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5화
용 공작의 성은 아주 오래 전 용의 크기에 맞춰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걷는 길마다 보이는 모든 것들이 아주 큼지막했다.
천장도 매우 높았다.
게다가 천장에는 용의 업적이 천장화로 그려져 있어 안겨서 보고 있자니 참 볼만했다.
“축제, 꼭 보고 싶은데.”
사실 1순위는 용 공작과 만나는 일이라지만.
그래도 겸사겸사 축제를 즐겨 볼 마음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
나를 안고 가던 아빠가 흘끗 곁눈질하는 게 느껴졌다.
“바라는 걸 들어주기로 했지만, 아쉽게도 축제를 열어 줄 순 없겠군.”
“음, 알아. 그렇게 말해 준 것만으로 고마우니까 됐어.”
나는 픽 웃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속 시원하게 웃지 못했다.
아빠 노릇을 하겠다더니.
여정 동안에 피에르가 한 노력이 충분히 느껴졌다.
이미 벨루스에게 나는 가주가 될 생각이 없고, 돌아가는 길에 함께하지 않을 거라고 사실을 밝혔다.
아빠에게 말하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돌아가서 말해야겠지?’
일단 이 식당에 다녀온 뒤에 말이다.
그리고 식당으로 들어갔을 때, 내가 예상했던 분위기가 피부에 와닿았다.
우리가 들어선 순간, 식당 안이 일시에 조용해졌다.
“범고래 아콰시아델 가문의 피에르 아콰시아델 님과 자제분입니다!”
시종이 알고서 그랬는지, 아니면 당연히 외치는 게 의무인지는 모르겠으나.
쩌렁쩌렁 울려 퍼진 목소리가 이 식당 곳곳에 닿고, 벽을 긁듯 흘러내리는 듯했다.
‘무슨 식당에서 이름을 부르고 난리람. 연회장도 아니고.’
동물 울음소리를 듣는 줄 알았다.
무슨 수인인진 몰라도 저 시종 분명 ‘목소리’와 관련된 특기를 가지고 있을 거다.
‘하기야 여기엔 온갖 수인 가문들이 모일 테니, 들어올 때 소개도 당연한가.’
어디까지, 수중 동물, 육지 동물 수인들이 모두 참여했을 때, 서로를 알아보기 위한 용도로 좋겠지만.
여기에 수중 동물 수인은 우리뿐이었다.
이래서야 소문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기나 할까.
‘아빠도 똑같이 생각하고 있으려나.’
나는 고개를 들었다.
“아빠, 우리 소문에 대해서 알 수 있는 거야?”
“걱정 마라.”
“음?”
“방법이 있으니.”
방법 하니까, 문득 무언가 떠올랐지만.
아빠는 내가 예상했던 것처럼 뭔갈 부수지도 집사를 날려 버렸듯 누구 하나 두들겨 패지도 않았다.
‘음, 너무 내 식대로 생각했나.’
앞선 회차의 나였다면 일단 제일 가까운 놈 하나 구석으로 던지고 시작했을 거다.
그럼 누구든 공포에 질려서 말을 했을 테니까.
아, 어디까지나 이건 들어오자마자 상대가 먼저 시비를 걸었을 때 얘기다.
“뭐야, 어디서 비린내가 나네?”
그래, 바로 이렇게.
‘어째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예상을 벗어나질 않냐.’
하긴. 당연한 일인가.
몇 번을 회귀해도 달라지지 않은 것 중 하나였으니까.
“용의 축제에 바닷물이 묻었네요.”
“뭐, 소금맛이 나기야 하겠지만 어쩌겠어? 규칙이 그러하잖아.”
“으으, 냄새나.”
입을 벌려 말하는 이들은 따로 있었다.
아니, 식당 안의 부류는 딱 세 분류로 나뉘었다.
“법이 바뀌었으면 좋겠어요. 아니면 저들이랑 완전히 분리를 시키던가.”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법이 꼭 생기면 좋겠네요.”
하나, 열심히 입만 조잘거리는 인간들.
둘, 눈치를 보며 진땀을 흘리지만 어쨌거나 혐오 어린 시선으로 우릴 보는 사람들.
마지막, 비웃음과 재밌다는 웃음을 띤 채 공연 보듯 관람하는 인간들.
마지막은 아마 이 육지 동물들의 최상위 맹수에 가까운 수인들일 거다.
아니나 다를까 저 중에서 익숙한 얼굴을 발견했다.
‘흑곰.’
무식할 정도로 큰 덩치와 구릿빛 피부. 흑갈색 머리를 가진 남자였다.
“이야, 물고기들은 진짜 하얗네? 사슴보다 하얗겠어.”
“이봐, 그건 사슴한테 모욕이라고.”
“뭐야, 왜 네가 발끈해? 아, 맞다. 네 동생 사슴이랑 결혼했지?”
나는 쭉 살펴보다가 아빠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아빠.”
남들이 보는 앞이라 이렇게 불렀더니, 어째 아빠가 더욱 집중하는 느낌이었다.
“아빠. 만약 한 대 칠 거라면 저기 보여?”
“보고 있다.”
“응, 저기 빨간 머리카락, 쟤부터 때려 줘.”
아빠가 눈썹을 살짝 들어 올렸다.
음, 의문 어린 얼굴이네.
왜냐면 쟤가 곧 말이지…….
“이럴 게 아니라 정식으로 항의하죠. 고작해야 펄에서 조개나 캐 먹는 미개한 이들은 출입을 금지시키자고 말이에요! 아, 아니, 범고래들은 생각해 보니 잡은 물고기를 머리에 얹고 자랑이나 하는 야만인이라고 했던가?”
“…….”
“소금 썩는 냄새가 더욱 진동하기 전에 어서…….”
퍽!! 날아가는 빨간 머리를 보며 속으로 끄덕였다.
그래, 쟤가 제일 심한 소릴 할 줄 알았지.
저 새빨간 머리는 여우 수인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빨간 머리를 가진 여우 일족이 협잡과 조롱에 능했다.
빨간 머리 여우가 날아가자 모두 기다렸다는 듯 노려보거나 피하거나.
자리에서 일어났다.
“허, 이건 정식으로 시비를 거는 거라 봐도 좋겠지? 앞으로 일어나는 일은 합법이야. 엉?”
“합법 좋네. 그렇지, 아빠?”
그다음은 뭐. 입 아프게 말해 뭐 하겠는가. 손쉽게 끝났다.
잠시 뒤 누워 있게 된 쪽은 저쪽 대다수의 육지 동물 수인들이었으니까.
‘음, 이거 좀…….’
앞선 회차에서보다 육지놈들 수준이 영 별로네?
‘아직 제대로 된 놈들은 여기 도착하지 않아서인가?’
나는 이곳의 수인이 반수 이상 쓰러진 모습을 보며 태연하게 생각했다.
그때였다.
“이익, 무, 물고기 따위가!”
나는 내게 날아오는 손을 휙 피했다.
조금 전 가장 심하게 떠들던 놈 중 하나였다.
갈색 머리, 머리 위로 검은 줄무늬. 높은 확률로 라쿤 혹은 너구리겠다.
이놈들의 특징은 머리가 좋고 잔머리가 잘 돌아가니.
나를 붙잡아 인질이라도 삼으려 했으려나.
“아빠, 건드리지 마.”
이렇게 말하고는 내게 날아오는 손을 잡아 그대로 꺾었다.
“끄아아아아악!”
여기서 그치지 않고 통 튀어 올라 발끝으로 목을 차 버렸다.
뛰어난 육체 능력을 손에 넣은 뒤로 내가 가장 자신 있는 분야는 바로 이 뜀뛰기였다.
‘이게 바로 매일같이 해 댄 토끼뜀 500번의 위력이다, 알겠냐?’
필요 없는 성대의 수명을 끊어 버릴 듯한 공격이었다.
나는 고통으로 데굴데굴 구르는 수인을 보다 슬쩍 손가락을 밟았다.
내 몸무게는 그리 무겁지 않지만 모른 척 그동안 훈련했던 것을 이용해 힘을 꾸욱 주자 놈이 놀란 눈으로 비명을 질렀다.
‘역시 난 얘네가 싫어.’
이렇게 생각하며 힘을 살짝 뺐다.
“한 가지만 답하면 풀어줄게, 아저씨. 손가락, 잃기 싫지? 똑똑할 텐데 판단 잘해.”
“으윽, 물고, 아니, 뭔데. 뭔데!”
아빠가 골고루 쥐어 팬 덕분에 이곳에서 멀쩡하게 일어나 덜덜 떠는 이들은 처음부터 멀리 물러나 있던 초식동물 수인 정도뿐이었다.
“우리가 이곳에 왔더니 이상한 소문이 돌고 있지 뭐야? 용의 축제가 열리지 않는단 소문이 있던데. 아는 게 있어?”
“그, 그건 시종한테나 물어봐!”
“에이, 잘 아는 사람이 눈앞에 있는데 뭐 하러. 근데 살 만한가 봐, 아저씨!”
내가 해맑게 웃으며 다시 힘을 주자, 너구린지 뭔지 모를 수인의 얼굴이 새하얘졌다.
너구리 계열 동물은 참 귀여운데, 사람만 되면 악질적인 꾀를 부린다.
‘남자주인공 수하 중에도 있었지. 라쿤이었나.’
아, 물론 수중 동물 대상 한정으로 말이다.
결국 고통을 이겨 내지 못한 남자는 더듬더듬 알고 있는 모든 정보를 털어놓았다.
이것저것 알아내려고 약간만 더 밟아 주었더니, 결국 가장 중요한 걸 실토했다.
“잘 몰라, 잘 모른단 말이야! 하, 하지만 용 공작님께서 축제를 원하지 않아! 그, 그분이 아프다는 소문이 자자하다고!”
그 순간 내 주머니가 움찔했다.
정확히는 조용히 있던 투스가 꿈틀거리며 외친 상황이었다.
-거짓말이야!
거짓말?
“용 공작께서는 그냥 군림하길 바라는 거야, 우, 우리같이 하찮은 미물 따위 보고 싶지 않은 거지! 거처에서 호강하고 계시겠지!”
-거짓말이야! 거짓말! 공작님은……. 공작님은…….
나는 투스의 목소리를 듣다가 조용히 눈을 돌렸다.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진 않은데.’
저 남자는 완벽하게 공포에 질린 눈이다.
그렇다면.
저 남자가 아는 소문이 잘못되었을 가능성과 누군가 일부러 이 소문을 냈을 가능성.
두 가지를 고려해 볼 수 있겠는데.
“하, 하하하하!”
그때였다. 갑작스럽게 우렁찬 웃음소리가 식당 안에 울려 퍼졌다.
고개를 돌리면, 이미 아빠에게 나가떨어진 지 오래인 아까 그 흑곰이 우렁차게 웃고 있었다.
‘오, 아빠한테 밟힌 상태라 모양 빠지는 모습.’
“올해는 바다 놈들 중에서 쓸 만한 놈이 왔구나!”
꼭 있지, 저렇게 지고도 허세 떠는 놈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