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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막 범고래 아기님 (66)화 (66/275)

제66화

“그럼 구경하자.”

“네, 구경을…… 네?”

“원래 세상에서 제일 재밌는 게 싸움 구경이야. 아, 혹시 과자는 없나?”

청어 자매가 얼떨떨한 눈으로 나를 보았다.

곧 한 사람이 손을 번쩍 들고 챙겨 둔 게 있다며, 정말로 과자가 담긴 주머니를 내밀었다.

“그럼 먹으면서 구경하자.”

아주 좋아. 여기가 명당이라고.

습격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당연하지. 피에르 아콰시아델이 여기 있는데 할 필요가 있을까.

마치 조기 축구회에 나갔더니 우리 팀에 피파 축구 랭킹 1위가 있는 상황과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암살자들이 쉭쉭 소리를 내며 달려들었지만.

허공에서 생성된 물줄기가 빨랐다.

‘오, 물을 저렇게도 이용하는구나. 괜찮은데?’

아빠는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도 삼십여 명이나 되는 이들을 틀어막았다.

저들 중에 물의 힘을 사용할 수 있을 정도의 인재도 섞여 있는 걸 보면.

방계의 인재들까지 총동원한 모양인데…….

‘그나저나 큰아버지는 성격이 급하긴 해도 바보는 아닐 텐데 어째서 이렇게 움직인 걸까.’

생각해 보면 너무 무리수를 둔 거 아닌가 싶다.

아빠인 피에르가 있는 데다 나를 비호하는 걸 안다면 섣불리 움직일 수 없을 거였다.

자칫 잘못하면 꼬리를 밟힐 가능성도 있었으니까.

“와, 정말 대단하시네요…….”

“맞아, 피에르 님에 대한 말만 들었지 처음 봐요.”

어느새 걱정이 가득하던 에이야와 비요 모두 커다란 눈을 깜빡이며 감탄했다.

데데는 입까지 헤벌레 벌린 채 구경했다.

“확실히 우리 아빠가 잘 싸우긴 하지.”

나 또한 고개를 끄덕이면서 눈을 떼지 못했다.

아빠는 날아오는 놈들에게 손 한 번 대지 않으면서도 가끔 귀찮다는 듯 지척까지 다가온 놈들은 손으로 툭 이마를 밀어 버렸다.

문제는 그렇게만 해도 저 멀리 나가떨어진다는 거지만. 경이로웠다.

‘와, 물의 힘을 응용하는 건 진짜 엄청난 수준이네.’

이건 열심히 봐 둬야지.

이렇게 생각하다 말고 옆을 보았는데, 벨루스 또한 싸움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뭐랄까, 저 눈은 호승심인 것 같으면서도 살기도 어렸고 또 알 수 없는 감정도 어린 오묘한 모양새였다.

‘어쨌거나 지금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거겠지?’

이렇게 느긋하게 생각하는 순간이었다.

“꺄악 공녀님!”

“공녀님!!”

눈 깜짝할 사이에 남색 옷이 눈앞을 가득 메웠다.

나는 남은 과자를 던져 버리고서는 옆으로 폴짝 뛰었다.

내가 있던 자리로 날카로운 단검이 꽂혔다.

나는 허공에서 얼른 자세를 바꿔 바닥에 착지했다가, 그대로 발에 힘을 주고 다시 뛰어올랐다.

으랏차차, 정의의 세 살 킥이다 이 XX야.

퍼억!

내 발이 남자의 명치에 꽂혔다.

그에 그치지 않고 반대쪽 손도 움직여 줬다.

“으으윽! 억!”

명치로 모자라 목을 가격당한 남자가 그대로 털썩 쓰러졌다.

남자가 쓰러지기 무섭게 나는 사납게 고개를 돌렸다.

“스승님!”

여기까지 암살자가 도착할 리가 없었다.

저 애비가 일부러 놓아준 게 아니라면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암살자들을 상대하면서도 느긋하기 짝이 없던 아빠가 몸까지 돌려가며 나를 향했다.

“일부러 보냈지?”

“그래.”

그 와중에도 달려드는 놈들은 물줄기로 휙휙 잘도 잡아냈다.

“실전 훈련이다.”

가볍게 말한 아빠가 손을 휙 흔들자, 거대한 파도가 일더니 남아 있던 암살자를 그대로 덮쳤다.

‘나는 실전 같은 거 하지 않아도 충분하거든?’

이미 그 실전 10년 넘게 겪었단 말이야!

게다가 여긴 일반 수인인 하녀들도 있는데 다치면 어쩔 뻔했어.

‘내가 그렇게 두진 않았겠지만…….’

나는 툴툴대면서도 쓰러진 남자를 꾹꾹 밟았다.

“다들 놀랐지, 괜찮아?”

“네, 네……. 괘, 괜찮아요!”

“저도요!”

“세상에…… 우리 공녀님 정말 대단하세요!”

“맞아!”

“폴짝 뛰어오르는 모습 너무 귀엽고 멋있으셨어요!!”

청어 자매가 나를 흉내 내듯이 폴짝 뛰어올랐다.

내가 그렇게 뛰었나?

여전히 다정한 애정엔 면역이 없던지라, 마찬가지로 어색하게 웃었다.

아마 그러니까, 이건 그래서 눈치채지 못했던 것일 거다.

나도, 옆에서 남 일이라도 되는 듯 멀거니 서 있던 벨루스도.

심지어 그 아빠조차도.

방심은 그 어떤 강자도 무너트리는 최고의 수단이라고 했던가.

‘뭐지?’

문득 시선이 마주쳤다. 벨루스의 눈이 답지 않게 커진다.

그리고 나는 발목을 덥석 쥐는 감촉에 깜짝 놀랐다.

시선을 아래로 내리면, 내 발목을 쥔 손이 보였다.

‘……뭐야, 분명히 바닥에 있는 놈은 확실히 기절시켰는데?’

예상치 못했던 상황에 살짝 당황하며 재빠르게 살폈다…….

‘이놈은, 내가 쓰러트린 놈이 아니야!’

흙바닥에서 삐죽 솟은 손.

‘설마…… 바닥에 매복한 놈이 있었다고?’

미친.

누가 여기까지 생각한 거야?

큰아버지인 로데센이 생각할 수 있는 수가 아닌데?

그러나 이렇게 생각할 땐 이미 늦은 뒤였다.

마땅히 떨쳐내기에는 여의치가 않았다.

그때, 땅에서 솟은 물줄기가 내 발목을 쥔 손을 꿰뚫었다.

아빠의 것이 아니었다. 벨루스 놈의 힘이 느껴졌으니까.

그와 동시에 거대한 진흙이 날 덮쳤다.

‘진흙 파도! 혹시 메기 수인이 있는 건가?’

메기는 야생의 강바닥에 사는 물고기다. 그답게 메기 수인은 땅을 파거나 진흙을 던지는 특기가 있는 놈이었다.

이렇게 생각하기 무섭게 손을 통해 찌릿하는 느낌이 전해져 왔다.

“꺄악, 공녀님! 공녀님!”

“안 돼요, 공녀님!!”

그와 동시에 눈앞이 깜깜해졌다.

전기 충격, 이거 잘 아는데…… 그리 예감이 좋지 않았다.

‘전기 뱀장어? 아냐, 걔들과는 느낌이 달라. 속이 울렁거리는 이건…….’

알았다!

‘……X됐네.’

나는 그 와중에도 다른 손을 움직여 잡히는 무언가를 있는 힘껏 때렸다.

콰직, 하고 무언가 부러지는 느낌을 받았다.

곧 손목을 잡은 힘이 느슨해짐과 함께 몸이 두둥실 떠오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눈을 감았던 건 아주 잠시뿐이었다. 그럼에도 눈을 떴을 땐 낯선 곳에 서 있었다.

‘여긴 어디지?’

나는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주변을 훑었다.

사방에 풀이 가득하다.

‘아까 마차를 타고 가면서 근처에 숲이 있던 걸 봤어.’

우리가 달렸던 길은 황무지였지만 바로 옆으로 울창한 숲이 펼쳐져 있었다.

수풀을 헤치고 조금 걸어 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숲과 황무지를 나누는 경계가 보였고, 저 멀리 내가 타고 온 마차가 눈에 들어왔다.

‘역시나 단거리 이동 능력이네.’

내가 느꼈던 전기가 찌릿하는 느낌은 단거리 이동 전에 느끼는 증상이었다.

수중 동물 수인 중에 이런 특기를 가진 이들이 있었다.

눈에 띄는 특기를 가졌지만 소수밖에 존재하지 않는 수인들.

해파리들이다.

‘큰아버지가 해파리들과 결탁했구나.’

따지고 보면 그렇게까지 대단한 능력은 아니었다.

장거리 이동은 불가능했고, 이렇게 단거리를 이동하거나 이동시키는 능력이었으니까.

‘정리하자면 습격한 놈들은 미끼였고, 진짜는 바닥에 매복했던 놈들.’

메기들이 땅을 파서 공간을 만들었고, 해파리들이 이동을 위해 함께 대기했다.

‘여기에 기척을 숨겨 주는 놈이 하나 더 있었겠지.’

수중 동물 수인 중에는 은신을 특기로 가진 동물도 있다.

조그마한 물고기 종류 중에선 꽤 많았다.

자연에서 자신의 몸을 지키는 능력이 특기로 발현한 거니까.

이들은 자신을 은신하는 것뿐만 아니라 동료를 은신시키는 일까지 가능했다.

‘메기와 해파리만 있었다면 모를까, 은신까지는 생각 못 했어. 그 인간들이 매번 무시하는 일반 수인의 도움을 빌리다니.’

나는 눈을 가늘게 좁혔다.

이건, 약한 수중 동물을 무시하는 큰아버지와 그들의 보수적인 세력 안에서는 생각해 낼 수 없는 유연한 사고다.

즉, 절대 큰아버지가 떠올릴 만한 계획이 아니란 소리다.

생각나는 사람이 하나 있었다.

‘큰어머니인가.’

일단 생각은 여기까지 하고.

마차를 발견한 이상 걸으면 되겠지만…….

무리하게 움직였더니 발목에 살짝 통증이 있다.

조금 전, 마지막 순간에 손목을 잡혔을 때 짜릿한 전기 신호 느낌에서 불길함을 느껴, 나는 본능적으로 손을 움직여 날 잡은 놈을 후려 팼다.

아마 해파리 수인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동에 문제가 생겨 놈들이랑 같은 곳이 아니라 나만 다른 곳에 툭 떨어진 거겠지.

‘그렇다는 건…….’

아니나 다를까 숨죽이고 기다리자, 주변에서 낯선 말소리가 들렸다.

“제길, 공녀는 어디로 간 거야!”

“해파리 네놈들은 일 하나 똑바로 못해?”

“분명…… 이곳 어딘가엔 있을…… 겁니다…….”

우르르 몰려오는 발소리가 함께였다.

나는 최대한 기척을 죽이며 몸을 숨겼다.

‘옷이 녹색이라 다행이었네.’

게다가 몸이 작아 숨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싸우는 방법도 있겠지만, 일단 저들의 숫자가 얼마나 되는지 모르는 데다.

물의 힘을 사용할 수 없는 것. 여기에 다리가 약간이지만 시큰거리기까지 했다.

불리한 상황에서 움직여 봐야 좋을 게 없었다.

‘이제 어떡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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