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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막 범고래 아기님 (89)화 (89/275)

제89화

지금 이 순간에는, 이제야 겨우 자기 이름을 입에 담게 된 아이가 고개를 갸웃 흔들 뿐이었다.

몽롱한 듯 말간 얼굴을 보며 나는 웃었다.

“앞으로 잘 부탁해.”

그렇게 용 공작 에키온을 지켜보던 도중, 나는 아이가 미약하게나마 파르르 떨고 있단 걸 알아챘다.

‘……이런, 추운 건가?’

고개를 돌리니 아직 활짝 열린 창문을 통해 찬바람이 들어오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파충류들은 추위에 약했지.

엄밀히 따지면 용도 파충류……에 속하려나? 대형 도마뱀?

초대 용이 들었다면 기함했을 생각을 하며 나는 창문을 닫고, 방 한쪽에 곱게 접혀 있던 담요를 가지고 돌아왔다.

‘아빠는 언제쯤 들어오려나?’

신기하게도 마침 딱 에키온의 머리카락과 같은, 예쁜 파란색이었다.

에키온은 머리에 담요를 쓰고도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눈을 깜빡였다.

“춥지? 일단 이거라도 덮고 있어. 아니면 침대에 누워서 이불을 덮어도 좋고. 잠시 눈을 붙여도 좋아.”

“춥지?”

“응. 아까 이렇게 덜덜 떨던 거, 추워서 그런 거야.”

담요를 내려 어깨에 덮어 주었더니 떨림이 멈췄다.

“따뜻하지? 이건 용 공작님, 너 줄게.”

“……따뜻하지?”

“응. 이거, 따뜻하다. 네 거야.”

“내 거.”

“응, 네 거야.”

시선을 돌리면, 어느새 창문 너머로 하늘 끝을 물들인 아침의 끄트머리가 보였다.

나는 환해져 가는 하늘을 바라보며 슬쩍 찡그렸다.

‘아빠가 좀 늦는 거 아닌가?’

* * *

일출 시간.

막 아침 해가 떠오를 무렵, 용의 도시 성문 근처는 이른 아침부터 바빠 보였다.

모두가 우러르는 용 공작이 사는 도시.

게다가 축제를 앞둔 시기 탓에 수많은 마차가 오갔지만, 어제부턴 성안으로 들어오는 마차는 거의 없이 줄곧 나가는 자들뿐이었다.

도시 밖을 나가기엔 이른 시간이었으나, 나가려는 마차의 등장은 낯설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게 용의 축제가 취소되었으니 말이다.

이 소식은 도시를 지키는 기사들에게도 전해졌고, 곧 제국 모든 수인이 알게 되었다.

용의 도시에 사는 수인 누구나 그렇듯 용 공작을 흠모하고 숭배하는 이들에겐 아쉽다 못해 근심마저 안겨 주는 소식이었다.

“못 보던 마차인데, 누구래?”

“아아. 자네는 내륙 중에서도 가장 안쪽에서 왔지? 아콰시아델이야. 그 왜 범고래 가문 있잖나. 수중 동물 중에 제일 강하고 유명한 수장 가문.”

“아아.”

전반적으로 침울한 가운데, 아콰시아델의 마차는 문제없이 성문을 통과했다.

돌아가는 손님 목록에 올랐고, 이미 용의 성에도 떠날 시간이 공유되었기에 사실상 문제 될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물고기들이 용의 성을 떠난다니, 그건 좋네.”

“하긴 그건 그래. 용의 도시에는 어울리지 않는 자들이지.”

“이봐, 자네들 그 소리 저들 앞에서 하지 않은 게 다행인 줄 알게나. 용의 성 식당에서 있었던 일 못 들었나? 천하의 불곰이 1초도 버티지 못하고 나가떨어진 이야기인데……!”

기사들은 잠시간 조롱 섞인 이야기를 나누다가 돌아갔다.

그렇게 아콰시아델 가문의 마차는 그 어떤 방해도 없이 저 멀리 멀어져 갔다.

기사들은 저 안에 자신들이 그토록 숭배했지만 실상 어떻게 사는 줄도 몰랐던 용 공작이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한 채.

콰르르. 쾅!

성문이 닫혔다.

그리고 이날로부터 2주 뒤, 용 공작 성에서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 * *

“스승님, 진짜로 안 알려 줄 거야? 뭘 하고 온 건데?”

벨루스는 마차에 가만히 앉아 관찰하기 바빴다.

이틀 전, 아콰시아델로 출발했다.

현재는 오후, 그것도 꽤 시간이 늦은 오후였다.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될 거다.”

“왜 안 알려 주는데? 대체 이렇게 물어보는 게 며칠째야. 며칠째. 그래서 얼마나 흘러야 알려 줄 건데?”

“글쎄…… 예상대로라면 2주, 빠르면 일주일 정도겠지만 빠를 일은 없을 것 같군.”

“익, 수수께끼 하자는 것도 아니고.”

무언가 미묘하게 달라졌다. 벨루스는 이렇게 느꼈다.

벨루스의 감은 지금까지 웬만해선 틀리는 법이 없었다.

‘두 사람의 관계가 뭔가 바뀐 듯한 느낌이 드는 것 역시 착각이 아니다.’

하지만 고작해야 며칠밖에 안 되는 시간으로 무엇이 바뀐단 말인가.

사실 용공작을 숙소로 데리고 온 날. 피에르는 미리 벨루스 방 근처에 조치를 취해 놓았다.

그렇기에 벨루스는 제 방 밖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지 못했다.

역시나, 이 이상 현상의 원인은…….

‘저건가.’

벨루스의 시선 끝에는 로브를 푹 뒤집어쓴 에키온이 있었다.

품에는 새파란 담요가 있었는데, 이걸 누가 뺏어가기라도 할까 봐 꼬옥 껴안은 채였다.

‘대체 저건 누구지?’

며칠 내내 저 상태에 심지어 말도 거의 없었다.

“칼립소 아콰시아델.”

분명 저게 바로 칼립소와 피에르 사이에 생긴 미묘함의 원인이었다.

“대체 설명은 언제 할 거지?”

그러자 재잘재잘 떠들던 칼립소의 목소리가 축음기를 뚝 끈 듯이 멈췄다.

칼립소의 푸르른 눈이 벨루스를 향했다.

칼립소가 생각했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만.’

며칠이면 벨루스치고도 꽤 오래 참은 것이다.

사실 칼립소는 속으로 놀라고 있었다.

닦달이라도 할 줄 알았는데, 이 시간까지 참은 것에 말이다.

덕분에 용의 도시에서는 꽤 멀어진 상황이었다.

“아빠, 벨루스 그놈에겐 내가 설명하게 해 줘.”

“설명으로는 납득하지 않을 텐데? 네가 한 짓이 생각보다 더 미친 짓이란 걸 상기하는 게 좋겠군.”

“……고래 뼈가 단단하다지만 너무 때리진 말아 줬으면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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