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0화
칼립소는 자신만만했다.
한편으로, 자신이 이렇게 말한다고 한들 고작해야 세 살밖에 안 된 꼬맹이를 믿을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칼립소는 이 순간 든든한 자신의 편을 이용했다.
“나를 통하면 여기 계신 피에르 아콰시아델 님이 네 뒤에 서겠지.”
“…….”
“네가 내키든 내키지 않든, 나는 널 그렇게 만들어 줄 수 있다는 거야.”
“…….”
“너, 권력 좋아하잖아?”
굳이 따지자면 그랬다.
벨루스는 항상 칼립소가 자신을 꿰뚫어 보고 있다고 느꼈다.
이 정보는 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인가.
벨루스는 피에르를 닮은 서늘한 시선으로 칼립소를 빤히 바라보더니, 입을 떼었다.
“……대답하기 전에 질문을 먼저 하겠어.”
“얼마든지. 뭔데?”
“대체 일이 어떻게 된 거지? 왜 용 공작이 내 눈앞에 있는지 묻지 않을 수가 없어.”
생각보다 더 태연하고 차분한 반응이었다.
칼립소는 예상과는 다른 반응에 놀랐다.
하지만 다른 건 몰라도, 단순히 용 공작이 여기 있는 걸 알리는 것과 내막을 알려 주는 건 다른 일이다.
‘황실의 꿍꿍이는 악용될 수 있는 정보야.’
칼립소는 3회차의 기억으로 벨루스를 아끼고 잘살았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으나.
이것과 별개로 현재의 벨루스를 믿지는 않았다.
‘아아, 정말 이렇게 불신이 가득한 가족이라니.’
속으로 엉뚱한 생각을 하며 웃었다.
“그건 알려 줄 수 없어. 네가 발설하지 않겠다고 바다의 이름을 걸고 맹세라도 하지 않는 한…….”
“할게.”
“그래 안 할 거, 뭐?”
얘 왜 이래? 칼립소는 또 한 번 예상과는 다른 반응에 놀랐지만.
이내 태연하게 받아들였다.
좋아, 맹세한다면야.
자기 목숨 버려 가면서 발설하진 않겠지.
칼립소는 에키온을 바라보며 그간 있었던 일을 모두 토로했다.
최대한 간략하게 요약했기에 이야기는 길지 않았다.
‘이번에야말로 놀랄 줄 알았는데. ……이쯤 되면 부전자전이란 말은 쟤랑 아빠한테 딱인 말 아닐까?’
모든 이야기를 듣고도 벨루스는 태연자약했다. 어쩜 피에르가 보인 모습과 똑같은지.
침착하다 못해 냉철하고 고요한 모습이었다.
“난 할머니께 무슨 일이 있는지 말 못 하게 된 거군.”
“그러게. 난 거기까지는 생각 없었는데, 네가 알아서 들어온 거다?”
후회해도 이미 늦었단다, 요놈아.
칼립소가 어깨를 으쓱했다.
현재 벨루스가 한 바다의 맹세에는 맹점이 있었다.
가주에게 황실의 음모를 말할 수는 없어도, 용 공작의 존재는 발설할 수 있다.
벨루스도 이를 알고 있었다.
‘확실히 용 공작을 무기화한다는 건 아콰시아델에게도 위험한 계획이다.’
용 공작은 대대로 중립적인 존재였다.
육지 동물도, 수중 동물도 아닌 신수 같은 존재.
하지만 살아 있는 전설이 한쪽의 세력에 속하고, 무기가 되어 버린다면.
그렇지 않아도 수중 동물 수인을 차별하고 혐오하며 기회가 되면 내쫓을 궁리를 하던 이들이다.
망설임 없이 발아래로 복속시키려 들 것이었다.
“차라리 할머니께 솔직하게 말하는 쪽이 좋지 않나?”
“나는 가주님을 믿지 않아. 너는 과연 할머니가 내 말을 어디까지 믿으리라 생각해?”
“…….”
“내가 믿는 건 여기 있는 에키온과 스승님뿐이야.”
“그렇군.”
벨루스는 이어서 말했다.
“용 공작의 존재를 발설하지 않을게. 원하는 건 그게 전부야?”
칼립소는 깜짝 놀랐다.
‘무슨 심경의 변화야?’
벨루스는 칼립소가 아닌 피에르를 보았다.
벨루스는 시간이 흘러도 절대 변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가주인 오큘라 아콰시아델과 부친인 피에르 아콰시아델일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은 제 여동생과 관계된 일에 있어서 평소라면 하지 않을 행동을 보였다.
이 모든 일을 지켜보면서 어찌 궁금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난 진심으로 네게 관심이 있어서 온 거야. 칼립소 아콰시아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