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3화
내 눈에서 떨어진 눈물이었다. 이어서 굵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못 참겠어.”
나는 양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서러운 울음이 새어 나가지 않도록 끅끅대며 울었다.
엄마와 아빠를 마주한 뒤, 처음 하루는 그저 멍했다.
본 장면이 그저 놀랍고 충격을 받았으며 다시 멍했다.
다음 날은 부정했다.
엄마랑 아빠가 나를 그렇게 사랑했는데, 나를 부정할 리가 없잖아.
나를 기억하고 계시니까 돌아가기만 하면 되는 거잖아?
그리고 다음 날, 마침내 깨달았다.
‘돌아가도…… 내 자리는 없는 거구나.’
인정해야 했다. 내가 돌아갈 곳은 사라졌다.
받아들여야 했고, 수용해야 했고 나와 협상을 해야만 했다.
절망이 가슴에 내려앉는 것 같았다.
돌아갈 곳이 사라졌으니, 이제 남은 곳은 여기뿐이었다.
여기…….
왜? 대체 왜?
모든 것을 받아들이자, 무력감과 우울감이 찾아왔다.
내 자리가 사라져 버렸어.
그럼에도 집으로 돌아갈까, 생각해 보지 않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돌아갔는데 엄마랑 아빠가 나를 외면하면?
나는 입양아였다. 다시 말해 부모님이 나를 버리면 다시 고아가 되는 아이.
왜, 나는 항상 불안에 떨며 살아야 하는 걸까.
사실은 엄마 아빠의 손에 사랑받으면서 컸음에도 늘 불안했다.
언제 부모님에게 친자식이 생길지 몰라서, 그때 버려질까 봐 무서워서.
부모님은 그럴 일은 없다고 약속해 주었지만 이따금 피로해서 악몽이 덮쳐 올 때면 늘 버려지는 꿈을 꿨다.
안정적인 사랑이 그리웠다.
구하지 않고 받는 사랑은 어떻게 받는 거더라?
이제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지?
“흑, 아흑, 흡…… 읍.”
울음이 샐까 봐 열심히 입을 틀어막았다.
오늘만 울고, 딱 오늘까지만 울고 내일 생각해 보자.
그러니까 오늘만…….
“너는 우는 것도 참 너답게 구는군.”
여기서 들려 올 리 없는 목소리에 깜짝 놀라 고개를 들어 올렸다.
짙은 나무 그림자 아래, 스승님이 마치 기둥처럼 서 있었다.
나는 울다 말고 서둘러 눈물을 닦아 냈다.
“어, 스승님? 어, 이건, 그러니까. 어떻게 왔어? 무슨 일 있어?”
“…….”
“아, 내가 넘어져서, 아파서 조금…… 좀 애처럼 울었어.”
“…….”
“스승님?”
스승님은 답이 없었다. 대신 내 몸이 허공으로 둥실 떠올랐다.
익숙한 부유감이었지만 오늘은 어쩐지 불편하게 느껴졌다.
“패싸움에 얼굴이 다 터졌음에도 울지 않던 네가 고작 넘어졌다고 운다니 잘도 믿겠군.”
“……역시 너무 형편없는 답이었어?”
“그래.”
아, 역시 이건 너무 남루한 핑계였나 보다.
발뺌하기도 늦은 듯하여 나는 그저 물줄기에 몸을 맡긴 채 앞을 응시했다.
스승님과 딱 같은 눈높이였다.
“생각해 보니 네가 우는 걸 한 번도 본 적 없더군.”
스승님이 걸어옴에 따라 달빛 아래 새파란 두 눈이 드러났다.
“걸어오면서 내가 네 나이였을 때를 떠올려 보았다.”
“……와, 스승님이 세 살이라니 상상도 안 가네.”
“대답하기 싫으면 억지로 대답하지 않아도 된다.”
“…….”
“생각해 보니, 네가 나와 비슷한 구석이 하나라도 있고, 그게 바로 눈물이 없는 거라면.”
“…….”
“너도 나처럼 홀로 남았을 때 비로소 울 거라 생각했지.”
나는 작게 웃음이 터졌다.
뭘 모르는 말이네. 내가 얼마나 눈물이 많은데.
그저 세 번의 회귀를 거쳐 사라진 것뿐이거든?
뭐, 지금의 나라면 그 말도 틀린 말은 아니긴 하지만.
웃는 동시에 주르륵, 아니. 눈물이 펑펑 흘러내렸다.
“억울해. 왜, 그냥 울게 두지. 굳이 말을 걸어서, 티를 내서 보이게 만들어?”
“…….”
“스승님은, 그냥 기척도 내지 않고, 말도 하지 않고 그냥 넘어갈 수 있었잖아……!”
처음으로 터져 나온 진심 어린 원망이었다. 스승님은 묵묵히 듣고 있다가 말했다.
“진짜 억울한 건 그게 아니지?”
“…….”
정곡을 쿡 찔러 버린 말에, 나는 더 이상 아무렇지 않은 척 대꾸하는 대신 얼굴을 잔뜩 찡그린 채로 입술을 깨물었다.
지금이라면 누구든 좋았다.
내 말을 들어 주는 게 누구든 상관없을 것 같았다.
“억울해. 나만큼, 나만큼 열심히 산 사람 없어.”
“…….”
“근데 내 인생은 왜 이래?”
굵은 눈물이 터져 나왔다. 싫었다. 정말 싫은데.
“왜?”
내 잘못을 찾고 있는 스스로가 더 싫었다.
아빠는 고작해야 세 살이 이딴 소리나 한다고 비웃지 않았다. 이상하게 보지도 않았다.
그게 안에 고여 썩어 버렸던 서러움이 새어 나오도록 만들었다.
스승님, 당신은 쓸데없이 다정해.
“너무 억울해, 나도…… 잘 살고 싶었어.”
나라고 이렇게 살고 싶었던 적은 없었단 말이야.
나는 무슨 잘못을 했나요?
“행복해지고 싶었단 말이야.”
왜 내가 바라는 것들은 늘 거품처럼 사라지는 것인지.
더는 말을 잇지 못하고 나는 그만 엉엉, 서럽게 소리 내어 울고 말았다.
말하고 싶은 게 잔뜩 남았는데, 서러움에 밀려 더는 언어로 뭉치지 못했다.
“……무엇이 억울한지 물어봐도 대답해 줄 것 같진 않고.”
뺨 위로 차가운 손이 툭 닿았다.
그 손이 눈물을 닦아 낸다 한들 새로 솟아난 눈물이 마구 적셨다.
스승님의 옆으로 몽글몽글한 물방울이 만들어지더니 내 뺨에 톡 달라붙었다.
“네가 억울해하지 않는 세상을 만들어 주면 되나?”
따뜻한 물방울이 내 눈물을 가져갔다.
흡수했다고 봐야겠지만 닦아 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겨우 맑아진 시야로 스승님의 얼굴이 보였다.
“그럼 그칠까?”
그 얼굴은 내가 봤던 것 중에서 가장 어찌할 바를 모르는, 길 잃은 사람 같은 얼굴이었다.
염려와 걱정이 담긴 얼굴.
“우리 딸 뭐가 그렇게 서러웠어, 응?”
“아빠가 아이스크림 왕국을 만들어 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