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8화
순식간에 살기가 흩어졌다.
벨루스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애완동물도 키워?”
“키우겠냐?”
나는 대답하면서도 한편으로 조금 전의 팽팽한 긴장감이 흐려졌음을 깨달았다.
‘살기가 사라졌다. 이제 죽일 생각은 접은 건가?’
분명 내가 벨루스에게 느낀 건 살기였다.
한순간이긴 했지만 명확하게 느낀 기운.
정말이지 이놈의 오빠들은 방심할 수가 없는 놈들이라니까.
“애초에 고래가 뱀을 왜 키워?”
“별식으로 먹으려나 했지.”
“안 먹어. 안 먹는다고.”
“먹는 고래도 있던데?”
황당했다.
“도대체 뱀을 먹는 고래가 누구냐?”
이렇게 말하는데 손이 절로 진동하는 게 아닌가.
나는 품에서 달달 떨기 시작하는 뱀을 어처구니없게 보았다.
“야, 안 먹을 거니까. 너도 진정해.”
나는 한숨을 푹 쉬고는 고개를 들었다.
한 손을 불쑥 내밀었다.
“뭐 하자는 거지?”
“뭘 뭐를 해. 좀 잡아 줘.”
“…….”
나는 씩 웃었다.
“아빠가 다가오고 있어, 너도 기척 느끼지? 곧 올 거야. 빨리 내 손잡고 점수를 따.”
“내가 피에르 아콰시아델에게 점수 따윌 왜 따는데?”
“그럼 계속 시비나 걸면서 가겠다는 거야? 그럴 거면 한 마차에 타질 말든가.”
“할머니의 명이었어.”
“마차를 옮기는 대신 벌은 내가 받을 테니까 다른 마차로 가. 됐지? 어떡할래. 내게 흥미가 있다고 했으니, 그 말이 사실이라면 타협을 해. 나는 더는 지겨운 침묵 가득한 마차에 타기 싫으니까.”
삼형제 중에서 가장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벨루스였다.
곧 놈이 내 손을 잡고 들어 올렸다.
그와 동시에 아빠가 눈앞에 나타났다.
나는 성큼 다가오는 모습을 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도와줘서 고마워.”
“…….”
“날 죽게 둘 수도 있었던 거잖아?”
손을 꼬옥 잡았다가 놓았다.
“의외의 사실이겠지만 난 너 안 싫어해. 성가시다고는 생각하지만.”
놓고서 얼마 지나지 않아 내 몸이 둥실 떠올랐다.
겨드랑이로 손이 폭 파고들었다.
음? 나는 눈을 깜빡였다.
“칼립소 아콰시아델.”
“네, 네……?”
와, 쫄았다.
심상치 않은 아지랑이가 아빠의 주변에 둥실 떠다니는 것 같았다.
“저것들이 습격했나?”
분명 얼굴 표정은 평소와 다르지 않은 것 같은데…….
아니.
다르지 않은 게 아닌가……?
“그렇긴 한데 저, 스승님?”
“네가 가격당한 부위를 빠짐없이 서술해라.”
“네?”
“저놈들에게 오늘부터 없는 부위가 될 거다.”
“으응?”
그건 나쁘지 않지만…….
“괜찮아, 스승님. 이미 저놈들 오래 살기 힘들지 않을까?”
나는 아직 꿈틀거리는 암살자들 쪽을 가리켰다.
세 살배기 아이를 살해하려던 놈들이었다.
불쌍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벨루스가 아니었다면 죽는 건 내가 됐을 테니까.
‘저놈들은 내 시체에 침이나 뱉었을걸.’
바이얀과 큰아버지의 수하들은 주군을 닮아 성격이 지저분하다.
“곧 죽을 것 같아.”
“굳이 편안한 죽음을 선사할 이유가 있는가?”
“그건 없지?”
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쓰러진 놈들의 몸이 물줄기에 휘감겼다.
그대로 숲 한가운데로 사라지고, 아빠는 나를 안고 선 채로 잠시 숲을 보았다.
“크아아아악!”
“악! 아아아아악!”
“헉, 제, 제발, 크악 악! 아아악!!”
이어서 목소리가 들려 오기에 잠시 찌푸렸더니, 곧 목소리마저 사라졌다.
마침내 물줄기가 아빠에게로 돌아왔을 때엔 텅 빈 상태였다.
아빠는 모든 것이 끝날 때까지 무표정했다.
“끝났으니, 돌아가지.”
하지만 날 고쳐 안아 드는 팔은 여느 때보다 힘이 들어가 있었다.
“음, 스승님. 한 놈 정도는 남기는 게 좋지 않았을까?”
“왜?”
“그게, 증인으로 쓰려고 하나는 내가 기절시켰는데…….”
아빠의 물줄기는 그놈마저 숲으로 데려가 버렸다.
“필요 없다. 보낸 인간의 정체는 뻔할 테고. 찾는 것도 어렵지 않을 거다.”
뻔한 거야 사실이지만 어떻게 찾으려고?
누가 봐도 큰아버지인 로데센이 쓰는 지저분한 전략이긴 했지만 이를 입증하려면 한 놈은 살렸어야 했다.
“한 놈씩 족치다 보면 나오겠지.”
“으응?”
순간 나는 이 아빠도 그간 조용하긴 했어도 범고래는 맞구나 생각했다.
사납다 못해 차갑게 드러난 시선은 꼼짝도 못 할 만큼 깊고 심오한 광기와 살기를 드러냈다.
‘음, 그래. 대신 복수해 준다는데. 괜찮겠지.’
무어라 할까 하다가, 영 표정이 심상치 않길래 침묵을 택했다.
* * *
그날 저녁.
칼립소는 타닥타닥 피어오르는 모닥불 앞에 앉아 있었다.
오동통하고 작은 다리가 이리저리 휙휙 흔들렸다.
다리에 맞춰서 그림자도 살랑살랑 움직였다.
마치 고래가 꼬리로 춤을 추는 듯한 몸짓이었다.
피에르는 마차에 기댄 채로 칼립소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흔적은?”
그는 보지 않은 채로 옆에 대기하고 있던 기사에게 물었다. 기사가 고개를 숙였다.
“예, 피에르 님. 모두 처리했습니다. 염려 마십시오.”
용의 축제로 가는 일행의 숫자는 의아하리만큼 적었다.
“그 누구도 발견할 수 없을 겁니다.”
이는 피에르나 칼립소 모두 북적거림도, 많은 인원의 번거로움도 싫어했기 때문이었다.
칼립소가 보통 귀족 수인들이 하듯 대인원을 거느리고 이동하길 바랐다면, 피에르는 한 번쯤 들어줄 용의가 있었다.
하지만.
칼립소는 단 한 번도 요청하지 않았다.
연극을 했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저 조그마한 딸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한 부탁이라곤.
“용의 축제, 나 여기 데려가 줄 수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