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막 범고래 아기님 (82)화 (82/275)

제82화

너와 난 서로 도울 수 있어.

너도 이딴 곳에서 빠져나와. 나도 널 도울게.

-투스 칼립소 좋아해. 칼립소는 좋은 수인이야.

“응, 고마워. 그래서 내 제안은 어때?”

-칼립소 말 맞아. 투스 도와줄 사람 찾았어. 칼립소면 좋아. 괜찮아. 하지만…….

“하지만?”

투스가 망설이나 싶더니 고개를 내저었다.

-칼립소 여기 언제 떠나?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원한다면 당장 돌아갈 수도 있어.”

어차피 이곳엔 용 공작을 보러 왔다.

축제를 보지 못하는 건 조금 아쉽지만 아까 보초들의 대화를 미루어보자면 어차피 축제는 열리지 않을 테니. 사실 아쉬운 일도 없는 셈이다.

-정말? 바로 떠나?

투스가 화색을 띠었다.

아무래도 떠나는 시기가 고민이었던 모양이었다.

-그럼 좋아, 용 공작님 좋은 곳에서 배워야 해. 좋아!

신난 목소리에는 용 공작을 향한 충성과 애정이 가득했다.

나는 잠시 아이에게 시선을 주었다.

‘감정을 배우지 못한 것과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건 다르지 않나?’

이토록 옆에서 온몸으로 애정을 발산하는 존재가 있는데.

어쩌면 이전 회차에서도 용 공작은 투스가 있었기에 그래도 원작의 서술 같은 사람이 되었던 건 아닐까?

그렇다고 이런 환경에 그대로 둘 수는 없지만 말이야.

“좋아, 결정했으면 빠르게 움직이자.”

그러고 보니 문득 내가 아직도 용 공작의 손을 잡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놓으려고 하는데, 이번엔 저쪽에서 내 손을 꼬옥 잡아 왔다.

나는 바로 깨달았다.

‘내가 했던 행동을 그대로 따라 하고 있어.’

나는 눈을 깜빡이다가 웃었다.

“이름이 뭐야?”

“……이름이 뭐야?”

“나는 칼립소 아콰시아델이야.”

“칼립소 아콰시아델이야.”

“맞아.”

“…….”

꼬옥 잡은 손이 나를 조물조물 만졌다. 자그마한 입술에서 또 한 번 내 이름이 나왔고, 나는 긍정했다.

“칼립소 아콰시아델이야.”

“응. 칼립소야.”

“칼립소야.”

몇 번이고.

용 공작이 내 이름을 제일 먼저 기억하면 좋겠다는 염원을 담아.

잘 키워서 집으로 돌아가 보자는 생각을 했다.

“좋아, 결정됐으니 이제 움직여야겠지.”

나는 남몰래 품은 희망을 말하는 대신 손을 탁탁 털었다.

이 이야기는 용 공작과 다시 할 순간이 올 것이다.

‘일단은 용 공작을 지금 당장 데려갈 수는 없어.’

마음 같아선 얼른 이 손을 잡고 보쌈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지만.

이미 보지 않았는가. 저 밖에는 하이에나라는 상위 포식자 수인과 카멜레온 수인이 버티고 있다. 감시하기 딱 좋은 조합으로 뭉친 그들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그 하이에나, 힘이 보통이 아니야.’

보기만 해도 어렴풋이 느낄 수 있다.

지금의 내가 덤벼서는 나 하나 빠져나가는 것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

그런 데다가 앞서 말했듯 용 공작은 나보다 덩치가 조금 더 크다. 고로 내가 빠져나왔던 구멍을 나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토록 불명확한 변수가 많은데 무작정 데리고 나올 수는 없다.

‘기회는 한 번뿐이라고 생각해야 돼.’

내가 용 공작을 데리고 튈 거라는 걸 밖에 있는 놈이, 황실이 알게 되기라도 하면 이런 기회는 다시는 오지 않는다고 봐야 했다.

“투스, 너는 여기 있을 거지?”

-응! 투스 공작님 옆, 있을 거야.

나는 끄덕였다.

투스가 함께하면 더 좋겠지만 이제 막 주인을 다시 만나 행복해 보이는 저 아기 뱀을 다시 생이별시킬 수는 없잖아.

게다가 투스가 함께 간다고 해서 뾰족한 수가 생기는 건 아니니.

“투스, 한 가지만 묻고 싶은데, 혹시 내가 이 건물 근처에 오면 너도 알 수 있을까? 예를 들어서 내가 아까처럼 머릿속으로 말을 걸면 들리는지 궁금한데.”

-들려! 가능할 거야! 이 성은 용의 영역이니까. 투스 기척 알 수 있어!

“그래?”

나는 턱을 매만졌다.

결론을 내렸다.

‘역시, 이거 혼자서는 안 되겠다.’

……혼자 일을 벌이기엔 스케일이 너무 크다.

‘절대 혼자 못 해, 이거.’

게다가 천만분의 일 행운으로 어찌저찌 나 혼자서 용 공작을 데려왔다고 한들, 문제는 또 있어.

숙소에서 아빠랑 벨루스 그놈을 마주치면 뭐라고 할 거야.

나는 끙, 한숨을 쉬면서도 머릿속으로는 어떡하면 아빠를 설득할 수 있을지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일단 아빠만 설득하면, 벨루스는…….’

아빠한테 힘으로 협박하라고 하면 돼. 좋아.

“일단 투스, 그럼 나는 내일 다시 올게. 다시 올 때는 공작님을 데려갈 준비가 된 뒤일 거야.”

하루라는 시간 안에 아빠를 설득할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일단 한번 시도해 보기로 했다.

어차피 용의 축제가 열리지 않는 게 확실하다면 범고래 가문이 여기 더 머물 이유가 없었으니까.

“혹시나 만약 내일 준비가 되지 않았더라도 오늘 우리가 들어온 개구멍 쪽 기억하지?”

-응! 기억나!

“그곳에서 널 부를게, 불러서 상황을 설명해 줄 거야. 언제 어떻게 용 공작님을 데려갈지.”

-응! 투스 좋아!

투스가 용 공작의 손에 앉은 채로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기분 엄청 좋아 보이네.

나는 피식 웃고는 고개를 돌렸다.

“…….”

언제부터 보고 있었던 건지 모르겠지만 용 공작이 나를 빤히 응시하고 있었다.

몽롱한 듯 흐릿한 시선. 내 시선이 느껴지자 갸우뚱하는 고개를 보고 있자니 조금 귀여웠다.

“나랑 가자.”

“……나랑 가자.”

“가자.”

“가자?”

나는 짧은 웃음과 함께 감상을 이야기했다.

“앵무새 같네.”

이렇게 작으니까 아기 앵무새인가? 용과는 어울리지 않긴 했다.

‘시간이 없으니 돌아가야겠다.’

밤이 지나기 전에 침실로 돌아가야 한다.

그렇게 막 돌아서려 하는 순간이었다. 한쪽 손을 톡 붙잡혔다.

처음엔 아주 미약한 힘이었는데 점차 강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용 공작이 입을 움직였다.

“칼립소야.”

“으응?”

나는 눈을 깜빡였다.

그러다 씨익 웃었다.

“그래. 칼립소 맞아. 그리고 다시 올게.”

나는 용 공작의 손을 살짝 떼어내고는 그대로 내려놓는 대신에 꼬옥 잡아 주었다.

용 공작이랑 다른 케이스지만…… 내 수하 중 애정결핍이 심한 놈이 있었다.

“그때 다시 보자.”

그놈도 이렇게 손잡는 걸 굉장히 좋아했던 기억이 났다.

“그냥, 상대의 온기를 느낄 수 있다는 상황 자체가 신기했던 것 같습니다.”

“가주님, 누군가의 온기는 때로 생각 이상의 것을 가져다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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