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2화
“걱정하는 점이 뭔지 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 집으로 돌아갈 즈음, 아빠가 내게 말했다.
내 옆에는 에키온이 찰싹 달라붙어 있었는데, 내가 돌아가는 것을 아는지라 얼굴 가득 아쉬운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칼립소, 가?”
으윽, 이런 말로 죄책감까지 씌워 주네.
나도 밤까지 함께 있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지만, 내일 다시 볼 테니 걱정하지 말라며 에키온을 한창 달래는 중이었다.
그러다 아빠의 말에 다시 대답했다.
“걱정하는 점?”
아빠가 내게 다가와 한쪽 무릎을 꿇고 눈높이를 맞춰 주었다.
세 살에는 아빠가 이렇게 숙여도 눈높이가 맞지 않았는데, 내가 조금 크긴 했구나 싶어 흐뭇해졌다.
‘3회차보다는 키가 크면 좋겠다.’
은근 환경적인 요인에 따라 키가 다르단 말이지.
생각은 뒤로 미뤄 두고 일단 아빠의 말에 집중했다.
“방계를 멸하는 데는 힘을 쓰더라도 기별조차 가지 않아.”
집중했다고는 하나 다음 순간 흘러나온 말에 멈칫했지만 말이다.
“……아빠, 내가 걱정하는 걸 알고 있었어?”
“어렴풋이.”
“게다가 거짓말까지 해?”
방계 하나를 없애 버리는 데 기별도 가지 않는다니, 바보가 범고래야? 내가 바보냐고.
‘내가 없애 버린 가문이 몇 개인데 나를 우습게 보고 있어.’
나는 찡그렸다.
한편으로는 만약 이 말이 사실이라면, 이 애비는 대체 얼마나 강한 거야? 싶기도 했다.
“대체 당신 얼마나 강한 거야?”
“쯧, 당신이 뭐야.”
아빠가 톡 내 이마를 두드렸다.
“흥, 아프게 때리지도 못하면서 말이야.”
“아프게 때리진 못하지만 효율적인 훈련은 가능하겠지.”
“……세상에서 제일 멋진 스승님, 잘못했습니다. 역시 스승님이 가주가 되는 게 나을지도요.”
“너야말로 마음에도 없는 소릴 잘도 하는군.”
아빠가 쪼그려 앉은 채 턱을 괴더니 피식 웃었다.
사람이 얼굴이 받쳐 주니까 어디 동네 양아치 같은 자세도 신기하리만큼 퇴폐적이고 사연 있는 조폭처럼 보였다.
둘 다 깡패라는 점에선 매한가지겠지만.
‘살이 좀 붙으면 좋을 텐데, 잘 안 붙는단 말이지.’
이렇게 말하면서 나는 그간 아빠가 나를 훈련시켰던 것을 떠올렸다.
‘물의 힘을 각성하고 싶어서 혹독하게 해 달라고 부탁했었지.’
그랬더니, 일명 ‘노빠꾸’밖에 모르는 우리 애비는 정말 5년간 최선을 다해 나를 굴렸다.
……이게 사랑이라고 믿는 것 같았다.
‘역시 범고래들. 삐뚤어진 건 다 마찬가지라니까.’
아, 물론 나는 매우 만족했다.
주먹으로 가뿐히 리리벨은 넘어서지 않았던가.
이대로 차근차근 가주였을 때만큼의 힘을 회복하는 게 목표였다.
“이제 무얼 할 거지?”
“기다리고 있는 게 있어.”
지난 5년간 아빠를 안 살리려 한 건 아니다.
다만, 살릴 수 있는 방법.
정확하게는 살릴 수 있는 ‘사람’이 아직 여기 오지 않은 것뿐.
그것도 곧이다.
* * *
며칠 뒤, 나는 리리벨과 다시 만났다.
지난번엔 리리벨이 대놓고 나를 쫓아왔다면, 이번엔 퍽 은밀한 만남이었다.
“꼭 이렇게 만나야 하니?”
리리벨은 주변을 돌아보며 불안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이곳은 아빠 저택의 지하실이었다.
다만, 나름 쾌적하게 꾸며 둔 탓에 창문이 없는 걸 제외하면 지하실 특유의 꿉꿉한 느낌은 들지 않았다.
“미행은 없었지?”
“……없었어.”
“응, 우리 쪽에서도 파악해 봤는데 없더라.”
“……지금 내 실력을 의심하는 거니?”
“의심하진 않지. 다만, 넌 아직 다양한 수중 동물 수인들의 특기에는 밝지 않은 것 같아서 말이야.”
“…….”
“그런 표정 할 건 없어, 우리 쪽에서도 아빠나 나 정도만 감지 가능한 상황이니까.”
은신에 특화된 수인들을 감지하려면 요령이 필요하다.
아빠의 경우는 대단한 힘을 통해서 감각으로 알아차리는 쪽이었고, 나야 경험이 출중하니 어렵지 않았다.
나는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르는 잔을 들어 차를 홀짝이면서 싱긋 웃었다.
“여기 온 건, 미리 서신을 보낸 것처럼 마음을 굳혔기 때문이잖아.”
“…….”
리리벨의 침묵은 긍정이었다.
“마침 잘됐어. 나도 너한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거든.”
“무슨 이야기 말이니?”
어떻게든 자신이 부족하다는 걸 드러내지 않으려는 리리벨의 모습이 귀여웠다.
억지로 몸을 부풀린 복어 같은 모습이란 걸 본인은 모르는 것도 말이다.
“넌 앞으로도 후계 후보인 척해.”
“가주를 노리는 걸 포기하지 않은 척하라는 거야?”
“응.”
“……누굴 속이기 위해서? 할머니?”
내가 웃고만 있자 리리벨이 잠시 고민하더니 한 번 더 말했다.
“우리 엄마?”
“역시 넌 눈치가 빨라. 널 영입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드네.”
백모인 헤일라는 크나큰 변수다.
지금 그녀까지 포섭할 생각은 없으니, 리리벨이 붙잡고 있어야 해.
‘헤일라는 야망이 너무 커.’
직계로 태어났다면 정말이지, 리리벨 못지않은 라이벌이 되었을 거다.
물론 리리벨을 품은 이상 버리긴 아까운 패긴 했다.
그러니 좀 더 나이가 들고 포섭해도 늦지 않다.
“……넌 정말 네가 아직도 전성기인 할머니를 끌어내릴 수 있다고 생각해?”
“물론.”
나는 잔을 내려놓고 턱을 괬다.
“어디, 바다의 맹세라도 해 줘?”
“……한다면 말리지 않을 거야.”
“난 네 그런 의심이 많은 점도 좋아해.”
“넌, 왜 나를 그렇게 잘 아는 척하는 거야?”
“잘 지내고 싶은 거지.”
리리벨이 살짝 뺨을 붉히며 고개를 돌렸다.
워낙 창백한 얼굴이다 보니 홍조가 티가 났다.
“너 또래 친구 없지?”
“친구가 뭐가 중요한데?”
“음, 그렇지. 우리 오빠들은 그래도 친구는 있었는데…… 너는 외톨이…….”
“누가 외톨이라는 거야!”
“그럼 나랑 하면 되겠네, 친구.”
“허?”
리리벨이 벌떡 일어나다 말고 움찔했다.
“난, 따르는 사람이랑 친구 안 해.”
그렇게 말하면서도 리리벨의 홍조가 조금 더 올라와 얼굴이 발그레해졌다.
“아. 그렇지 않아도 나도 말하려 했는데, 말이야.”
“뭘?”
“바다의 맹세 하는 거 잊지 말라고.”
“…….”
“충성한다며?”
내가 싱글싱글 웃었다.
그러자, 나를 빤히 보던 리리벨이 얼굴을 찌푸리며 시선을 살짝 돌렸다.
“……칫.”
새침하게 쳇, 하고 외치는 모습에 나는 그저 웃을 뿐이었다.
‘내가 너 그럴 줄 알았다.’
이 영악한 범고래께서는 여차하면 튈 각오로 내게 잠깐 고개를 숙인 거라고, 생각은 했달까.
괜히 3회차에서 ‘배신의 귀재’라고 부르고 싶을 만큼 뒤통수를 잘 때렸던 인간이 아니니 말이다.
하긴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디 있을까.
새침한 낯으로 툴툴거리면서도 바다의 맹세를 하는 리리벨을 보아서는.
‘따르고 싶단 말은 진심이었나 보네.’
기분이 묘했다.
더 뻗댈 줄 알았는데 말이지.
어려서 그런가?
완성된 리리벨보다 더 귀여운 느낌이다. 당연한 거겠지만.
“살고 싶으면 잘해.”
“……목숨 가지고 그러는 거 치사하지 않니?”
“먼저 치사했던 건 누구고?”
“…….”
리리벨이 체념한 낯으로 자리에 우아하게 앉는 걸 보면서 나는 참지 못하고 소리 내어 웃고 말았다.
“약속이나 지켜. 칼립소 아콰시아델. 난, 꼭 네가 말한 가주가 무너지는 꼴 봐야겠으니까.”
“물론.”
그렇게 로데센 측에 유능한 스파이를 하나 심게 되었다.
* * *
다음 날.
언제나처럼 교육 기관에 등교한 나는 영 찝찝한 기분에 고개를 갸웃했다.
‘어째, 왜 이리 감이 좋지 않지?’
이런 경계심은 3회차에서 막 가주 위에 도전하기 위해 홀로 밤샘 경계를 했을 때 느꼈던 기분이었다.
가만히 있어도 신경이 곤두서는 느낌.
“여동생님, 왜 그래?”
옆에서 함께 걷던 아게노르가 고개를 갸웃했다.
“아게노르, 넌 아무것도 안 느껴져?”
“뭘? 아, 음…… 살짝 찌릿한 게 있긴 한데, 누가 근처에서 싸우기라도 하나 보지. 왜?”
중급 기관은 초급 기관과는 조금 달랐다.
아니, 많이 달랐다.
가주의 성향에 따라 교육 기관의 교육 방침도 달라지곤 하는데.
초급 교육 기관은 그나마 최소한의 보호 조치를 했다면.
약육강식을 외치는 가주 아래 운영되는 기관답게, 이곳 중급 기관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학생들 간의 결투가 일어났다.
대개가 범고래들끼리의 싸움이었지만, 아주 가끔 다른 고래가 엮이기도 했다.
나는 고개를 홱 돌렸다.
“…….”
그리고 그대로 눈을 깜빡였다.
“엥…….”
현재 쉬는 시간이라 복도가 꽤나 혼잡한 상황이었다.
나랑 멀지 않은 기둥 근처에서 나를 맹렬하게 노려보는 한 인간을 발견했다.
아틀란이었다.
‘……저놈 저거 저기서 뭘 하는 거야?’
말미잘에 숨은 흰동가리도 아니고 왜 저기서 지랄인지.
게다가 관자놀이가 타는 듯한 시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