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7화
죽지 않을 자신은 있었다.
그간 이전 회차에서 내가 어떤 삶을 살고, 위기를 헤쳐 왔는데.
앞선 회차에서는 이거보다 더한 상황도 많이 겪었다.
어린애가 집을 뛰쳐나가 홀로 살아남는 건 여간 쉽지 않은 일이었으니까.
뭐, 그래도 그때는 세 살보다 나이가 많았지만.
‘가장 좋은 건 여기에서 대기하는 동안에 저놈들이 포기하고 가는 거겠지만.’
애석하게도 이건 기각이다. 이곳은 오래 숨을 만한 곳이 되지 못한다.
“빨리 찾아! 저쪽에서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진다고!”
“내…… 동료가…… 하나 죽었어…….”
“젠장, 해파리 하나가 죽은 게 대수야? 지금 내 동료도 죽었다고!”
다행스럽게도 암살자 놈들은 다른 곳을 찾아보려는지 각자 흩어져 멀어지는 듯했다.
기척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고개를 들었다.
‘일단 걷는 데엔 무리가 없고, 전투만 어려울 것 같지.’
잠깐 부딪치는 것 정도는 괜찮을 듯하긴 한데…….
‘장시간 전투는 무리야.’
당연히 오래 걷는 것도 힘들 테고.
‘몸을 피해야 한다.’
숨을 장소를 찾아봐야겠네.
일단 장소는 옮겨야 해. 여긴 오래 있다간 들키기 딱 좋다.
나는 최대한 기척을 예민하게 관찰하며 자리를 옮겼다.
내가 이동하는 방향은 암살자들이 사라진 곳과 정반대이니, 아마 시간이 좀 있을 거다.
최대한 깊이 파고들 수 있는 곳이 좋은데.
적당한 나무옹이나 굴이나……. 그렇다고 너무 대놓고 있는 장소는 안 되고.
하나하나 꼽아 보며 걷던 순간이었다.
물컹.
무언가를 밟고 서둘러 자세를 잡았다.
방금 뭐였지?
삐이익-!
동시에 휘파람 소리인지, 아니면 아기 새의 울음인지 모를 오묘한 소리가 들렸다.
‘소리!’
나는 황급히 무엇인지 모를 것을 사로잡아 입을 막았다.
“……뭐야, 이건? 뱀?”
뱀이었다. 다만, 뱀이라고 하기엔…….
“지렁이인가.”
삐빅!
나는 다시 터져 나오려는 울음소리를 얼른 막았다.
“알았어, 지렁이라 안 할 테니까 조용히 해. 지금 이 숲엔 닥치는 대로 죽이는 수인이 들어왔으니까. 나랑 있다간 너도 죽는다?”
나는 순간 깨달았다. 얘는 수인 내지는 지능이 있는 놈이다.
왜냐면 거짓말처럼 조용해졌으니까 말이다.
“그래, 말 잘 들어서 좋다.”
나는 빠르게 살펴보다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데 너는 무슨 뱀이 뿔이 있냐?”
뿔이 있는 뱀이 있던가?
수중 동물 수인이 되었다 보니 아무래도 물 쪽 동물에만 빠삭했다.
‘게다가 비늘도 푸른색…….’
연상되는 수인이 없어 정체가 궁금해졌다.
하지만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아니었다.
내 코가 석 자였으니까. 대충 뱀이라고 생각하면 되겠지 싶다.
“시간 없으니까 빨리 말한다. 너 지능이 우수해 보이는데, 내 말 모두 알아듣고 있지? 놓아줄 테니까 조용히 해 주고, 얼른 멀리 가. 이곳에선 전투가 일어날 거야.”
나는 뱀을 내려놓고 걸음을 옮겼다.
그러다 곧 적당한 곳을 발견했다.
나 정도의 자그마한 체구도 겨우 들어갈 법한 작은 굴이었다.
게다가 주변을 나뭇가지로 가리면 감쪽같을 듯했다.
‘이거, 옛날 생각나네. 3회차에서 막 가출해서 숲에 살았을 때, 이런 거 모았는데.’
끙, 세 살 먹고 이 일을 똑같이 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말이지.
서둘러 근처에 떨어져 있는 가지를 주워다가 앞에 놓고 굴에 들어갔다.
그리고 자세를 잡은 뒤 희미한 빛을 바라보며 후, 한숨을 내쉬고야 고개를 돌렸다.
“뭐야, 너 왜 따라왔어?”
지렁이같이 조그만 뱀이 날 쫓아왔다.
소리 지르는 것도 아니고, 몸을 숨기는 게 먼저라 내버려 두긴 했지만.
삑!
“조용히 해. 기척이 느껴지니까.”
쉬익-.
허, 이것 보게. 조용히 하라니까 숨소리만 쉭쉭 댄다.
나는 피식 웃고는 조용히 밖을 응시했다.
아니나 다를까 가까운 곳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분명 이상한 울음소리가 들렸다니까?”
“그 공녀가 들짐승을 마주한 게 분명해.”
“아니, 그나저나 무슨 어린 꼬맹이가 흔적이나 발자국 하나 안 남겨? 숲에서 살아 보기라도 한 것처럼…….”
오냐, 꽤 오래 살아 봤다. 왜.
‘그나저나 이렇게 계속 숨어만 있을 수는 없는데.’
저놈들이 날 찾아 헤맨 시간, 그리고 내가 이동해서 새로운 숨을 곳을 찾은 시간. 모두 계산해 보면…….
꽤 시간이 흘렀다.
마차를 봤던 곳에서 여기까지 오기까지 걸리는 시간 정도는 될 것 같은데.
‘과연 올 수 있을까.’
상황이 나에게 호의적이지 않았다.
게다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나는 머지않아 알 수 있었다.
이 굴은 본래 주인이 따로 있던 굴이었다는 것을.
파팍, 파바박!
내 뒤에서 흙덩이인 줄 알았던 것이 마구 움직였다.
‘뭐야, 토끼잖아?!’
야생 토끼는 나를 보고 놀란 건지, 마구 흙을 파헤치더니 쏜살같이 밖으로 달려 나가 버렸다.
“지렁이, 너 살고 싶으면 도망가든가 내 주머니에 얌전히 있어!”
나는 서둘러 뱀을 챙기고는 토끼를 쫓아서 밖으로 나갔다.
‘굴 안에 있을 때 들키면 도망칠 곳이 없어.’
아니나 다를까 토끼가 나타난 것을 본 추격 수인들 사이에서 소란이 일더니, 이쪽으로 달려오는 것이 느껴졌다.
“저기다! 저기야!”
“공녀다! 뛰어!”
나는 빠르게 뛰었다. 하지만 달리기로는 승부가 되지 않았다.
내가 지구력이 좋아도 마찬가지였다.
신체 길이가 다르니까.
머지않아 나무가 울창한 숲 사이, 조그마한 공터에서 막다른 길을 마주했다.
거대한 나무가 눈앞에 있었다.
“드디어 찾았다.”
“시간 없어, 빨리 없애.”
……시간이 없다고?
“숲에 거의 들어선 걸 봤다고!”
나는 싸울 자세를 취했다. 그러자마자 발목이 시큰거렸지만 꾹 참았다.
이대로 무사히 가기만 하면 용 공작을 만난다고.
제발, 앞으로는 방심 안 하고 신중히 살 테니까.
이번 한 번만 행운이 따라 줘라!
쉬이이익!
이리저리 몸을 움직여 빠르게 피했지만, 내게 달려드는 모든 단검을 피할 수는 없었다.
역시 애들 중에서 잘난 놈이랑 싸우는 것과 어른과 싸우는 건 달랐다.
내게 무수히 쌓인 경험이 아니었다면 이번 삶은 여기가 끝장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아이 씨, 왜 아무도 안 오는 거야!’
나는 잠시 소강상태로 접어들었을 때 주머니에서 조그만 뱀을 꺼내 몰래 뒤로 던졌다.
이럴 줄 알았으면 굴에 놔두고 올걸.
“도망가.”
괜히 데려와서 얘도 죽게 생겼네.
‘후, 어쩔 수 없지. 여기서 못 보게 되면…….’
조금 아쉬웠다.
생이야 이번에 방법을 알았으니 반복해서 용 공작을 만나면 되겠지만.
인연을 다시 맺어야 할 테고, 기억이 없는 사람을 또다시 마주해야 할 것이다.
그건 그거고.
“너희 바이얀을 따르는 방계지? 메기에 해파리도 같이 있을 테고. 망둥어도 있냐?”
“그걸 어, 어떻게…….”
망둥어의 은신 능력은 은신을 특기로 가진 수인 중에서도 특출나다.
“뭐 하는 거야, 빨리 죽여! 시간 없다고!”
“그래, 저 꼬맹인 이미 지쳤어!”
대화로 시간을 끌어 보려 했지만 소용없다는 듯 검이 앞으로 날아왔다.
지치지는 않았지만 욱신거리는 다리가 나를 붙잡았다.
이런. 이건 다치는 걸 감수해야겠는데…….
그렇게 생각하며 몸을 반쯤 뒤로 물렸을 때, 검이 무언가에 부딪친 듯 튕겨 나갔다.
“헉……. 고, 공자다.”
“젠장……!”
모두가 돌아선 곳에 벨루스가 평온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놈은 흙이며 잎이며 잔뜩 붙은 내 몰골을 태연하게 바라보다 손을 휘저었다.
아빠만큼은 아니지만 물줄기가 치솟았다.
“제길, 작전은 실패다, 모두 돌아가.”
“하지만……!”
“우리 중에서 저 힘을 뚫을 사람은 없어!”
암살자들이 도망가려 했지만 나는 잽싸게 움직여 가장 마지막에 있던 놈의 등을 있는 힘껏 발로 찼다.
어딜, 한 놈은 증인으로 남겨야지!
“…….”
그리고 고개를 돌리자 도망가려던 놈들이 모두 바닥에 쓰러져 움찔움찔대는 것이 보였다.
바닥의 푸르른 풀 위로 붉은 물감이 물들었다.
나는 하아, 숨을 내쉬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아이고, 죽겠네.
이렇게 앉아 있으려니 이윽고 내 앞으로 그림자가 졌다.
“…….”
벨루스가 멀거니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스물스물 느껴지는 살기도 함께였다.
나는 고개를 들어 올렸다.
“……왜, 죽이려고?”
“글쎄.”
확실히, 죽이려면 지금 같은 기회가 없었다.
여기서 내가 죽으면 암살자가 죽였는지 누가 죽였는지 어떻게 알겠나.
“벨루스, 너 여기서 날 죽이면 후회한다. 왠지 알아?”
“…….”
“백 퍼센트 아빠는 네가 날 죽인 걸 알 거야. 그럼 너도 죽어.”
“…….”
삐이익-!!!
내가 살기에 반응해 언제라도 뛰어오를 준비를 하는데, 내 가슴으로 톡 뛰어든 뱀이 마구 울음을 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