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1화
에키온의 미소는 5년간 보았지만 익숙해지지 않는 모습이었다.
일단 감탄할 만한 얼굴이었다.
예쁘고 잘생긴 범고래들 속에서 익숙해진 눈마저 넘어서는 얼굴이었으니까.
몸은 크지 않더니, 어째 얼굴은 날로 예뻐지는 것 같아.
‘커서 깨나 여자 울릴 얼굴이지?’
확실히 다 큰 에키온은 폭주할 때 본 것뿐이지만 잘생기긴 했었다.
나는 고개를 돌려 턱을 괬다.
“아빠, 에키온 말이야. 진짜 웃으면 너무 예쁘게 생겼다. 뭐 저렇게 생겼담.”
“그런 생각이 들 땐 거울을 보도록.”
“……아빠는 칭찬 실력이 많이 늘었어. 마음에 들어.”
나는 멈칫하다가 말고 작게 소리 내어 웃음을 터트렸다.
이를 빤히 보던 아빠가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잠시 아빠가 에키온 쪽을 보는 것 같았는데, 이내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렸다.
음. 아빠는 이따금, 꼭 에키온만 보면 저런 반응이더라?
“저 용에게는 빚이 있어 그냥 두고는 있다만…….”
빚? 처음 듣는 얘기에 고개를 갸웃했다.
“볼수록 뻔뻔한 구석이 있는 놈이다.”
심드렁한 듯 직설적인 말이어서 의문마저 들었다.
아빠는 내 의문을 이어지게 두지 않을 모양인지 바로 말했다.
“저거, 밖에 나가질 않는다. 알고 있나?”
“응? 에키온 말이야?”
그사이 아빠의 물줄기가 나를 감싸 안아 둥실 떠올렸고, 나는 익숙하게 자세를 착 잡아 답삭 안겼다.
아빠의 얼굴로 나른한 만족감이 스쳤다.
나는 아빠의 어깨를 흔들어 대답을 재촉했다.
“뭔데? 무슨 말인데?”
그래도 답을 주지 않길래 결국 내가 먼저 입을 열어 보충했다.
“원래 안 나갔잖아? 게다가 위험해서 나가지 않게 하기도 했고.”
“그거야, 3년 전의 일 아닌가. 이제 신분상으로는 전혀 문제없다.”
푸른 머리는 용 공작의 상징이었지만, 그건 육지 동물 사이에서나 그러할 뿐.
파란 머리카락은 수중 동물 수인들에게 꽤 흔한 특징이었다.
게다가 문어 수인처럼 종족 특성으로 에키온같이 금안을 가진 수인도 더러 있었다.
그래서 앞서 말했던 3년 전, 용 공작을 알아본 시종이 아주 특이한 케이스라 할 수 있었다.
“저건 네가 없으면 나가지 않는다.”
“으응…….”
놀랄 만한 소식은 아니었다.
나도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던 일이었으니까.
내가 교육 기관을 간 사이, 에키온이 내가 돌아오는 길목이 보이는 창문 앞에서 망부석처럼 꼼짝하지 않는단 사실도 말이다.
‘진짜 길에서 데려온 강아지나 고양이를 기르는 느낌이 물씬 들었지.’
책임감이 더욱 강해졌다.
“나만 따르는 건 아무래도 그 육지 애들 쪽 중에 오리나 닭처럼 일종의 각인 효과 아닐까?”
“알 속에서 깨어난 존재가 가장 먼저 본 존재를 어미로 따르는 것 말인가?”
“그렇지. 물론 나를 가장 처음 본 건 아니지만. 유대감…… 비슷한 걸 나눈 건 내가 처음이잖아.”
나는 에키온이 말을 모르던 때에도 ‘구원’에 대한 개념은 있었을 거라 생각했다.
나를 만난 이후 좋은 집, 좋은 환경, 안정적인 식사.
모든 게 뒤바뀐 지금에선 저 애의 세계가 더욱 넓어졌겠지만.
역시나 처음은 각별하겠지.
전체 환경이 달라졌으니 앞으로 더 좋게 변하지 않을까?
“그래. 네가 이 문제를 그리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단 건 알겠군.”
“음? 내가 혹시 어떤 부분을 심각하게 여기면 돼?”
나는 덩달아 진지해졌다.
아빠의 말이라면 언제나 경청할 용의가 충분했다.
“글쎄, 이건 그리 좋은 일만은 아닌 듯하다만.”
“왜?”
“굳이 따지자면 이야기할 수는 있다만, 지금 들어 봐야 들었을 때 후회하는 쪽일 텐데?”
“후회?”
올려다본 아빠는 뭔가 걸리는 점이 있는 듯한 낯이었다.
‘3년 전엔 이런 표정을 한 뒤 얼마 가지 않아 에키온의 정체에 의구심을 가진 시종을 잡아냈지?’
“아무것도 아니다.”
“……그렇게 말하니까 더 들어야 할 것 같잖아.”
“그저…… 어린 용 공작으로 인해 위험한 일이 발생했을 때 내가 널 보호하면 된다고 생각했을 따름이다.”
“…….”
“내 힘은 그때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니.”
아, 그렇지. 아빠는 에키온을 둘러싼 음모를 알고 있었다.
그러니, 에키온을 돌려보내든 거취를 어떻게 하든 간에, 언젠가 필시 황제를 비롯하여 흑표범 공작, 이외 가담한 육지 동물 맹수 귀족들과 마주하게 되리란 걸.
이미 염두에 둔 듯했다.
“아, 이해했어. 상황의 심각성은 나도 알아. 나는 투스와의 약속을 지킬 때까지는 그 어떤 위험에서도 에키온을 안전하게 보호할 거야. 황실의 위협도 마찬가지야.”
“……아니, 넌 전혀 이해하지 못한 것 같은데.”
“응?”
“넌, 모든 일에 유능하지만. 늘 감정엔 취약하군.”
“그거야…… 아빠도 마찬가지잖아?”
우리 두 사람의 닮은 점이자 공통점이다.
그래도 사회성은 내가 아빠보다 좋을걸?
나는 이렇게 생각하며 조금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아빠. 그보다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5년이나 흘렀지만 내 몸은 아직도 작다. 이게 불만이지만 이 작은 손으로 아빠의 뺨을 콱 붙잡았다.
어찌나 세게 잡았는지, 홀쭉한 아빠의 볼살이 눌려 튀어 나왔다.
아빠를 경외하는 이들이 보았다면 깜짝 놀랄 광경이었다.
아마 이러지 않을까?
그 피에르 아콰시아델 님의 뺨을 짜부시키다니!
“아주 진지한 얘기야.”
오늘 나는 리리벨로부터 나를 따르겠다는 답변을 받았다.
그렇다는 건, 이제 곧 많은 것이 바뀐단 이야기였다.
“나는 이제 더는 숨어 지내지 않을 거야.”
“……이미 이곳으로 오는 길목의 정원 바닥을 반파해 버린 시점에서 그리하려 했던 거나 마찬가지 아닌가?”
“…….”
그랬다. 리리벨을 만났을 적, 힘 조절을 못 해 부숴 버린 바닥은 실시간으로 소문이 나 버렸다.
아니, 참. 진지한 얘길 하려는데 그건 좀 슬쩍 넘어가 주지.
나는 작게 구시렁댔다.
아빠는 피식 웃더니 나를 고쳐 안았다. 고개를 들면 작게 웃는 표정이 보였다.
편안해 보이는 미소였다.
“내게 바라는 것이 있나?”
“아니, 아빠에게 바라는 것은 없어.”
나는 살래살래 고개를 저었다.
“원하는 건, 내 힘으로 손에 넣을 거야.”
한낮의 볕을 받아 푸르른 눈은 빛을 받은 호수처럼 반짝거렸다.
“……나는, 가끔 생각해 보곤 한다. 언젠가 네가 물의 힘을 각성한다면, 네가 일으킬 물의 색은 어떤 푸른색일지.”
나는 이미 알고 있는 대답이었다.
“늘 궁금했고, 그날을 기다렸지. 지금도 마찬가지다.”
“…….”
“너는 이미 물을 일으키지 못해도 더없이 강하다. 하지만 네가 각성하는 날이 더 오래 걸린다면…… 아쉬울 것 같군.”
언제나 표정 없이 고요하고 동요조차 없는 얼굴이었다.
그래서 나조차도 저 표정을 해석하는 데 애를 먹는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지금은 아빠의 생각이 손에 잡힐 듯 느껴졌다.
그건.
‘죽기 전에 볼 수 있을까.’
이런 의문이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아빠는 처음 만났을 때 괜히 초연하고 체념 어린 모습이 아니었듯.
“내 병은 내가 제일 잘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