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3화
‘뚫리겠다, 뚫리겠어.’
어쩐지, 갑작스럽게 경계심이 빡 들더라니, 저렇게 노려보면 시선만으로 구멍이 뚫리겠다 싶었다.
“뭐야, 아틀란이잖아? 저 멍청한 범고래가 뭐 하는 거람.”
곧 아게노르도 내 시선 끝에 있는 존재를 알아차렸는지, 휙 작게 휘파람을 불었다.
고개를 돌리면 아게노르에게서 반짝거리는 시선이 떠올라 있었다.
“아틀란이 널 사랑하나 봐. 밟아 주자, 여동생님!”
“앞뒤 문장 관계가 왜 그러냐?”
“여동생님, 나는 호승심과 사랑은 같은 단어라고 생각해. 들어 봐, 두들겨 패서 쓰러트리고 싶은 상대! 약점을 찾기 위한 열렬한 시선! 그 상대를 향한 관심! 이게 사랑과 뭐가 달라?”
……이놈은 아무래도 5년간 더 미친 XX가 된 걸까?
또라이력이 상승한 듯하다.
“개똥철학 잘 들었고, 쟤가 저러는 이유 알아?”
“글쎄? 여동생님이랑 싸워 보고 싶은 게 아닐까?”
“이제 와서?”
“하지만…… 여동생님이 5년간은 힘을 숨기고 있었잖아.”
리리벨을 영입하면서 힘 조절 못 한 탓에 내 소문은 이미 다시 널리 퍼진 지 오래였다.
내가 그저 힘을 숨겨 왔을 뿐이라고 말이다.
그렇다면 새삼 저놈이 호승심을 가질 만도 했다.
문제는.
“난 딱히 저놈을 때려 패고 싶은 생각 없는데.”
“헉, 역시 나만 때리고 싶은 거야?”
“넌 좀 가라. 우리 반도 아닌데 왜 자꾸 오는 거야?”
나는 아게노르의 뺨을 꾹꾹 밀었다.
“공녀님!”
“공녀님! 안녕하세여!”
멀리서 루가루바가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공녀님 안 들어가세요?”
“왜 여기 계세요? 곧 수업 시작해요!”
“가고 싶은데 이놈이 떨어져야 말이지?”
나는 찡그리며 아게노르를 밀어내기 바빴다.
아게노르가 슬프다는 듯이 울상을 지었다.
“왜 나는 같은 반이 아니야!”
“왜 아니겠어, 네가 학년을 올라가지 않으니까, 학장이 최후의 수단으로 이러는 거 아니야.”
그랬다.
내가 4년간 더는 월반하지 않고 지금의 학년에서 대기하는 동안…… 아게노르 이 미친놈이 나랑 같은 학년에서 머무르겠답시고 매번 학년을 넘어가는 시험을 날린 것이다.
“난 모자라서 못 올라간 거야!”
“웃기고 있네. 최하급반 주제에, 얼른 너네 반으로 돌아가.”
“억울해…….”
“힘내세요, 공자님!”
“힘내세여! 억울하시면 올라가면 되지만 공자님은 능력이 있으신데 안 가신 거니까여!”
“그래, 그래. 너희 선배의 위대함은 너희가 제일 잘 안다니 됐어.”
……루가루바 애들이 은근히 비꼬는 것 같은데 알아들은 거야, 알아들었으면서 모른 척하는 거야.
고개를 돌려 보니, 아틀란은 어느 순간 사라지고 없었다.
‘대체 뭐였던 거지?’
그래, 그저 우연히 눈에 띄어서 노려봤겠거니 했다.
……이게 착각이란 걸 깨달은 건.
다음 날부터 집요하게 시작된.
저놈의 스토킹(?)을 보고 난 뒤였다.
* * *
“…….”
요즘은 쉬는 시간이 싫다.
예전이라고 좋았던 것은 아니지만, 어차피 모든 걸 다 아는 수업을 듣는 것보다야 나았다.
편히 쉴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공녀님.”
“공녀님……. 또 왔어여.”
또틀란이었다.
“응, 나도 알고 있어. 루바.”
현재 루가루바는 나와 같은 반이었다.
내가 네 살이 되었을 때, 중급 기관에 진급할 무렵.
루가루바가 나를 쫓아와서는 엉엉 울며 자기들도 따라오겠다고 했다.
“공뇨님이랑 같운 반 할래여!”
“할 거예여!”
“너희가 나랑 같은 반이 되려면 월반해야 할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