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막 범고래 아기님 (78)화 (78/275)

제78화

“네가 지금 한 말은 못 들은 것으로 하지. 최근에야 느낀 거지만…….”

아빠는 나를 빤히 보더니 손을 가져다 대고 내 볼을 꾹 꼬집었다.

아프진 않았지만 쭈욱 늘어나는 볼살 덕분에 심각한 분위기가 갑자기 와르르 무너지는 느낌이 들긴 했다.

“너는 좀 더 아이다울 필요가 있어.”

“뭐?”

“인정하지. 나조차도 세 살에 너만큼 하진 못했을 거다. 대체로 천재들이 조숙하다는 건 인지하고 있다. 이런 경우 눈높이에 맞춘 교육과 함께 또래가 누리는 것 또한 함께 보여 줘야 한다는 것도.”

……뭐라는 거야?

아빠의 말이 이어짐에 따라 의문이 치솟는 동시에 나도 모르게 아빠의 주변을 보게 되었다.

이 방에 들어선 순간부터 본론을 말해야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어 전혀 살펴보지 못했던 주변이었다.

‘책?’

아빠 다리 근처에는 읽다 만 것인지 책이 뒤집어져 있었다.

제목을 읽어 본 나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기분에 사로잡혔다.

「내 아이를 올바르게 키우는 법」

눈을 깜빡였다.

솔직하게, 아주 솔직한 감상부터 튀어 나갔다.

“안 어울려.”

천하의 피에르가 육아 서적이라니? 다른 사람에게 말해도 아무도 믿어 주지 않을 일이었다.

그리고 나는 천재가 아니라 회귀자일 뿐이야.

미안하지만 올바르게 자라는 방법 따윈 오래전에 이미 무리인 일이 됐다고.

“그렇게 방치했으면서 이제 와 저런 책을 본다고 좋은 부모가 될 것 같아?”

“아무래도 그렇겠지. 하지만 노력하는 게 뭐 어때서. 너는 내가 이런 노력조차 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나?”

“응.”

“……참으로 형편없는 평을 받고 있었군.”

“신경 쓰고 싶었다면 처음부터 나를 세 살로 봤어야지, 지금 다시 본다고 뭐가 달라져.”

첫 번째 삶부터 신경 써 줬으면 좋았잖아.

이제 노력해서 달라지면 뭐가 달라져.

나는 집으로 가기로 단호하게 결심했고. 이런 변화로는 내 결심이 바뀌지 않아.

아빠가 양팔을 뻗어 나를 들어 올리더니 요리조리 살폈다.

“오랜 여행 때문인가? 오늘따라 영 표정이 좋지 않군. 아픈 건가?”

“누굴 닮아 더럽게 튼튼해서 이 정도 여행으로는 지치지도 아프지도 않아. 아까 식당에서 여우 때려잡는 거 못 봤어?”

아빠가 작게 웃었다.

“그래, 시원하더군.”

“…….”

인정한다.

우리가 조금만 더 빨리 이런 사이가 됐다면 생각을 달리했을지 모르겠지만.

아니, 최소한 이렇게 열 살까지 살았다면 또 모르겠단 생각이 들지만.

‘용의 도시에 너무 빨리 도착했어.’

나를 위해 행해 준 일이겠지만 우리가 함께할 수 없는 이유가 되어 버렸거든.

눈앞에 집으로 가는 길목을 앞두고 있는데, 왜 포기한단 말인가.

‘그래도 조금 전에 보인 모습이 심상치 않았지……?’

어째 정말로 나만 여기 있고 돌아가라고 했다간 엄청난 결과가 나올 것 같은 반응이었다.

조심할 필요가 있다.

나는 잠시의 고민 끝에 간단한 결론을 내렸다.

일단은 모른 척하자.

어떻게든 되겠지.

체념하거나 단순히 미룬 것만은 아니었다.

‘용 공작을 아직 못 봤으니.’

모든 건 용 공작을 만난 뒤에 확실히 결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미련이라도 남은 사람처럼 아빠를 빤히 보았다.

“……스승님, 나한테 잘해.”

이렇게 말하는 나도 범고래였다.

범고래의 집착은 범고래가 제일 잘 안다.

당신이 처음부터 나를 아끼는 아빠였다면.

당신은 병으로 못 죽었어.

나는 당신이 병으로 아무리 고통스러워해도 죽게 놔두지 않았을지도 몰라, 알겠어?

우린 차라리 지금이 나은 거야.

“그래. 앞으로 어떻게 더 잘할지. 매일 고민해 보도록 하지.”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 품이 따뜻하다는 사실 또한 조용히 넘기기로 했다.

* * *

그날 밤.

밤이 아주 깊어졌을 무렵, 나는 반짝 눈을 떴다.

사실 자기는커녕 뜬눈으로 시간 가기만 기다렸던 거지만.

‘낮잠을 자 두길 잘했어.’

아빠와 오묘하고도 난감한 대화를 나눈 뒤, 방으로 돌아와 그대로 누웠다.

생각해 봐야 심정만 묘해질 것 같아 억지로 잠을 청했다.

“세상에, 우리 공녀님 많이 피곤하신가 봐요.”

“그러게, 꾸벅꾸벅 조는 모습을 다 보네요! 귀여우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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