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막 범고래 아기님 (88)화 (88/275)

제88화

아빠의 말대로 만약 용 공작이 여기서 나가는 것을 알게 되었거나.

혹은 침입자가 있단 걸 아는 방법이 존재한다면.

‘중요한 건 용 공작이 밖에 있는 사실을 알게 되었느냐, 그저 침입자가 있단 사실을 알게 되느냐인데.’

단순히 침입자가 있었던 걸로 의심하면 차라리 괜찮다.

“스승님, 일단 도망가는 대신 잠시만 대기하자.”

나는 생각한 바를 얼른 말했다.

아빠는 듣더니, 곧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도록 하지.”

곧 식당에서 보았던 얇은 물의 막이 우리를 둘러쌌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이번엔 소리뿐만 아니라 기척까지 숨겨 줄 업그레이드 버전이라는 거다.

사실 사자나 흑표범쯤 되는 최상위 맹수가 있다면 모를까, 지금 달려온 하이에나 수인은 알아차리지 못할 능력이었다.

곧 건물 앞으로 조금 전에 봤던 하이에나 수인과 카멜레온 수인이 나타났다.

직접 들고 달린 건지, 하이에나 수인은 카멜레온 수인의 허리를 달랑 들고 서 있었다.

“뭐야, 아무도 없잖아. 너 제대로 느낀 거 맞아?”

하이에나 수인이 카멜레온 수인을 툭 떨어트렸다.

“우욱, 맞습, 맞습니다……! 제가 설치해 둔 함정이 발동했습니다. 분명 움직이는 기척이 났습니다!”

“들짐승 아니야? 아, 아니겠구나. 걔들이 맹수 냄새를 맡고도 얼쩡거릴 리가 없는데…….”

하이에나 수인은 허공을 향해 코를 킁킁댔다.

“역시 주변에 아무도 없어. 낯선 냄새도 느껴지지 않는데.”

그녀는 코를 매만졌다.

“이상하네. 이대로 아무런 일이 없어도 뭔가 찜찜한데…….”

“하, 하이라 님…… 후욱, 일단은, 제 함정이 강한 바람 같은 것에 흔들렸을 가능성도 있긴 합니다…….”

“뭐야? 그런 걸 왜 지금 말해?! 놀라서 둘러메고 냅다 뛰었잖아!”

카멜레온 수인은 하이에나 수인의 속도에 멀미를 느낀 듯 몇 번이나 헛구역질을 해 댔다.

몇 번이고 주변을 살펴보던 하이에나 쪽은 곧 일어난 카멜레온 수인을 데리고서 주변을 살펴보자고 했고.

곧 그들이 다시 멀어졌다.

“스승님, 이제 출발하자.”

적들의 동태를 살펴보니, 다행스럽게도 용 공작이 떠난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단은 없어 보였다.

‘생각보다 허술한데. 그 이유는…….’

나는 흘끗 용 공작을 보았다.

아마, 저 용 공작이 ‘도망’이라는 개념을 알 리가 없다고 생각하는 거겠지.

게다가 어느 미친 수인이 나처럼 용 공작을 데려가겠는가.

그들 입장에선 상상도 못 할 일일 것이다.

‘여기서는 조용히 돌아가는 쪽이 좋아.’

만약, 정말 만에 하나 투스가 가짜란 게 들켜서 용 공작의 실종이 알려지더라도, 그들은 용의자를 좁힐 수조차 없을 것이다.

손님들에게 의심이 미친다 한들 용의 축제를 위해 방문한 손님은 오늘 낮 들렀던 홀을 가득 채울 정도로 많았다.

게다가 용 공작에게 무수히 많은 관심을 보낸 육지 동물 수인 귀족들과 다르게 별다른 개인적인 관심을 보이지 않은 아콰시아델은 용의선상에서도 멀찌감치 떨어져 있을 거다.

아빠가 이내 소리 없이 움직였다.

아빠에게 안겨 흘끗 돌아보니, 용 공작은 멀어지는 건물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투스.”

조그만 목소리.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임에도 어쩐지 그리워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 * *

우리가 다시 숙소로 돌아왔을 즈음, 날이 밝을 거라고 예상했던 것과 다르게 하늘은 아직 검고 주변은 고요했다.

아빠가 빠르게 움직인 덕에 시간을 많이 아낀 탓이었다.

‘혹시나 맹수 수인이나 보초랑 충돌하는 경우의 수도 생각했는데……. 아무런 일도 없어서 다행이야.’

대비책이 쓸모없어져서 오히려 다행인 일이었다.

“칼립소.”

아빠는 나와 용 공작을 내 방에 내려놓고는 다시 난간 위에 섰다.

금방이라도 다시 나갈 듯한 모습이라 나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스승님, 어디 가?”

“처리할 일이 있어서 잠시 다녀오겠다.”

“잠시만……. 잠시만!”

서둘러 뛰어가서 겨우 아빠를 붙잡았다.

“무, 무슨 사고라도 치려는 건 아니지?”

“나를 무슨 세 살만도 못한 취급을 하는군.”

“세상엔 나 같은 세 살도 있으니까 그거 편견이야.”

“네가 특별한 세 살은 아니고?”

“…….”

대꾸는 참 잘해. 나는 뚱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단호하게 말했다.

사고는 안 돼.

“걱정할 것 없다. 네가 생각하는 종류의 사고는 아닐 테니.”

“그 말이 더 불안한데!”

“왜지?”

“일이 잘못되기라도 하면 어떡해.”

“내가 네 일을 망칠 이유가 없지 않나.”

“…….”

그건 그렇지.

“나는 적어도 이 여정에서 네가 바라는 걸 들어주지 않은 적이 없어.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알겠어. 스승님도 생각이 있겠지만, 뭐든 들키면 안 돼?”

일단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아빠에게는 무언가 이 작전의 허점이 보였던 모양이었다.

연유는 다녀와서 들어도 늦지 않았다.

어차피 돌아가는 내내 함께 마차에 있을 테니까.

아빠는 푸른 달빛 아래에서 피식 웃었다.

게다가 자신은 실패할 이유가 없다는 듯한 저 자신감 넘치다 못해 오만한 모습.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는 거냐.”

그러고는 굳이 내 머리를 한 번 쓰다듬고는 다시 난간을 넘어갔다.

훌쩍 뛰어내린 모습이 곧바로 보이지 않게 되었음에도 나는 한참을 캄캄한 공간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

내 방에 서 있는 용 공작이라니.

어째 현실감 없는 풍경처럼 보이지만 이쪽이 현실이었다.

‘정신 차리자. 아직 작전은 끝난 게 아니야.’

이 용 공작이 아콰시아델의 땅을 밟아야 비로소 이 작전과 계획이 문제없이 끝나는 거다.

“피곤하진 않아? 용 공작님, 일단 좀 앉을래?”

“…….”

예의상 말을 먼저 건네긴 했지만, 이해할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용 공작의 손을 잡아 이끌어 침대에 앉혔다.

일단 가방은 벗겨서 옆에 두었다.

내가 일련의 행동을 하는 동안에도 용 공작은 그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었다.

“짧은 시간에 많은 일이 일어나서 놀랐겠네.”

용 공작에게선 대답이 없었다. 나 또한 답을 기대했던 것은 아니어서 상관없었다.

“날이 밝는 대로 출발할 거야. 출발 시간도 미리 이 성의 집사에게 공유해 두었으니, 이상하게 생각할 사람은 없어.”

“…….”

“생각해 보니 용 공작님은 살고 있던 곳 밖으로 나온 게 처음인가? 태어날 때부터 거기 살았어?”

태어날 때부터 그곳에서 지냈을까.

아니면 태어난 곳은 저기 저 웅장하고 화려한 성이었지만 쫓겨난 걸까.

어차피 당장 나도 자는 것 외엔 할 일이 없었지만, 그렇다고 잠들고 싶진 않았다.

잠이 오지도 않았고.

용 공작 옆에 놓인 가방을 열어 수첩을 꺼냈다.

겉표지를 넘기자마자 예쁘고 동글동글한 글씨체가 보였다.

「갓 태어난 용 공작님에게는 배움이 필요하다.

여기에는 지식을 포함해 인간이 기본적으로 가지는 감정도 포함한다.

용은 가장 먼저 유대감을 가진 인간의 감정을 흉내 낸다.

그러니까, 배움이 너무너무 중요하다. 아주 많이.」

난 수첩을 쓸어 보다가 고개를 들었다.

배우지 못한 것에는, 아니. 직접 배워야 하는 것에 감정도 포함될 줄이야.

“그래서 너는 투스의 눈물을 닦아 주지 않았던 거구나.”

“…….”

“이상하지, 나는 그래도 네가 투스를 많이 아낀다는 걸 느낄 수 있었는데 말이야.”

팔이 아플 텐데도 투스를 가만히 손에 얹고 하염없이 움직이지 않던 모습.

그 모습이 머릿속에 인상 깊게 남아 있었다.

“용 공작님.”

「우리 용 공작님의 이름은 ‘에키온 폰투스’야.

하지만 내가 아니면 아무도 몰라. 불러 주는 사람이 없으니까.」

“이름이 뭐야?”

“…….”

“네 이름, 에키온이래. 투스가 이렇게 말하네?”

“…….”

“에키온.”

나는 시선을 느끼며 방긋 웃었다.

“용의 도시와 비슷한 이름이네. 잘 어울려.”

초대 용의 이름은 에키나.

마치 모자지간 같은 이름이다.

“……에키온?”

“응. 에키온. 네 이름이야. 에키온.”

이 도시가 비슷한 이름만큼이나 네게 다정한 도시였다면 좋았을 텐데.

“나랑 가자.”

이미 용 공작의 방에서 했던 말을 다시 하게 된 건 그때의 기억을 잊어서가 아니다.

“네가 지금 뭘 이해하기 어렵고, 의사 결정이 쉽지 않다는 거 알아. 하지만 나는 네가 지금 이 자리에 있을 수 있던 이유가 너를 지극히 사랑한 존재의 희생으로 생긴 기회라는 걸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

“……칼립소.”

“응, 맞아. 내 이름은 칼립소야. 그리고 에키온.”

“…….”

“이건 네 입으로 말하지 않으면 안 돼.”

나는 양손으로 에키온의 손을 꼬옥 잡았다.

“언젠가는 오늘 내가 했던 말을 이해하게 될 거야. 네 삶은 네가 구원하는 거야.”

“구원…….”

의미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아이가 앵무새처럼 내 말을 되풀이했다.

지금은 이 정도만이라도 좋았다.

“응. 언젠가 네가 지금 내가 한 말을 모두 이해하는 날에, 난 네가 내 부탁을 하나 들어주면 좋겠어.”

날 집으로 돌려보내 줘. 부탁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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