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0화
설마, 용 공작의 폭주가 이미 이 시기에도 진행된 건가?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나는 몸을 옮겼다.
문이 있는 곳을 향해서였다.
발소리는 여전히 들려 오고 있었다.
-투스, 하나만 물어볼게. 꼭 대답해 줘. 용 공작님, ‘폭주’ 상태인 거야?
-아니야!
투스가 소리쳤다.
-공작님, 멀쩡해. 아프지 않아! 이상 없어! 그저……!
끼이익. 투스의 말을 방해하듯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고, 나는 본능적으로 벽에 딱 달라붙었다.
슬쩍 고개를 내밀면, 문에서 거대한 그림자가 먼저 보였다.
저렇게 커다란 그림자라니…… 대체 용 공작은 얼마나 큰 거야?!
숨을 꿀꺽 삼켰다.
이윽고 나타난 인영이 깨진 접시에 다가가는 것이 보였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더 움직이면 달빛 아래 모습이 보일 것 같았다.
마침내, 달빛 아래로 용 공작이 등장했을 때 나는 입을 벌렸다.
‘어린애?’
거대한 그림자는 대체 무슨 영문이었던 것인지.
그림자 크기가 무색하도록 조그마한 아이였다.
내겐 아이의 뒷모습만 보였지만, 아이는 멍하니 바닥에 엎어진 음식을 보는 것 같았다.
‘아무리 무섭다지만 시중이 엉망진창이잖아.’
음식이 엎어져서 분노한 걸까?
이제 난동을 부리나?
그러나 다음 순간 용 공작이 보인 모습은 너무나 의외였다.
‘자, 잠깐만!’
의식했을 땐 이미 달려 나가서 조그만 손을 잡아챈 뒤였다.
“잠깐!”
나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아이를 응시했다.
“그 음식 주워 먹으려 했던 거야?”
“…….”
내가 잡은 손에는 아니나 다를까 바닥에 떨어져 뭉개진 토마토가 쥐어져 있었다.
그리고 달빛 아래 보이는 토마토의 모습은…….
상했잖아?
처참하게 상해 있었다.
모를 수가 없었다. 한때 나도 이렇게 상한 음식을 억지로 먹어 본 적 있기 때문이었다.
……흑표범 가문에 팔려 갔을 때 말이다.
용 공작의 위장이 얼마나 튼튼한지 몰라도 애한테 이런 거나 먹으라고 주다니…….
‘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용 공작이 감시를 받는다거나 이런 낡은 건물에 있는 거라거나.
이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용 공작이었다.
이 제국의 상징, 그리고 모든 수인이 우러러보는 자.
그런 사람이 이런 취급을 받고 있을 줄은 몰랐다는 거다.
적어도 인간 대우는 해 줘야 하잖아…….
“이거 놔, 상했잖아.”
뱉고 나서야 존댓말을 해야 했나, 하는 생각이 들어 아차 싶었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고개를 들어 보니 새하얀 얼굴이 보였다.
‘내가 알던 나이 대는 아니지만, 얼굴은 전혀 다르지 않네.’
내가 좋아하는 새파란 머리카락이었다.
그 아래로는 핏줄이 비칠 것 같은 새하얗고 뽀얀 피부, 그리고 황금색 눈이 인상 깊게 뇌리에 박혔다.
‘……근데 상태가 왜 이래?’
내가 익히 보았던 미쳐 눈 돌아간 폭주 상태의 눈이 아닌, 어딘가 멍하고 몽롱한 눈동자였다.
아니, 무심해 보이기도 했고 텅 비어 보이기도 했다.
……영양실조인가?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었던 건, 홀쭉한 뺨이나 가느다란 목.
내게 잡힌 앙상한 팔목이었다.
‘마치 억지로 상한 걸 줘서 굶기거나 서서히 죽이기라도 한 것처럼…….’
여기까지 생각하다 말고 흠칫했다.
“하, 조금만 고생해라. 이것도 걔가 죽고 새로 태어나면 좀 나아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