
마음은 그리할 수 없다.
결자해지라고 했던가.
젖은 마음은 젖게 만든 사람이 말려 줘야 한다. 책임감을 느꼈다.
좋게 좋게 다독이고 이야기 나눠 보기로.
“고개 들어 보라니까?”
그러나 애석하게도 사랑받는 법을 잊었듯 위로하는 법도 잊은지라, 내 토닥임은 오래 가지 못했다.
아니, 이보다는 여기가 복도 한복판임을 깨달았다는 것이 컸다.
제아무리 학생들이 잘 다니지 않는 곳이라지만 계속 아무도 지나가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었다.
‘내가 지금 네 사회적 지위를 생각해 주는 게 안 보이냐.’
나는 끝내 고개를 들지 않는 둘째를 보며 목을 꾹꾹 눌렀다.
정신 차리라는 듯이.
“……싫어.”
한참 만에야 힘없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러나 힘없는 것도 잠시 사납게 짓씹는 듯 분노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이, 이딴 얼굴을 너한테 보여 줄 것 같아?”
“왜 화를 내.”
“너한테, 보여 주려던 건…… 익, 이런 꼴사나운 낯이 아니야.”
“그래, 그 멋진 계획이 나도 궁금한데, 네가 이렇게 계속 울면 아무리 나라도 좀 마음이 아프거든.”
“…….”
“나도 너 아껴. 둘째야.”
그러니까 무려 세 번이나 회귀한 내가 네 죽음을 극복 못 했지.
다만, 양자 간에 애정이 있었더라도 애틋함보다는 담담한 속에 쌓아온 정이었던지라.
영 이런 상황과 자세가 어색했다.
“네가 가끔 꼭 해야 하는 말은 숨기는 놈이라는 걸 내가 간과했어.”
며칠 전으로 다시 돌아간다고 한들, 이놈한테 기억이 있다는 걸 모르는 이상 똑같은 선택을 했을 테다.
하지만 지금은 더는 모른 척할 수 없었다.
나는 놈에게 들릴 정도로만 작게 속삭였다. 툭툭, 어깨를 토닥여 주며.
“내가 네 이상한 모습 한두 번 봐?”
미동도 하지 않는 놈을 향해 이어 말했다.
“영원히 안 보일 게 아니면 이제 그만 고개 들어.”
그러자 이놈이 말을 듣기는커녕 커다란 덩치를 들이대기나 했다.
나는 커다란 둘째 오빠를 보며, 애틋하고 아련하게 생각했다.
‘……이놈 새끼, 덩치 생각 못 하고 몸부터 들이미는 건 똑같네.’
다행스럽게도 아직 성인은 아닌지라 내가 기억하는 것보단 작다.
내 몸이 이전 회차보다 너무 작은 상태여서 감당이 안 될 뿐이지.
아주 폭풍 성장을 할 예정이구만? 여기서 내가 기억하는 덩치로 더 확 커진다는 사실이 새삼스러웠다.
‘그나저나, 언제까지 이렇게 있어야 돼?’
……놈에겐 미안하지만 지독하게 어색해지고 있었다.
‘때릴까? 발로 차?’
아니지, 내가 그렇게까지 쓰레기 짓을 할 필요는…….
낯간지러운 퍼포먼스는 이제 그만 마무리를 해 줬으면 하는 바람 반. 애틋하긴 하지만 이제 그만 걷어찰까 싶은 군신간의 정이 반쯤.
갈등이 커지다 못해 정말 떼어 낼까 생각하던 때였다.
마침내 아틀란이 고개를 들었다.
나는 흠칫 놀랐다.
‘엄청나네.’
내가 들어보라고 했지만……. 새빨갛게 얼룩지고 눈물로 엉망이 된 얼굴.
붉은 눈동자에는 사나운 설움과 원망. 숨기지 못한 그리움이 열매처럼 매달려 있었다.
나는 깨달았다.
이 눈을 보았으니, 더는 외면할 수 없겠구나 하고.
“……다 울었냐.”
내가 삐딱하게 웃으며 놈의 뺨을 살짝 꼬집자, 아틀란은 이를 꽉 깨물었다.
잘생긴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젠장, 꼴사나워.”
“그걸 이제 알았고?”
“놀리지 마. 네가, 잘못한 거잖아.”
“맞아. 내가 잘못했어.”
“왜 인정해!”
“아이고, 깜짝이야. 왜 소릴 질러, 죽을래?”
“…….”
그러자 이놈이 입술을 깨물더니 슬슬 눈치를 봤다.
서럽고 억울한 낯을 한 주제에 다시 쫓겨나기라도 할까 겁먹은 짐승처럼.
놈이 사나운 목소리로 횡설수설을 시작했다.
“아니, 가주님, 너는 너니까. 네가 잘못한 게 어딨어? 이유가 있었겠지! 나 같은 범고래를 유기한 건 잘못이지만, 이유가 있었겠지!”
“……내 변명을 네가 해 주니 참 고마운데, 그렇게 안 해 줘도 돼.”
아게노르나 벨루스는 앞선 회차랑 다른 모습을 보기라도 했지, 이놈은 이야기할수록 이전 회차랑 똑같아서.
내가 가주였던 그때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어린 낯을 해 가지곤.
아틀란이 제 눈을 거칠게 비볐다. 이제는 눈 밑까지 발갛게 된 사납고 잘생긴 소년이 내게 불쑥 물었다.
“그럼 이제 나 받아주는 거지?”
확신 어린 목소리에 나는 화사하게 웃었다.
“아니? 다음 생엔 평범하게 살고 싶다며?”
“…….”
아틀란이 움찔했다.
놈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이내 고개를 홱 돌렸다.
채 빠져나가지 못한 사나운 멍울이 얼굴에 매달려 있었다.
“……기억 안 나. 그딴 말 내가 했을 리가 없잖아? 넌 나를 몰라?”
“그래, 내가 널 모르냐?”
아틀란이 다시 움찔했다.
‘찔린 표정이구만?’
낯이 도화지인 것도 여전했다. 감정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도화지 말이다.
이도 잠시 아틀란이 왈칵 일그러트리며 소리를 높였다.
“내가 따르고 싶다고! 왜 안 받아 주는데!”
“……야, 그러지 말고 딱 성인 전까지만 생각해 봐. 나는 그래도 네 생각해서….”
“하지 마!”
“……네 생각 하지 마?”
“해, 하라고! 내 생각도 안 하려고 했어? 매일 덤벼서라도 각인시켜 줄 거야. 알겠냐?”
“알긴 뭘 알아. 어느 장단에 맞추라는 거냐.”
그러자, 순간 아틀란도 헷갈린 표정이었다.
……네가 헷갈리면 어떡해, 이 인간아.
“내 생각 많이 해! 누가 하지 말래? 근데 나를 무기로 쓸 생각이나 하라고! 나 같은 놈이 손잡이를 들이대면, 넌 옳다구나 가져가야지!”
“어휴. 귀 아프다, 이놈아.”
나는 이렇게 말하면서도 생글생글 웃었다.
그러자 놈이 멈칫했다.
“둘째야, 너는 참 놀리는 맛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